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을 해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2009. 7. 2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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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포스트에서 "문제해결 과정에서의 '분석'과 과학에서의 '실험'은 모두 '실증'을 위한 활동이므로 개념적으로는 동일하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한 과학 실험들은 일반적으로 실험군과 대조군을 설정한 후에 실험군에게는 어떤 조치를 취하고 대조군에는 취하지 않는 방법으로 진행됩니다.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위한 과학 실험
1) 실험 대상을 실험군과 대조군으로 나눈다
2) 실험군에는 계획된 조치를 취하고, 대조군은 그대로 유지되도록 통제한다
3) 실험군과 대조군에서 보이는 결과를 서로 비교한다
4) 통계적으로 유의한지의 여부를 따져 가설의 증명 여부를 판단한다

문제해결 과정에서도 과학 실험처럼 분석을 할 수 없을까요? 예를 들어 "직급체계가 너무나 세분되어 의사결정 속도가 느리다"는 가설을 분석을 통해 실증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과학에서 하듯이 실험군과 대조군으로 나눈 다음에 실험군에는 직급체계를 3단계(이를 테면, 주니어-시니어-매니저)로 단순화해서 운영하고 대조군은 예전과 동일하게 유지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보면 가설을 실증할 수 있습니다. 

직급체계를 3단계로 단순화한 실험군에서는 하나의 결재가 완료되는 평균시간을 따져보니 예전에 비해 30%나 향상된 반면, 대조군은 변화가 거의 없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해보죠. 만약 그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하다면, "세분된 직급체계가 의사결정 속도를 늦춘다"는 가설이 멋지게 입증됩니다. 이런 결과를 얻으면 실험군 뿐만 아니라 전사적으로 직급체계를 단순화하자는 전략을 곧바로 실행할 수 있습니다.

문제해결력이 솟구치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쉽게도 실험군의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느려졌다는 결과를 얻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과거(세분된 직급체계)에는 결재 건에 대한 자기책임이 덜해서 바로바로 윗사람에서 넘겨버리고 다른 일에 집중하면 그만이었는데, 직급단계가 줄다보니 결재 건의 리스크 부담 때문에 검토하고 또 검토하다가 의사결정이 오히려 느려질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런 결과를 얻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실험이 실패했으니 축소된 직급체계를 원래대로 되돌리자" 라고 간단히 말할 사안일까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겁니다. 탄력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도 좋지만 확증되지 않은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매번 이랬다저랬다를 반복하면 경영시스템이 누더기가 될 뿐더러 구성원의 신뢰와 로열티를 얻지 못합니다.

이렇듯 문제해결 과정의 분석은 과학의 실험처럼 실제의 세계를 마음대로 조치하고 조작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녔습니다. 만약 과학 실험처럼 여러 가지의 시도가 가능하면 최고의 분석 결과를 얻을 수 있겠지만, 문제해결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직급체계를 줄여서 의사결정 속도를 빠르게 한 타사의 사례를 실험군으로 설정해서 우리 회사(대조군)의 경우와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과학의 실험 방법을 들여오는 것이 분석의 효과를 높이는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이를 의류 회사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다음의 예시를 읽어보기 바랍니다(상세한 내용은 생략했습니다).

상황 : 이 회사는 각 점포의 매출액이 급감하는 문제에 봉착해 있다. 반면에 경쟁사들의 매출액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의류시장 전체의 규모도 커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경영진들은 문제의 원인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가설 : 문제해결사는 이 회사의 매출이 줄어드는 원인으로 "매장의 디스플레이가 통일적이지 못해서 내점 고객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문제해결사는 통일적이지 못하고 난삽한 디스플레이를 개선하면 매출액이 늘어나거나 적어도 더이상 떨어지지 않으리란 새로운 가설을 수립했다.

분석
1) 이 가설의 참/거짓 여부를 증명하기 위해 문제해결사는 전국에 흩어진 매장들 중 20개를 골라서 실험군(10개)과 대조군(10개)으로 구분했다. 또한 각각에 포함되는 매장은 서로 규모나 지역이 비슷하도록 적절하게 안배했다.

2) 문제해결사는 실험군에 속한 매장의 디스플레이를 통일성 있게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외부에서 VMD(visual merchandise) 전문가를 영입했다. 반면, 대조군에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3) 디스플레이 교체 후에 3개월 간 실험군과 대조군의 매출액 증가율을 각각 수집하고 비교했다.

결과 : 실험군이 디스플레이 교체 이후에 25%의 매출액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대조군의 매출액은 5% 증가에 그쳤다. 이 차이는 통계적으로 매우 유의했다. 따라서 "디스플레이가 통일적이지 못한 것"이 매출액 감소의 원인 중 하나임이 입증됐다.

문제해결사가 실험을 통해 이런 결과를 내놓는다면 의뢰인을 충분히 설득시킬 수 있습니다. 조치를 취한 실험군과 그렇지 않은 대조군 사이의 차이가 크고 명확할수록 분석의 설득력은 커집니다. 아마도 많은 문제해결사들은 "이런 방식으로 가설을 입증하면 논란도 반론도 없으니 얼마나 좋을까" 란 생각이 들 겁니다.

하지만 설득력을 높이는 데에는 그만큼 돈과 시간이 소요됩니다. 위의 예시에서 매장 디스플레이를 바꾸려면 전문가에게 지급할 수수료 뿐만 아니라 공사비가 꽤나 많이 지출됩니다. 게다가 공사를 진행하려면 최소한 2주 가까운 시간이 들고 그 기간엔 고객을 맞을 수 없기 때문에 기회비용 또한 만만찮습니다. 만약에 디스플레이를 교체했는데도 매출액이 개선되는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돈과 시간은 공중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위에서 든 사례(직급체계 축소, 매장 디스플레이 개선)들이 문제해결사에게 주는 시사점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가설 입증을 위해 분석을 행할 때 과학적인 실험 방법을 적용하려면 다음의 3가지를 떠올리십시오. 이 3가지 요소는 실험 결과가 현재의 상태를 변경시켜야만, 즉 가상이 아니라 실제의 것을 다뤄야만 가설의 진위 여부를 가릴 수 있을 때 반드시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1) 가역성
2) 비용
3) 윤리

가역성이란 말 그대로 '되돌리기가 가능한가'란 의미입니다. 가역성이 높은 실험이라야 문제해결사는 그것을 분석의 방법으로 채택할 수 있습니다. 직급체계를 축소했다가 다시 원래대로 복구해도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혹시 그런 조직이 있다면) 실험을 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분석 방법입니다. 허나 실제로 직급체계 변경 실험은 매우 '비가역적'이기 때문에 문제해결사는 가설 증명을 위해 실험이 아니라 다른 분석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비용이란 실험을 하는 데 드는 돈, 시간, 인력 등을 말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매장의 디스플레이를 바꾸는 일은 비용을 많이 소요하기 때문에 현금이 많지 않은 한 적절하지 못한 분석 방법입니다. 상품의 위치와 순서를 다르게 배치하는 것이 매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는 실험이라면 매장의 디스플레이를 대대적으로 공사하는 일보다는 비용이 매우 적게 들기 때문에 실험으로 적절합니다.

윤리는 실험을 위해 취하는 조치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를 야기하느냐의 여부를 뜻합니다. 과학에서 윤리 문제를 야기하는 실험이 종종 회자되는데요, 줄기세포와 인간 배아 연구가 대표적입니다. 예를 들어 "직원들의 업무태도를 감시하지 않아서 생산성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팀장에서 직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니터링하도록 하면 생산성이 증가할 것이다"라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실험을 실시한다고 가정하죠. 

직원들이 업무 외의 사적인 일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해서 생산성을 측정하겠다는 것인데요, 상상해봐도 이러한 조치는 직원들의 인권을 압박해서 심각한 스트레스를 야기해서 정신적, 신체적 건강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팀장과 팀원 사이의 반목과 갈등을 야기하기 때문에 극단적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비록 실험일지라도 이러한 방식의 실증은 배제돼야 합니다.

이 3가지 요소를 만족한다면, 즉 가역성이 높고 비용이 낮으며 부정적 기대효과가 적다면, 과학 실험처럼 실험군과 대조군을 나눠 분석을 실행하는 방법을 채택하기 바랍니다. 조치를 취한 쪽과 그렇지 않은 쪽 간의 명확한 차이는 가설 입증의 효과 뿐만 아니라 의뢰인을 포함한 여러 이해관계자에게 해결책을 수용하게 만드는 힘을 뿜어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즐겁게 문제를 해결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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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 마'라고 외치는 '결정적 분석'이란?   

2009. 7. 2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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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포스트에서 의견이 상충되는 현상인 '모순', '반대', '소반대'에 대한 논리적 해석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중 '모순'되는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려면, 두 개의 명제(혹은 주장) 중에서 참인 것과 거짓인 것을 명확하게 가르는 분석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때 필요한 분석이 바로 '결정적 분석(Crucial Analysis)'입니다.

결정적 분석이란 말은 과학에서 말하는 '결정적 실험(Crucial Experiment)'라는 용어에서 제가 따온 것입니다. 문제해결 과정에서 행하는 실증이 분석이고 과학에서 행하는 실증은 실험이므로, 결정적 실험이 어떤 의미인지를 안다면 결정적 분석의 방법을 깨달을 수 있을 뿐더러 나아가 모순되는 상황을 일시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결정적 분석? 도대체 무슨 말인가?


결정적 실험이란 말은 17세기의 과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 처음 사용한 용어입니다. 상당히 강력한 뉘앙스를 지닌 말인 듯 하지만 그 의미는 생각 외로 단순합니다. 결정적 실험이란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꼼짝 마!" 실험을 일컫습니다. 실험 결과가 나오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못하도록 일시에 정리해버리는 실험이죠.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세계관에 물든 당시 대중의 사고를 깨뜨리기 위해 갈릴레이가 행했던 물체낙하실험을 가지고 결정적 실험이 뭔지 개념을 잡아보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설(대중의 고정관념)과 갈릴레이의 주장(즉 가설)은 각각 다음과 같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
갈릴레이          :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는 동시에 떨어진다

        * '무거운 물체보다 가벼운 물체가 빨리 떨어진다'는 제3의 주장이 나올 수 있지만
            이 주장은 명백히 거짓임이 이미 증명됐다고 가정함

만일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참이라면, 갈릴레이의 가설은 거짓입니다. 반대로, 갈릴레이가 맞다면 아리스트텔레스는 틀립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개의 가설은 서로 모순입니다. 이 모순을 깨려면 결정적 실험이 행해져야 합니다. 그 실험이 바로 지난 포스트에서 설명했던 갈릴레이의 물체낙하실험입니다. 직접 100파운드 짜리와 1파운드 짜리 금속공을 피사의 사탑에서 떨어뜨리면 두 개의 명제 중 어느 것이 참인지(반대로 어떤 것이 거짓인지) 가려내고 논란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정적 실험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갖습니다.

1단계 :  첫번째 가설(H1)이 맞으면 → A라는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 
            두번째 가설(H2)가 맞으면 → B라는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

2단계 : 측정

3단계 : 측정 결과가 A와 B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 판단

4단계 : 만일 A라면, H1이 참이고 H2는 거짓
           만일 B라면, H2가 참이고 H1은 거짓

4단계에 걸쳐 결정적 실험의 구조를 기술했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심플합니다. 이 구조에 갈릴레이의 낙하실험을 대입해 보겠습니다.

1단계 :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맞으면
                  → 무거운 물체가 땅에 부딪히는 순간에 가벼운 물체는 낙하 중이다
            갈릴레이의 주장이 맞으면
                  → 두 물체는 땅에 동시에 부딪힌다

2단계 : 측정

3단계 : 측정해보니 무게가 다른 두 물체는 땅에 동시에 부딪혔다

4단계 : 그러므로, 갈릴레이의 주장은 참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거짓

혹여 '결정적 실험은 뭐 별것 아니네'라는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군요. 사실 갈릴레이의 실험은 현대인들의 시각으로 보면 매우 간단하고 자명합니다. 그 이유는 1단계 때문입니다. 각 가설로부터 결과가 쉽게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설이 옳다고 가정하고 거기서 나올 만한 결과를 논리적으로(그리고 머리 속으로) 예상하는 일이 생각보다 녹록치 않습니다. 

가령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 중에 '중력에 의해 빛이 휘어진다'라는 가설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 가설이 맞다고 가정할 때 나올 수 있는 결과는 무엇일까요? '강력한 중력을 지나면 빛이 휘어진다'가 예상되는 결과라고 말하면 가설을 한번 더 반복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것으로 빛이 중력 때문에 휜다는 걸 실험할 수 있습니까? 

가설로부터 예상되는 결과는 '실험가능성(experimentability)'이 커야 의미가 있습니다. '강력한 중력을 지나면 빛이 휘어진다'라는 결과 예상은 실험가능성이 아주 낮습니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실험해야 하는가?'란 의문만 더 가중시킬 뿐입니다. 반면에 갈릴레이의 가설에서 '두 물체는 땅에 동시에 부딪힌다'는 결과 예상은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기 때문에 실험가능성이 아주 크죠.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가설이 맞다면 '일식일 때 태양 뒤 편에 있는 별은 실제 위치에서 잘못된 곳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라는 결과를 예상했습니다. 이 예상 결과는 실험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이란 영국의 실험물리학자는 실제로 일식이 일어난 1919년에 서아프리카의 프린시페 섬에서 일식이 일어나는 동안 별의 위치가 달라짐을 관측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의 가설이 옳음을 증명했습니다. 

(* 이 증명은 과학철학자 칼 포퍼에 의해 '반증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옳지 않다'라고 공격 받았습니다. 이 글은 과학철학을 논하는 글이 아니므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과학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문제해결을 논하는 중임을 잊지 마십시오. 모순되는 상황을 일시에 정리하기 위해 필요한 '결정적 분석'을 과학에서 말하는 '결정적 실험'의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조금은 장황하게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자, 문제해결사가 인터뷰를 해보니 다음과 같이 상충되는 두 개의 의견을 청취했다고 가정해보죠. 혼동을 피하기 위해 다른 의견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첫번째 의견 : 직원들의 업무량은 아주 많다
두번째 의견 : 직원들의 업무량은 많지 않다

예상컨데 첫번째 의견은 부하직원들이, 두번째 의견은 팀장이나 임원들이 제기한 주장인데요, 일일이 따져보지 않아도 두 의견은 서로 모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하나가 명백히 참임을 증명하면 다른 하나는 자동으로 거짓이 됩니다. 이런 "꼼짝마" 판단을 얻으려면 결정적 분석을 시행해야 합니다. 

결정적 분석의 단계도 결정적 실험과 거의 동일합니다. 1단계가 가장 중요하고 어렵다는 것도 동일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결정적 분석을 설계하겠습니까? 아마 아래와 같지 않을까요?

1단계 :  업무량이 많으면
                  → 직원들이 퇴근시간을 넘겨 일한다
            업무량이 적으면
                  → 직원들이 정상시간에 퇴근한다

2단계 : 측정

3단계 : 한달 간 측정해보니 평균적으로 밤 9시에 퇴근한다

4단계 : 그러므로, 첫번째 의견은 참이고, 두번째 의견은 거짓.

이 실험은 결정적 실험인가요, 아니면 비결정적 실험인가요? 실험 결과를 누군가에게 제시하면 아마도 "인터넷이나 하면서 빈둥거리면서 밤 9시까지 퇴근하지 않는 직원들이 많은 것 같은데 무슨 소리냐? 직원들의 업무량은 얼마 안된다구!" 라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릅니다. 분석 결과에 왈가왈부할 여지를 주었으니 결정적 분석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1단계 :  업무량이 많으면
                  → 직원들이 1시간 미만의 여유시간을 가진 채 하루 8시간 이상을 일한다
            업무량이 적으면
                  → 직원들이 1시간 이상의 여유시간을 가지며 하루  8시간 이상을 일한다

2단계 : 측정

3단계 : 한달 간 측정해보니 여유시간이 평균적으로 40분이다

4단계 : 그러므로, 첫번째 의견은 참이고, 두번째 의견은 거짓.

이것은 결정적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여유시간이 1시간 이상이냐 아니냐가 '업무량의 많음' 여부를 가리는 기준이 되느냐의 문제가 있지만, 분석하기 전에 서로 합의가 됐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분석은 결정적 분석이 됩니다. 측정된 여유시간은 1시간 이상이거나 1시간 미만, 둘 중 하나이므로 참과 거짓이 분명하게 갈립니다.

그런데, 결정적 실험에서 실험가능성이 높아야 하듯이, 결정적 분석에서는 '분석가능성(Analyzability)'이 역시 높아야 합니다. 여러분 중 누군가가 "여유시간 측정은 분석가능성이 높습니까?" 라는 의문이 제기할지 모르겠군요. 직원들의 동태를 일일이 살피면서 그들이 노는지 일하는지를 판단할 때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여유시간이 40분 나왔다해도 '직원들의 업무량이 아주 많다'는 주장이 명백히 옳다고 선언하기 어렵습니다. 이 예시 역시 분석 결과에 왈가왈부가 여지가 있으므로 결정적 분석이 아닙니다.

어딘가에서 "도대체 결정적 분석을 어떻게 설계하란 말인가요?" 라는 볼멘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과학과 달리 문제해결 과정이 목표로 하는 문제는 사회 현상이므로 '완벽한 결정적 분석'을 설계하고 실
시하는 일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항상 논란의 여지가 숨어있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최대한 결정적 분석의 조건을 갖추는 일입니다. "이런이런 행동들은 업무가 아니라 사적 용뮤라고 보겠다"고 미리 선언하고 사전에 합의를 해두면 측정의 오류를 상당 부분 줄여서 분석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분석 결과가 나왔을 때 반론을 차단함으로써 해결책 마련에 힘을 집중할 수 있지요. 반론을 막는 데에 힘을 소진하면 문제해결은 이미 실패한 것이나 진배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모순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문제해결사는 다음과 같은 행동강령에 따라 분석을 실시하기 바랍니다.

1. '결정적 분석'의 구조를 구상한다
2. 가설별로 예상되는 결과의 '분석가능성'을 살핀다
3. 분석가능성이 높은 예상 결과를 취한다
4. 완성된 '결정적 분석'의 구조를 사전적으로 혹은 사후적으로 이해관계자에게 이해시킨다

문제해결기법을 논하면서 과학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요, 수천 년 동안 축적된 과학의 방법론을 살피고 차용하면 상당한 이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과학 역시 문제해결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과학 이야기를 언급할 텐데요, 그때마다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참에 문제해결기법을 과학적인 기반으로 탄탄하게 익히자"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읽어주길 바랍니다.

오늘도 즐겁게 문제해결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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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자, 기초 환율상식!   

2009. 7. 1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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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외환딜러도 아니고 경제학자도 아니지만, 제가 아는 환율상식을 블로그로 공유하고 싶습니다. 환율은 국제경제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에 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어제 트위터로 하나씩 환율상식을 올렸는데 (저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몇몇 분이 도움이 됐다고 말하더군요. 여기에 종합해서 올려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초보적인 환율상식이므로, 전문가 분들은 패스하셔도 좋습니다.)


환율상식 1 : '원달러 환율'이라고 말하면 = 원/달러 환율 = 즉 1달러당 몇 원이냐는 의미

환율상식 2 : '원엔 환율'이라고 말하면 = 원/100엔 환율 = 100엔당 몇 원이냐는 의미

환율상식 3 : 원달러 환율 상승 = 원화가치 하락, 원달러 환율 하락 = 원화가치 상승

환율상식 4 : 지구 상에서 밤낮으로 끊이지 않는 것은? 하나는 인간의 S*x, 또하나는 외환 거래
      (보충설명) 지구는 한번도 자전을 멈추지 않으니까

환율상식 5 : (일반적으로 대개) 금리가 오르면 원달러 환율 하락. 즉 원화가치 상승
      (보충설명) 금리가 오르면 외환이 국내에 유입되어 많아지므로

환율상식 6 : (대개) 주가 떨어지면 원달러 환율 상승. 즉 원화가치 하락
      (보충설명)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달러로 팔고 나가므로 달러가 부족해지므로

환율상식 7 : 채무국의 상황 나빠지면, 채권국의 화폐가치 하락
      (보충설명) 예를 들어 미국이 우리나라에 달러를 많이 빌려줬는데
                 우리나라의 경기가 나빠졌다면 채무를 회수하지 못할 위험이 커짐.
                 위험의 크기만큼 달러의 가치가 떨어짐

환율상식 8 : 빅맥지수가 낮으면 적정환율보다 저평가됐다는 의미
      (보충설명) 예를 들어 3천원 짜리 빅맥을 3달러에 샀는데, 이제는 2달러면 산다는 의미

환율상식 9 : 엔달러 환율 변화가 원엔 환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침
      (보충설명) 원엔 환율 = '원달러 환율 / 엔달러 환율' 이므로

환율상식 10 : 미국의 재정적자가 커지면 원/달러 환율은 하락
      (보충설명) 달러를 많이 찍어내어 적자를 메울려고 하기 때문.
                 달러 통화량이 많아지면 당연히 달러 가치 하락

환율상식 11 : 외환거래를 안 한다고 환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 건 아님
      (보충설명) 20만원이면 사던 수입품을 30만원이나 주고 사야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환율상식 12 : 몇몇 국가의 통화 별명 : 파운드화=케이블, 호주 달러=오지, 
              뉴질랜드 달러=키위, 스위스프랑=스위시, 캐나다 달러=루니, 미국 달러=벅

환율상식이 더 발견(?)되면 계속 업데이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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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의 정확한 의미를 아십니까?   

2009. 7. 1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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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쉬어가는 차원에서 문제해결과 관련되지만 그렇다고 핵심은 아닌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핵심이 아니라고 말하면, 이 포스트를 건너뛰고(또는 이 블로그를 닫아 버리고) 넘어갈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전 믿습니다. 문제해결사로서 역량을 키우고자 하는 분들은 반드시 이 글을 끝까지 읽으리란 것을. 그렇지 않습니까? 

'모순(contradiction, 矛盾)'이란 말 아시죠?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입니다. "이렇게 쉬운 걸 설명하다니 진짜 쉬어가려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죠? 'contradiction'이란 말은 라틴어의 'contradicere'에서 유래했는데요, 'speak againt' 즉 '반대하다, 대항하다, 욕하다'의 뜻입니다. 글쎄요, 모순의 의미로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모순의 정확한 의미는 영어의 어원보다는 한자어의 유래에서 찾는 게 더 낫겠군요. 알다시피 모순이라는 한자어는 중국 초나라 때의 고사에서 기원합니다.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이 시장에서 이렇게 구경꾼들에게 외쳤다죠.

"이 창으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제 아무리 두껍고 튼튼한 방패라도 여지 없이 뚫어버리는 괴력을 가진 창입니다요. 에~또, 이 방패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세상의 모든 창을 능히 막을 수 있는 방패다, 이겁니다. 자, 애들은 가라. 어른들은 떠나지 말고 부디 남으시오. 무슨 방패든 다 뚫어버리고, 무슨 창이든 다 막아내는 방패를 구경들 하시오."

이를 재미나게 보고 있던 구경꾼이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면 이 창으로 이 방패를 뚫을 수 있소?"

상인         :  당근이지요. 헤헤
구경꾼 왈  :  이 방패는 뭐든지 다 막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소?
상인         :  이 아저씨, 당근을 못 먹어보셨나? 당근 당근 또 당근이지요. 헤헤
구경꾼      :  이보쇼, 앞뒤가 안 맞잖소! 에이, 사기꾼 같으니...

창을 뜻하는 모(矛)와 방패를 뜻하는 순(盾)이 더해진 이 단어는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할 때 사용되는 일상어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또 하나의 예


모순은 또한 논리학에 쓰이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논리학에서는 모순을 어떻게 정의할까요? 그냥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라고는 정의하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모순의 의미는 까다롭습니다. 우리가 모순이라고 말하려면 두 개 이상의 명제로 이루어진 진술(statement)이 있어야 합니다. "이 창은 무슨 방패든 다 뚫는다"라는 하나의 명제만 있을 때는 모순인지 아닌지 판단이 불가능합니다. "이 방패는 무슨 창이든 다 막아낸다"라는 또 하나의 명제가 추가되어야 모순인지 아닌지를 규명할 수 있는 거죠.

다행히 모순의 고사에는 두 개의 명제가 존재합니다. 두 개의 명제를 아래처럼 다시 기술하겠습니다.

첫번째 명제 : 이 창은 무슨 방패든 다 뚫는다
두번째 명제 : 이 방패는 그 어떤 창에도 뚫리지 않는다

첫번째 명제가 '참'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명제는 참일까요, 거짓일까요? 첫번째 명제에서 모든 방패를 다 뚫어버리는 창이 존재한다고 했으므로, 두번째 명제는 명백히 거짓입니다. 이번엔 첫번째 명제가 거짓이라고 가정해보죠. 그렇다면 두번째 명제는 명백히 참이 됩니다. 반대로, 두번째 명제가 참이면 첫번째 명제는 거짓이 되고, 두번째 명제가 거짓이면 첫번째 명제는 참이 됩니다.

자, 이제 모순의 정의가 눈에 들어오는지요? 모순이란 다음과 같이 정의됩니다.

모순 = 두 개의 명제 A와 B가 동시에 참일 수도 없고, 동시에 거짓일 수도 없다

문제해결사가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자료를 조사하다 보면 "이건 앞뒤가 안 맞는데? 모순이구나" 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때 모순이라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상에서 쓰는 '말도 안돼'의 의미가 모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 개의 명제가 동시에 참이 될 수 없고, 동시에 거짓이 될 수도 없는지 검증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단어 하나 쓰는데도 일일이 따져야 합니까? 도대체 왜 그래야 하죠?" 또는 "에이 귀찮아서 문제해결사 안 할래"라는 강한 불만이 가슴 속에서 용솟음 친다면 다음의 예를 보며 분기(?)를 누르시기 바랍니다. 다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 명제 : 사장님이 총애하는 유일한 직원은 A이다
두번째 명제 : 사장님이 총애하는 유일한 직원은 B이다

자, 이 두 개의 명제는 서로 모순일까요, 아닐까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모순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려면 두 개의 명제가 동시에 참이 될 수도 없고, 거짓이 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첫번째 명제가 참이라면, 두번째 명제는 거짓이어야 합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우리 회사 직원은 모두 100명이라고 전제하겠습니다.

총애하는 유일한 직원이 A가 맞다고 하면 두번째 명제는 명백히 거짓이 됩니다. 그런데 첫번째 명제가 거짓이라면(총애하는 유일한 직원이 A가 아니다) 두번째 명제가 참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장님이 실은 C를 총애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두번째 명제는 거짓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두번째 명제를 참이라고 가정하면 첫번째 명제는 명백히 거짓이지만, 거짓이라 가정하면 첫번째 명제는 거짓일 수도 있지요.

인터뷰 등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건 앞뒤가 맞지 않아. 그러니 모순이야'라고 말하기 쉽지만 모순의 정의에 따르면 이같은 상황은 절대 모순이 아닙니다. 두 명제 사이의 이런 대립적인 관계를 '반대(contrary)'라고 명명합니다. 그 정의는 아래와 같습니다.

반대 = 두 개의 명제 A와 B가 동시에 참일 수 없지만, 동시에 거짓일 수 있다

위의 반대는 상대적으로 강한 반대입니다. '동시에 참일 수 없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거짓일 수도 없다'고도 말하는 반대도 있는데요, 이를 소극적인 반대라는 의미로 '소반대(subcontrary)'라 부릅니다. 그 예는 아래와 같습니다.

첫번째 명제 : 어떤 직원들은 열심히 일한다
두번째 명제 : 어떤 직원들은 게으르다

이 말도 언뜻 보면 모순처럼 느껴지는 상충되는 의견들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첫번째 명제를 참이라고 가정하면, 두번째 명제는 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떤 직원들은 열심히 일하는 반면에 다른 직원들은 동시에 게으름을 피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첫번째 명제를 거짓이라고 가정하면(즉 모든 직원들은 게으르다) 두번째 명제는 거짓이 아니라 명백히 참이 됩니다. 따라서 소반대의 정의는 아래와 같습니다.

소반대 = 두 개의 명제 A와 B가 동시에 참일 수 있지만, 동시에 거짓일 수 없다

자, 이제 모순의 의미와 모순이라고 잘못 알기 쉬운 상황을 이해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모순과 반대, 그리고 소반대의 정의를 올바르게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문제해결사가 인터뷰를 하거나 자료를 조사할 때 아주 빈번하게 직면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조직에 있으면서도 이 직원이 하는 말과 저 직원이 하는 말이 서로 다릅니다. 사장이 보는 시각과 일반직원들이 느끼는 감정이 서로 부딪히지요. 

의견이 상충되는 상황을 접할 때 각자의 목소리가 모순인지, 반대인지, 아니면 소반대인지를 가릴 줄 안다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명백한 모순이라고 판단되면, 두 개의 명제 중 참인 것 하나를 가려내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게 좋습니다. 창이 강한지 방패가 강한지 서로 부딪혀보면 모순의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 테니까요.

'반대'라는 상황이면 두 개의 목소리(명제 혹은 집단)가 동시에 거짓일 수도 있음을 밝혀서 적대적인 마음과 오해를 풀어 화해하는 방향의 해결책이 적절할 겁니다. 그리고 '소반대'의 상황이면 두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참일 수 있으므로 상충되는 현상으로부터 합의안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모순'이면     →  시시비비를 가리는 '결정적 분석'을 실시한다
'반대'이면     →  오해를 풀고 화해하는 방향의 해결책을 구상한다
'소반대'이면  →  합의안을 유도한다

모순을 해소하기 방법으로 '결정적 분석'을 언급했는데요, 간단하게 말해서 창과 방패를 서로 부딪혀 보는 실험처럼 '한방에 모순을 날려버리는' 분석을 의미합니다. 이는 중요한 개념이므로 다음 글에서 보다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편안하게 쉬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나요? 머리가 더 아팠다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허나 문제해결사는 항상 의심해야 합니다. 쉬어가는 코너라고 글쓴이가 얘기해도 "음, 과연 그럴까?"라고 회의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교훈(?)을 잊지마시고, 다음 글에서 또 만나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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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성질을 최대한 '계량'하세요.   

2009. 7. 1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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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포스트에서 정성적 분석과 정량적 분석의 차이를 설명했습니다. 요약하면, 이 둘은 화학에서 유래한 용어로서 서로 배타적이지 않고 순차적이고 상호보완적인 관계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때 정량적 분석이 정성적 분석보다 더 우수하거나 더 선호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오늘은 그 포스트 말미에서 언급했던 의문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바로 "정량적 분석이 불가능한 것을 어떻게 분석할까?"입니다. 어제 예로 들었던 '판매관리비'는 우리가 셀 수 있는 '돈'이므로 정성적 분석을 통해 성분과 성질만 잘 규명되면 정량적 분석은 비교적 손쉽게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초부터 분석 대상에 정량적 요소라고는 눈꼽 만큼도 포함되지 않았다면 정성적 분석이야 가능하겠지만 어떻게 그것을 정량화해서 분석하느냐가 곤란한 숙제입니다.

예를 들어 분석의 대상이 "팀장의 리더십"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딱 봐도 정량적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 분석 대상이군요. 정량적 분석이 손쉽게 이뤄지려면 분석 대상 속에 돈(Money), 시간(Time), 개수(Number), 비율(Ratio) 등 셀 수 있는(countable) 요소가 숨어 있어야 합니다. 헌데, '리더십'에서 그런 것들이 유추됩니까? 아마 금방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상황이 이러해도 정량적 분석을 해내야 하는 것이 문제해결사에게 주어진 운명입니다. 자, 이렇게 또다시 미궁에 빠진 문제해결사를 어떻게 구해야 할까요?

폭발적 사고를 하십시오!


어제의 포스트에서는 약간의 암시만 줬는데요, 정량적 분석의 성공은 정성적 분석이 얼마나 잘 이뤄졌느냐에 달렸습니다. 특히 정성적 분석에서 '성질'이 잘 도출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질이 정성적 분석과 정량적 분석 사이에 놓인 커다란 강의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성질 자체가 정량적 분석의 구체적인 실행 대상이 됩니다.

예를 들어보죠. '판매관리비'라는 성분 중 하나인 '급여성 지출'의 성질은 다음과 같다고 어제의 포스트에서 언급했습니다.

'급여성 지출' 성분의 성질
-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추이
-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증가율 추이 (그냥 추이와는 다름)
- 총 금액이 아닌, 1인당 급여성 지출액의 추이
- 경쟁사 A사와의 Gap 또는 추이
....

보면 알겠지만, 각 성질들은 곧바로 정량적 분석을 행할 수 있도록 정량적인 요소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질은 정량적 분석의 단계로 넘어가게 만드는 다리라고 말한 겁니다. 추이를 분석하려면 연도별 값을 구해서 그래프로 그린 다음 증감했는지 어느 정도의 비율로 증감했는지 등을 보면 됩니다. '급여성 지출'이라는 성분이 원래 계량적인 거라서 성질도 계량적인 것들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머리 속에서 강하게 제기된다면 여러분은 문제해결사로서 자격이 충분합니다.

'팀장의 리더십'이라는 분석 대상을 가지고 정성적 분석부터 시작해 봅시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먼저 성분을 규명해야겠군요. 정량적 분석도 어렵지만 이 부분도 어렵습니다. '리더십을 이루는 성분이라니 가당키나 한가? 리더십은 본디 한 덩어리 아닌가?'라는 불만을 잠시 잠재우기 바랍니다. 리더십은 쉽게 말해 리더로서 갖춰야 할 바람직한 정신, 역량, 자세나 태도 등을 일컫습니다. 그리고 리더십을 발휘할 대상은 자신을 따르는 구성원들입니다. 그러므로 리더십은 "구성원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데 필요한 정신, 역량, 자세나 태도"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리더십의 성분을 리더십의 정의와 똑같이 바람직한 정신과 역량, 그리고 자세나 태도라고 말해도 무방하지만 너무나 뭉뚱그려져서 성질을 규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노련한 문제해결사라면 이 정의에서 '바람직하다'라는 키워드에 주목합니다. 무엇이 바람직한 리더십인가를 고민하는 겁니다. 

바람직하다는 말은 사회나 조직 혹은 시대가 리더에게 요구하는 '상(像)'을 말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존재합니다. '직원들의 성과를 잘 관리해서 고성과를 창충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무탈하게 조직을 관리해야 한다', '아니다. 내부관리보다는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창출할 줄 알아야 한다',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리더가 아니다' 등 리더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합니다.

이러한 여러 요구사항들 중에서 조직(회사)의 비전과 산업환경에 걸맞는 것들을 뽑아내 잘 그룹핑하면 리더십의 성분이 만들어집니다, 조직마다 상이하겠지만, 일반적으로 리더십의 성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분을 좀더 세분하여 '세부 성분'을 규명하기도 하는데, 이 글은 리더십을 파헤치기 위한 목적이 아니므로 여기에서 멈추겠습니다.

'리더십'의 성분
1) 변화 주도
2) 인재 육성
3) 성과 관리
4) 비전 제시

성분이 만들어졌으니 각 성분의 성질을 규명할 차례이군요. '성과 관리'라는 성분으로 예를 들어 설명하지요. 성과 관리의 성질이 뭘까요?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 힌트가 될지 모르겠네요. '성질이란 정성적 분석과 정량적 분석 사이에 놓인 다리이다'라는 말이 힌트입니다. 즉, 정량적 분석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성질은 계량적인 '모습'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성과 관리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성질로 나와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설명해도 어떤 지표가 '성과 관리'의 성질이 돼야 하는지 감을 잡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 예시를 준비했습니다. 아래의 예시를 보면 '아하, 이런 게 성질이군'이라고 금세 알 겁니다. 

'성과 관리'란 성분의 성질
- 목표와 성과 간의 Gap
- 면담의 빈도(또는 시간)
- 면담의 충실도
- 피드백 리포트의 충실도
- 구성원의 만족도
......

중요도, 만족도, 실행수준, 달성도, 효과, 시급성 등이 비계량적인 성분으로부터 나오는 성질의 유형들입니다. 성분으로부터 성질을 끌어내는 데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공식이나 룰은 없습니다. 일종의 예술(art)이지요. 최선의 방법은 성질들을 측정하기만(즉 정량적 분석을 하기만) 하면 팀장이 성과 관리를 잘하느니 못하는지 평가할 수 있는지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보완해 나가는 겁니다. 다시 말해, 성질들을 모두 합하면 '성과 관리'를 대표하는 값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성질을 정량적 분석이 가능한가의 여부를 따지면서 고쳐 나가야 합니다. 성질은 계량화가 가능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위의 예에서 '목표와 성과 간의 Gap'이나 '면담의 빈도'와 같은 성질은 그 자체가 계량적이므로 쉽게 정량적 분석이 가능하지만, '면담의 충실도'는 그렇지 못합니다. 이 성질을 위의 '성질 목록'에 올려 두려면 그것을 어떻게 계량화할 것인지가 결정된 이후여야 합니다. 면담의 충실도를 계량화할 방도가 불가능하다면 비록 '성과 관리'의 가장 중요한 성질이라 해도 눈물을 머금고 삭제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눈물을 머금을 일은 별로 없습니다. '면담의 충실도'와 같이 비계량적인 지표도 계량화할 방법이 거의 항상 마련돼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평점척도법(rating scale)'이란 마술을 사용하면 됩니다. 말은 그럴 듯하지만 이미 여러분이 이곳저곳에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정부의 국정 지지도 설문 결과가 발표되거나 회사에서 고객만족도를 공개하는데요, 이것들이 척도법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지지하느냐?' 혹은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 그렇다, 보통이다, 아니다, 전혀 아니다'의 대답을 하도록 만듭니다. 결과가 집계되면 '매우 그렇다'를 5점으로, '그렇다'를 4점으로 간주해서 하나의 숫자로 결정화시킵니다. 이것이 평점척도법입니다. '면담의 충실도'도 평점척도법으로 측정이 가능합니다. 정량적 분석의 단계에서 설문이나 인터뷰를 통해 구성원의 의견을 취합한 다음 '매우 충실하다'를 5점으로, '보통'을 3점으로 변환하면 계량화된 결과를 얻습니다. 이 결과를 음미해서 의미를 추출하면 정량적 분석이 완료되는 겁니다.

정성적 분석부터 시작해 정량적 분석의 끝까지 그 흐름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정성적 분석] 분석 대상 → 성분 규명→ 성질 규명 → 측정법 없으면 back, 있으면 go → 

[정량적 분석] 데이터 수집 → 분석 → 시각화 → 의미 추출

'다 아는 내용인데 왜 이리 상세하게 설명하느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이런 불만을 제기한다면 여러분은 노련한 문제해결사임이 틀림 없습니다. 이 글은 배테랑 문제해결사들을 타겟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문제해결의 세계로 떠밀려 오거나 자발적으로 입문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초 중의 기초를 몰라서 성분과 성질을 혼동하거나 계량화할 방법이 없다고 한숨만 푹푹 쉬는 사람을 여럿 보았습니다. "팀장의 리더십"은 정량화가 불가능한 분석 대상이니까 보고서는 오로지 정성적인 내용(즉 장황한 서술)로만 채워야 옳다고 감을 잡는 문제해결사가 있다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해야 합니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한마디로 "정량화(혹은 계량화)하기 힘들다 생각되는 성질도 최대한 계량적인 지표로 만들어서 정량적 분석을 끝까지 완료하라"는 것입니다. 문제해결의 목적은 좋은 해결책을 실행하는 데 있는데, 그러려면 먼저 의뢰인을 납득시켜야 합니다. 

정성적 분석과 정량적 분석 과정을 순차적으로 진행하여 나온 정량화된 결과는 시각화하는 효과 뿐만 아니라 '이렇게 보니까 정말 심각하네'와 같은 반응을 유발하여 조직과 개인의 변화를 발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Blah Blah...' 빡빡하게 글로만 적힌 보고서는 설득을 애초부터 단절시키는, 문제해결의 '죄악'입니다. 이 점을 항상 머리에 새겨두기 바랍니다.

오늘의 글 역시 좀 길어졌군요. 문제해결을 위해 오늘도 정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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