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문제해결의 기술적인 측면만을 강조해 온듯 하여 오늘은 조금 '철학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철학이라 말하면 우선 하품부터 나오거나 긴장하기 십상일 텐데요, 문제해결사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이 되는 역량이자 어떻게 보면 유일한 역량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에 관하여 가볍게 설명하고자 함이니 마음 놓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흔히 문제해결사들에게 필요한 사고(思考) 역량이 무엇이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곤 합니다. 약간씩 답변이 다르겠지만, 대개는 비판적 사고, 논리적 사고, 창조적 사고, 전략적 사고 등이 문제해결사가 지녀야 할 사고방식이라고 답변을 할 겁니다. 그런데 각각이 어떤 의미인지 구별해 달라고 질문을 다시 던지면 우물쭈물하거나 말문이 탁 막히고 맙니다. 서로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비판적 사고가 뭔지 한입 배어 먹어 봅시다.
여러 이견이 있겠지만, 이 4가지 사고방식 중에 가장 근본이 되면서 포괄적인 것은 바로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입니다. 왜 그런지는 지금부터 설명하겠습니다.
비판적 사고라고 말을 하면 '비판'이라는 단어의 뉘앙스 때문인지 우리는 이 말을 약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일상에서 비판은 "타인의 생각, 행동, 작품 등에서 헛점을 발견하여 공격을 가한다" 라는 의미로 통용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남을 헐뜯는다', 즉 '비난한다'란 뜻으로 비판이란 말을 오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판은 그렇게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았습니다. 비판을 뜻하는 영어 단어 critic은 라틴어인 criticus에서 유래했는데요, 본디 '판단할 수 있다(able to make judgements)'라는 뜻이었습니다. 비판(批判)의 한자어 뜻도 "옳고 가름을 가려 판단한다"는 의미입니다. 타인의 헛점을 공격하거나 비난한다는 의미와는 상당히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모든 이들에게 비판은 장려되고 권장돼야 할 태도입니다.
비판적 사고란 한마디로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한 생각의 방법'입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려면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 근거는 논리적이거나 경험적인 기반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과정 속에서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판단을 얻습니다. 동그라미로 보이는 세계를 따지고 들어가니 실제의 세계는 네모라는 통찰을 얻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통찰과 기존 관점과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에까지 생각이 확대됩니다. 따라서 비판적 사고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물을 관찰, 분석, 평가, 추리할 때 올바르고 엄정한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판단과 해석을 이끌어 내고 대안을 제안하는 과정
비판적 사고의 정의를 들여다 보면 그 안에 논리적 사고, 창조적 사고, 전략적 사고가 다 포함됨을 알아차릴 겁니다. 올바르고 엄정한 근거에 기반한다는 말은 바로 논리적 사고를 뜻합니다. 새로운 판단과 해석을 이끌어 낸다는 말은 창조적 사고를, 대안을 구상한다는 말은 전략적 사고를 일컫습니다. 한마디로 비판적 사고는 곧 "문제해결 과정에 적용해야 할 사고방식"입니다. 사물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는 말은 눈으로 보이는 것과 자신이 판단하는 것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겠다는 말과 같은데, 이 괴리가 바로 문제를 뜻하므로 비판적 사고는 곧 문제해결적 사고입니다.
비판적 사고의 개념
사물 또는 현상
→ [논리적 사고] 근거 제시
→ [창조적 사고] 새로운 판단과 해석
→ [전략적 사고] 대안 제안
비판적 사고의 의미론을 장황하게 설명한 느낌이 드는데요, 이제는 비판적 사고를 위해 문제해결사가 갖춰야 할 자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것일지 모르지만 상당히 중요하니 꼭 새겨 두기 바랍니다. 그 3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반성적인 자세
2) 진리를 추구하는 자세
3) 열린 마음의 자세
첫째, 반성적인 자세란 고정관념을 의도적으로 깨고 뒤집어서 생각하는 버릇을 말합니다. 앞면만 보이는 동전을 뒤집어서 뒷면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문제해결사는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사물이나 현상을 목격하면 그것이 무엇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되는지, 다른 상황에 놓이면 그 당연함이 더 이상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이런 질문을 통해 문제해결사는 '의도적으로' 문제를 야기하고 발굴해야 합니다.
둘째, 진리를 추구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란 '절대적으로 옳은 그 무엇'이 아니라, 문제를 둘러싼 상황(맥락) 하에서 상대적으로 옳은 그 무엇을 의미합니다. 문제해결사는 누구나 납득 가능하도록 논리적이고 경험적인 근거를 제시해서 옳고 그름을 반드시 가려내야 합니다. '옳을 수도,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어정쩡한 결론은 문제해결사가 취해서는 안 될 '비겁함'입니다. 나중에 비난이나 불이익을 당할까 염려되어 언제나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결론을 선호한다면 문제해결사로서의 길을 깨끗이 포기하는 게 좋습니다.
셋째, 열린 마음의 자세란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함을 뜻합니다. 문제를 관찰하고 분석하려면 주관적인 판단을 절대로 배제하지 못합니다. 주관적이란 말을 병적으로 싫어하면서 무조건 객관적이야 함을 주장하는 사람들 있는데요, 문제해결사가 직면할 문제의 세계는 수학으로 딱딱 떨어지는 세계가 아니므로 주관적인 판단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오히려 권장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주관적인 판단은 언제나 오류의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자신만의 관점에 사로잡혀서 편협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자신의 오류를 수용하지 못한다면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망할 거라는 둥, 반대로 신이 우리를 구원하러 UFO를 타고 올 거라는 둥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예언을 내뱉습니다. 그런 예언이 틀렸음을 지적하면 이렇게 변명합니다. "너그러운 신이 우리에게 한번의 기회를 더 주셨다." 또는 "신도들이 성심을 다해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등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이비 종교에서는 오류가 절대 용납되지 않습니다.
훌륭한 문제해결사라는 누군가가 오류를 지적하면 기쁜 마음으로 수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문제 해결이 최종목적이지 자신의 관점을 고수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이 실수를 하거나 오류에 빠지더라도 그를 심하게 몰아 세우거나 폭언에 가까운 논평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나의 주관도, 너의 주관도 모두 불완전"하므로 타인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서로 비난하기보다는 협의를 통해 좀더 나은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비판적 사고를 함양하려면 논리학과 문제해결기법 같은 기술이 전부가 아닙니다. 위의 3가지 자세를 문제해결 과정 내내 견지하고 매번 체크해야 그런 기술을 적용하여 나온 산출물들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오늘 포스트는 도덕적인 이야기가 돼 버렸는데요, 문제해결사를 자칭하는 분들 중 많은 이들이 비판적 사고의 의미를 제대로 모를 뿐더러 비판적 사고를 위한 자세를 자주 망각하는 듯하여 이렇게 따로 강조해 봅니다.
오늘도 비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