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느끼는 고통 중에서 물건이 발등으로 떨어질 때처럼 몸부림조차 치기 어려운 고통은 없습니다. 온몸이 경직되면서 입은 떡 벌어지는데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죠. 뇌에서 이러한 물리적인 고통이 처리되는 부분은 '전방 대상피질(dorsal anterior cingulate cortex)'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거절 당하거나 버림 받았을 때 느끼는 '사회적 고통'과도 연관된 부분이라는 사실이 뇌과학자들의 연구로 밝혀졌습니다. 물리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이 뇌의 같은 부분에서 처리되는 것입니다.


(*출처 : http://office.microsoft.com/ko-kr/images/)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던 C. 네이선 드월(C. Nathan DeWall)과 동료 연구자들은 '물리적 고통을 줄여주는 진통제가 사회적 고통에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란 재미있는 발상을 합니다. 진통제를 먹으면 전방 대상피질의 활동을 둔화시켜 실연을 당했거나 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등 사회적 연결을 거부 당함으로써 겪게 되는 고통이 줄어들지 않을까, 라고 드월은 추측했습니다.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드월은 25명의 건강한 대학생을 실험에 참여시켰습니다. 참가자들 중 절반은 500밀리그램 짜리 진통제(타이레놀)를 아침에 일어나서 두 알, 잠자리에 들기 한 시간 전에도 두 알을 복용해야 했습니다. 나머지 절반의 참가자들은 동일한 약의 위약(가짜약)을 복용했죠.


이렇게 여러 날 진통제 혹은 위약을 복용한 참가자들은 실험의 마지막 날에 실험실에 모여 일종의 '공 주고 받기 게임'을 했습니다. 각 참가자들은 다른 두 참가자들과 함께 3인 1조가 되어 이 게임을 컴퓨터 상에서 진행했는데, 사실 다른 두 참가자들은 실제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로 프로그래밍된 가상의 존재였습니다. 이렇게 조작한 이유는 참가자를 무시하고 자기네끼리 공을 주고 받는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사회적으로 배제될 경우 참가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관찰할 목적이었죠.


게임이 끝난 후에 참가자에게 "나는 다른 참가자들에게 배제된 것 같다고 느꼈다"라는 식의 질문을 통해 얼마나 사회적 고통을 경험했는지 답했습니다. 그러자 타이레놀을 복용했던 참가자들이 위약을 먹은 참가자들에 비해 고통을 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결과만으로도 진통제가 사회적 고통을 경감시킨다는 사실을 규명할 수 있지만, 좀더 확인하기 위해서 참가자들을 기능성 자기공명 장치(fMRI) 안에 눕도록 하고 동일한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하게 했습니다. fMRI를 사용하면 뇌의 어떤 부분이 활성화되는지 볼 수 있기에 좀더 확실한 증거를 얻을 수 있죠. 그랬더니, 공 주고 받기에서 배제될 때 타이레놀을 복용한 참가자들의 관련 뇌 활동(즉 전방 대상피질의 활동)이 위약을 먹은 참가자들에 비해 현저하게 둔화된 모습이 관찰되었습니다. 진통제는 뇌의 다른 부분인 전전두엽 피질(anterior insula)의 활동도 역시 둔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부분은 정서적인 프로세스를 담당하는 곳이죠. 이로써 진통제가 물리적 고통 뿐만 아니라 사회적 고통을 경감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위 연구는 실험 효과를 위해 장장 3주 동안 진통제를 복용하도록 했기에 '진통제를 그렇게 많이 먹어야 하는가'라는 걱정이 앞서긴 합니다. 진통제에 의존하지 말고 어떻게든 이겨내는 것이 낫겠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특히 사랑하는 사람) 배제 당했을 때 느끼는 고통이 너무나 힘겹다면 진통제 한 두 알을 먹고 잠시 잊는 게 좋을지 모릅니다. 물론 중독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



(*참고논문)

DeWall, C. N., MacDonald, G., Webster, G. D., Masten, C. L., Baumeister, R. F., Powell, C., ... & Eisenberger, N. I. (2010). Acetaminophen Reduces Social Pain Behavioral and Neural Evidence. Psychological science, 21(7), 93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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