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imagism을 썼을때,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어. "당신은 사물의 뒷면만을 보려 해." 나는 그말에 정말 내가 사물의 뒷면, 그러니까 사물의 어두운 면, 음험한 슬픔, 혹은 비정상적인 행태만을 바라보려 하는지, 그런 것에만 생각의 촛점을 맞추는 지를 2분간 생각해 봤지.
그리고 나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앞뒤로 뒤집으면서 골똘히 관찰했어. 왜 하필 동전이냐고 나에게 핀잔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봐, 너는 단순화 혹은 모델링이란 걸 모르는군. 동전 하나에 대해 많은 사유를 해보았던 적이 있었어?" 라고 나는 대답할 태세였어.
(사진 : 유정식)
어쨋든 예의 그렇듯이 동전의 앞면은 위인의 얼굴이나 문화재 따위가 양각으로 부조되어 있잖나? 반짝거리는 동전의 반사광을 통해 보이는 위인의 얼굴은 흡사 신생로마를 통치했던 폭군을 연상케할 뿐, 그 어떤 존경심이나 혹은 역사적 감흥 따위는 손톱만큼도 일어나지 않지. 그들을 그저 모델들이야. 동전 앞면을 아무 무늬도 없이 밋밋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 위인의 얼굴을 빌려 그 앞면을 장식한 것뿐이라구.
그런데 왜 하필 위인의 얼굴이어야 하느냐고? 이봐, 그것은 인간들의 이기심을 배제하기 위해 나름대로 고민한 결과였어. 예를 들어, 동전의 앞면 모델로 '흰돌'의 얼굴을 새기기로 화폐국에서 결정을 내렸다면 아마도 99%의 사람들은 머리에 빨간띠를 두르고 그 결정을 철회하라는 집단행동을 연출할 것이 뻔하잖아? 위인이란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케 해주는 아주 편리한 모델이야.
그건 그렇고, 위인들은 후대에 가서 동전의 앞면 모델로 활동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지, 또 알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지네. 이야기가 좀 다른 곳을 흘렀지만, 요컨데, 동전의 앞면은 장식을 위해 마련된 공간일뿐 다른 의미는 없어. 그렇다면, 동전을 180도 회전하여 뒷면을 살펴 보자구.
너도 알겠지만 그곳에는 동전이 나타내는 화폐의 가치가 대개의 경우 아라비아 숫자로 똑똑하게 적혀 있지. 그 동전을 가지고 그만큼의 가치에 해당하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살 수 있다는 이야기야. 참으로 멋진 단순함 아냐? 나는 동전의 뒷면만큼 솔직하게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를 스스로 나타내며 모든 판단을 명료하게 해주는 것에 대해 예를 들어보라고 한다면 꽤나 난처함에 빠지고 말 거 같아.
동전의 뒷면, 그러니까 내가 사물의 뒷면이라는 것을 대유적으로 표현한 동전의 뒷면을 통해, 나는 내가 사물의 뒷면만을 바라보려한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변호하고 싶다구.
어때, 멋진 변호라고 생각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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