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부하직원들을 깊이 신뢰한다면 때때로 불가능한 일을 완수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햇병아리 컨설턴트 시절, 뭣도 모르고 바쁘게만 뛰어다닐 줄만 알았던 나를 이제 명함 정도는 내밀 수 있을 만큼으로 성장시킨 것도 바로 상사가 나에게 보여 준 신뢰의 힘 때문이다.
어느 날 까다로운 의뢰가 들어왔다. 고객의 의뢰란 것이 뭐든 까다로웠지만, 그 의뢰건은 수수료도 기간도 터무니없었음에도 원하는 주제가 거의 1~2년은 좋이 연구해야 할 박사 논문 감이었다. 누구도 해 본 적 없는 난제중의 난제였다.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논란 끝에 결국 그간의 고객관계를 고려해 수주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과연 누가 그 일을 할 것인가? 대부분의 컨설턴트들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고 고생만 하고 말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뒷걸음질쳤다. 여러 사람의 손사래에 표류하던 그 일은 마침 프로젝트를 끝내고 쉬고 있던 나에게 떨어졌다.
누구는 동정의 눈빛으로 띠면서 ‘대충 하는 척만 하라’며 위로주(酒)를 자청하기까지 했다. 누구는 고소한 듯 묘한 미소를 보였다. 마음 속에서 ‘거부의 악마’와 ‘도전의 천사’가 싸웠다. ‘해? 말아? 난 아직 경험도 실력도 보잘것없어. 섣불리 했다가 욕만 먹는 건 아냐?’ 라고 우울해지다가도 ‘아니지, 이번에 뭔가 보여줘야지. 그래, 비웃어라. 정말 멋진 걸 만들어 보겠어.’ 라는 용기가 불끈 솟아나기도 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까라면 까야지’, 애송이 컨설턴트로서 거부는 용납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해봐야지, 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상사가 나를 불렀다. 그 후 몇 분이 흐르고 상사의 방을 나올 때, 나는 자신감과 열정으로 가득 찬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부드럽지만 강한 목소리로 “이 일은 아주 중요하고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자네가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다고 믿고 훌륭히 끝낼 것이라고 확신해. 같이 해 보자.” 라며 신뢰의 굳은 악수를 건넸다.
이에 용기백배된 나는 결국 해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그의 신뢰를 저버릴 수 없었기에 스스로를 일으켜야 했다. 시나리오플래닝은 바로 신뢰가 빚어낸 조그마한 결정체였다. 맨땅에 숱하게 헤딩하며 2개월 밤낮을 매달린 결과였기에 아직까지 가슴 벅찬 기억으로 남아있다. 인생의 멋진 1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라. 나를 믿어 준 상사 덕이다.
만약 그가 초조하고 의심에 찬 얼굴로 “할 말이 없군. 할 수 있을 것 같아? 시간이 별로 없어. 어떻게든 기간 안에 내놔 봐.” 라고 말했더라면? 프로젝트는 엉망이 될 게 뻔했고, 확신컨대 이렇게 컨설팅으로 밥 벌어 먹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컨설팅 때문에 고객사의 직원들과 인터뷰할 때가 많은데, '술' 이야기가 빠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관리자들에게 직원들의 '감성 관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냐고 물어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술 마시는 기회를 자주 갖는다고 자랑스레 말하거나, 혹은 자기가 너무 바빠서 얘들 술도 못 사준다면서 직원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인사불성 될 때까지 술 마시면서 '으쌰으쌰'하면 팀의 화합이 강화된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과연 그럴까?
삼성전자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자. ‘어떤 상사와 일하고 싶으냐.’ 란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하를 믿고 맡기는 상사’를 첫째로 꼽았다. 술 잘 사주고 잘 놀아주는(?) 상사는 아예 리스트에 오르지도 못했다. 술 많이 사주고(실은 자기가 마시고 싶으면서) 토닥거려 주면 부하직원들이 충성할 거라 기대한다면, 당장 사표를 쓰는 것이 어떠한가? 일일이 끼고 앉아서 모든 걸 챙겨주는 것이 부하직원을 위하는 일이라 믿고 있다면, 말리지 않을 테니 계속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라.
부하는 자신을 믿어 주는 주군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법이다. 재활의 명장으로 불리는 김인식 감독은 선수가 계속 실수를 해도 참는다. 속이 썩고 또 썩어도 참는다. 그 선수가 제 몫을 해줄 때 비로소 소처럼 웃는다고 한다. 부하를 믿지 못하는 상사들이여, 믿고 맡겨라! 그러면 그들이 반드시 해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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