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고 싶나요?   

2008. 2. 2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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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기능을 가진 카메라(DSLR)이 나왔다. 광고를 볼 때마다 그 물건을 갖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다. 소위 '지름신'이 강림하신 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 카메라를 갖게 되면 더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겠지,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멋질거야, 그걸 들고 있는 내모습을 보며 주위 사람들은 얼마나 부러워 할까'... 우리는 이렇게 행복한 상상에 빠진다. 그리고 카드번호를 입력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택배 아저씨가 벨을 누를 때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빨리 포장을 뜯고 싶은 마음에 손까지 떨릴 것 같다. 포장을 걷어내고 물건을 손에 쥐었을 때 육중하게 느껴지는 그립감에 또 우리는 얼마나 행복감에 젖는가?

그러나 실제로 물건을 받고 나서 느껴지는 행복감은 우리가 상상 속에서 느꼈던 행복감에 미치지 못한다. 기분 좋기는 하지만, 상상처럼 뛸 듯이 기쁘지는 않다. 조금 심드렁하기까지 하다. 막상 사용해 보니 다른 물건들과 다들 바 없다.

처음에 흠집이라도 날까 애지중지하다가 어느새 아무렇게나 집어 던지기까지 한다. 결국 무엇을 가짐으로써 얻게 되는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하고 금방 휘발돼 버린다. 비단 물건만 그러할까?

"브론스키는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해온 일(안나 카레니나를 얻은 일)이 이루어졌지만 완전한 행복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이룬 뒤 곧바로 얻는 것이 거대한 산 같은 행복이 아니라 조그만 모래 알갱이만한 행복이었음을 깨달았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중)

물건 뿐만 아니다. 욕망의 대상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자리(post)이든, 행복은 욕망을 성취한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행복 ≠ 욕망의 달성'이다. 행복의 지름길은 오늘의 욕심을 줄이는 데에 있다.

행복 =  1   /  욕심

욕심이 많으면, 즉 많은 걸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빠진다면, 행복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든다. 반대로 욕심을 줄이면, 줄인 만큼 행복으로 돌아온다. 멋진 차를 상상하면 즐겁지만, 멋진 차를 살 수 없는 현실에 부딪치면 우리는 불행을 느낀다. 불행하지 않으려면 멋진 차에 대한 욕심을 줄이거나 버리면 된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기쁘고 즐겁고 재미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걸까? 행복은 욕심을 조금씩 덜어냄으로써 얻을 수 있는 '불행하지 않은 상태'다. 행복은 욕심을 줄이면 찾아오는 '마음의 평온함' 그 자체다.

하와이 원주민들에게서 전해 오는 말 중에 이런 경구가 있다.
"There are 2 ways to be Rich. Make More or Desire Less"
행복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들 수 있다. 마음 속에 가득한 욕심을 한 스푼씩 덜어내면 되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출처 : 네이버 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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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나는 이런 책을 읽었다   

2008. 2. 27.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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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2008.2)에는 12권의 책을 읽었다. 지난 달에는 10권. 그래서 총 22권을 읽었다. 탄력 받으면 책 읽는 것도 빨라지는 것 같다. 서음(書淫)에 빠지지 않을까, 엄살을 부려 본다.^^

추천할 만한 책은, 닥터스 씽킹, 알을 낳는 개, 그룹 지니어스, 죽음의 수용소에서, 호모 파베르의 불행한 진화, 직관의 두 얼굴.......나머지 책은 So So..


악인

 

추리소설이 아니다. 뭐랄까? 베스트셀러극장 같은 느낌

라이벌

 

내 라이벌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어디서 내게 칼을 겨누고 있을까?

닥터스 씽킹

 

사람은 실수하는 동물. 의사도 사람이니 조심하자.

알을 낳는 개

 

학자들의 교묘한 속임수에 속지 말자

가스등 이펙트

 

난 더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 내 식대로 살자.

그룹 지니어스

 

1명의 천재가 십만명을 먹여 살린다굽쇼? 거짓말!

죽음의 수용소에서

 

어떤 상황에서라도 삶의 의미를 잃지 말자

시간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는가

 

시간은 희소자원이 아니고 우리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폭군들

 

가장 약한 인간들이 폭군이 되는 건 아닐까?

일의 발견

 

일을 많이 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하게 된다.

호모 파베르의
불행한 진화

 

실수를 보복해봤자 개선은 없다.

직관의 두 얼굴

 

직관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답은 배움의 깊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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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unes는 과연 User Friendly한가?   

2008. 2. 25.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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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d에 곡을 옮기려면 iTunes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야 한다. 어제 와이프가 쓸 노트북을 하나 샀는데, 노래를 iPod로 옮기기 위해 iTunes를 깔았다.

와이프는 참 난감해 했다. 노래를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나 역시 iTunes는 생소해서 모든 메뉴를 다 훑어 봐도 뭐가 뭔지 몰랐다.

일반적으로 노래를 옮기는 프로그램은 PC의 파일 목록과 iPod가 가지고 있는 파일 목록이 양쪽에 나와서 Drag & Drop으로 옮길 수 있도록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한참 동안 헤매다가 '동기화'라는 메뉴가 노래를 옮기고 받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그 메뉴를 누르자마자 iPod에 원래부터 있던 노래들이 싹 사라져 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아니, 이럴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또 한참 후에야 PC의 My Music폴더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동기화해 버리면 iPod에 있는 곡이 지워진다는 걸 깨달았다. 맙소사!

내가 사용법을 잘 몰라서 일어난 일이니 내 탓이긴 하다. 허나 좀 지나고 나니 부아가 치밀었다. 내 잘못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즉독성'이 매우 떨어지는 소프트웨어를 만든 애플의 잘못이다. 사용법이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건 아마 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 같이 예전에 소프트웨어 개발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웬만한 어플리케이션 사용법을 비교적 금방 배우는 사람도 헷갈리는데, 만일 내 와이프처럼(일반 사용자를 대표하는)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혼돈스럽고 황망할까?

단언컨데, iTunes는 휴먼 팩터(Human Factor)에 대한 고려 없이 만들어진 대표적인 소프트웨어로 '악명의 전당'에 오를 만하다. 메뉴얼을 숙독하고 훈련 받아야 겨우 사용할 수 있도록 물건을 만들었다면, 그건 사용자의 입장에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명차라고 불리는 BMW에는 iDrive라는 장치가 있다. 이 놈 역시 사용자의 능력은 안중에 없는 물건이다. 사용하려면 수많은 조작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만들어야 '뭔가 있어 보인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개발자의 오만이다. 휴먼 팩터 없이 만들어진 물건은 사람들의 크고 작은 실수를 유발하고 그 때문에 자칫 엄청난 사고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의 원인도 따지고 들어가면 사용법이 복잡한 계기판 때문이었다.

iTunes가 와이프가 오랜 기간 어렵게 모은 MP3를 다 날려 버리고 말았다. 와이프는 자신이 조작했어도 날렸을 거라면서 나를 위로하지만, 매우 유감인 건 어쩔 수 없다.

* 휴먼 팩터 = 인간을 기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인간에 맞추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인간의 조건들을 의미함. 예를 들어, 인간이 한번에 7개 정도의 정보만 인지할 수 있다는 것도 휴먼 팩터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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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   

2008. 2. 25.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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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월25일)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이다. 호불호를 떠나 대통령 취임을 축하해줘야 하는 날에 소금을 뿌리고 싶은 마음은 아니지만, 한마디 하련다.

'보이지 않는 손'이란 개념을 처음 내보였던 애덤 스미스가 그의 저서인 "도덕 감정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만한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상적인 계획에 스스로 도취되어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을 못 참는다. 공공의 이익보다도 자신의 계획을 한치의 오차 없이 완벽히 실행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그는 손으로 체스 판 위의 말을 옮기는 것만큼 국민들을 쉽게 움직일 수 있을 거라 상상한다."

내가 애덤 스미스의 말을 꺼내드는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이 부디 오만한 정치인의 한사람으로 기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하는 마음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많은 욕을 먹은 노무현 대통령의 과오와 실패는 정치적 역량보다는 오만함에서 비롯됐다. 노무현 정부와의 차별화를 강조하는 이명박 당선인에게서도 국민을 바라보는 오만한 시선이 느껴진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다.

취임하기 전 영어몰입 교육, 대운하 사업 등에 대한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그는 "처음에는 혼란스러울 것이나 수년간 연구를 했기 때문에 국민들의 인식도 차차 바뀔 것이다"라면서 그의 특기대로 '밀어불일 것'이라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실행을 전제로 공청회를 하겠다는 시도는 오만함의 끝이 어디까지 이르렀는지를 잘 보여준다.

대통령 취임을 축하한다. 허나 이 시점에서 우려스러움을 감출 수 없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 같다. 정치적 이상은 현실보다 우선할 수 없다. 부디 오만한 시선을 걷어내길 바라며, 국민의 공복으로 일하겠다는 당선 소감의 말이 상투적인 허언이 되지 않기를 빈다.

오만은 편견을 낳고, 편견은 대립을 심화시키며, 대립은 억압으로 변질된다. 부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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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또 시작이다!   

2008. 2. 2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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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경영 이론이 너무나 많아서 컨설턴트인 나조차도 무슨 이론이 업계를 떠돌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너무나 많은 탓인지, 경영 이론들은 서로 모순되는 경우도 많다.

질적 성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론이 있는가 하면, 그와는 다르게 '속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론이 있다. 기업문화의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반대로 일치되고 통합된 하나의 문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을 한다.

뭐가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경영자들은 수많은 경영 이론들이 자기모순에 빠져 '떠들어 대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무척 헷갈린다. 귀가 얇은, 그래서 나름의 경영철학이 없는 경영자는 유행에 휩쓸리기 쉽다. 언제는 속도를 강조하더니만, 이제는 내실을 기하라며 소리친다.

동시에 여러 개의 경영혁신 프로그램들로 직원들을 괴롭히며 경영자가 줏대 없이 여러 경영 이론 사이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할 때, 직원들은 이렇게 외친다. "엎드려! 또 시작이다! (Bend over! Here it comes again =  BOHICA)

'권한위임(Empowerment)'이 조직성과 향상의 마술지팡이로 취급 받는 모양인데,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성과 향상의 전부가 아님에도 컨설턴트들은 녹음기처럼 이 말을 떠들고 다닌다.

권한위임은 말은 대개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직원들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하면 동기부여가 돼서 더 열심히 일하고 높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권한위임은 직원 입장에서 볼 때 별로 환영하고 싶지 않은 말이다. 경영자(CEO)가 자신에게 권한을 위임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바로 "네가 마음껏 해보라.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각오해야 해!"라는 의미다.

권한위임은 CEO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자신이 부담해야 할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포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직원들은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성과를 못내는 것이 아니다. 성과를 내는 방법을 몰라서 못내는 것이다.

권한위임이 조심스럽게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 권한을 위임 받을 생각이 없는 직원에게 권한만 떡 하니 안겨준다면, 그 직원은 동기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막중한 압박감에 시달릴 뿐이다. 그래서 "엎드려! 또 시작이다!"라고 외치면서 눈 가리고 아웅할 생각만 골몰할지도 모른다.

(조안 시울라의 책 '일의 발견'에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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