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어려운 일을 수행할 때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준다면 당연히 그에게 고마움을 느낄 겁니다. 특히 도와주는 사람의 능력이 뛰어나다면 그에게서 느끼는 고마움의 감정은 더 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일을 마치고 난 후에 느끼는 고마움의 정도를 일을 수행하는 도중에 느끼던 고마움의 정도와 비교한다면 무엇이 더 클까요? 아마 여러분은 그 사람의 도움으로 일을 잘 마쳤기에 일이 완료된 이후에 느끼는 감사의 정도가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버지니아 대학의 벤자민 콘버스(Benjamin A. Converse)와 시카고 대학의 에일렛 피시바흐(Ayelet Fishbach)의 실험은 그 반대가 옳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즉 도움을 받는 도중에 느끼는 고마움의 정도가 일을 마치고 난 후에 느끼는 고마움의 정도보다 더 크다는 것이죠. 콘버스와 피시바흐는 시카고 시민 42명을 모집하여 수고료로 2달러를 지급한 후에 4개의 객관식 퀴즈를 모두 맞히면 12달러를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처음 두 문제는 쉬웠지만 나머지 문제는 어렵게 출제하여 세 번째 퀴즈는 '지우개 찬스'를 쓰도록 하고 네 번째 문제는 '친구에게 전화 찬스'를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친구가 문제를 듣고 고민하는 동안, 그리고 게임이 종료된 이후에(하지만 결과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 각각 얼마나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끼는지 평가했습니다. 결과를 보니, 참가자들은 문제를 푸는 동안 친구에게 고마움을 더 크게 느꼈습니다(5.72점 대 4.84점). 친구에게서 도움을 얼마나 받았느냐와 상관없이 참가자들은 게임이 끝난 후에는 친구에게 고마움을 덜 느꼈던 겁니다.
그렇다면 도움을 주는 사람에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그는 도움을 받는 사람이 느끼는 고마움의 정도가 일이 완료된 이후에 줄어들 거라는 점을 알고 있을까요? 도움을 주는 사람은 일이 진행되는 도중보다 일이 완료된 이후에 더 많은 감사를 기대한다는 점이 후속실험을 통해 규명됐습니다. 콘버스와 피시바흐는 40명의 시카고 시민을 실험에 참가시켜서 데이터를 입력하는 과제를 부여했습니다. '입력자'들은 '도우미'가 큰 소리로 값을 불러주면 그걸 입력해야 했죠. 입력자들은 과제를 수행하는 도중과 과제를 완료한 이후에 도우미의 도움에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지 100점 만점으로 평가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도우미들도 입력자들이 자신들의 도움에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 같은지를 100점 만점으로 평가했죠.
입력자들이 느끼는 '부채감'과 도우미들이 입력자들에게서 기대하는 감사의 정도를 분석하니,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입력자들은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에는 72.0점의 감사를 느꼈지만 과제가 끝난 후에는 65.4점로 떨어졌습니다. 반면 도우미들은 과제가 진행 중일 때는 40.8점의 감사를 기대했고 과제가 완료된 후에는 48.1점으로 높아졌습니다. 과제가 끝나면 도움 받는 사람은 도움에 대한 부채감이 경감되지만, 도움을 주는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더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콘버스와 피시바흐가 실시한 세 번째 실험에서도 이러한 기대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튜터가 학생의 시험 준비를 도와줄 때 학생은 튜터에게 4.40점(7점 만점)의 고마움을 느끼지만 시험이 끝나고 난 후에는 3.17점으로 떨어졌습니다. 튜터는 시험 준비 기간 동안 학생이 자신에게 3.17점의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시험이 끝난 후에는 그 정도가 3.39점으로 높아졌습니다. 학생들이 시험 결과에 만족하느냐의 여부는 튜터에게 느끼는 고마움의 정도와 관계가 없었습니다. 튜터가 주는 도움의 유용성(instrumentality)을 평가하라고 하자 학생들은 시험 준비 기간 동안의 값이 시험 종료 후의 값보다 컸습니다. 학생들이 튜터에게 느끼는 유용성의 정도와 튜터에게 가지는 고마움의 정도가 상관성을 갖는다는 의미였죠.
도움을 주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느끼고 기대하는 고마움의 정도가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조직으로 투영시키면 어떤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팀의 성과 달성에 도움을 주는 사람을 부하직원으로, 부하직원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사람을 상사라고 가정하면, 부하직원들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 있을 때보다 그것을 완료한 후에 상사로부터 더 많은 인정과 칭찬을 기대한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반면 상사의 입장에서는 부하직원이 목표를 완수한 후에는 그 전보다 부하직원의 공로를 덜 인정하고 당연시할지도 모름을 위의 실험이 일러줍니다. 어려운 목표라 해도 일단 달성한 후에는 그 목표가 별것 아니라고 여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상호 간의 인식 차이는 평가 불만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부하직원은 자신의 목표 달성 결과에 100 정도의 인정 혹은 평가를 기대하는데 상사는 그것을 80 정도로 절하하여 평가할지도 모릅니다. 콘버스와 피시바흐의 실험은 평가 시즌에만 부하직원들의 목표 달성 결과를 평가할 경우 상호 간의 갈등이 야기될 가능성뿐만 아니라 평가 측정의 왜곡도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상사는 연말에 가서 한번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부하직원이 목표 달성 과정에 있을 때 중간중간 보여주는 노력의 결과나 중간산출물을 바로바로 평가하고 축적해 둬야 한다는 시사점도 이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부하직원을 관찰하고 평가하고 피드백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또한 부하직원들도 자신의 목표 달성 과정을 상사에게 지속적으로 알리고 어필할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어려운 목표를 잘 완수했더니 상사가 당연시하거나 평가절하했던 경험이 있습니까? 생각보다 덜 인정해 주던가요? 그렇다면 그것은 인간 심리가 원래 그러하기 때문이지 상사가 못됐기 때문이 아닙니다.
(*참고논문)
Instrumentality Boosts Appreciation: Helpers Are More Appreciated While They Are Use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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