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직원이 자신의 인사평가 점수를 높일 목적으로 받지도 않은 교육을 받았다고 하고 완료하지 않은 과제를 훌륭하게 완성했다며 평가 근거 자료를 조작했다면, 그리고 상사가 그 직원에게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 좋은 평가 점수를 주었다면, 여러분은 어떤 감정이 들까요? 당연히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려 한 직원을 비난하고 벌을 줘야 마땅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이 직원의 조작 행위가 과거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미래에 그 직원이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상상할 경우에는 어떨까요? 여러분은 과거의 잘못에 제제를 가하는 정도로 그 직원이 미래에 저지를 잘못을 벌 주고자 할까요? 쉽게 말해, 과거의 조작 행위에 1개월 감봉 조치를 내렸다면, 미래에 저지를 잘못에는 그보다 더 무거운 벌(예컨대 감봉 3개월)을 가하고자 할까요, 그보다 가벼운 벌을 주려 할까요? 아니면, 과거에 일어났든 미래에 일어날 것이든 동일한 수준으로 벌을 줄까요?



시카고 대학의 자카리 번스(Zachary C. Burns)와 동료들은 어떤 일이 과거에 일어났다고 아는 경우와 미래에 일어날 것이라고 들은 경우, 사람들이 각 경우에 대해 행위자의 '고의성'을 어떻게 평가할지 알아보기 위해 일련의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먼저 번스는 472명의 학생들을 모집하여 가상의 상대방과 주사위 게임을 벌여 돈을 따는 상황을 상상하라고 주문했습니다. 학생들은 상대방이 주사위를 던진 결과에 따라 상금을 받을 수도 돈을 잃을 수도 있었죠. 게임의 규칙은 이랬습니다. 상대방이 주사위를 던져 1, 2, 3, 4가 나오면, 학생과 상대방은 똑같이 5달러를 나눠 갖기로 했죠. 상대방의 던진 주사위 수가 5이면 상대방이 10달러를 가지고 학생은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반면, 6이면 학생만 10달러를 딸 수 있었죠.

번스는 학생들 중 절반에게는 이 게임이 어제 벌어진 일이라고 상상하게 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내일 이 게임을 할 거라고 상상하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상대방이 던진 주사위가 학생들에게 불리한 숫자인 5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상황을 머리 속에 담도록 한 후에 번스는 학생들에게 주사위를 던질(혹은 던졌던) 상대방의 고의성을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게임이 내일 벌어질 거라 상상한 학생들이 과거의 게임을 상상했던 학생들보다 상대방의 고의성이 더 짙다고 판단했습니다. 주사위 게임은 상대방과 학생이 돈을 딸 확률이 공평한데도 미래에 벌어질 일이라고 상상하면 상대방이 모종의 조작을 취할 거라 의심한다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번스는 이 사실을 더 확인하기 위해 세무 당국에서 소득세 환급을 잘못 정산한 이유들이 나열된 글을 학생들에게 읽도록 하고 세무 담당자의 고의성에 대해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번스는 학생들 중 절반은 세금 환급 마감일인 4월 15일 전에, 나머지 절반은 그 이후에 실험에 참가시켰습니다. 세무 당국의 잘못된 정산을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한 학생들(4월 15일 이전에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과거에 저질러진 잘못이라고 안 학생들에 비해 세무 담당자의 고의성이 짙다고 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부정한 일이라고 봤습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중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남편에게 약을 잘못 준 바람에 심장 발작을 일으키도록 한 여인의 이야기를 예로 든 후속실험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래의 일이라고 상상한 학생들이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고 들은 학생들에 비해 보험금을 받기 위해 남편을 살해하려 한 고의성이 크다고 답했고, 여인에게 더 중형을 내려야 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역시 미래에 저지를 부정적인 행위의 고의성을 높게 보고 그에 따라 중한 벌을 내리려 하는 경향이 발견된 것입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은 불확실하고 아직 고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행위자의 고의성이 깊게 관여할 여지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 겁니다.

제도를 설계할 때마다 염두에 두는 것 중 하나가 제도의 내용을 어기거나 제도의 헛점을 악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어떤 제재를 내려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도의 특성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제도의 내용보다는 제제 방안의 비중이 더 큰,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상하게도 강제성이 강한 제도를 폐기하고 자율성을 강조하는 제도로 변경할 때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비용 지출 규정이 지나치게 시시콜콜하고 복잡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일정 금액 내에서 비용 승인자와 집행자의 재량에 맡기는 제도로 변경할 때, '만약 ~할 경우 이렇게 제재한다'는 식의 규정들이 덕지덕지 붙곤 합니다. 자율성을 인정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할 정도가 되기도 하죠. 또한 자율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논리에 따라 그 제제의 수준도 과거 제도보다 더 강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제도를 어겨 벌을 가하려고 할 때는 제도에서 정한 수준보다 관대한 조치를 내리려 한다는 점을 번스가 수행한 일련의 실험이 보여줍니다. 동일한 잘못도 과거에 저지른 것이라고 들으면 행위자의 고의성을 적게 평가하고 '그에게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그가 잘못한 게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을 거야'라고 '정상 참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의 조직에서 가끔 열리는 상벌위원회의 의결이나 여러분이 속한 팀이 다른 팀에게 가하는 제제를 살펴보면 애초에 문서로 정한 수준보다 낮게 적용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시각을 넓혀 사법부가 화이트 칼라 범죄자에게 내리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이라는 일관된(?) 형량을 봐도 그렇죠. 물론 제도로 정한 벌칙은 상한값이기 때문에 적용할 때는 그보다 낮은 수준으로 행위자에게 벌칙을 가하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미래에 저질러질지 모를 잘못에 대해 벌칙을 정할 때와 정해 놓은 벌칙을 행위자에게 적용할 때, 그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조직 내 구성원이 알게 모르게 인식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이런 경향은 제도가 의도한 대로 진행되거나 지켜지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일지 모릅니다. 번스의 실험은 우리에게 제도를 설계할 때 제제의 방법과 내용을 정하는 데 힘을 쓸 필요가 없다는 점을 알려주는 걸까요, 아니면 정해진 벌칙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걸까요? 둘 중 무엇을 시사점으로 채택할지는 여러분의 운영 철학이 자율과 통제 사이의 스펙트럼 상 어디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어느 지점에 방점을 찍든지 간에 오늘은 여러분이 설계한 제도의 '벌칙 부분'을 세심히 살펴보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Predicting Premeditation:Future Behavior Is Seen as More Intentional Than Past Behav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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