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무지에 빠진 정부 관리들   

2008. 5. 1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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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사태로 정부가 우왕좌왕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보도자료에서 동물성 사료 사용 금지 '완화'를 '강화'로 잘못 번역한 사건을 보면서 허탈함을 금할 수 없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아니 적어도 그러리라 기대되는 정부의 많은 이들이 어째서 그런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그렇게 중요한 사안을 왜 아무도 확인하거나 검증하려 하지 않았을까? 참으로 무지(無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그것은 다수의 행동이나 의견에 조직의 행동전략을 일임해 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몇몇 사람이 '완화'를 '강화'로 잘못 해석해 냈을 때, 이를 본 다른 사람들은 각자 '저 사람들(다수)가 저렇게 말했으니까 옳을 거야. 확인할 필요가 없겠지?'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정부 관리들의 잘못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나는 이와같이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한 원인이 '다수가 항상 옳다'는 사고의 관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개인 혹은 집단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아보기 위해 심리학자들이 한 가지 실험을 고안했다. 어떤 사람을 시켜 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60초 동안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 보도록 했다. 관찰 결과, 대부분의 행인은 그냥 지나치고 4% 정도만이 그 사람을 따라서 하늘을 올려다 봤다.

그런데 실험자(하늘을 올려다 보도록 지시 받은 사람)의 수를 늘릴수록 따라 하는 행인의 비율이 점점 커졌다. 15명의 사람에게 하늘을 올려다 보도록 하면 행인의 40%가 그들을 따라서 했다. 이 실험을 통해 사람들에게는 다수의 행동이나 의견을 별 고민 없이 옳다고 믿는 경향이 있음이 증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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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다수를 기준으로 나의 행동이나 의견을 판단하는 것을 ‘사회적 증거(Social Proof) 현상’라고 하며, 다수의 의견을 따라가다가 잘못된 선택하는 경우를 ‘다수의 무지’라고 부른다.

다수의 무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을 예로 들어 본다. 제노베스라는 20대 후반의 처녀가 뉴욕시 퀸스지역에서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괴한에게 칼을 맞아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강력범죄가 많은 뉴욕시에서는 단신에 불과할 사건이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켰는데, 그 이유는 38명에 달하는 목격자들이 한 여자를 세 차례나 습격하여 칼로 찌르는 장면을 물끄러미 구경만 하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대도시 생활의 인간성 파괴와 TV 폭력 등의 탓으로 돌리며 분개했으나, 실은 인간의 복잡한 심리에 의해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38명이나 되는 목격자들은 불쌍한 제노베스가 공격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경찰에 신고할까 말까에 대한 갈등에 쌓이게 됐다.

이 때 각 목격자들은 그와 같은 불확실한 상황 하에서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려 행동에 옮기기 보다는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목격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먼저 관찰했다. 목격자들은 자기 이외에 목격자들이 짐짓 무관심한 듯 창을 닫고 불을 끄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똑같이 행동했던 것이다. 제노베스가 죽어 가는데도 태연히.

이 이야기는 로버트 치알디니가 쓴 '설득의 심리학'에 나온다. 저자는 불확실한 상황 - 신고할까 말까의 상황 - 에 놓이게 되면 사람들은 옳은 방법을 마련하기에 집중하는 것보다 불확실한 상황 그 자체로부터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 해결책으로 주변인들을 관찰하여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이른바 '다수의 무지'라는 모순적 현상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정부 관리들도 미국의 압박과 국민들의 저항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몰라 우왕좌왕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 불확실하고 불안한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내놓은 동물성 사료 사용 금지 '강화'라는 말이 얼마나 반가웠을까? 잘못 해석했으리라는 생각은 눈꼽 만큼도 하지 않은 채 그걸 굳게 믿고 국민에게 미국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선전하고 말았다.

상황이 급박하고 불안정할 때는 이런 '다수의 무지'에 빠질 위험이 매우 크다. 정부 관리들은 빠른 대처를 한답시고 자신들의 '똑똑함'에도 불구하고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게다가 대통령 특유의 밀어붙이기 식 의사결정이 판단력을 흐리게 했을지도 모른다. 배가 폭풍우에 흔들릴 때 어찌해 보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단단한 기둥을 잡고서 대처할 방법을 차분하게 '생각'하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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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적, 그들은 누구인가   

2008. 5. 1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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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적, 그들은 누구인가? 조직 내에서 너무나 많은 내부의 적들이 우글거리고 있음을 아는가? 그들이 조직의 경쟁력을 까먹고 있다는 것도 아는가?

내부의 적은 첫째, 무슨 일이 있든 절대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의사결정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이면 내부의 적들이 보이는 일관된 행동이 있는데, 바로 의사결정에 관련된 자들을 회의로 소집하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의사결정에 따른 리스크가 매우 클 경우에는 관련된 사람들의 중지를 모으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 유용하며 실제로 리스크를 줄이는 효과가 크다.

그런데 내부의 적들은 의사결정의 경중에 상관없이 거의 자동적으로 회의를 소집하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의사결정의 결과가 잘못됐을 경우 혼자 ‘독박’ 쓰지 않겠다는 안전장치를 만들기 위해서다. 일이 순간 잘못 틀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관련자들을 비난하고 일이 잘된다싶으면 자신의 업적인 양 사방에 떠들어 댈 요량인 것이다. 내가 어느 회사에서 목격한 내부의 적은, 회의를 하기 전에 어떻게 회의를 진행할지를 먼저 회의해야 한다며 목청을 높여서 두손 두발을 다 들게 만들었다.

이런 유형의 내부의 적이 상사로 있다면 부하직원들은 무척이나 피곤할 것이다. 온갖 회의에 허덕여 일 하나 제대로 할 수 없고, 의사결정을 위해 근거를 마련해야 한답시고 이 자료 저 자료 별 쓸모도 없는 데이터를 모으라고 닦달해 댈 테니까 말이다. 업계에서 특출한 성과를 못내는 회사일수록 항상 회의실 예약이 꽉 차 있고 프린터와 복사기가 쉴 틈이 없다. 바로 내부의 적들이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내부의 적들은 ‘언제나 이렇게 해왔다’며 핀잔을 주는데 앞장선다. 전통은 기업의 훌륭한 자산이다. 물론 ‘좋은 전통’일 때 그렇다. 요즘은 분리되었지만, 인화(人和)를 중시하는 LG그룹 구씨와 허씨 양 가문의 전통은 지금까지 LG가 성장해 온 밑거름이 되었다. 그런데 내부의 적들이 말하는 전통은 진짜 전통이라 말하기 어렵다. ‘언제나 이렇게 해왔다. 그렇게 해도 문제가 없었다.’ 라는 말을 파고 들어가면 진짜로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그렇게 해 온 것'이 바로 내부의 적 자신만이 즐겨 사용해왔기에 익숙한 절차와 방법에 불과하거나, 아니면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변명을 하려고 내두른 말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제나 이렇게 해왔다’라고 말하는 내부의 적이 있다면 '언제부터 그렇게 해왔냐‘며 당당히 맞대응하라. 아마 내부의 적은 겉으로 화를 내겠지만 속으로는 다른 변명을 찾느라 부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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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내부의 적들은 ‘남들이 이렇게 했다.’ 라는 것에 대단히 민감하다.
예를 들어 경쟁사가 무슨 전략을 실행하여 성공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사실을 거의 절대선(善)으로 믿어버리는 경향이 매우 크다. 즉, 내부의 적들은 벤치마킹의 열렬한 신봉자들이다. 벤치마킹에 집착하는 것은 전략적 사고를 막고 경쟁사의 뒤꽁무니만 쫓게 하는 시대착오적인 행동이다.

이러한 내부의 적들의 집착은 앞에서 말한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와 맥을 같이 한다. 누군가가 왜 이렇게 전략을 세웠냐고 물으면 자신의 논리를 앞세워 설명했다가는 괜히 비난을 당할까 심히 우려하여 ‘자, 여기 경쟁사도 그렇게 한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자신은 책임소재의 범위에서 슬그머니 벗어나고자 하는 얄팍한 생각 때문이다. 속지말자, 벤치마킹!

넷째, 내부의 적들은 오로지 자신의 야망에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부서가 새로운 무언가를 추진할 때,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출세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방해꾼을 자처하고 나선다. 처음에는 방해꾼임을 속이고 이렇게 속삭인다. ‘그것은 나중에 해도 돼. 먼저 다른 것부터 해야 돼’ 라며 꽤나 자상한 충고자로 자신을 포장한다.

이런 1단계 공작이 먹혀들지 않는다면 곧바로 열성적인 비판자로 돌변한다. ‘쓸모없는 일이다. 실패로 돌아갈 일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며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며 자기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일부 뛰어난 내부의 적들은 상대방을 감동시킬 탄탄한 논리와 언변으로 결국 경쟁부서를 쓰러뜨리고 그것을 유유히 즐기기도 한다.

번민에 가까운 오랜 고민 끝에 수립된 전략을 들여다보면 매번 해오던 말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 기술혁신이니, 품질개선이니, 중국 진출이니, 고객만족이니, 도무지 전략적인 초점 없이 다 잘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기회가 있다면 과거에 수립했던 전략계획들을 서로 비교해 보라. 혹시 일란성쌍둥이가 아닌가? 어찌된 일인지 궁금한가? 바로 내부의 적들의 소행이다.

멋진 전략을 수립하여 멋지게 성공시키려면 내부의 적들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들을 변화시키거나 조직으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 조직을 혁신하고 싶다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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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비 속에서   

2008. 5. 9.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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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시작되던 날, 나는 바람이나 쐴 목적으로 차를 몰고서 한강둔치에 나갔다.  강 바람이 시원했다. 도시의 매연이 섞여있을 테지만 탁 트인 강가에서 맡는 바람 냄새는 그래도 싱그러웠다. 나는 의자 시트를 한껏 젖히고 거의 누운채로 책을 읽었다. 낯선 곳에서 책을 읽으니 단어 하나하나가 맛있게 씹혔다.

한동안 더운 바람이 불더니, 어느새 사위는 한껏 어두어지고 검은 구름이 몰려왔다. 그리고 소나기 비슷한 비가 내렸다. 나는 책을 내려 놓고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굵은 빗방울들이 강물 위로 떨어져 강물과 하나 되는 모습과, 나뭇잎들이 무거운 비를 맞아 휘청대는 모습과, 자동차들이 일제히 윈도 블레이드를 작동시키는 모습과, 우산을 쓴 채 담배 연기를 뿜으며 강물을 바라보는 매점 주인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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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쌍의 남녀가 보였다. 그들은 갑자기 내리는 비에 놀라서 고개를 숙인채 '아하하~' 소리치며 비를 피할 곳으로 뛰어 가고 있었다. 아직은 그다지 가까운 사이가 아닌 듯했다. 아마 만난지 일주일 쯤? 남자는 여자의 비 맞는 모습이 안쓰러워 뭐라도 해주고 싶어하는 표정이었지만, 혹여 오해가 생길지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듯했다.

그 남자의 서툰 사랑처럼 5월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여자의 어깨를 적시듯 5월이 가슴에 스며 들었다. 5월의 비를 조용히 맞으며 5월의 풀밭 위로 피어나는 풋풋한 사랑. 나는 곧잘 그랬듯이 옛 시절을 떠올려 그 풍경 위에 겹쳐 보았다.

이제 그 시절의 아픔은 강물처럼 희석되었다. 기억은 강물 따라 흘러갔고 그 시절의 그림자는 낙수 자국처럼 여기 남았다. 나는 책 읽기를 포기한 채 주룩주룩 차 창을 흐르는 빗물을 보며 이윽고 깨닫고 말았다. 이 비 그치면 더욱 굳어버릴 땅처럼 우리 기억은 물기 하나 없이 박제되고 말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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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프로젝트는 항상 질질 늘어질까?   

2008. 5. 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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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컨설턴트 A군을 데리고 컨설팅을 진행하던 어느 날이었다.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인건비 지출의 적정성을 분석하는 작업을 A에게 지시했다. A는 그 작업을 언제까지 마쳐야 하나며 나에게 물었다. “그 작업은 하루면 충분해. 다른 일로 바빠질 것 같으니 지금 시작해 줘.”, 라고 답해줬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너무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시간을 더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마음 약한 내가 어쩌겠는가? 결국 3일의 시간을 A에게 주면서 “납기는 반드시 지켜라.”는 다짐을 받아두었다.

그런데 요놈 봐라! 처음 이틀은 빈둥빈둥 놀며 인터넷과 메신저에 빠져 키득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장에 호통 칠까 하다가 약속한 기일까지 어쨌든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때 가서 혼내줄 요량이었다. 약속한 날이 되자 A는 슬금슬금 관련 자료를 챙기고 하는 척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꼼지락대더니 저녁때가 되자 쓱 하고 뭔가를 내놓았다. 내가 지시했던 작업 결과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알록달록 총천연색으로 장식된 문서였다. 그 문서의 모양새는 차치하고서라도, 도대체 숫자들이 서로 맞지 않았다. 급하게 한 티가 팍팍 났다. 화가 난 나는 A에게 그동안 지켜 본 바를 이야기하며 왜 빨리 분석을 시작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물었다.

A가 대답했다. “작업을 하기 전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이쿠! 속으로 불덩이가 솟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세상에, 간단한 숫자계산에 길고긴 사색의 시간이 요구된다니 어이가 없어서 나중엔 웃음만 나왔다. 그 이후에도 그런 식의 태도를 강력히(?) 견지하는 A를 결국 떠나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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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증후군?
여러분은 학창시절에 교수가 과제를 내주면 거의 습관적으로 “너무 시간이 촉박해요. 조금 더 시간을 주세요.” 라는 앓는 소리를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교수가 10일의 시간을 줬다면 처음 5일 정도는 아예 신경 끄고 다른 일을 하다가, 3일 정도는 고민 좀 해보고, 막판이 돼서야 부랴부랴 해내지 않았었나?

이것을 ‘학생 증후군’ 이라고 한다. 즉 어떤 작업을 수행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예측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실제 소요될 시간에다 여유시간(Slack Time)을 덧붙여 부풀리는 증상을 말한다. 이 학생 증후군을 ‘직장인 증후군’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회사 여기저기에 이런 증상을 보이는 직원들이 많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혹시 여러분이 그 중 하나가 아닌가?

그러면 분명 하루 밖에 안 걸리는 일에 3일이나 5일의 시간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당신에게 차를 가지고 주어진 시간 안에 잠실에서 종로까지 와달라고 지시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그 일이 여러분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해보자.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교통체증이라는 변수 때문에 어쩔 때는 30분밖에 안 걸리지만 최악의 경우 2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그에게 얼마의 시간을 달라고 요구할 것 같은가? 백이면 백 2시간 정도는 줘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작업에 소요되는 최대시간을 그 작업의 실질적인 수행시간으로 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시간이 소요될 확률은 매우 적은데도 말이다.

프로젝트가 질질 늘어지는 이유
어떤 프로젝트가 있는데, 여러분이 A, B, C 3명의 프로젝트 멤버를 거느린 프로젝트 매니저라고 가정해보자.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에 여러분이 멤버들에게 각자가 맡은 작업이 얼마나 걸릴 것 같은지 물어봤더니 A가 5일, B가 6일, C가 7일이라고 답했다. 그러면 여러분은 모두 더해서 총 18일을 프로젝트 소요시간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런데 이때 각자가 답한 소요시간에는 이미 여유시간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비율이 개인별로 차이가 나겠지만 말이다. A, B, C가 각각 1일, 2일, 3일의 여유시간을 나름대로 계산에 넣어뒀다면, 실제 프로젝트 소요시간은 4일, 4일, 4일로 총 12일이다. 18일과 비교할 때 6일의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프로젝트 매니저인 여러분은 A, B, C가 답한 결과인 18일에다 5일 정도를 덧붙여서 모두 23일 걸린다고 상사에게 보고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18일을 경과하더라도 비난을 피할 수 있겠다 생각한 탓이다. 결국 12일에 끝날 일이 11일이 더 보태져서 23일이 지나야 끝나는 불합리한 현상이 발생한다.

이 프로젝트에 관여된 의사결정자들이 겹겹이 존재하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흔히들 그러지 않는가? 부장 보고를 위해 2일 정도 여유시간을 붙이고, 부사장 보고를 위해서는 3일, 사장 보고를 위해서는 5일 정도를 늘이는 따위의 행위 말이다.

이렇게 되면 11일에 끝날 일이 33일이나 걸려 겨우 끝난다! 단계 단계를 지날 때마다 하루하루씩 늘어나는 게 뭐가 대수냐고? 조직 전체로 생각해보면 그 양은 엄청나다. 남들이 1년에 할 것을 3년이 지나야 겨우 해낸다면, 우리 회사는 그만큼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다.

무조건 빨리 빨리?
H사 회장이 연구개발센터 건설 현장을 찾아가 금일봉을 전달하면서 예정된 공기보다 앞당겨 달라는 말을 수차례 내렸다는 말이 있었다. 무슨 이유로 공기 단축을 지시했는지 모르겠지만, 연구개발센터에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하루 바삐 건립된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안 좋게 이야기하면 그의 조급증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관리자들은 프로젝트 완료 시점에 대한 예측을 일단 믿으려 하지 않는다. 직원들이 알게 모르게 여유시간을 끼워 넣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까닭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결과를 빨리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100일 걸릴 예정이라고 보고하면, 앞뒤 안 가리고 20일 정도를 줄이라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프로젝트 실무자들은 관리자의 한마디에 일률적으로 프로젝트 일정을 압축(?)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상례이다.

보통 할 일이 별로 없는 관리자일수록 결과를 재촉하길 좋아한다. 그 일 이외에는 별로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단 다그쳐 줘야 권위가 선다는 유치한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결과를 제출하여 검토를 요청하면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다. 자기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것이 무능한 관리자의 단면이다.

이러한 관리자의 습관 때문에, 아예 애초부터 125일 정도 걸릴 거라 부풀리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빨리 끝내려는 관리자의 시도가 일을 늦게 끝마치도록 유도하는 꼴이 된다. 결국 관리자나 프로젝트 실무자나 Lose-Lose 게임이 되는 것이다.

조직의 민첩성을 위해
실행력을 저해하는 요소의 첫째는 마지막에 가서야 일을 시작하는‘직장인 증후군’이고, 둘째는 겹겹이 쌓인 의사결정단계이며, 셋째는 관리자의 대책 없는 조급증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요소를 격파한다면 실행력을 높일 수 있다.

나이 먹은 직장인들이 학생들처럼 징징거리며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당장 실행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관리자가 역시 중요하다. 본인의 경험을 충분히 떠올리며 작업에 소요되는 실제 시간과 작업품질의 목표를 명료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렇다고 빨리 끝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지나치게 빠듯한 시간을 강요하지는 말라. 부하직원들이 알아서 요리조리 피할 궁리만 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복잡한 의사결정 단계가 있다면 이를 과감히 줄여야 한다. 모회사 이야기를 들어보니, CEO가 중간관리자를 거치지 않고 바로 실무자의 보고만 받는다고 한다. 조직도를 펼쳐 놓고 한번 살펴 보는 것이 어떨까? 자리를 주기를 위해 만들어 놓은 ‘장(長)’이 얼마나 많은지 볼 수 있을 것이다.실행력을 높이려면 답은 하나다. 조직을 혁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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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데 왜 메신저로 대화하나?   

2008. 5. 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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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다.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화면에 메시지가 톡 떠올랐다. 뭔가 하고 들여다보니,  "식사하러 가시지요."라고 바로 옆에 있는 컨설턴트가 메신저로 보내온 것이었다. 갑자기 실소(失笑)가 터졌다. 왜냐하면, "5분 후에 나가자." 라고 답신을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데 말로 하면 될 것을 굳이 메신저로 의사를 전달할 필요가 있었을까? 한참동안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 웃지 못 할 촌극이었다.

나 말고도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을 것 같다. 불과 몇 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직원들이 말로 하면 될 것을 이메일을 통해 업무보고를 한다고 씁쓸한 표정을 짓던 관리자들을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관리자는 나에게, "이메일로 보고하는 걸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대일 대화가 가능한데도 그런 걸 사용하는 이유는 '당신과 대화하며 괜히 나쁜 소리 듣기 싫으니 결과만 알고 있어라' 라는 편의적인 마음 때문 아니냐." 며 푸념을 한 적이 있다.

100% 공감이 간다. 이메일, 메신저, 그룹웨어, 지식경영시스템 등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매체는 날로 정교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매체들이 커뮤니케이션의 접근편리성을 증대시켰는지는 몰라도, 과연 조직 내 쌍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키는 데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어느 회사든 진단을 해 보면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는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최소 50% 정도는 된다. 그 때마다 나는 '다 비슷하니까 다른 회사 보고서 슬쩍 베끼면 되겠네.' 라는 얄팍한 유혹에 솔직히 사로잡히곤 하지만, 첨단의 커뮤니케이션 도구 구축에 크게는 수십억 원을 들이고도 의사소통에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하소연하는 까닭이 도대체 뭔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문제의 핵심은 얼마나 멋진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갖췄느냐가 아니다. 매체는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지, 메시지를 조직 내에 잘 통하게 만들어 주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그런 도구들은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도 진솔하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만든다. 오히려 일방적 통보와 지시로 오용될 수 있어 커뮤니케이션을 더욱 경직되게 만들어 버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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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자결재를 꽤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결재요청을 올리고 나서 상사가 시스템에서 결재해주길 놀면서 기다리다가 제때 안 해주면 의사소통이 잘 안된다며 불평해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관리자는 관리자대로 시스템에서 결재하기 바쁘다. 대면 결재하면 금방 끝날 것을 말이다. 엄청난 낭비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의사소통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저쪽 부서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 직원들이 경영진 생각을 잘 몰라준다며 불평을 쏟아내기 전에, 지속적으로 다른 부서의 업무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지, 직원들의 진짜 생각을 알기 위해 노력했는지 자문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도 노력이 있어야 잘 된다.

즉, 조직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에도 마케팅하듯 해야 한다. 정보 홍수의 시대다. 그래서 자기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메시지이지만 받는 사람은 수많은 정보 중의 하나로밖에 여기지 않거나, 정보에 치여 미처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를 피드백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따라서 고객 대상으로 PR, 캠페인 등 갖가지 마케팅 전략을 실행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내 생각을 전달하고 필요한 정보를 전달 받으려는 노력을 실천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히 하려면 대면 보고, 간담회, 워크숍 등 다양한 오프라인 활동이 우선되어야 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직접 대면하고 공감하는 만남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패션을 따라가는데 급급하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 원칙에 충실하라. 그것이 잘 통하는 조직으로 가는 첩경이다.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해결하고자 반짝이는 화면과 윙윙대는 서버로 된 시스템을 새로 들여올 궁리를 하고 있다면, 그 계획서를 과감히 찢어라. 살 뺀다며 비싼 러닝머신을 사 놓고 몇 번밖에 안 뛰어 보고는 왜 살이 안 빠질까 이상하게 생각하는 식의 오류를 더 이상 범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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