성차별 반대하면 오히려 성차별을 하게 된다?   

2012. 9. 2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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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집에서 애들이나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남성이 해야 할 일과 여성이 해야 할 일이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합니까? 남성들이 주류를 차지하는 직업 세계에 여성들은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지요? 여성들에게 가장 적당한 직업은 요리사, 간호사, 교사일까요?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정말로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합니까? 아마도 여러분 중 대부분은 이런 성차별적인 질문에 '아니오'라고 분명하게 대답할 겁니다. 이 블로그의 방문자분들은 훌륭한 양성평등주의자(혹은 페미니스트)일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방금 함정에 걸려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성차별적인 질문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표한 후에 누군가가 성(gender)과 관련된 판단 과제를 제시하면 여러분은 무의식적으로 성차별적인 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일이죠? '여성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고 인정할수록 나중에 편견적인 행동을 보인다고? 그럴리가!' 부정하고 싶지만 이는 베누이 모닌(Benoît Monin)의 실험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모닌은 200명의 실험 참가자에게 위에서 언급한 것과 비슷한 질문 5개를 제시하고 동의 여부를 물었습니다. 그런 다음 시멘트 회사에서 사업 확장을 위해 신규직원을 뽑는다는 가상의 사례를 참가자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이 사례는 지원자가 고객과의 협상력, 공사 감독과 건설회사와의 친화력, 전문 기술 등이 갖춰야 한다고 이야기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여성보다는 남성 직원이 적합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겼죠. 모닌은 참가자들에 남성과 여성 중 누가 이 포지션에 적합할 것 같은지 물었습니다.


5개 질문에 대해 '아니오'라고 대답하면서 여성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임을 강하게 유도 받은 참가자들은 놀랍게도 그렇지 않은 참가자(사전에 질문를 제시 받지 않은 참가자)들에 비해 시멘트 회사에 근무할 사람은 남성이어야 한다는 대답을 더 많이 내놓았습니다. 분명히 여성 차별적이지 않다는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남성성이 강한 직업에서 여성을 더 많이 배제하려 했던 겁니다.


후속실험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모닌은 컨설팅 회사에 입사를 원하는 지원자 5명의 이력서를 보여주고 그 중에 한 명을 선택하라는 과제를 참가자들에게 던졌습니다. 지원자들 중에는 유일하게 백인 여성 1명이 포함되어 있었는데(나머지는 모두 백인 남성), 명문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기에 누가 봐도 다른 지원자들보다 매력적으로 보였죠. 이런 조건 하에서 참가자들은 '나는 여성에 대해 편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신호를 받았거나 '나는 여성에게 편견을 가지지 않는다'라고 무의식적으로 인식했을 겁니다.


하지만 모닌이 첫 번째 실험에서 제시했던 시멘트 회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참가자들은 이런 조건에 노출되지 않은 참가자들(지원자 5명 모두가 백인 남성이라는 조건을 접한 참가자들)에 비해 여성보다 남성을 더 많이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모닌은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에 대한 편견 상황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실험을 수행했는데, 흑인에 대한 편견이 없음을 사전에 자극 받은 참가자들이 신임 경찰관으로 흑인보다는 백인을 더 선호했습니다.


이렇듯 성, 인종, 정치적 성향 등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자극 받고 나면 그 다음에 보이는 판단과 행동이 편견에 빠지고 마는 현상, 간단히 말해 편견이 없다는 자신감이 오히려 편견에 의한 행동을 강화시키는 현상, 이를 심리학에서는 '크레덴셜 효과(Credentials Effect)'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해, 직전의 말이나 행동이 편향되지 않았다고 자신하거나 느낄수록 그 다음의 말이나 행동이 편향적이어도 된다는, 일종의 자격(credentials)을 부여 받는다는 뜻입니다. 착한 일을 하면 나쁜 일을 해도 된다고 여긴다는 '도덕적 허용(Moral licensing)'이란 개념과 크레덴셜 효과를 연결하면 평소에 양성평등을 외치던 사람이 엉뚱하게도 여성 비하적인 발언을 하거나 성희롱를 저지르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편견이 없다고 자신하면 오히려 편향된 행동이 강화되는 현상. 인간의 심리는 알면 알수록 오묘합니다. 여성 인력을 많이 채용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기업일수록 알게 모르게 차차 여성 인재(혹은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려는 경향이 드러날지 모릅니다. 또한 기업에서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필수로 진행하곤 하는데 크레덴셜 효과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바라지 않는 상황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참고논문)

Benoît Monin, Dale T. Miller(2001), Moral Credentials and the Expression of Prejudi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Vol.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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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황된 '장미빛 전략'이 난무하는 이유   

2012. 9. 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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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여러분에게 간장과 케첩이 혼합되어 역겨운 액체를 마셔보라고 권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역겨움이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라고 말하면서 학문의 발전에 기여하는 마음으로 이 액체를 가능한 한 많은 양을 마셔줄 것을 부탁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간장과 케첩이 섞였다고?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 맛이겠죠. 프린스턴 대학교의 에밀리 프로닌(Emily Pronin)과 동료들은 이런 역겨운 액체를 마셔야 하는 실험에 153명의 학생들을 참여시켰습니다. 


학생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첫 번째 그룹은 이 액체를 곧바로 먹어야 한다면 얼마를 마실지 결정해야 했죠('현재의 나'를 위한 결정). 반면, 두 번째 그룹은 오늘밤으로 계획된 실험이 연기되어 다음 학기에 실행될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때가 되면 얼마를 마실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미래의 나'를 위한 결정). 세 번째 그룹의 학생들은 이 액체를 자신이 아니라 다른 학생이 실험에서 마실 양을 결정하라고 요청 받았죠('타인'을 위한 결정). 학생들은 1작은큰술, 1큰술, 1/4컵, 1/2컵, 1컵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과학의 발전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양을 선택해 줄 것을 부탁 받았습니다.





학생들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학생들은 '현재의 나'보다는 '미래의 나'에게 역겨운 간장-케첩 음료를 더 많이 '먹이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당장 음료를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대략 2큰술 정도 마실 수 있다고 했지만, 다음 학기에 자신이 먹어야 할 경우에는 반 컵 분량에 가까운 음료를 마시겠다고 답했습니다. 타인을 위해 음료의 양을 결정할 경우에도 역시 반 컵 정도의 음료를 할당했습니다.


이 결과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는 사실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간장-케첩 음료는 지금도 역겹고 다음 학기에도 똑같이 역겹습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역겨움에 대한 내성이 생길 리 없습니다. 하지만 실험의 결과는 사람들이 '미래의 나'가 그런 역겨움을 더 잘 참아내리라 믿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에 비해 무엇이든 잘 참아내고 잘 극복하는 이상적인 대상으로 막연히 떠올린다는 것이죠. 또한 '미래의 나'를 위한 결정과 '타인'을 위한 결정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는 실험 결과는 우리가 '미래의 나'를 낯선 타인과 동일시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미래의 나'를 '나'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죠.


확인을 위해 프로닌은 낙제 받을 위험에 처한 동료학생 A를 위해 공부를 도와줄 수 있는지 학생들에게 묻는 후속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험이 중간고사 기간에 수행되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이타적인 결정과 이기적인 결정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죠. 프로닌은 학생들에게 "바로 A를 도와줘야 하는데 몇 시간이나 도울 수 있는가?('현재의 나')"라고 물었고, 다른 학생들에게는 "A를 다음 중간고사 기간에 도와줘야 한다면 몇 시간이 도울 수 있는가?('미래의 나')"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현재의 나' 조건의 학생들은 27분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한 반면, '미래의 나' 조건의 학생들은 85분이나 도울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다른 학생이 A를 도와야 한다면 몇 시간이나 도와줄까?"라는 '타인' 조건의 질문을 받은 학생들은 120분이나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답했죠(하지만 '미래의 나' 조건과 비교했을 때 통계적인 차이는 없었음).


"100분의 1의 확률로 50달러에 당첨될 수 있는 복권을 지금 받을 것인가, 아니면 65달러에 당첨될 수 있는 복권을 2.5개월 후에 받을 것인가?"를 묻는 실험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현재의 나' 조건일 때는 46퍼센트만이 2.5개월 후에 복권을 받겠다고 말한 반면, '미래의 나'와 '타인' 조건일 때는 공히 74퍼센트가 복권을 나중에 받겠다고 답했습니다.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에 비해 만족을 지연시키며 더 잘 참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는 뜻이었죠. '미래의 나'는 '타인'처럼 먼 존재로 여긴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람들은 '미래의 나'를 이상적인 존재로 상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재의 나'가 하지 못한 일을 '미래의 나'는 잘 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일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고 없던 능력이 생겨나며 열정이 솟아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나'는 어떻게든 해낼 것이라고 사람들은 막연하게 믿어 버리죠. '미래의 나'는 사실 '현재의 나'와 별로 다르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미루는 습관'의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 프로닌의 실험은 의미가 있지만, 기업이라는 조직에 시사하는 바도 큽니다. 크고 작은 프로젝트 계획을 수립할 때 혹은 중장기 전략을 세울 때 '미래의 조직'을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래가 되면 '다 이루어지겠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 어떻게든 해결되겠지.'라고 막연한 기대를 겁니다. 사실 '미래의 조직'이 '현재의 조직'보다 더 나아진 상태라고 보장하지 못하는데도 말입니다. 이는 '지금은 간장-케첩 음료를 2큰술 밖에 못 먹지만 그때가 되면 1/2컵이나 마실 수 있을 거야.'란 생각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만약 '미래의 조직'을 이상화하는 편향에 빠지면 프로젝트 계획이나 중장기 전략이 허황된 '장미빛'으로 가득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일정을 아주 빠듯하게 잡는다든지, 기대효과를 부풀린다든지 하겠죠. 돌발변수나 예상되는 리스크에 대한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저 '잘 되겠지'란 근거 없는 낙관주의만 난무할 겁니다.


'미래의 조직'은 '현재의 조직'에 비해 더 체계적이고 더 경쟁력 있으며 더 일사불란한 조직일 거라고 믿는 순간, 오늘 여러분이 수립하는 크고 작은 계획들은 태생적인 리스크를 잉태하는 꼴입니다. 그 계획들을 실행할 '미래의 조직'의 실태를 냉철하게 판단할 때 현실성 있는 계획이나 전략이 수립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미래의 조직'은 '현재의 조직'과 별다를 것이 없으니까요.



(*참고논문)

Emily Pronin, Christopher Y. Olivola, Kathleen A. Kennedy(2008), Doing Unto Future Selves As You Would Do Unto Others: Psychological Distance and Decision Making,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Vol.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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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를 승진시키지 마라   

2012. 9. 1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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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랑이 심하고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 믿으며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토론 그룹의 일원으로 끼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의 리더십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여러분은 아마도 그를 리더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평가하겠다고 말할 겁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믿는 자, 뭔가 잘못되면 자신은 뛰어난데 주변 상황이 자신을 도와주지 못한다며 불평을 늘어 놓는 자, 즉 '나르시시스트(Narcissist)'에게는 리더의 지위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겠죠.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르시시스트들은 사람들로부터 리더의 소양을 갖춘 자로 인정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나르시시스트를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동료들이 아니라 지근거리 너머에 위치한 나르시시스트의 상사에게 리더십이 뛰어나다고 평가 받기 쉽습니다. 오하이오 주립대의 에이미 브루넬(Amy B. Brunell)과 동료 연구자들이 수행한 일련의 실험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브루넬은 효용이 이미 증명된 설문지를 통해 실험 참가자들의 나르시시즘 성향, 5대 성격 특성, 자존감을 측정한 후에 무작위로 4명씩 그룹을 이루게 했습니다. 각 그룹에게는 학생회의 프로그램 디렉터에 지원한 후보자의 가상 프로필을 읽고서 후보자의 리더십과 능력 등을 평가하는 위원회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물론 멤버들은 토론을 통해서 그룹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야 했죠. 토론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의 리더십을 평가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얼마나 그룹의 리더가 되기를 희망하는지도 적어야 했죠. 분석 결과, 참가자들의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을수록 그룹의 리더가 되길 원하는 정도가 높았고 자신의 리더십도 높이 평가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은 참가자가 다른 멤버로부터 높은 리더십 평가 점수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실험은 나르시시스트가 리더로 인정 받거나 선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학생회 디렉터를 평가하는 일처럼 확실한 '정답'이 없는 문제를 토론 주제로 주었기에 나르시시즘과 리더십 점수 사이에 연관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을지 모릅니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브루넬은 난파선이 어느 섬에 가까스로 당도한 상황을 이야기해주고 난파선에서 구할 수 있는 15개의 물건을 생존에 필요한 순서에 따라 배열하는 과제를 참가자들에게 부여했습니다.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로 4명씩 구성된 그룹 멤버들은 토론을 통해 그룹의 의견을 결정해야 했고, 토론이 끝난 후에 자신과 다른 멤버의 리더십을 평가해야 했습니다. 결과는 동일했습니다.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을수록 다른 멤버로부터 리더십 평가를 높게 받았죠. 하지만 나르시시즘 성향은 개인과 그룹의 성적(15개 물건을 옳게 배열하는)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습니다. '잘났다'고 자랑하는 나르시시스트들이 실상은 그렇게 잘나지 않았다는 하나의 증거였죠.


브루넬은 MBA 과정에 다니는 153명의 관리자를 대상으로 비슷한 실험을 수행함으로써 결과를 다시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무작위로 4명씩 구성된 각 그룹은 가상의 기업이 기부한 자금을 가지고 예산을 정해야 하는 학교 이사회의 역할을 맡아 자기 그룹의 의견을 최종 결정해야 했습니다. 앞의 두 실험과 다른 점은 보다 객관적인 측정을 위해 2명의 훈련된 평가자가 멤버들의 리더십을 평가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분석 결과, 훈련 받은 전문 평가자가 측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은 자가 역시 높은 리더십 점수를 받았습니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어떻게 하여 다른 이들로부터(심지어 전문 평가자로부터) 리더로 인정 받는 걸까요? 아마도 그들은 토론이 시작되자마자 자신의 의견을 남들보다 자주 개진하고 다른 멤버들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일 겁니다. 여기에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나르시시스트의 태도가 다른 멤버들에게는 자신감으로 인식되어 보다 쉽게 영향 받고 보다 쉽게 설득되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이유가 분명치는 않지만 어쨌든 나르시시스트들은 리더로 인정 받을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입니다.


물론 브루넬의 실험은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짧은 시간 동안 느낀 리더십을 평가토록 한 것이기에 멤버들이 오랫동안 같이 일할 경우에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나르시시스트의 실체가 무엇인지 깨달은 동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를 리더로 인정하지 않으려 않겠죠. 하지만 그렇게 동료들에 의해 빨리 탈락되는 나르시시스트들은 그저 '왕자병', '공주병' 환자에 불과합니다. 진짜로 영악한 나르시시스트들은 높은 위치에 오르기 전까지 자신의 발톱을 숨기며 남들에게 성실한 모습을 보인다고 합니다. 특히 상사에게는 더욱 그러하죠. 여기에 사람을 잘 다루며 설득력 있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사회적 스킬을 가미하면 나르시시스트가 리더로 인정 받고 선발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집니다. 리더로 선발할 권한은 대개 나르시시스트의 상사(혹은 경영자)가 쥐고 있기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관점(동료들의 관점이 아니라)에서는 나르시시스트를 비(非)나르시시스트보다 '좋은 리더'로 여길 가능성도 높습니다.


좋은 리더를 뽑기 위해 평가 센터(Assessment Center)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방법도 나르시시스트를 걸러내지 못한다는 것을 브루넬의 세 번째 실험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전문적으로 훈련 받은 평가자도 나르시시스트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했으니 말입니다. 오히려 평가 센터가 나르시시스트의 승진을 돕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나르시시스트들을 승진의 사다리에서 내려오게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발톱을 철저히 감춘 나르시시스트를 밝혀내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은 직원들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폭넓게 들어보는 것 뿐입니다. 


그간 이 블로그에서 나르시시스트에 관해 언급한 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성과를 우선하기에 조직 성과를 방해하고, 창의적이지 않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강요함으로써 조직의 창의성을 저해하며, 지나치게 과감한 결정을 내려서 조직을 위험에 빠뜨리고, 급기야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비리를 저지르고도 응당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로 착각하기도 하죠. 나르시시스트가 조직의 리더로 잘못 인정 받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일 또한 건강한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방법임을 항상 기억해야겠습니다.



(*참고논문)

Amy B. Brunell, William A. Gentry, W. Keith Campbell, Brian J. Hoffman, Karl W. Kuhnert, Kenneth G. DeMarree(2008), Leader Emergence: The Case of the Narcissistic Leader,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Vol. 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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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못 본다   

2012. 9. 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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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탑에 갇힌 죄수가 탈출을 감행하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 그에게는 밧줄이 하나 있는데 애석하게도 길이가 탑 높이의 반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밧줄을 반으로 자른 다음 둘을 묶어서 안전하게 탈출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많이 알려진 이야기라서 답을 알고 있을 겁니다. 죄수는 밧줄을 가로로 자른 것이 아니라 세로로 나눈 다음(즉 꼬아진 밧줄을 푼 다음) 그 둘을 연결해서 탈출했다는 것이 바로 정답이죠.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이런 퀴즈를 내일 풀어야 한다고 상상할 때보다 지금으로부터 1년 후에 풀어야 한다고 상상할 때 더 수월하게 정답을 맞힌다는 사실을 발견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2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기관이 아니라 2천 마일 떨어진 기관을 위해 문제를 푸는 것이라 여길 때에도 역시 정답을 보다 쉽게 맞힌다는 사실도 알아냈죠.





뉴욕대의 에번 폴먼(Evan Polman)은 '시간적 거리(temporal distance)'와 '공간적 거리(spatial distance)' 이외에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도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데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했습니다. 폴먼은 137명의 학부생 중 절반에게 자신이 탑에 갇혀 있는 죄수라고 상상케 한 다음 문제를 풀도록 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다른 사람이 갇혀 있다고 상상하게 하고서 문제를 풀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상한 대로 다른 사람이 죄수라고 상상할 때 문제를 풀 가능성이 66퍼센트로서 자신을 죄수라고 가정할 때의 48퍼센트보다 높았습니다.


사실 폴먼은 이 실험을 실시하기 전에 262명의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사회적 거리와 문제 해결의 창의성과 연관성이 있음을 이미 규명했습니다. 폴먼은 어떤 사람이 나중에 쓰게 될 이야기를 위해 외계인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참가자의 절반에게 요청했습니다. 나머지 절반에게는 자신이 나중에 쓸 이야기를 위해서 역시 외계인의 모습을 그리라고 했죠. 2명의 평가자가 참가자들이 그린 그림의 참신함과 독특함을 평가한 결과, 누군가를 위해 외계인을 그릴 때의 그림이 더 창의적이었습니다. 


폴먼은 사회적 거리를 느낄 때 문제를 더 수월하고 더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자 후속실험을 실시했습니다. 폴먼은 참가자들을 세 그룹을 나눴는데, 각각 '자신', '가까운 타인', '아주 먼 타인'을 위해서 5개의 선물 아이디어를 제시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타인에 관한 정보의 양과 문제 해결의 창의성을 따져보기 위해 '가까운 타인'과 '아주 먼 타인'을 위해 아이디어를 제시해야 할 그룹을 다시 두 개의 하위그룹으로 나눠서 각각 타인에 관한 정보를 1개 혹은 5개를 제공했습니다. 실험 결과, '아주 먼 타인' 그룹은 '가까운 타인' 그룹과 '자신' 그룹보다 창의적인 답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타인' 그룹과 '자신' 그룹과의 차이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타인에 관한 정보의 양은 창의성과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각 그룹에게 타인을 잘 안다는 자신감, 타인과의 감정적 개입의 정도, 현재의 기분 등을 묻고 난 다음 아이디어의 창의성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분석했지만 역시 상관이 없었습니다. 사회적 거리, 그 자체만이 창의성과 연관이 있다는 의미였죠.


폴먼의 연구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아이디어를 내거나 의사결정을 할 때 대체적으로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부동산 중개인이 부동산 소유자보다 매매 가능 가격을 더 정확하게 산정한다든지, 이혼 소송 전문 변호사가 상대방의 주장을 더 명확하게 인식한다는 사례를 봐도 그렇습니다. 기업에서 외부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는 이유는 사회적 거리가 먼 사람이 문제를 들여다 볼 때 창의적인 해법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타인을 위해 문제를 해결할 때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폴먼은 지적합니다. 타인이 문제를 해결토록 하면 인지 편향(cognitive bias)를 줄일 수 있지만 체계적 편향(systematic bias)의 위험은 무시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추운 겨울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때 옷을 적절하게 입히지 못할 가능성이 큰데, 따뜻한 집에 있을 때는 바깥이 얼마나 추울지 정확히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체계적 편향이란, 자신을 둘러싼 조건들을 타인의 문제 상황에 대입하거나, 타인이 처한 조건이나 니즈를 올바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나중에 비난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정확한 판단을 유보하는 등의 편향을 말합니다.


따라서 폴먼의 실험으로부터 얻을 시사점은 나의 문제를 타인이 풀도록 맡겨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그러면 체계적 편향의 위험이 있으므로), 자신의 문제를 타인의 문제인 듯 바라보려는(그렇게 함으로써 인지 편향을 줄여서) 의도적인 노력이 도움이 된다는 점입니다. 자신과 문제를 객관화하여 조망하는 습관이 현명한 해법을 도출하는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잘 못보는 법입니다. 장기를 둘 때 훈수하는 사람이 묘수를 더 잘 알아채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참고논문)

Evan Polman, Kyle J. Emich(2011), Decisions for Others Are More Creative Than Decisions for the Sel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Vol.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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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덕적인 자를 승진시키지 마라   

2012. 9. 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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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여 비리를 저지르는 모습을 우리는 언론을 통해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 빈도가 너무나 잦아서 권력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사적 이익을 추구해도 용인되는 자리라고 여기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기업 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직위나 직책이 높아질수록 자신의 권한을 활용하여 공익(the common good)보다는 사익(Self-interest)을 추구하려는 자들이 눈에 띕니다. 사익이라고 하니 거창한 것 같지만, 공적인 목적으로 써야 할 법인카드를 사적 용도로 사용한다든지 부서 전체의 공로를 가로채어 자신이 기여한 성과인 양 상부에 알린다든지 하는 행위 등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지만 권한이 높은 자리에 오른다고 해서 누구나 사익에 눈이 머는 것은 아닙니다. 권력자의 위치에 올라도 자신의 이익을 덜 취하려 하거나 사익에 둔감하고 공익을 우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토론토 대학의 캐서린 드첼레스(Katherine A. DeCelles)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도덕적 정체성'이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와 밀접한 상관이 있음을 실험을 통해 밝혔습니다. 먼저 드첼레스는 173명의 직장인들에 구조화된 설문지를 돌려서 권력적인 기질과 도덕적 정체성의 정도를 각각 측정했습니다. 여기서 도덕적 정체성이란 배려, 연민, 공정함, 친화, 관대함, 도와주기, 근면, 정직, 친절이라는 9가지 성격적 특성으로 세분되는 개념입니다. 1주일 후에 참가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드첼레스는 첫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에게 과거에 권력을 행사했던 경험을 글로 쓰게 함으로써 권력자의 위치가 된 듯 프라이밍(priming)시킨 반면, 대조군인 두 번째 그룹에게는 단순히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쓰도록 했습니다.


그런 다음 참가자들은 일종의 '독재자 게임(Dictator game)'에 임했습니다. 100달러 짜리 상품권을 따려면 게임에서 가능한 한 많은 포인트를 따야 하는데, 주어진 10포인트 중에서 얼마를 자신이 가지고 얼마를 상대방에게 줄지 결정해야 했죠. 이 게임을 통해 참가자 각자가 사익을 얼마나 추구하는지를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게임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지난 한 주 동안 '나는 일부러 일찍 퇴근했다', '일하기 싫어 오래 휴식을 취했다', '내가 근무한 시간을 속여서 보고했다' 등의 항목을 읽고 얼마나 자주 그랬는지 답했습니다.


실험을 종료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니 권력, 도덕적 정체성, 사익 추구 경향 사이에 뚜렷한 상호작용이 있음이 발견되었습니다. 도덕적 정체성이 높은 참가자들의 경우 권력과 사익 추구의 행동 사이에 음(-)의 상관관계가 나타난 반면, 도덕적 정체성이 낮은 참가자들의 경우에는 권력과 사익 추구의 행동 사이에 양(+)의 상관관계가 뚜렷했습니다. 도덕적 정체성이 높은 사람이 권력자의 위치에 가면 도덕적 정체성이 낮은 사람에 비해 사익 추구의 행동을 덜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도덕적 정체성이 높은 권력자는 공익을 증진시키는 반면, 도덕적 정체성이 낮은 권력자는 공익을 해친다는 것입니다. 드첼레스는 후속 실험을 통해 도덕적 정체성이 높은 사람이 도덕적 의식도 높기 때문에 권력을 가져도 사익을 추구하려는 행동을 덜한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연구는 그 당연함을 실험으로 확인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이 연구는 어떤 사람을 권한이 큰 자리에 승진시키거나 누군가에게 좀더 큰 재량권을 부여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일러줍니다. 도덕적 정체성이 낮은 사람을 승진시키거나 그들에게 권한을 강화시킬 경우에 공익보다는 사익을 추구하려고 행동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만일 도덕적 정체성이 낮은 자가 이미 권력자의 지위에 올라 있다면(혹은 재량권이 큰 부문을 맡고 있다면) 그들의 도덕적 정체성을 제고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겠죠. 또한 그들이 권력을 남용하여 사익을 도모하는지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직위에서 일을 잘하거나 역량을 발휘한다고 해서 권한이 큰 자리로 승진시킬 경우 도덕적 정체성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없다면 머지않아 조직의 윤리적 안정성을 위협 받는 상황이 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능력 뿐만 아니라 도덕적 정체성 또한 승진 결정의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되어야 합니다. 잘 나가던 회사가 소위 'CEO 리스크' 때문에 위험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가장 단적인 예가 미국 최대의 가전 판매 체인인 베스트바이(Bestbuy)의 CEO였던 브라이언 던(Brian J. Dunn)이 여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회사 공금에 손을 댄 것이 들통나 2012년 4월에 해고된 사건입니다. 가뜩이나 아마존이나 이베이와 같은 인터넷 상거래 업체의 공세로 인해 2011년 4분기에 17억 달러나 적자를 내며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리더십의 부재는 베스트바이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죠. 2012년 8월 새로운 CEO로 위베르 졸리(Hubert Joly)를 선임했지만 과연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여러분의 회사는 주요 관리자로 승진시킬 때 도덕적 정체성을 얼마나 염두에 둡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경영자와 관리자는 얼마나 도덕적입니까?



(*참고논문)

Katherine A. DeCelles, D. Scott DeRue, Joshua D. Margolis, Tara L. Ceranic(2012), Does Power Corrupt or Enable? When and Why Power Facilitates Self-Interested Behavior,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Vol. 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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