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은 홀수야. 아빤 그것도 몰라?   

2010. 1. 2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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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더군요.

     "아빠, 0은 짝수야, 홀수야?"

아들이 요새 수학에 흥미를 느끼는지라 더하기, 빼기 같은 사칙연산을 곧잘 합니다. Pop Math 라는 앱은 계산식과 답을 짝지워서 풍선을 터뜨리는 게임인데, 아들이 애용하는 아이템이 되어 제 아이폰에 저장돼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런 질문을 엉겹결에 받으니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지 순간 막막하더군요. 알다시피, 수학자들이 정해 놓은 '짝수'의 정의는 "2로 나누어 떨어지는 정수"입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0은 당연히 짝수입니다. 말은 쉬워도 이것을 이제 만 6살된 아이에게 설명한다는 건 쉽지 않더군요. 한참을 생각하다가,

     "0은 사람들이 짝수라고 정해 놓았어."

이렇게 옹색한 답변을 하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저의 형편없는 대답을 반박하는 아이의 논리를 듣고 나니 가볍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아이는 이렇게 자신의 논리를 폈습니다.

     "0 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외롭잖아. 외로운 건 혼자라서 그래.
      그러니까 0은 홀수지. 아빤 그것도 몰라?"

이 논리의 주인공


아이의 대답은 당연히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아무것도 없다며' 앞에서 언급하더니 뒤에서는 '혼자라서(혼자 있어서)'고 말한 까닭에 0 이 홀수인 이유를 증명하지 못합니다. 어떤 분이 링크해 주신 위키 자료를 보니까 0 이 짝수라는 주장이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허나, 이 글은 0 이 짝수냐, 홀수냐를 증명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니 논증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아이의 대답에 놀란 이유는 논리를 넘어서는 감수성 때문이었습니다. 저 같은 어른들은 "짝수는 2n이고, n은 정수다"라는 무미건조한 수학 정의를 통해 0을 이해하죠. 하지만, 아이는 0 이란 숫자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통해 0 과 '교감'했던 겁니다. 교감하지 않고서는 그런 대답이 나올 수 없겠죠.

아이의 현답(?)을 듣고 나니 어른이 되는 일은 많은 것을 얻기도 하지만 또한 많은 것을 잃는 과정이라 생각해 봅니다. 종이 위에 찍힌 동그란 얼룩을 어른들에게 보여주고 "이게 뭡니까?"라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 "점"이라고 간단명료(?)하게 답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아빠의 헝클어진 머리 모양. 내가 어제 먹다 버린 과자 부스러기..." 등 다양한 대답이 쏟아진답니다. 나이가 들수록 답변의 길이가 극적으로 짧아지죠.

세상을 살면서 논리가 앞서야 할 때도 분명 있지만, 지나치게 그쪽으로만 경도되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아이를 통해서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으로 공감하고 교감하려는 노력이면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분쟁도 종식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아빤 그것도 몰라?" 

맞습니다. 모릅니다. 그래서 어른은 아이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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