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은 물고기'에도 좋은 먹이를 줘야 합니다   

2024. 3. 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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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가 컨설팅 회사를 다닐 때 ‘자기 조직화’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과 어쩌다 같이 프로젝트 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자기 조직화(self-organized)’란 말은 스스로 계획하고 스스로 프로세스를 진행할 줄 알며 문제가 발생하면 본인 책임을 지고 대처하는 역량을 의미합니다. 

 

그는 소위 ‘아이리 리그’의 MBA를 졸업한 사람이었습니다. 객관적인 학력으로만 보면 저보다 훨씬 앞선 자였기에 그랬는지, 그의 연봉은 저보다 1.5배 가량 많았습니다. 연봉을 비밀로 하는 게 컨설팅 사 내부의 ‘훈령’인데 어떻게 알았냐고요? 그 친구가 파트너(임원)와 맺은 연봉 계약서를 제가 봤으니까요. 몰래 훔쳐 본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뭔가를 물으러 갔는데, 다들 보라는 듯이 노트북 PC 위에 떡~하니 올려놨기 때문이었죠.

 

저는 밸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하기에도 바빠 죽겠는데 ‘왜 내가 나보다 연봉을 많이 받는 사람을 ‘교육’까지 해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무리 MBA 출신이라지만 자기 조직화 역량은커녕 필드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몰랐고 고객사의 비즈니스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지에 관한 이해가 상당히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가뜩이나 어려웠던 프로젝트가 그 사람으로 인해 더 힘들었답니다.

 

어이없게도 그는 고객과 회의를 하는 동안에도 저에게(그리고 클라이언트에게도) “그게 뭔가요?”라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급기야 클라이언트는 나를 불러내 이렇게 따졌다. “그 사람, 컨설턴트 경력 몇 년이나 됩니까? 왜 명함에 나온 직급이 유 선생님보다 높은 거죠?”라고.

 

 

수개월 간 그 사람과 같이 일하느라(아니 그를 가르치느라) 지친 저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습니다. 일은 제가 다 하는데, 연봉은 그 자보다 덜 받으니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겠습니까? 더욱이 파트너를 찾아가 연봉 인상을 요구했다가 그로부터 ‘넌 학력이 못하잖아’라는 뉘앙스의 말을 듣고나서는 ‘이놈의 회사, 떼려치고 만다!’란 결심이 강해졌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MBA 출신을 데리고 오려면 그 정도 연봉을 줘야 했어.”라고. 이렇게 제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저는 2~3개월 후에 다른 컨설팅 회사로 옮겼습니다. 응당 받아야 할 연봉을 약속 받으면서.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할 때 많은 경영자들이 기존 직원을 홀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잡은 물고기에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라는 게 원칙이라고 되는 것처럼 거의 관행이 되었죠. 영입된 인재에게 약속한 연봉을 기존 직원들에게까지 적용하면 인건비가 크게 향상될 테니 어쩔 수 없이 ‘쉬쉬’하는 건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기존 직원들은 바보가 아니죠. 저처럼 연봉 계약서를 우연히 볼 수도 있고 어딘가에서 정보가 새어나와서 “이번에 입사한 A는 연봉을 떠블로 받는다더라!”라는 소문이 퍼질 수도 있죠. 

 

여기에서 중요한 포인트! 이렇게 새로 영입된 인재의 연봉이 기존 직원의 연봉보다 높을 때 연봉 인상이 되지 않는 기존 직원은 회사를 떠날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떠나는 직원들 중 회사 성과에 크게 기여하는 우수인재가 더 많다는 점입니다. 우수인재로서 자신의 기여를 제대로 보상 받지 못하고 있다는 실망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으로 회사에 ‘이용 당했다’는 분노도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죠. 연봉을 ‘현실화’해 주지 않을 때 그 분노는 회사 이탈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말하니 제가 우수인재였다라는 자랑처럼 들릴 수 있겠네요. 연봉 높은 사람이 입사한 후에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로 결심을 했으니까요. 맞습니다. 저는 우수인재였어요. 컨설팅 사에 다니면서 시나리오 플래닝 방법론을 만들어가면서 컨설팅을 했으니 ‘나는 우수인재였다’란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새로운 인재 영입은 비즈니스에 중요한 활동입니다. 하지만 기존 직원들 중 우리 조직에 꼭 필요한 우수인재를 잘 다독이고 관리하는 것은 더 중요한 활동입니다. 회사의 ‘어법’을 알고 노하우를 축적한 그들의 가치가 높은 연봉으로 모시고 온 영입인사에 비해 결코 낮지 않으니까요. 잡은 물고기에게는 계속 ‘좋은 먹이’를 주는 것이 인사의 기본입니다. (끝)

 

 

*참고논문

Visier Insights™ Report: New Facts About Pay & Compensation

https://www.visier.com/lp/visier-insights-report-compens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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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 않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2024. 3.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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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일입니다.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집 근처 셀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습니다. 다음날 일찍 나가야 해서 시간을 절약하고자 미리 주유를 해놓자 싶었죠. 휘발유 5만원을 선택하고 주유구를 열어 기름을 넣으려 하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더군요.

 

뒤를 돌아보니 한 남자가 두 손을 맞잡고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는 한쪽 구석에 윈도우 블레이드(와이퍼)를 쌓아놓고서 오가는 손님들에게 영업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유소에 들어갈 때 다른 손님의 차에 와이퍼를 갈아끼워 넣는 그를 언뜻 본 듯 했죠.

 

그는 저에게 제 차의 와이퍼 상태가 좋지 않으니 교환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기가 바로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주유구에 기름을 넣느라 제 눈은 주유구와 그를 왔다갔다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저는 “필요 없습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관심을 보이는 척 하면 집요해질까 봐 사전에 차단하고자 했죠.

 

하지만 그는 제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예상보다 강적이었죠. 그는 와이퍼를 갈아야 한다, 앞유리를 보니 먼지가 잘 안 닦이는 것 같다, 저렴하게 해줄 테니 이 기회에 교환해라, 앞 와이퍼를 교환하면 뒷 와이퍼를 무료로 달아주겠다 등의 말을 쏘아대기 시작했거든요. 

 

저는 순간 난처했습니다. 이렇게 찰싹 달라붙어 ‘너에게 꼭 와이퍼를 팔고 말겠다’라는 결기까지 느껴지는 그에게 어떤 말로 거절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게다가 주유가 다 끝난 건지, 아직 주유기가 돌아가고 있는지, 신용카드 결제 완료는 확인했는지, 주유구 캡을 옳게 잠갔는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옆에서 큰 소리로 떠드니 정신이 없었죠.

 

 

계속 그 태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으니 화가 나더군요. 저는 “안 한다니까요. 필요 없다구요!”라고 귀찮다는 듯 내뱉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순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대꾸하더군요. 그 말이 참 ‘걸작’이었습니다.

 

“와이퍼를 교환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저는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평소 이런 질문에 대답할 말을 미리 준비해 둘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제가 무슨 대답을 할지 몰라 약간 우물거렸는데 그 틈을 비집고 그가 다시 “왜 교환 안 하시나요?”라고 재차 물었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니? 난 그냥 당신이 귀찮아. 그러니까 사고 싶지 않아!’라는 게 그에게 진짜로 내뱉고 싶은 대답이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나름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일 테니까요.

 

그래도 부아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주유하랴, 결제하랴, 차 안의 자질구레한 휴지를 버리랴, 바쁜 저에게 강매에 가까운 태도로 접근하는 것도 모잘라 ‘안 사는 건 너의 죄야!’라는 식으로 죄책감 유발까지 하다니! ‘그 말 안 했으면 내가 샀을 텐데, 당신이 선을 넘는구나!’ 저는 그의 질문을 무시하고 “네, 전 정말 필요없습니다. 바빠서 가겠습니다.”라고 냉큼 차에 올라타 주유소를 빠르게 빠져 나왔습니다. 리어뷰 미러로 그를 살짝 훔쳐 봤는데, 장사꾼 답게 저에게는 빛의 속도로 관심을 끊고 다른 손님에게 와이퍼 한 쌍을 들고 접근하더군요. 저는 그를 흘끗 보며 "다시는 만나지 맙시다!"라고 차 안에서 외쳤습니다. 마치 소금을 뿌리듯이.

 

‘구입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를 말해라, 내가 너의 대답을 좀 들어야겠다’ 식으로 손님을 대하는 판매자, 저에게는 아주 성가시면서도 (어떤 의미에서)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본인 딴엔 손님의 구매 결정을 촉발시키는 일종의 ‘치트키’였을지 모르지만, 불쾌한 기분은 텁텁한 음식을 먹은 후의 입맛처럼 아직 남아 있군요. 

 

저도 앞으로 그래볼까 합니다. 클라이언트를 찾아가서 “컨설팅을 받지 않으려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라고 묻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려야겠어요. 그러면 클라이언트로부터 어떤 대답이 나올까요? 

 

농담입니다. 저는 절대 그러고 싶지 않네요. 클라이언트를 몰아세우기까지 하면서 일하고 싶지 않거든요. 무엇보다, ‘유정식이란 컨설턴트는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란 마음을 들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요. ‘컨설팅 안 받으려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라는 궁금증이 간혹 드는 경우가 있지만, 그건 속으로 삭혀야 합니다. 클라이언트가 특별한 이유를 말한다 한들 어디에 써먹으려고요? 그저 “아, 그러시군요. 잘 알겠습니다.”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척하고 말 텐데요.  안 그렇습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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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을 나쁘게 만드는 사소한 말   

2024. 3.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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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는 당근마켓이나 중고나라 같은 중고 매매 사이트를 자주 들락거립니다. 고장품(정크)으로 나온 워크맨이나 카세트 플레이어를 ‘득템’하기 위해서죠. 운이 좋을 때는 ‘정상품이면 고가’였을 제품을 아주 싼 가격에 들일 때도 있기에 키워드 알림을 설정해 놓으며 장터에 ‘매복’ 중이죠.

 

엊그제 일이었습니다. 빈티지 카세트 플레이어가 장터에 나왔다는 알림이 뜨길래 그걸 보자마자 접속했습니다. 요즘에는 나오기 어려운 색상의, 80년대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소형 카세트였습니다. 모노(Mono)이긴 하지만, 음질이야 감성으로 듣는 것이고 장식장에 올려두면 옛날 생각도 나고 좋을 것 같아 바로 구매욕구가 솟구쳐 올랐죠. 고장품이었지만 판매자가 제시한 가격은 그리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고치면 그 가격의 두 배 이상의 가치를 할 것 같았죠.

 

하지만 그가 써놓은 멘트를 보고 구매욕이 싹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검색하면 그가 누구인지 드러날 수 있기에 실제 워딩을 쓰지는 않겠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어요. “장난치면 가만 안 둔다!” 

 

 

보아하니 그는 전문으로 중고품을 판매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그동안 ‘찔러나 보는’ 구매자들에게 질린 모양이었습니다. 짐작컨데, 터무니없이 깎아 달라고 하거나, 구매 의사도 없으면서 이 질문 저 질문 해대거나, 구매하겠다고 했다가 ‘잠수’ 타는 등의 상황을 숱하게 접했겠죠. 그렇지 않으면 그런 식의 험상궂은 멘트를 적을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판매자의 심정이 이해가 가면서도 혹시 저도 그 사람에게 장난치는 구매자로 찍힐까 싶더군요. 제품에 관해서 질문 하나 하기도 무서울 것 같더군요. 아무리 화가 나도 공개된 사이트에서 ‘가만 안 두겠다’는 말은 협박처럼 들렸습니다. 물론 악성 구매자에게 경고하는 차원으로 한 말이겠지만, 저 같은 ‘선량한 구매자’까지 ‘잠재적 악성 구매자’로 모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더군요. 우습게도 그는 본인이 판매하는 모든 물건에 그 멘트를 똑같이 ‘복붙’해 놓고 있었습니다. (어이구, 상남자 나셨네!)

 

그래서 결국 저는 ‘잘됐으면 좋겠네.’라며 기원 아닌 기원을 해주고 그의 알림을 지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순간 몇 만 원의 돈을 벌 기회를 잃었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이번엔 제가 판매자가 되어 불용품 하나를 당근에 싼 가격에 (눈물을 머금고) 올려놨습니다. 인기 있는 제품이라서 그런지, 십 몇 분만에 구매 의사 채팅이 들어왔습니다. 가장 먼저 구매 의사를 밝힌 사람에게 물건을 판매하는 게 중고장터의 불문율이지만, 저는 그에게 팔지 않기로 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이미 다른 분께 팔렸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했죠. 

 

왜냐하면 그가 보낸 구매 의사 메시지가 이렇게 왔기 때문입니다. 

 

“님 아직 판매 중?”

 

‘뭐야, 왜 이리 말이 짧아?’ 기분이 확 상하더군요. ‘이런 무례한 사람에게 내 물건을 내줄 수는 없지!’ 그 순간 그는 인기 좋은 중고품을 싼값에 얻을 기회를 잃었습니다.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로 인해 운이 들어오려다가 돌아나가 버립니다. 운이 좋으려면(아니, 적어도 운이 나쁘지 않으려면)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생각이란 걸 좀 해야’ 합니다. 이 말과 글을 듣고 읽을 사람은 어떤 기분일지를.  오늘은 ‘행운은 횡재가 아니라 이삭 줍듯 차곡차곡 쌓이는 것’임을 마음에 담아 봅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덧글: 저 역시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이나 글을 무심코 내뱉는 바람에 내가 얻을 운이 다른 이에게 주어진 적이 분명 있었을 텐데, 앞으로는 특별히 조심하겠다는 다짐으로 사과를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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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꾼 다섯 권의 교양과학책   

2024. 3.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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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글에서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의 책 <침팬지 폴리틱스>를 독자 여러분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글을 쓰고 나니 과학을 잘 알지 못하는, 아니 과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무리없이 읽을 수 있을 뿐더러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 삶의 소중한 통찰을 얻는 데 그 어떤 책들보다 도움이 되는 교양과학책을 추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름하여 ‘내 인생을 바꾼 다섯 권의 교양과학책’. 말이 좀 거창할지 모르지만, 각각의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를 구분지을 만큼 제 가치관과 세계관 전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책들입니다. 이미 읽은 책도 있을 겁니다. 혹여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다면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합니다. 실망하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과학 용어가 좀 어려울 수 있는데, 교양과학책 읽기도 일종의 습관이라서 몇 권 읽다보면 용어가 익숙해질 뿐더러 설령 익숙해지지 않더라도 대략의 의미만을 알고도 술술 읽힐 겁니다.

 

<침팬지 폴리틱스>, 프란스 드 발

이 책을 읽으면 ‘정치 본능’이 인간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범위나 강도의 크기만 있을 뿐) 생명체의 기본 특질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여러 마리의 침팬지가 서로 야합하고 속이고 공격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가는지가 소설처럼 재미나게 서술돼 있습니다. 이 책을 제 인생을 바꾼 교양과학책 중 하나로 선정하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과학용어가 거의 없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겁니다. 직장인이라면 필독서!

 

<풀 하우스>, 스티븐 제이 굴드

진화학자인 그는 생명의 진화 과정에서 얻은 지혜를 일상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쉽게 설명하는 ‘대중 과학자’였습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아쉬움을 주는 그의 대표 저서인 이 책은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다양성의 증가다’라는 새로운 시각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허황된 것인지 깨닫게 해 주죠. 인간 진화는 ‘우연과 무작위’의 부산물이라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이 책을 읽으면 그의 촘촘한 논리와 박식한 지식에 매혹될 겁니다.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이미 읽었을 대표적인 교양과학책입니다. 아직까지 과학 부문의 베스트셀러에 랭크되는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았다면 빨리 읽기 바랍니다. 세계관의 전환을 경험할 테니까요. ‘이기적 유전자’라는 말 자체가 꽤나 도발적이어서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데, 그건 책을 숙독하지 않고 제목이나 광고 카피만 보고 제멋대로 유추한 탓입니다. 생명체는 유전자의 운반체일 뿐이다, 라는 그의 과감한 주장이 무엇을 진정 의미하는지 이 책을 읽으며 찾아 보기 바랍니다.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일리야 프리고진

복잡계 혹은 카오스 이론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아마존에서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면 플로리다에 허리케인이 발생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 있죠? ‘비선형적’인 ‘피드백(되먹임)’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복잡한 현상들을 낳지만 그 안에 ‘아름다운 질서’가 숨어있다는 것이 복잡계 이론 혹은 카오스 이론의 얼개입니다. 이 책은 좀 전문적이라서 쉽게 읽히지는 않겠지만 꼭 도전해 보세요. 세상을 선형적(혹은 기계적)으로 바라보던 시각이 상당히 교정될 겁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요.

 

<과학혁명의 구조>, 토마스 S. 쿤

1962년에 출간된 이 책은 고전 중의 고전입니다. ‘패러다임’이 바로 이 책에서 등장하는 말입니다. 과학의 역사를 돌아보면 ‘확확’ 바뀌는 시점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패러다임이 전환’입니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뉴턴의 역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전통적 원자 이론이 양자역학으로… 이렇게 패러다임이 전환되면서 과학의 유산이 쌓여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AI가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을 알리고 있잖습니까? 과학책이라기보다 과학철학에 가까운 이 책을 읽고나면 ‘부드럽고 점진적 변화’가 과연 존재하는가란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요? 제가 그랬습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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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잘 알지 못한다'가 공감의 시작   

2024. 3.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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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필수 역량으로 요즘 중요시되는 것이 바로 ‘공감 능력’입니다. 직원들이 “팀장님은 우리와 잘 공감하는 분이야.”라며 공감 능력에 높이 평가할수록 직원은 리더를 적극적인 사람, 포용적인 사람, 혁신적인 사람이라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입니다. 또 공감 능력이 높은 리더와 함께 일할수록 직원들의 이직률이 낮죠(우수인재의 이탈가능성이 낮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공감’이란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한자어 뜻을 그대로 풀면 ‘함께 느끼는 것’이 공감입니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 타인의 감정이나 경험 등을 ‘비슷한 수준으로 느끼는 것’이 공감이라고 말할 수 있죠. 그래서 누군가 속내를 털어놓으면 “내가 그 마음 잘 알지.”라고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공감 잘하는 스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내가 그 마음 잘 알지’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꽤 정확한 신호라는 것을 아시는지요? 예전에 발표된 심리 연구에 따르면, 가족이나 친구, 팀 내의 상사와 직원들은 서로 ‘붙어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경험과 감정을 다른 이들보다 자주 공유하는데 이렇게 가까운 사이일수록 ‘공감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가까운 사이일수록 경청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잘 아는 사이이기에 ‘내가 그 마음 잘 알지’라고 말하며 상대방의 감정이나 경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단하고 속단하는 거죠.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세요.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털어놓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몇 마디만 듣고서 “내가 그 마음 잘 알지.”라고 딱 선을 긋듯 말하면 못다한 말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상대가 다 안다는데 계속 말을 이어가면 불평분자로 인식될까 우려하여 속으로 ‘내가 말을 말지’라며 마음을 닫고 맙니다. 직원과 리더처럼 상하 관계에서는 빛의 속도로 마음의 문이 닫히겠죠.

 

공감을 잘하는 리더는 ‘내가 그 마음 잘 알지’라고 말하지 않고, 상대방이 겪는 경험이나 사건을 본인이 겪었으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반응’해 줍니다. “정말 짜증스러운 일이었구나.”라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져서 상대방이 더욱 깊은 이야기를 풀어내도록 격려할 줄 알죠. “그래서 어떤 감정이 생기던가요?”라고.

 

서로 잘 아는 사이라고 해서 상대방의 감정과 경험까지 속속들이 알 수 없습니다. ‘내가 그 마음 잘 알지’는 ‘내가 공감을 잘하지’란 말처럼 속빈 강정일뿐만 아니라 직원들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듭니다. ‘나는 너를 잘 알지 못한다’라는 마인드. 대화할 때 이것만 염두에 두면 지금보다 공감 능력을 20~30%쯤은 높일 수 있을 겁니다. 참 쉽죠?  (끝) 

 

 

*참고논문

Savitsky, K., Keysar, B., Epley, N., Carter, T., & Swanson, A. (2011). The closeness-communication bias: Increased egocentrism among friends versus strangers.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7(1), 269-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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