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두뇌 유출, 심각하다   

2009. 5. 1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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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학생의 64%가 고시나 의대 편입을 고민 중이라는 뉴스를 접했다. 안타깝다. 자신의 진로야 개인의 자유지만, 국가 차원에서 보면 어렵게 뽑아서 육성한 미래의 과학도가 유출되는 꼴이니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과학자가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는 정도가 얼마나 될까? 반대로 의사나 판검사가 국가의 부(쉽게 GDP라 하자)를 얼마나 높일 수 있을까? 법조계나 의료계에 있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나는 판검사 혹은 의사의 기여도는 과학자의 그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은 우리가 고도의 문명을 향유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부산물로 지구온난화와 환경 파괴라는 그늘도 함께 가져왔지만, 그런 문제 역시 과학만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한 국가의 성장동력은 과학기술이라는 근력에서 나온다. 의술이나 법 정의는 사회를 안정화하는 도구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의술과 법 정의는 국가 발전의 버팀목이지만 앞서서 선도하는 엔진은 아니라는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KAIST 학생들의 '이탈'은 매우 가슴 아프다.


어느 날인가, 모교의 후배가 상담을 하고 싶다며 나를 만났다. 학부를 졸업하고 의학전문대학원을 가야할지, 아니면 학부 전공을 살려 취업이나 진학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했다.

그에게 과학자나 엔지니어의 길을 포기하지 말라 조언하고 싶었지만, 나는 비겁했다, "좋은 기회가 있다면 의학전문대학원으로 가라"는, 지극히 현실적인(아니 속물적인) 충고를 했다.

나중에 과학의 길을 택한 그가 다시 찾아와서 내게 비난 섞인 푸념을 늘어놓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나 역시 과학의 길을 포기하고 경영학을 택하지 않았던가? 그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해주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과학이 대접 받지 못하고 과학자가 업신 여김을 당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울하지만, 반성하고 빨리 바로잡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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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부진한 프로젝트, 인력 추가하면 더 나빠져   

2009. 5. 19.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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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람이 날 정도로 잘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있는가 하면, 지지부진하고 맥빠지는 프로젝트가 있기 마련이다.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프로젝트가 있는가 하면, 손해나 끼치지 않고 제발 빨리 끝나주기를 바라는 프로젝트가 있기도 하다. 컨설팅 프로젝트이건, SI 프로젝트이건, 마찬가지다.

일정대로 진행되지 않고 지지부진한 프로젝트를 가능한 한 문제 없이 끝내기 위해 프로젝트 매니저는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는데, 가장 많이 '애용'되는 해결책이 인력을 더 투입하는 방법이다.

원칙대로라면, 지지부진함의 원인을 면밀히 따진 후에 꼭 필요한 경우에만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인력의 추가 투입은 고객(클라이언트)으로부터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구나'라는 인정을 쉽게 받는, 소위 'show-off 효과'가 크기 때문에 PM 입장에서 매우 매력적인 방법이다.

'몇 명 더 투입한다고 해서 나쁠 게 있겠어?'라며 인력의 추가 투입이 적어도 현재의 문제를 더 악화시키지는 않으리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해 본 결과, 문제를 해결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는 경우가 잦았다.

업무의 양이 많아서 프로젝트가 느리게 진행된다면야 인력의 추가 투입이 최고의 전략이다. 사실 프로젝트에서 가장 풀기 쉬운 문제는 업무의 양이 많다는 이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유가 더 많은데, 이럴 경우 인력의 추가 투입은 프로젝트의 공전 속도(진행 속도가 아니다)를 더욱 빠르게 할 뿐이다.

유능한 PM이라면 프로젝트가 단순한 업무 수행이 아니라, 매순간 협상과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프로세스로 인식해야 한다. 공전되는 대개의 프로젝트는 의견의 충돌, 약속의 파기, 협상의 결렬 등 협상과 합의 과정의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므로, PM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사항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 멤버 사이의 의견 차이를 좁혀 합의를 이끌어내고 약속이 이행되도록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다.

참여하는 이해관계자의 규모가 2~3명 정도라면 PM의 관리 부하(load)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멤버가 하나씩 늘 때마다 그 load는 빠르게 증가한다. 결코 선형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

프로젝트 이해관계자(클라이언트, 멤버 등)의 규모가 2명이면, 그 사이에 존재하는 '링크'는 1개다. 다시 말해, PM이 협상과 합의를 주재하고 관리해야 할 '관계'가 오직 하나라는 말이다. 3명이 되면 3개의 링크가 형성된다. 4명이면 6개, 5명이면 10개로 늘어난다. 즉 프로젝트에 N명이 관여하면 N(N-1) / 2 개의 링크가 만들어진다. 이를 메칼프의 법칙이라 부른다.

그래프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짙은 파랑색 곡선이 늘어나는 실제 관리 로드(즉 링크의 수)이고, 분홍색 직선은 선형적으로 관리 로드가 늘어나리라고 잘못 기대하는 경우를 나타낸다.


1명의 인력의 추가로 투입되면 PM의 관리 로드(load)는 1단위 만큼 증가하지 않고 급수적으로 증가함을 이 그래프는 보여준다. 고객에게 쉽게 어필되는 인력의 추가 투입 방법이 오히려 프로젝트를 더 망치는 지름길일지도 모름을 깨우치게 한다.

인력이 1명 더 들어오면 그가 프로젝트에 적응하기 위한 기간이 필요하다. 경험적으로 중간에 프로젝트에 들어온 컨설턴트는 지금까지 진행된 프로젝트 일정의 1/3 내지 1/2 정도를 온전히 프로젝트에 적응하는 데 소요한다.

시작된지 3개월된 프로젝트라면 그에게는 1~1.5개월의 시간이 적응에 필요하다는 말이다. 제대로 일할라치면 어느 새 프로젝트 종료일이 다가오고 만다. 인력의 투입이 오히려 '비(非)경제'를 부추긴다.

지지부진한 프로젝트를 개선하려면 인력을 추가로 투입하는 방법보다 합의와 약속 이행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돌멩이를 제거하는 조치가 우선이다. '링크'의 개수를 줄임으로써 꼭 필요한 링크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방해하려는 고의가 있든 없든, 돌멩이가 고객이든 프로젝트 멤버이든 방법을 찾아야 할 의무가 PM에게 있다. 이래저래 PM은 참 중요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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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니오'에서 발견하는 동서양의 차이   

2009. 5. 1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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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랬겠지만, 나도 영어를 처음 배우면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우리 땐 중학교에 가야 비로소 영어를 배웠는데(물론 알파벳 정도는 초등학교 때 다 외우지만), 12년 동안 한글에 익숙한 언어 생활에 길들여져 있던 까닭인지 영어가 어렵기도 하고, 생경한 탓에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I am Tom. I am a boy... 식으로 시작되는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 내용 중에 유독 내가 어려움을 겪었던 표현은 부정의문문이었다. 왜냐하면 부정의문문에 Yes로 대답해야 할지, No로 대답해야 할지 매번 헛갈렸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영어에서 부정의문문으로 물으면 다음과 같이 대답해야 한다. 

Aren't you a boy?
--> (boy가 맞을 때) Yes, I am a boy.
--> (boy가 아닐 때) No, I am not a boy.


영어선생님은 부정의문문에 답할 때는 Yes가 '예'가 아니라 '아니오'이고, 'No'는 '예'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다음과 같이 해석해야 한단다.
 
너 남자 아니니?
--> (남자일 때)          아뇨, 전 남자인데요.
--> (남자가 아닐 때)   예, 전 남자가 아니에요.

난 그 설명에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Yes는 항상 긍정의 뜻인데, 왜 부정의 뜻으로 변하지?' 영어선생님은 영어의 표현과 우리말과 다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Yes와 No의 뜻을 뒤바꿔서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여전히 헛갈려하는 (나를 포함한) 학동들에게 '그냥 그런가부다' 생각하라고까지 하셨다.

(사진출처 : http://imagebingo.naver.com/album/image_view.htm?uid=lunaticjoey&bno=11897&nid=1926 )


이제 영어식 표현이 부정의문문에서 그렇게 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부정의문문에 답을 할 때마다 잠시 머뭇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여전히 불편하다.

물론 내가 영어에 서툰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타인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데에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위의 영어 문장에서 답자(答者)의 문장을 잘 살펴보면 '나'가 중심임이 나타난다. '내가 boy니까' 긍정의 표현인 yes가 무조건 들어와야 한다. 질문자가 긍정의문문으로 물었든, 부정의문문으로 물었든 상관없이 '내가 boy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문제다. 또한 문장 자체가 모순이 없도록 만들려면 'Yes, I am a boy'라고 답해야 한다. 'No, I am a boy'는 논리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반면, 한글 문장은 질문자와 답자 사이의 '관계'와 소통을 더 중시한다. '너 남자 아니니?'라는 질문과 '아뇨, 난 남자에요'라는 답 사이에는 '이중 부정'의 메카니즘이 존재한다. '아니니?'에 대해 '아뇨'이므로 '예'의 뜻이, '아니니?'에 대해 '예'이므로 '아니오'란 뜻이 질문자에게 전달된다.

한글 대화에서는 '아니니?'에 대해 '아뇨'라고 말함으로써 상대방의 오류를 바로잡아주고, '아니니?'에 대해 '예'라고 말함으로써 상대방의 옳음에 맞장구를 쳐준다. '아뇨, 전 남자에요.'란 문장 자체는 영어의 관점으로 보면 논리적으로는 틀린 문장이지만, 질문자를 위해 논리의 오류쯤은 포기하는 배려와 소통의 의지가 느껴진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배우는 일이 어려운 까닭은 바로 이와 같이 언어에 내재된 '컬처코드' 때문은 아닐까? 영어 완전정복을 외치는 수많은 강사들이 '묻지고 따지지도 말고' 습관이 되도록 무조건 외우라고 조언하는데, 그 말이 틀리지 않은 듯하다.

어찌됐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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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오는 번호 찍으면 로또에 당첨될까?   

2009. 5. 1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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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추첨이 방송되는 토요일만 되면 '로또 확률'이란 키워드로 이 블로그를 찾는 분들이 많아진다. 예전에 올린 '로또 1등 확률에 대한 실감나는 비유'란 글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로또 밖에는 희망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서민경제가 좋지 않은 이유 때문이기도 하리라.

당첨번호를 예측해서 알려준다는 사이트가 여기저기 성황인데, 과연 어떤 로직으로 당첨번호를 찍어주는지 알길이 없다. 몇 개 찾아서 3주 정도 추적해 봤는데, 그들이 예측한 당첨번호는 숫자를 3개 맞히는 5등에도 당첨되지 못했다. 고로, 엉터리다.

어떤 사람들은 자주 출현한 번호를 위주로 6개의 번호를 찍으면 로또 1등에 당첨될 거라 기대한다. 로또번호가 적힌 고무공을 내뱉는 기계에 근원적인 편향이 존재해서 특정 번호를 더 자주 뽑는다고 믿거나, 왠지 모르지만 기분상 '그럴 것 같다'고 믿기 때문이다.
 
진짜 그럴까? 확인해 보자. 로또 사이트(http://www.645lotto.net/)를 방문하면, 1회부터 337회까지 어느 번호가 가장 많이 당첨번호로 선택됐는지 그 순위를 찾아볼 수 있다.

먼저 1회부터 168회까지 나온 당첨번호의 출현횟수를 사이트에서 얻었다. 그런 다음, 가장 많이 나온 번호부터 내림차순으로 그래프를 그려보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1'이 가장 많이(35번) 나왔고, '24'가 가장 적게(17번) 출현했다. (크게 보려면 클릭을...)


이 결과를 보고 있으면, 1, 42, 36, 2, 3, 26.... 과 같이 상위권에 랭크된 번호가 169회 이후에도 잘 출현하리라 기대하게 된다. 숫자와 그래프의 힘이 그러한 '경향'으로 판단력을 유도한다.

그렇다면 169회부터 337회(현재)까지 그 번호들이 여전히 자주 출현했을까? 위의 그래프의 X축을 그대로 두고 169회~337회의 출현빈도 곡선을 얹어 보았더니 다음과 같았다. (크게 보려면 클릭을...)


패턴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일종의 '잡음'처럼 보인다. 1~168회때 가장 적게 나온 번호인 '24'가
169회~337회 때는 7번째로 가장 많이 나왔다. '1'은 여전히 잘 나오는 번호 중 하나지만 우연의 소산으로 보인다. 이 그래프로 초기의 패턴이 후기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비교 구간을 달리해도 마찬가지다).

항간에 떠다니는 로또 조작설이 사실이 아니라면, 45개의 숫자는 고루(비슷한 출현빈도) 나와야 한다. '평균으로의 회귀' 때문이다. 자주 나오는 번호가 있는 듯이 느껴지거나 보이는 이유는 지금까지 실시된 337번의 로또 추첨 횟수가 너무 적어서다. 

이와 같이 초기의 결과로 후기의 결과를 가늠하기 어려운 경우는 로또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펀드 매니저의 실적이다. 연구 결과, 1991년부터 1995년 까지의 실적 순위는 1996년부터 2000년까지의 실적 순위를 전혀 설명하지 못했다. 위의 그래프처럼 뒤죽박죽이었다.

로또 당첨 확률을 높이려면, 로또를 한 장 더 사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허나 그 말이 유일한 해답이다. 로또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그 어떤 유혹에도 속아넘어가지 말자. 환상을 버려야 행운이 찾아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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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란 말의 용법에 대해   

2009. 5. 1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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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싸가지 없는 놈'이라는 소리를 한번쯤 들어 본 적이 (극소수를 제외하고) 누구에게나 있다. 부모님, 친지, 스승님, 때론 아무 상관없는 어른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을 성 싶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상적으로, 주기적으로 싸가지 없는 놈으로 분류되곤 했으니까.

초등학교 저학년 때로 기억한다. 습관적으로 내게 싸가지가 없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는 동네 아저씨가 있었다. 그는 그 소리를 할 때마다 눈을 치켜 들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비웃음을 보이곤 했다. 일부러 그 아저씨를 피해 다녔지만 그는 용케 날 찾아내어 나의 어느 면이 싸가지 없음의 증거인지 캐내려고 눈빛을 반짝였다.

윤문식의 유행어 '이런 싸가지!'

돌멩이를 차며 골목을 걸을 때도, 친구들과 아웅다웅 다툴 때도, 하다못해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서 있을 때도, 어김없이 그는 내 뒤에 나타나 나즉히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속삭였다. 어린 나에겐 참 부당한 대우였다.

어느 날 습관적인 그 말에 부아가 나서 "그러면 아저씨는 싸가지가 있나요?" 라고 대들고 말았다. 대답 대신 딱딱한 꿀밤이 날아왔다. 예의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란 말과 함께.

그때 난 속으로 '왜? 싸가지가 있다는 말이 왜 싫지?' 라고 구시렁댔다. '싸가지가 없다'고 해도 기분 나쁘고, '싸가지가 있다'고 말해도 기분 상한다. '싸가지'가 비속어가 아닌데도 말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싸가지'는 표준말이 아니라 강원도나 전라도에서 쓰이는 사투리라고 한다. 이 말의 표준어는 '싹수'다. 그 뜻은 아래와 같다.

  싹수 [명]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표준어보다 더 많이 쓰이는 사투리라니! '싸가지'란 말도 싹수의 입장에서는 싸가지가 없는 단어이겠지 싶다.

헌데 '싹수가 있다'는 말의 뉘앙스는 긍정적인데 반해, '싸가지가 있다'는 말은 똑같은 뜻인데도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단지 사투리라는 이유로? 비속어가 아니지만 비속어처럼 쓰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발음 때문에 욕의 일가(一家)를 형성하는 '쌍시옷(ㅆ)파'의 일원으로 오인 받기 때문일까? 난 국어학자가 아니니 모르겠다. 서정범 교수에게 물어볼 일이다.

우리가 어떤 뜻으로 싸가지란 말을 쓰는지, 그 용례 9가지를 다음과 같이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 생각해보니 이 단어처럼 일상 속에서 여러 뜻으로 쓰이는 말은 별로 없는 듯하다.(유력한 경쟁상대로 '지랄' 이란 말이 있긴 하다).

1. 배은망덕하다
   "먹여주고 입혀 준 은혜를 잊다니! 이런 싸가지 없는 놈!"

2. 무례하다(혹은 버릇없다)  -- 가장 자주 쓰인다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해야지! 이런 싸가지 없는 놈!"

3. 나대다
   "나설 자리 안 나설 자리 가리지 않고 나대다니! 이런 싸가지 없는 놈!"

4. 대들다
   "콩알 만한 녀석이 감히 어른에게 대들어? 이런 싸가지 없는 놈!"

5. 고집세다
   "그렇게 설명해도 못 알아 듣냐? 이런 싸가지 없는 놈!"

6. 이기적이다 (혹은 배려가 없다)
   "너 자신 밖에 모르다니! 이런 싸가지 없는 놈!"

7. 똑똑하지 못하다(혹은 멍청하다)
   "어떻게 일을 그렇게 하냐? 이런 싸가지 없는 놈!"

8. 욕심이 많다
   "아주 놀부 심보구나! 이런 싸가지 없는 놈!"

9. 삐딱하다(혹은 비판적이다)
   "사사건건 토를 달다니! 이런 싸가지 없는 놈"


아마 이것보다 더 다양한 의미로 쓰이지 싶다. 써놓고 보니 '싸가지 없다'는 말은 그저 '내 맘에 안 드니 너는 나쁜 놈'이란 뜻으로 수렴되는 듯하다. 장래가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쓰는 말이 일상에서는 '밉고 싫고 나쁘다'는 의미로 변질돼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따지고 보면 한 사람의 장래가 집약된 '싹수'란 말 자체가 다양한 의미를 내재하기 때문이겠지 싶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내게 습관적으로 싸가지 없음을 상기시켜 준 그 아저씨는 아마도 아놀드 슈월츠제네거처럼 나의 미래가 불투명함을 미리 경고하기 위해 미래의 누군가가 내게 보낸 사자가 아닐까?
 
스토커 비슷하게 날 따라다닌 그의 공로(?) 덕에 내가 싸가지 있게 자랐을지, 아니면 그 반대일지, 판단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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