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판사에 임용된 어느 젊은이는 이런 의문을 가졌다. “왜 판사들은 하얀 가발을 쓰고 재판을 하는 걸까?” 그도 그럴 것이 싱가포르는 무척 더운 나라여서 가발을 쓰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도 판사들은 두꺼운 법관복까지 입고서 하얀 가발을 쓰다니, 젊은 판사의 눈에는 그런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거니와 꽤나 신기하게 느껴졌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예전부터 그래왔기 때문에 모른다는 대답들뿐이었다.
그는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왜 가발을 쓸까?” 알고 보니 싱가포르는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결론을 얻고서 ‘아하, 그렇군.’이라고 반응하며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않았겠지만, 그 젊은 판사는 달랐다. 그는 다시 “그렇다면, 왜 영국에서는 판사들이 가발을 쓰는 걸까?”란 질문을 던졌다. 판사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서 하얀 가발을 썼다는 설이 있었지만 그가 알아낸 것은 의외의 사실이었다.
영국의 법관들은 대개 나이가 많았고 그 때문에 대머리들이 많았다. 게다가 영국의 법정은 천장이 높아서 매우 추웠다. 결국 하얀 가발은 권위의 상징물이 아니라, 그저 방한용이었던 것이다. 영국에서 추위를 견디기 위해 사용하던 가발을 적도 바로 위에 위치한 싱가포르에서도 써야 한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관성’은 지독히도 생명력이 질겨서 아직도 싱가포르 법정에서는 가발 쓴 판사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책, ‘틀을 깨라’는 창조적 발상이 젊은 판사가 품은 ‘왜?’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왜 그것이 여기에 존재하는 걸까? 왜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왜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끝없이 던지고 해답을 탐구하는 자가 창조적인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머리가 비상하고 공부를 많이 하고 견문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디어 창조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사실 이렇게 간단한 것이다.
1960년대에 소련에서 달 표면에 무인 우주선을 보내기 위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문제는 달 표면을 비추기 위한 전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전구의 유리가 달에 착륙할 때 발생하는 충격 때문에 깨지기 쉬웠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보다 강한 유리로 전구를 만들자’라는 것을 문제로 삼고 해법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쏟아 부은 그들의 노력은 어느 유명한 박사가 이렇게 한마디 문장으로 질문을 던지자마자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왜 전구에 유리가 필요하죠?” 박사의 말은 과학자들에게 ‘유레카!’가 되었다. 유리는 전구의 필라멘트를 공기로부터 보호하고 그 안에 불활성 기체를 담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우주 공간은 어떠한가? 그곳엔 공기가 없다. 달 표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전구의 유리를 강화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 책 ‘틀을 깨라’에 소개된 이 사례 역시 ‘왜’라는 질문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운다. 문제의 해결은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기존의 틀, 규칙, 관행에 강한 의문부호를 다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창의력은 나와 상관없는, 똑똑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책 ‘틀을 깨라’는 ‘일의 성과를 높여줄 생각 뒤집기 연습’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사고의 관성과 한계를 깨뜨릴 여러 가지 접근 방식을 소개하고 있다. 방금 언급한 ‘왜’의 생활화뿐만 아니라, 저자는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볼 것을 주문하면서 맥도날드의 사례를 소개한다. 맥도널드는 사업 초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매장 하나를 열려면 신축 비용에 인테리어 비용, 인건비 등이 생각보다 많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햄버거 하나를 팔아 남는 이윤을 고려하면 그 비용을 감당하기 벅찼다.
하지만 사장이었던 레이크록은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았다. 그는 맥도날드를 패스트푸드 사업으로 보지 않고 부동산업으로 생각했다. 엉뚱하다고 손가락질 받을 만한 발상이었지만,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의 생각은 절묘하고 탁월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맥도날드 매장이 자리를 잡고 영업을 개시하면 유동인구가 많아지고 주변에 다른 상점들이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매장 주변의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렇다면 맥도날드의 전략은 햄버거를 열심히 구워 파는 것이 아니라(물론 이 일도 중요하지만), 매장을 세울 주변의 땅을 미리 사두는 것일 될 터였다.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매장을 열고 영업을 개시하자 주변 땅값이 올랐고 맥도날드는 그 땅을 되팔아서 큰 이익을 얻었으며, 햄버거 사업에 재투자할 수 있었다. 패스트푸드 사업이라는 틀을 의도적으로 깨고 범위를 넓게 확장하여 다른 각도로 자신의 사업을 바라봤기 때문에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아직도 ‘동종업계에 있는 경쟁자들은 어떻게 하지?’란 우물 안 개구리 식 사고에 갇혀 지내는 기업들은 맥도날드의 사례를 새겨둘 만하다.
경쟁자를 동종업계에 한정하지 않고 숲 밖으로 나가 숲을 내려다보려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회사의 경쟁자는 누구일까? 이런 질문에 보통 같은 업계에 있는 다른 회사 이름을 대기 일쑤다. 어쩌면 스타벅스가 아닐까? 여성들은 그 회사 매장에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 자연스레 그 회사 제품에 대해 입소문이 나고 판매에 좋은 효과가 일어난다. 하지만 스타벅스와 같은 ‘수다떨기’ 대안이 생겨나면 그런 효과는 사라지고 마니, 스타벅스야말로 그 회사의 경쟁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이키의 경쟁자는 아디다스나 푸마가 아니라 닌텐도라는 제목의 책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닌텐도 게임기에 정신이 팔려 집에만 있다 보니 밖에서 뛰어놀 때 필요한 운동화, 즉 나이키를 덜 신게 되기 때문이다. 산업 간의 벽이 사라진 요즘, 동종업계를 운운하며 그 좁은 영역 안에서 서로 아웅다웅하는 모습은 시대에 뒤떨어진 경영방식이자 ‘게으른’ 사고방식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면, 요구르트 아줌마의 최대 경쟁자는 누구일까? 책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우리는 보통 문제를 해결할 때 엄정하고 이성적인 분석과 판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저자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창조적인 발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동력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한다고 믿는 그 순간에도 사실 감정이 깊게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감정을 배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역설한다. 그래서 감정의 좋은 측면을 마음껏 발산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좋은 문제해결법이 될 수 있다.
저자는 감정을 이용하는 실천적인 방법으로 PMI법을 제안한다.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볼 때 한번은 장점(Plus)을, 두 번째는 단점(Minus)을, 세 번째는 흥미로운 점(Interest)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왠지 모르게 좋아’ 혹은 ‘그것만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져’,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아’란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다보면, 왜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 경쟁사 제품보다 뒤질 수밖에 없는지, 왜 우리의 서비스가 고객의 재방문을 유도하지 못하는지 등에 관하여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만날 매출 데이터와 고객의 인구학적 데이터를 분석해 봤자 매번 그 나물에 그 밥인 전략만 나올 수밖에 없다. 감정이 풍부하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드러난 감정을 찬찬히 고찰할 줄 아는 능력이 창조적 인간이 지녀야 할 또 하나의 덕목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문제를 해결하여 뛰어난 성과를 거두려면 자신을 가두고 있는 틀을 깨뜨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규칙의 틀, 확실함의 틀, 경쟁의 틀 등 우리의 머리를 꽉 움켜쥐고 있는 9개의 단단한 틀을 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일이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필자가 ‘런던에서 파리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던져 보니 모범답안이라 할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간다’란 답이 제법 많이 나왔다. 이렇듯 사람들은 재미삼아 던지는 퀴즈엔 곧잘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 어렵고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쉽게 생각하는 데에 길이 있다.
(*글 : 북멘토 유정식)
(*오늘자 교보 '북모닝 CEO'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