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내에서 발견되는 각종 오류들   

2012. 5. 18. 10:12
반응형


일반회사를 다니다가 컨설턴트 일을 한 지 이제 14년 가량이 됐습니다(아니 벌써!). 그 동안 여러 기업을 보면서 '이건 좀 이상하다'고 느낀 경영상의 오류들이 많습니다. 제가 발견한 오류가 경영의 모든 오류를 포괄하지는 못하겠지만, 아래의 내용들은 직장을 다니는 분들이라면 피부로 느끼고 있을 겁니다. 간혹 아프게 꼬집는 오류가 있더라도 '잘해보자'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좋겠네요.

여러분도 추가하고 싶은 오류가 있으면 댓글로 남겨 주세요. 나중에 혹시 이 글을 책에 싣게 되면 출처를 밝히고 여러분이 제시한 오류를 넣겠습니다. 저도 더 생각나면 계속 추가하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인력의 오류' : 사장님 눈에는 인력이 남고, 직원들 눈에는 인력이 모자르다. 항상.


'경쟁의 오류' : 경쟁사와 경쟁할 생각은 하지 않고 직원들을 서로 경쟁시킨다. 내부경쟁이 외부경쟁력을 높인다고 착각한다.


'운영전략의 오류' : 그저 운영인데 거창하게 '전략'이란 말을 갖다 붙인다. 누구와 운영을 놓고 싸우는데?


'가격 협상의 오류' : 한번 거래를 트면 계속 이어지니 가격을 깎아 달라고 말한다. 물론 그 다음 거래는 없다.


'업무공유의 오류' : 공유할 마음이나 필요도 없으면서, 문제만 생기면 업무공유가 안 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회식의 오류' : 윗사람만 좋아한다.


'등산의 오류' : (특히 사장님) 자신이 등산 좋아하면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는 줄 안다.


'핵심인재의 오류' : 우리 회사에서 핵심인재라고 뽑힌 자들은 업계 최고가 아니다. 우리 회사에서도 최고가 아니다.


'예산의 오류' :예산을 아끼면 욕 먹는다. 그리고 다음엔 깎인다.


'위기 관리의 오류' :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한 사람은 보상 받지 못한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보상은 나쁜 일이 일어난 후에 수습한 사람이 받는다.


'확판의 오류' : 고객이 아니라 직원들에게 판다. 직원들에게 팔아오라고 할당한다.


'비전의 오류' : 어느 날 갑자기 선포된다. 액자로 걸리고 홈페이지에 오른다. 직원들은 바로 잊는다.


'사장님 비서의 오류' : 많이 논다. 하지만 자를 수 없다. 그들은 '신성한 소'이므로.


'회의록의 오류' : 문제가 생길 때만 찾아본다. 회의록을 항상 말단이 쓰는 이유가 있다.


'신년사의 오류' : '금년'이 위기가 아닌 때가 없다.


'보고서의 오류' : 보고서의 생존기간은 보고서가 처음 만들어진 후부터 보고가 완료되기까지이다.


'이면지의 오류' : 회사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이면지를 찾는다. 그러면서 왜 꼭 종이로 봐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리모콘의 오류' : 빈 자리가 있으면 버튼을 추가하려 한다. 1년에 한 번 쓸까말까한 기능으로.


'혁신의 오류' : 그저 개선을 혁신이라 부른다. 아니, 개선이든 개악이든 새로 만들었다 해서 혁신이라 부른다.


'칭찬의 오류' : "잘했어. 하지만....", "훌륭한 보고서야.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야. 하지만..." 칭찬 듣는 사람의 마음엔 '하지만'만 남는다.


'윤리경영의 오류' : 오직 직원들만 지켜야 한다. 회장님과 사장님은 예외다.


'근태관리의 오류' : 지각 출근만 뭐라한다. 야근은 뭐라하지 않는다.


'사업타당성 분석의 오류' : 그 사업을 '하는 방향'으로 분석한다. 사장님이 알아보라고 했기에.


'대안의 오류' : 2안은 항상 1안보다 못하다.


'IT의 오류' : IT시스템이 많아질수록 업무량이 많아진다. 기대와 반대다.


'임원회의의 오류' : 임원회의 준비를 위한 회의를 한다. 정기 임원회의는 이메일로 대체해도 별 문제 없다.


'교육의 오류 1' : 교육을 안 시켜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육 갔다 와도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


'교육의 오류 2 : 일 잘해서 바쁜 사람보다 한가한 사람이 교육을 더 많이 받는다.


'팀장 선임의 오류' : 한번 팀장이면 계속 팀장이다. 팀장이 팀원이 되는 법이 없다.


'컨설팅의 오류' : 종종 컨설턴트를 교육시켜 준다. 비싼 돈을 주면서까지.


'동기부여의 오류' : 팀장이 팀원에게 동기부여하라고 한다. 팀장은 누가 동기부여해주나?


반응형

  
,

미래에 저지를 죄가 과거의 죄보다 나쁘다?   

2012. 5. 17. 11:17
반응형


어떤 직원이 자신의 인사평가 점수를 높일 목적으로 받지도 않은 교육을 받았다고 하고 완료하지 않은 과제를 훌륭하게 완성했다며 평가 근거 자료를 조작했다면, 그리고 상사가 그 직원에게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 좋은 평가 점수를 주었다면, 여러분은 어떤 감정이 들까요? 당연히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려 한 직원을 비난하고 벌을 줘야 마땅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이 직원의 조작 행위가 과거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미래에 그 직원이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상상할 경우에는 어떨까요? 여러분은 과거의 잘못에 제제를 가하는 정도로 그 직원이 미래에 저지를 잘못을 벌 주고자 할까요? 쉽게 말해, 과거의 조작 행위에 1개월 감봉 조치를 내렸다면, 미래에 저지를 잘못에는 그보다 더 무거운 벌(예컨대 감봉 3개월)을 가하고자 할까요, 그보다 가벼운 벌을 주려 할까요? 아니면, 과거에 일어났든 미래에 일어날 것이든 동일한 수준으로 벌을 줄까요?



시카고 대학의 자카리 번스(Zachary C. Burns)와 동료들은 어떤 일이 과거에 일어났다고 아는 경우와 미래에 일어날 것이라고 들은 경우, 사람들이 각 경우에 대해 행위자의 '고의성'을 어떻게 평가할지 알아보기 위해 일련의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먼저 번스는 472명의 학생들을 모집하여 가상의 상대방과 주사위 게임을 벌여 돈을 따는 상황을 상상하라고 주문했습니다. 학생들은 상대방이 주사위를 던진 결과에 따라 상금을 받을 수도 돈을 잃을 수도 있었죠. 게임의 규칙은 이랬습니다. 상대방이 주사위를 던져 1, 2, 3, 4가 나오면, 학생과 상대방은 똑같이 5달러를 나눠 갖기로 했죠. 상대방의 던진 주사위 수가 5이면 상대방이 10달러를 가지고 학생은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반면, 6이면 학생만 10달러를 딸 수 있었죠.

번스는 학생들 중 절반에게는 이 게임이 어제 벌어진 일이라고 상상하게 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내일 이 게임을 할 거라고 상상하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상대방이 던진 주사위가 학생들에게 불리한 숫자인 5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상황을 머리 속에 담도록 한 후에 번스는 학생들에게 주사위를 던질(혹은 던졌던) 상대방의 고의성을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게임이 내일 벌어질 거라 상상한 학생들이 과거의 게임을 상상했던 학생들보다 상대방의 고의성이 더 짙다고 판단했습니다. 주사위 게임은 상대방과 학생이 돈을 딸 확률이 공평한데도 미래에 벌어질 일이라고 상상하면 상대방이 모종의 조작을 취할 거라 의심한다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번스는 이 사실을 더 확인하기 위해 세무 당국에서 소득세 환급을 잘못 정산한 이유들이 나열된 글을 학생들에게 읽도록 하고 세무 담당자의 고의성에 대해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번스는 학생들 중 절반은 세금 환급 마감일인 4월 15일 전에, 나머지 절반은 그 이후에 실험에 참가시켰습니다. 세무 당국의 잘못된 정산을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한 학생들(4월 15일 이전에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과거에 저질러진 잘못이라고 안 학생들에 비해 세무 담당자의 고의성이 짙다고 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부정한 일이라고 봤습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중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남편에게 약을 잘못 준 바람에 심장 발작을 일으키도록 한 여인의 이야기를 예로 든 후속실험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래의 일이라고 상상한 학생들이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고 들은 학생들에 비해 보험금을 받기 위해 남편을 살해하려 한 고의성이 크다고 답했고, 여인에게 더 중형을 내려야 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역시 미래에 저지를 부정적인 행위의 고의성을 높게 보고 그에 따라 중한 벌을 내리려 하는 경향이 발견된 것입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은 불확실하고 아직 고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행위자의 고의성이 깊게 관여할 여지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 겁니다.

제도를 설계할 때마다 염두에 두는 것 중 하나가 제도의 내용을 어기거나 제도의 헛점을 악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어떤 제재를 내려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도의 특성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제도의 내용보다는 제제 방안의 비중이 더 큰,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상하게도 강제성이 강한 제도를 폐기하고 자율성을 강조하는 제도로 변경할 때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비용 지출 규정이 지나치게 시시콜콜하고 복잡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일정 금액 내에서 비용 승인자와 집행자의 재량에 맡기는 제도로 변경할 때, '만약 ~할 경우 이렇게 제재한다'는 식의 규정들이 덕지덕지 붙곤 합니다. 자율성을 인정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할 정도가 되기도 하죠. 또한 자율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논리에 따라 그 제제의 수준도 과거 제도보다 더 강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제도를 어겨 벌을 가하려고 할 때는 제도에서 정한 수준보다 관대한 조치를 내리려 한다는 점을 번스가 수행한 일련의 실험이 보여줍니다. 동일한 잘못도 과거에 저지른 것이라고 들으면 행위자의 고의성을 적게 평가하고 '그에게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그가 잘못한 게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을 거야'라고 '정상 참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의 조직에서 가끔 열리는 상벌위원회의 의결이나 여러분이 속한 팀이 다른 팀에게 가하는 제제를 살펴보면 애초에 문서로 정한 수준보다 낮게 적용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시각을 넓혀 사법부가 화이트 칼라 범죄자에게 내리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이라는 일관된(?) 형량을 봐도 그렇죠. 물론 제도로 정한 벌칙은 상한값이기 때문에 적용할 때는 그보다 낮은 수준으로 행위자에게 벌칙을 가하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미래에 저질러질지 모를 잘못에 대해 벌칙을 정할 때와 정해 놓은 벌칙을 행위자에게 적용할 때, 그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조직 내 구성원이 알게 모르게 인식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이런 경향은 제도가 의도한 대로 진행되거나 지켜지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일지 모릅니다. 번스의 실험은 우리에게 제도를 설계할 때 제제의 방법과 내용을 정하는 데 힘을 쓸 필요가 없다는 점을 알려주는 걸까요, 아니면 정해진 벌칙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걸까요? 둘 중 무엇을 시사점으로 채택할지는 여러분의 운영 철학이 자율과 통제 사이의 스펙트럼 상 어디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어느 지점에 방점을 찍든지 간에 오늘은 여러분이 설계한 제도의 '벌칙 부분'을 세심히 살펴보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Predicting Premeditation:Future Behavior Is Seen as More Intentional Than Past Behavior.

반응형

  
,

야근을 많이 해야 승진이 잘 된다?   

2012. 5. 16. 11:18
반응형


직원들에게 야근을 하는 이유를 질문하면 완료해야 할 일이 밀려있기 때문이라는 답이 많습니다. 개인이 담당해야 할 업무의 양이 많은 이유는 기업들이 잉여인력을 떠안지 않기 위해 웬만하면 인력을 충원하지 않거나 사람이 할 일을 정보시스템으로 대체하려고 하기 때문일 겁니다. 정보시스템이 확산되고 일반화되면서 오히려 일이 많아졌다는 사실은 모든 이들이 공감하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야근을 하지 않고 칼퇴근하면 평가를 낮게 받을 뿐만 아니라 승진도 잘 안 된다'라는 솔직한 대답도 제법 자주 나옵니다. 집에 일찍 가면 열심히 일하지 않거나 회사와 팀에 대한 충성도가 낮은 직원으로 낙인 찍혀서 평가 때나 승진 심사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반면 직원들에게 평가 점수를 부여하고 승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리자들에게 어떤 직원에게 높은 점수를 주거나 지지하냐고 물으면, 야근보다는 업무의 질이 훌륭한 직원이라고 답합니다. 늦게까지 남아서 일한다고 해서 결과물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일의 양보다는 일의 질이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관리자들이 직원을 평가하거나 승진을 결정할 때 밤늦게까지 남아서 일하는 모습을 얼마나 자주 보느냐가 중요한 요소라는 르네 랜더스(Renee M. Landers)의 연구 결과는 관리자들의 이런 말들이 위선일 수 있음을 아프게 꼬집고 있습니다. 



랜더스는 변호사들로 이루어진 로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변호사가 윗사람에게 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모습을 얼마나 자주 보여주냐가 '파트너'로 승진하는 데에 중요한 변수임을 밝혔습니다. 연구 대상으로 로펌을 선택한 이유는 직급 구조가 간단하고(어소시에이트-파트너), 파트너로 승진하면 이익 배분금으로 거액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기에 변호사들의 승진욕이 상당히 내재됐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랜더스는 먼저 복잡한 수학 방정식을 통해 야근이 승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였습니다(이 수학 모델은 복잡하고 또 어렵기에 이 글에서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어소시에이트들이 승진을 위해 가능한 한 오래 일하려는 상황으로 '평형'을 이룬다는 것이 이 수학 모델의 결론이었죠. 이후 그는 실제로 존재하는 로펌 두곳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 수학 모델이 제시한 의미가 옳은지 검증하기로 했습니다. 

변호사(어소시에이트)와 파트너에게 '업무의 질'이 승진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지를 묻자 거의 모두 강한 동의를 표했습니다. 헌데 '야근이 업무의 질을 평가하는 지표라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예상대로 두 그룹 모두 별로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야근이 업무의 질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데 두 그룹 모두 같은 생각이었던 거죠. 또한 두 그룹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승진에 상당히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는 동의했지만, 야근이 충성심을 가리키는 지표라고 그다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파트너 그룹은 변호사 그룹보다 야근과 충성심의 관계가 낮다고 봤습니다. 

이런 설문 결과는 해석하기가 약간 모호합니다. 하지만, 두 그룹 모두 '필요할 때 기꺼이 야근하는 것'이라는 또 다른 요소를 승진에 매우 중요하다고 여겼다는 점에서 볼 때, 어소시에이트가 보이는 업무의 질을 올바로 측정하기 어렵다면(업무의 질적 요소는 항상 평가하기 어렵기 마련이죠) 야근이야말로 승진에 결정적인 요소로 떠오른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랜더스는 가상의 인물에 대한 글을 파트너들에게 보여주고 그 사람의 승진에 얼마나 지지할지를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야기 속 인물은 야근은 물론이고 필요하면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와 열심히 일하는 변호사로 그려져 있었죠. 하지만 새로운 의뢰인을 끌고 오는 능력은 약했습니다. 파트너 중 33퍼센트가 이 인물의 승진을 강하게 지지한다는 의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인물이 육아로 인해 정시 퇴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덧붙인 다음에 물어보니 강하게 지지한다는 의견은 17.5퍼센트로 줄어들었습니다. 이번엔 의뢰인을 끌고 오는 능력이 어느 정도 있다고 이야기를 바꾼 후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인물이 야근을 많이 하는 인물로 그려질 때 파트너들은 59퍼센트의 강한 지지를 보였지만, 칼퇴근하는 사람으로 소개될 때는 그 지지율이 37퍼센트로 뚝 떨어졌습니다. 이는 동일한 조건이라면 어소시에이트의 야근의 여부나 정도가 파트너 승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비록 로펌을 대상으로 한 연구지만, 랜더스의 연구는 일반기업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 연구는 다른 업무 조건이 동일할 경우, 그리고 평가를 신뢰할 수 없다든지 업무가 복잡하여 질적 요소를 올바로 측정하기가 어려운 경우, 회사에 남아 오래 일하는 직원이 그렇지 않은 직원보다 승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윗사람에게 자신의 승진을 어필하기 위한 도구로 업무의 질보다는 업무의 양, 즉 야근을 선택하려는 동기가 매우 크다는 점을 또한 시사합니다. 저녁 6시가 넘어도 퇴근하지 않는 까닭은 일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야근이 평가와 승진에 유리하다는 점을 은연 중에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랜더스는 이러한 심리가 극심한 생존경쟁(Rat Race)을 야기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쥐들의 경주'는 로펌과 같은 전문가 집단 뿐만 아니라, 일반기업 내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도 역시 나타납니다. 경쟁이 극심할수록 작은 차이가 큰 결과로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때 야근은 다른 사람에게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얼마나 높은지를 어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도구가 됩니다. 야근은 직원 개인의 건강 측면과 조직의 생산성 측면에서 모두 바람직하지 않지만, 승진할 자리가 부족하고 차등 보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애석하게도 이러한 역선택(Adverse Selection)은 더욱 강화됩니다.

여러분의 조직에서는 야근의 회수와 시간이 승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칩니까? 만일 그 영향이 크다면, 여러분은 '쥐들의 달리기'에 이미 참가 중이고 그 때문에 차차 burn-out될지 모릅니다.


(*참고논문)
Rat race redux- Adverse selection in the determination of work hours in law firms.



반응형

  
,

돈을 주면 자원봉사를 더 많이 할까?   

2012. 5. 15. 10:44
반응형


자원봉사는 말 그대로 자신이 원해서 노동력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서양에서는 자원봉사가 활성화되어 있어서 미국에는 총 고용인구 중 6.8%(1990년 기준)가 자원봉사자일 정도입니다. 2011년에 기획재정부에서 발간한 '국가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원봉사자 비율은 OECD 28개국 가운데 16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런 의문이 듭니다. 자원봉사자들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제공한다면 좀더 많은 시간을 봉사하지 않을까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원봉사자가 되려면 자원봉사로 인한 기회비용을 감내해야 합니다. 자원봉사 시간 동안 돈을 못 버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죠. 자원봉사자들에게 기회비용의 일부를 보전해 준다면 자원봉사자들로부터 좀더 많은 봉사 시간을 끌어낼 수 있고 더 많은 자원봉사자들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이 논리적인 추론입니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요?



취리히 대학의 브루노 프레이(Bruno S. Frey)와 로렌쯔 괴테(Lorenz Goette)는 1997년에 실시된 '스위스 노동력 조사' 데이터를 확보하여 금전적 보상과 자원봉사 간의 관계를 분석했습니다. 정치기관, 공공기관, 지방자치기관 등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데이터를 추출해 보니 약 20퍼센트의 자원봉사자들이 금전적 보상을 받고 있었습니다. 

보상을 받지 않는 그룹은 한 달에 14시간을 자원봉사에 투여했지만, 한 달에 50스위스프랑 이하를 받는 그룹의 자원봉사 시간은 월 평균 12시간도 되지 않았습니다. 돈을 지급했음에도 오히려 자원봉사 시간이 줄어든 것입니다. 프레이와 괴테는 추가 분석을 통해 14시간의 자원봉사 시간(돈을 안 주고도 확보할 수 있었던 시간)을 보상으로 확보하려면 적어도 75프랑 이상의 돈이 주어져야 한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반면 월 50스위스프랑 이상을 받는 그룹은 21시간을 자원봉사에 쏟았습니다. 이는 보상을 더욱 높이면 자원봉사 시간이 늘어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상 없이도 14시간의 자원봉사를 확보할 수 있는데 50프랑 이상의 보상이 과연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프레이와 괴테는 덧붙입니다. 자원봉사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의 중간값 수준에서 볼 때 보상이 자원봉사 시간을 줄인다는 점은 분명했죠. 프레이와 괴테는 보상으로 인해 4시간 가량 자원봉사 시간이 줄어든다고 최종적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보상이 내적동기를 갉아 먹는다는, 소위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는 자원봉사자들에게서도 여실히 나타난다는 점을 이 연구 결과가 보여줍니다. 열심히 일하려는 욕구는 돈이 아니라 충만한 내적동기(intrinsic motivation)에서 나온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무언가를 장려하기 위해 돈이라는 손쉬운 도구를 사용하려는 안일함을 버릴 수 있을 겁니다.


(*참고논문)
Does Pay Motivate Volunteers?


반응형

  
,

스승의 날 : "선생님의 청록색 머리핀"   

2012. 5. 14. 13:00
반응형


내일은 5월 15일 '스승의 날'입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스승의 날이면 제 마음 속에 한 분의 이름이 떠오릅니다. 부끄럽지만 까까머리 중학교 때 만난 그분과의 추억을 글로 정리했습니다. 





오월이다. 저녁 무렵, 노란 유채꽃밭을 지나 언덕을 오른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딱 기분 좋을 만큼 서늘한 서풍이 가슴 위로 쌓이다 흩어진다. 도시를 굽어보는 언덕 위, 나는 서녘 하늘을 바라보고 선다. 이미 지평선을 넘어간 해가 진홍빛 숨을 힘겨이 토해 올릴 때 반대편 동녁 하늘로 손톱 같은 상현달이 떠오른다. 오늘도 저 달은 별 하나를 귀고리처럼 달았다. 나도 모르게 노래가 흘러 나온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 어느게요
잠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이병기의 시다. 외우는 데 젬병인 내가 이 시를 토씨 하나까지 기억하는 까닭은 이 시에 가락을 입힌 '별'이란 노래 때문이다. 말로만 두발 자율화 시대, 머리를 박박 깎은 중학교 2학년생의 나는 학교의 합창단원이었다. 특별히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었다. 한 학년이 세 반 밖에 안 되는 시골 중학교에서 음치만 아니라면 누구나 30명 짜리 합창단에 낄 수 있었으니까. 도내 합창단 대회에 나가기 위해 방과후에 음악실에 남아 지겹도록 부른 노래 중 하나가 이 노래, '별'이었다.

집안 사정이 갑자기 어려워진 탓에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다 시골 외갓집에 겨우 의탁하게 된 나는 세상의 끝에 버림 받은 느낌이었다. 그랬다. 사춘기 소년의 눈에는 똑바로 보이는 물체가 없는 법. 지위의 추락이랄까? 한때 시골 아이들에게 방학이면 외갓집에 놀러오는 세련되고 깔끔한 서울 아이이던 나는 이제 맡겨진 아이,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다. 외갓집은 그저 잠자는 곳일 뿐. 나는 가능한 한 학교에 오래 남아있기를 좋아했다. 저녁 때까지 계속되던 합창 연습은 내겐 훌륭한 핑계거리였다. 합창단원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고백하건대 그것 말고도 합창단원이어야 하는 이유가 또 있었다. 80년대 초, 어두운 흑백 이미지로 깔리는 시골 중학교의 배경 위로 파스텔톤의 청록색 머리핀이 떠오른다. 음악선생님의 까만 머리칼 위에 언제나 얹어져 있던 청록색 머리핀. 운동회 때 입는 트레이닝복조차 청록색일 정도로 선생님은 그 색깔을 좋아했다. 30년이 흐른 지금도 청록색 티셔츠를 입고 지나가는, 그 시절의 선생님 나이 정도의 숙녀를 발견하면 어느새 나는 선생님을 바라보던 키 작은 아이가 된다. 부끄럽지만, 내게 청록색은 풋사랑의 흔적으로 서툴게 각인되어 있다.

마음 둘 곳 없던 내게 선생님은 엄마이자 친구였고 마음대로 혼자만의 연인이었다. 잘하지 못했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나를 선생님은 귀여워 했다. 학교 비품인 악기 몇 가지를 본인의 재량으로 무기한 대여해주기도 했다. 나는 능력도 없으면서 선생님을 기쁘게 할 생각으로 16마디 짜리 노래를 작곡하느라 몇날 몇일을 멜로디언을 붙잡고 끙끙거렸다. 한번은 황순원의 '소나기'를 살짝 표절하여 선생님과 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원고지 50매 짜리 짧은 소설을 써본 적도 있었다. 말 그대로 유치했다. 소설 속에서 나는 조난 당한 선생님을 구하고 대신 바위에서 떨어져 죽는다. 비현실적인 에코가 들어간 목소리로 '선생님'을 서너 번 외치면서. 선생님은 내 연정을 끝내 몰랐으리라. 악보와 원고지는 진작에 불쏘시개 신세가 되었으니까. 세상의 끄트머리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나는 본능적으로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만 싶었을지도 모른다.

두 달여의 연습 후, 드디어 합창대회 날이 되었다. 대회장에 들어서니 죄다 여학생이었다. 남학생으로만 구성된 합창단은 우리가 유일했다. 여학생들은 처음부터 우리를 깔보는 눈치였다. 우리 팀 덕에 꼴찌를 면하게 됐다는 안도의 눈빛이 그녀들에게서 느껴졌다. 남자들은 노래도 못하고 음악도 못한다는 게 당시 중학생들의 인식 수준이었으니까.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남학생들의 무게감 있는 음이 대회장 구석구석에 퍼질 때, 함께 준비한 야심곡 '꽃 사세요'가 클라이맥스에 이를 때, 그리고 우리 팀이 결국 1등으로 호명될 때 그녀들의 얼굴에서 떠오르던 야릇한 표정들이 지금도 선명하다.

기뻤지만 여러모로 슬픈 날이기도 했다. 대회를 끝으로 합창단은 해체가 예고되어 있었다. 집에 늦게 들어갈 핑계도, 선생님을 자주 만날 기회도 사라질 운명이었다. 더욱이 그날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그후도 오랫동안 생인손처럼 남을 터였다. 선생님은 합창단원들에게 흰 티셔츠에 청바지로 복장을 통일하라고 말씀하셨다. 고민이었다. 외갓집 사정상 청바지를 사줄 여유가 없었고 그런 부탁을 입 밖으로 꺼낼 나도 아니었다. 결국 청바지와 가장 색깔이 비슷한 짙은 회색 면바지를 입을 수밖에. 게다가 그 바지는 외삼촌 것이라 몇번이고 밑단을 접어야 했다.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내 바지를 가리키며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중학생이 스무살 청년의 옷을 빌려 입었으니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 선생님의 눈에서 날카로운 책망이 느껴졌다. 대개 궁핍한 시골 아이들인지라 선생님이 나에게만 복장 문제를 지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눈빛은 송곳처럼 내 마음을 오래 후볐다. 세상의 끝에서 손 잡아주던 선생님이 먼저 힘을 빼는 느낌이었다. 미웠다. 그리고 서러웠다. 온통 청록생이던 세상은 남루한 빛의 너절한 환상으로 남았다. 연정은 끝내 연민이 되었다.

합창대회 후 2~3개월이 지났을 무렵, 성질이 무섭기로 소문난 체육선생님과 음악선생님이 결혼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린 눈에도 그 둘은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었다. 어쩐지 둘이 다정하다고 아이들이 서로 끼득거리던 터였고 음악실에서 둘이 풍금을 연주하던 광경을 나도 목격했더랬다. 같은 학교에 부부가 함께 근무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인지 선생님은 얼마 후 도시의 중학교로 전근 갔다. 4개월 뒤 나도 시골을 떠나 도시로 전학하면서 인연의 끈은 끊어졌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툭! 그리고 꽤 오랫동안 시골 시절을 잊으려 애썼다.

10년 후, 일병 계급장을 달고 첫 휴가를 나온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 시절 그 중학교를 찾았을까? 검은색 이승복 어린이 동상과 책읽는 여자아이의 하얀 동상은 예전 그대로였다. 기억에 비해 학교의 축척이 조금 작아졌을 뿐이었다. 1층에서 올려다 뵈는 2층의 음악실에서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 어느게요..."란 노랫가락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청록색 머리핀을 꽂은 선생님이 고개를 까딱이며 박자를 세고 있을까? 연신 팔을 흔들며 테너의 음을 침범하는 어중간한 바리톤 파트를 채근하고 있을까? 건반 위에 올려진 기다란 손가락은 오늘도 ‘소녀의 기도’를 연주하고 있을까? 아마 나는 병영생활의 고단함을 내 인생 가장 아름다운 색깔로 빛나던 추억으로 위안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빛바랜 추억을 뒤집어 보며 누구에게도 배려 받지 못했던 내 사춘기와 화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어울리지 않은 바지를 가리키던 선생님에게 뒤늦게 항변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당연히 때늦은 방문은 툭 끊어진 끈을 이어줄 리 없었다. 기억의 스크린에서 가물대는 선생님은 아무말 없었고, 겨울방학을 맞아 인적 없는 학교는 추위가 더욱 사무쳤다. 흥미를 잃은 나는 터무니없게도 30분도 안 되어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20년이 다시 흘렀다. 선생님은 지금 어디 계실까? 해마다 5월 15일이면 스승으로서의 스승이 아니라, 엄마이자 친구이며 혼자만의 연인이기도 했던 음악선생님을 떠올린다. 불경일까? 세상으로부터 방기된 사춘기 소년에게 더 이상 끄트머리로 밀려나지 않도록 괴임목이 되어 준 선생님. 나에겐 그 이상의 스승은 없다. 감사한다는 판에 박힌 답례로는 부족하다. 후회된다. 선생님의 결혼을 축하해 드리지 못한 것과  전근 가는 선생님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지 못한 것이. 용서를 구한다. 30년이 지나도록 툭 끊긴 끈을 방치한 채 찾아뵙지 않는 죄를.

이 시간의 하늘빛이 좋다. 암청색 하늘이 검붉은 노을과 만나는 경계선에서 여러 색깔의 빛들이 뛰논다. 서늘한 바람결에 아주 잠깐 청록빛이 비쳤다 사라진다. 소년의 마음에 잠시 얹어졌다 사라진 청록색 머리핀처럼. 시간은 흘러 추억으로 멍울진다. 멍울진 추억은 또 어디로 쌓일까? 지금, 1밀리씩 어둠이 내린다. 별이 더욱 빛난다.


(* 이 글은 한국후지제록스의 기업 블로그인  '색콤달콤'에 기고된 글입니다.)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