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신이 삶이 무료하고 갑갑하고 짜증난다면,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혼돈스럽고 무감각하다면 자신을 억류한 철창을 부수고 당장에 여행을 떠나야 한다. 여행은 새로운 자극의 체득을 통해 삶의 의미를 탐색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안전한 방법이다. 폭식이나 폭주, 혹은 마약을 통해서도 색다른 자극을 경험할 수 있지만, 그것은 말초적이고 일회적인 자극에 불과하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자극, 보다 건설적인 자극을 온몸으로 체득해 보자.
보통 여행이라고 하면 돈을 들여서 유럽, 동남아, 혹은 국내 휴양지로 떠나는 관광을 떠올리기가 쉽다. 물론 그것도 낯선 풍경과 새로운 문화의 참맛을 느끼는 기회가 되고, 혹은 삶의 의미를 되찾는 소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으므로 살아있는 동안 ‘해야 할 것들’ 목록 위에 올려 두어야 한다.
하지만 자동차나 비행기를 이용해서 물리적으로 멀리 떠나야만 여행은 아니다. 참된 여행의 의미, 즉 여행을 통해 얻는 생활의 활력과 삶에의 긍정적인 욕구는 여행에 든 돈과 여행지가 떨어져 있는 거리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고 틀에 짜인 기존의 생활 범주를 여행을 통해 얼마나 넓히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여행은 생활의 범주를 한 뼘씩 넓혀가는 과정이다. 90년대 초에 방영된 ‘케빈은 12살(원제 : The Wonder Years)’이란 성장 드라마의 마지막 회에서 케빈이 남긴 마지막 대사처럼 말이다. 나는 당시 군대에서 고참들 어깨 너머로 그 장면을 훔쳐 봤었는데, 넓은 세상이 그리울 수밖에 없는 군인 신분이어서인지 그 말이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 케빈은 자신의 집에서 4마일 떨어진 곳으로 이사 간 여자친구 위니를 만나러 가기 위해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며 이렇게 독백한다.
“위니를 만나러 가기 위해 이제 나는 매일 4마일의 길을 더 왕복해야 한다. 위니의 집은 내게는 뉴욕에서 파리까지 이르는 거리만큼이나 먼 곳이다. 그녀가 떠나기 전에는 문 바깥으로 나가기만 하면 세상의 모든 것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위니 덕분에 나의 세상은 조금 더 커진 것이다 (As for me, well, I had my own distances to cover four miles, New York to Paris. The thing is until Winnie left, everything in the world was outside my front door. But now, maybe the world would have to get a little bigger.)”
(제가 번역한 건데, 틀린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매일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신혼 시절에 내가 매일 떠났던 ‘게릴라식 여행’처럼 말이다. 그 당시 나는 창동에서 여의도까지 자동차로 1시간 넘게 걸리는 길을 자가용으로 통근을 해야 했다. 변두리에서 도심을 뚫고 지나가야만 했기 때문에 나의 출퇴근 시간은 교통정체가 극에 달하는 러시아워에는 2시간은 우습게 걸렸다.
도로 위에 겹겹이 쌓인 자동차들의 꽁무니들을 바라보면서 이제나저제나 갈까 초조함에 안절부절했다. 그래서 하루는 짜증으로 시작해서 짜증으로 마감됐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침 저녁 합해서 거의 4시간의 시간을 이렇게 허비할 수 없잖아. 하루의 6분의 1의 시간을 도로 위에 뿌리고 다닐 수 없어. 좀더 생산적으로, 좀더 즐겁게 이 시간을 보낼 순 없을까?’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은 이랬다. 어차피 차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낼 바에야 만날 똑같은 경로로 출퇴근하지 말고 조금씩 다른 길로 가보는 것은 어떨까? 창동에서 청량리를 거쳐 내부순환도로에 올라섰다가 여의도 방면으로 내려가는, 매일 일정한 루트로만 다닐 이유가 없었다.
차가 막히지 않으면 가장 빠른 경로였지만, 러시아워가 되면 그 길은 거의 주차장으로 변했기 때문에 다른 경로를 택한다 해도 시간이 더 들지는 않을 텐데… 매일 똑같은 짜증으로 시작해 똑같은 짜증으로 마무리할 바에야 여행하는 기분으로 가보지 않은 길을 경험해 봤다는 소득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다음날부터 나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처음엔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불안했다(그때는 네비게이션이 일상화되기 전이다. 물론 지금도 내겐 없다). 이러다가 너무 우회해서 제 시간에 회사에 도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지각했다고 윗사람의 핀잔은 듣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다른 길로 돌아가더라도 시간은 엇비슷하게 소요됐고 어쩔 때는 오히려 시간이 단축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소득은 서울에 살면서도 한번도 가보지 않는 길을 알게 되면서 내 생활의 범주가 매일 한 뼘씩 커간다는 만족감이었다. ‘저기에 저런 음식점이 있네? 나중에 한번 가봐야지. 여기는 차 만 안 막히면 드라이브하기 좋은 길인 걸. 예전에 소개팅을 했던 곳이 저렇게 변했구나, 참 세월 빠르지’ 나는 새로 발견한 풍경과 그 풍경이 전하는 오래되거나 낯선 이야기들을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 길은 더 이상 출퇴근길이 아니라 즐겁고 유쾌한 여행길이었다. 나중에 차를 두고 지하철로 통근하게 될 때도 노선을 옮겨 다니는 나의 게릴라식 여행은 계속됐다.
인간이 한곳에 정착해서 농사를 짓고 급기야 거대도시를 형성해 살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보다 더 오랫동안 인간은 대개 떠돌이로 생활했다. 그러므로 여행은 인간이 가진 제3의 본능이다. 만일 당신이 도시에 살고 있다면 과밀화된 도시환경과 구획화된 주거 때문에 가벼운 형태의 폐소공포증에 걸려 있을 게 분명하다.
답답한 가슴을 활짝 열고 지금 바로 여행을 떠나라. 싱그러운 바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을 옮기며 새로운 풍경이 가슴을 지나 내 삶 안에 가만히 자리잡는 걸 느껴보라. 점심을 먹고 산책하는 공원길도 짧지만 훌륭한 여행이다. 낯선 버스를 타고 아무 곳에나 내려서 어슬렁거려보라. 뜻하지 않는 즐거움과 행운이 거기에서 당신을 기다릴지 누가 아는가? 어떤 형태든 자신을 발견하고 자아를 확장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모두 여행이다.
여행은 가능한 한 자신에게 익숙한 것으로부터 탈피함으로써 생활 범주에 낯선 것을 더해 가는 과정이다. 현대인들에게 어느덧 도보보다 익숙해진 자동차를 버리고 직접 걸어서 여행하는 것이 풍경을 온전히 음미하는 방법일 것이다. 도보여행과 등산을 즐겼던 1950년대의 물리학자 로잘린느 프랭클린이 말했듯이, ‘자동차는 사람을 장소로부터 격리’시키기 때문에 감각을 왜곡한다.
시계가 탁 트인 햇살 좋은 날이면 두 발로 걸어서 느릿느릿 한강을 건너보라. 차로만 건너 다닐 때는 느낄 수 없는 감각들, 강물 위로 유리처럼 부서지는 햇살, 강을 가로질러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가 온몸을 휘감을 것이다. 지금 바로 나가서 풍경이 내게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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