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으면 보수적이 된다   

2012. 4. 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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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가정해 보죠. 고객의 취향이 빠르게 변화하는 데다가 우리가 가진 제품으로는 그 취향을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갑니다. 게다가 기존 경쟁사는 미리 그런 변화를 감지했는지 적절한 시기에 신제품을 출시해서 앞서 나가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지금까지 누리던 경쟁력이 한순간에 사라질 위험에 처했습니다.

회사는 긴급회의를 열어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합니다. 헌데 임원들이 오랜 시간 머리를 싸매고 만들어낸 전략은 왠지 어디서 많이 본 듯 느껴집니다. 매년 의례적으로 수립하는 사업계획서의 내용에 긴급함과 위기감을 강조하는 형용사와 부사가 여기저기 경고를 나타내는 빨간 딱지처럼 덧붙여진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듭니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전략은 찾아보기 힘들고 기존의 사업을 기존의 방식대로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말 밖에는 없습니다. 다들 CEO의 입만 쳐다 보며 말입니다. 사실 이 상황은 가상의 사례가 아니라 모 회사에서 직접 목격한 것입니다.

많은 기업들은 이렇게 갑작스러운 변화를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이루도록 요구 받으면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하지만 결국 기존의 것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기존의 제품, 기존의 방식, 그리고 기존의 구조 속에서 용인되던 기득권을 밑바닥에서부터 파괴하고 혁신하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임에도 긴급 대책 전략은 현상(status quo)을 '열심히 유지'할 것임을 강하게 드러낼 뿐입니다. '더 열심히 영업 활동을 하겠다', '아침에 한 시간 일찍 출근하겠다', '시장 조사를 지금보다 더 자주 하겠다', 'KPI 타겟을 더 높이겠다' 등 열심히 하겠다는 말처럼 보수적인 것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위급하고 시간이 별로 없을 때 이렇게 보수적인 전략에 머물고 마는 걸까요? 그 근본적인 이유는 스콧 아이델만(Scott Eidelman) 등이 수행한 실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컴퓨터 모니터 상에 사회적인 이슈와 관련된 50개의 용어를 떠오르게 하고 실험 참가자들에게 그것을 지지하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도록 했습니다. 이때 참가자들 중 절반에게 시간적인 압박을 가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550밀리초) 용어를 보여주고 빠른 시간 내(1550밀리초)에 답하도록 한 것이죠. 반면 다른 절반의 참가자들에게는 용어를 스크린 상에 오래 보여 주고 충분히 생각한 후에 답하게 했습니다. 이 과제를 수행한 후 연구자들은 보수주의를 뜻하는 단어 25개와 자유주의를 나타내는 25개 단어를 참가자들에게 제시하고 지지 여부를 7점 척도로 응답하도록 요청했습니다.

분석 결과, 시간의 압박을 받은 참가자들의 '보수주의적 성향'이 시간을 충분히 활용한 참가자들에 비해 높게 나타났습니다. 즉 시간에 쫓기면서 버튼을 눌러야 했던 참가자들이 보수주의적인 단어를 더욱 지지했습니다. 반면 '자유주의적 성향'은 시간의 압박 여부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시간적인 여유 없이 중요한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기업들이 혁신적으로 사고하기가 심리적으로 매우 어려움을 단적으로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아이델만 등은 시간적인 압박 조건 뿐만 아니라 '인지적인 부담'이 가중되는 조건 하에서도 사람들이 보수적인 성향이 높아짐을 또 다른 실험으로 증명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15분 동안 사회적 인식에 관한 자료를 완성해야 했는데, 참가자 중 절반은 자료를 완성하는 동안 테이프에서 재생되는 소리의 톤(tone) 변화가 몇 번 있었는지를 동시에 세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인지적인 압박을 받아야 했던 참가자들은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에 비해 보수주의적인 성향이 높아지고 자유주의적인 성향은 낮아지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여기 저기에서 대처해야 할 과제들이 한꺼번에 다가오는 상황에서 조직의 전략이 혁신적인 것과 거리가 멀어지고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쪽으로 경도된다는 경험적인 사실이 실험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아이델만의 실험을 요약하면 시간적 압박과 인지적 부담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덜 하도록 만들고 생각을 덜 하게 되면  보수주의적 성향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없으면 보수주의자가 된다는 말로 간단히 정리가 됩니다. 하지만 아이델만은 이 실험의 결과가 정치적으로 해석되면 곤란하다고 말합니다. 즉 '보수주의자들은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라고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이죠. 아이델만은 이 실험이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짧은 생각이 사람들을 현상에 머무르도록 만든다는 것으로 실험의 의미를 제한합니다. 자유주의자들도 자신들의 이데올로기가 시간적 압박과 인지적 부담에 의해 쉽게 손상된다는 의미로 이 실험을 해석하면 곤란하겠죠. 아이델만의 말처럼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경험, 역사, 가치 등을 통해 이루워진 다차원적인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에 쫓기고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터질 때 조직의 브레인들은 생각을 깊게 하지 못하고, 그런 조급함은 보수적인 성향을 자극하여 그저 더 많이 더 열심히 하겠다는 전략에 머물게 만듭니다. 혁신에 힘을 쏟을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그저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끄려 합니다. 하지만 끄려고 할 때마다 발등의 불은 몸 전체로 번지고 맙니다. 위급하고 대처해야 할 과제가 많을 때 오히려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려고 혁신의 기회를 탐색해야 합니다. 시장의 구조가 변하고 고객의 취향이 예전과 판이하게 다른 마당에, 경쟁자와 고객이 모두 떠난 빈 터에서 더 많이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는 아무 소용 없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이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직의 경영자와 직원들이 아무 생각 없으면 보수주의자가 되어 스스로 현상에 머무르려는 보수주의적 경영의 피해자가 됩니다. 여러분의 회사가 내놓는 전략이 풀빵 찍어내듯 매번 비슷하다면 아무 생각없는 사람들에 의해 아무 생각없이 조직이 흘러간다는 의미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회사는 지금 어떻습니까? 



(*참고논문)
Low-Effort Thought Promotes Political Conserva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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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이 잦으면 낮에 딴짓을 많이 한다   

2012. 3. 3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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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잠을 덜 잔 실험 참가자가 돈이 걸린 게임에서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경우가 많았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 적('야근을 많이 하면 남을 속이게 된다')이 있습니다. 이 글에 대해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해주었는데, 그만큼 우리 기업들 사이에서 야근이 얼마나 만연되어 있는지 그리고 야근이 얼마나 당연시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야근이 이렇게 직원들의 비윤리적인 동기를 은연 중 자극함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야근을 하면 그만큼 오래 일하니까 생산성도 높아지고 성과도 높아지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최근에 나온 또 다른 연구 결과는 야근과 생산성 사이에는 긍정적이기는커녕 오히려 부정적인 연관성이 있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와그너(David T. Wagner)와 크리스토퍼 반스(Christopher M. Barnes) 등의 연구진들은 수면 시간이 줄어들면 낮에 회사에서 인터넷 서핑을 하는 데에 쓸데없이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잠을 덜 잔 사람일수록 연예인 가십 기사나 스포츠 기사 등 업무와 상관없는 내용을 보느라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연구진은 서머타임이 시작되기 전 날에 사람들이 시계를 한 시간 앞당겨 설정하고 잠을 자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고 그때문에 예전보다 평균 40분 정도 잠을 덜 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영리하게도 이때를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시점으로 삼았죠.



연구진은 2003년에서 2009년 사이 미국의 203개 도시에서 일어난 인터넷 트래픽 정보를 확보하여 연예 오락과 관련된 접속건수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서머타임이 시작되고나서 첫 번째 월요일의 접속건수가 직전 월요일에 비해 평균 3.1% 정도 증가하는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서머타임 시작 후 두 번째 월요일의 접속건수와 비교하면 첫 번째 월요일의 접속건수는 6.4%가 더 많았습니다. 일주일 동안 서머타임에 적응한 다음에는 연예 오락 사이트에 접속하는 양이 줄었다는 의미입니다. 허나 이것만 가지고는 낮에 사람들이 업무에 집중하지 않은 채 인터넷을 보면서 빈둥거린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서머타임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퇴근 후의 여가시간이 1시간 늘어난 것인양 느끼고 그 덕에 밤에 인터넷 서핑을 더 많이 하는 것일지 모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와그너 등은 실험실 내의 통제된 조건에서 실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96명의 학부생들에게 실험 전 날 수면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팔찌를 찬 채 잠을 자도록 요청한 연구진은 실험실에 모인 학생들에게 교수직을 희망하는 사람의 42분짜리 시범 강의 동영상을 본 후 컴퓨터 상에서 강의능력을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학생들이 평가에 사용한 컴퓨터는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영상을 보면서 슬쩍 인터넷에 곁눈질을 할 수 있었죠. 수면 팔찌로부터 얻은 정보와 학생들의 인터넷 접속 시간을 따져 보니, 전날 밤에 잠을 덜 잤거나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학생일수록 강의 동영상에 집중하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딴짓을 많이 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수면 부족은 두뇌를 많이 써야 하는 일을 회피하게 만들고 인지적 부담이 덜 가는 쪽으로 사람들을 유도함으로써 전반적으로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업무량이 많이 야근이 잦고 그로 인해 수면의 질과 양이 저하되면 다음날 낮의 생산성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좀더 추론의 깊이를 더하면, 어제 야근한 사람은 특별히 일이 많지 않아도 오늘 야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젯밤 야근으로 의지력이 저하되는 바람에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여 오전 내내 인터넷 가십 기사나 SNS에 시간을 허비하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서서히 업무를 챙기기 시작하면 오늘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야근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고 맙니다. 

물론 일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야근하는 사람도 있고, 야근하고나서도 다음날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야근으로 인해 저하된 생산성을 야근을 통해 메우려는, '야근이 야근을 부르는' 악순환의 양상은 조직 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야근이 '생활화'된 사람들은 아침 9시부터 밤늦게까지 가열차게 업무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할 겁니다(물론 예외는 있겠죠). 이는 야근이 습관화된 개인은 나태하고 비난 받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의지력은 유한하고 한번 고갈되면 휴식과 영양소 공급을 통해 다시 차오를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인간의 생리적 한계를 관리자와 직원들이 모두 인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야근이 잦은 직원들이 낮에 딴짓을 하는 이유는 의지력을 회복하기 전까지 인지적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야근하면 당장의 생산성은 높아질지 몰라도 그 후에 발생하는 비생산성으로 인한 비용은 엄청납니다. 야근으로 인해 추가적으로 얻은 생산성은 그 다음날 낮에 고스란히 빠져나갑니다. 업무가 많더라도 직원들에게 하루 8시간 열심히 일한 다음 저녁 6시에 칼같이 퇴근하여 잠을 푹 자게 해주는 것이 생산성에 훨씬 득이 됩니다. 저녁 6시에 퇴근하는 것을 꼬깝게 보며 열심히 일하지 않는 직원이라 낙인 찍는 것은 어리석은 관리자의 단적인 모습이겠죠. 야근이 야근을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조치와 이를 통해 생산성의 질을 제고하는 것이 몇백 억원 짜리 시스템을 들여오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행동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도 야근을 해야 합니까?


(*참고 논문)
Lost Sleep and Cyberloafing: Evidence From the Laboratory and a Daylight Saving Time Quasi-Experi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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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법인 '(주)인퓨처넷'을 설립했습니다.   

2012. 3.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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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유정식입니다.


오늘은 인퓨처컨설팅의 대표 컨설턴트가 아니라 지난 3월 1일부로 설립한 '(주)인퓨처넷'의 대표이사로 인사를 드립니다. 설립해 놓고 그간 경황이 없어 이제야 여러분께 소개를 드립니다.

인퓨처넷(inFuture NET)은 크게 보면 소프트웨어 개발과 웹어플리케이션 개발을 사업영역으로 하고, 자세히 들어가면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및 솔루션 개발을 주종목으로 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면, 조만간 인퓨처넷이 개발 중인
 '모바일 기반 조직관리 솔루션' 개발이 완료된 이후에, 시스템 판매와 함께 부가서비스로 HR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아직 사업영역이 정리되지 않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사업을 수행할 계획입니다. 처음부터 완전함을 추구하기보다는 시장에 적응하고 진화하는 기업성장모델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인퓨처넷의 홈페이지 주소는 www.infuturenet.com 또는 www.infuturenet.co.kr 이나, 아직 초기라 홈페이지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홈페이지가 만들어질 때까지 당분간은 이 인퓨처컨설팅 블로그를 통해 인퓨처넷의 소식을 전하려 합니다. 상기 홈페이지 주소를 클릭하면 인퓨처컨설팅 블로그로 포워딩됩니다. 곧 깔끔한 홈페이지를 선보이겠습니다.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회사 위치는 경북 포항시입니다. 개인적으로 제 모교가 있는 곳이죠. 산학 협동을 위해 회사를 포항에 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초기에는 서울과 포항의 이원체계로 회사를 운영할 생각입니다.

인퓨처넷(inFuture NET)이 설립 후에도 인퓨처컨설팅(inFuture Consulting)은 기존의 사업영역인 경영전략, 시나리오 플래닝, HR 분야의 컨설팅과 교육 서비스를 계속해서 고객 여러분께 제공합니다. 인퓨처넷은 IT 개발 부문을, 인퓨처컨설팅은 경영컨설팅 부문을 각각 맡게 됩니다.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기대를 바라며, 좋은 제안이나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면 아래의 연락처로 전화나 메일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주주를 대표하여
(주)인퓨처넷
대표이사  유정식  올림

(cell) 010-8998-8868
(email) jsyu@infut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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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전략이 단기전략에 밀리고 무시되는 까닭   

2012. 3. 2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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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앞으로 예상되는 2가지 사건의 위험 수준을 수치로 근사하게 측정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두 사건의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책정된 예산이 정해져 있을 때, 두 사건에 각각 얼마씩 예산을 배분해야 할까요? A사건의 위험도가 10점 만점에 8점이고 B사건의 위험도는 4점이라면, 당연히 A사건에 더 많은 예산을 책정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죠. 가령 예산이 1억 원이면 A사건에 6,600만원을, B사건에는 3,300만원 가량을 배분하면 됩니다. 예산 배분의 정도가 각 사건의 특성이나 그 사건으로 느껴지는 '감정'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고 최대한 계량적으로 측정된 위험도에 근거해야 할 겁니다.

그러나 로빈 윌슨(Robyn S. Wilson)과 죠셉 알베이(Joseph L. Arvai)의 실험 결과는 우리가 감정과 인상에 크게 좌우되고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함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가상의 자연공원에서 벌어질 수 있는 두 가지 사건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는 공원을 방문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강도나 상해와 같은 범죄 사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슴 수의 급격한 증가였습니다. 윌슨과 알베이는 참가자들이 두 사건을 '감정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알기 위해 두 상황을 얼마나 부정적으로 느끼는지와, 각 상황을 관리한다고 할 경우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참가자들에게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참가자들은 사슴 수 증가보다는 범죄 사건을 더 부정적이고 더 위급한 상황이라고 인식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사슴 수 증가 상황은 머리에 떠올리기 어려울 뿐더러 그 위험이 가슴에 와닿지 못하는 까닭이겠죠.



공원 관리의 역할이 주어진 참가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가상의 예산은 10만 달러였습니다. 윌슨과 알베이는 참가자들에게 공원에서의 범죄 사건이 관광객들에게 상해를 입힐 정도가 3점, 재산상의 피해를 줄 위험 4점, 자연환경을 훼손할 위험이 4점이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사슴 수의 증가는 각각 4점, 5점, 5점이라는 정보를 전달했죠. 물론 수치가 나오게 된 근거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수치를 보면 범죄 사건보다 사슴 수의 증가가 더 큰 위험을 지녔기에 사슴 수를 통제하기 위한 조치에 더 많은 예산을 배분하는 것이 합리적일 겁니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을 둘로 나눠 첫 번째 그룹에게는 범죄 사건만을, 두 번째 그룹에게는 사슴 수 증가 상황만을 알려준 후에 10만 달러의 돈을 얼마나 각 사건의 관리에 지출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각 그룹의 참가자들은 범죄 사건 관리에는 43,469달러를, 사슴 수 통제에는 41,828달러를 지출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두 가지 상황을 서로 비교하지 않고 둘 중 하나만을 인식한 채 내린 의사결정이기에 이 정도의 금액 결정은 그런대로 합리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두 상황을 비교하여 평가를 내리게 한 세 번째 경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범죄 사건에는 43,567달러를, 사슴 수 통제에는 30,380달러를 배분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사슴 수 증가라는 상황이 수치 상으로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는 것이 수치로 전달됐음에도 말입니다. 객관적인 위험 수준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의 크기와 상황을 떠올릴 수 있는 용이함이 참가자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렇다면 두 상황의 위험도 차이를 더 크게 벌려 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윌슨과 알베이는 후속 실험에서 범죄 사건의 위험도를 원래대로 3점, 4점, 4점으로 유지한 반면, 사슴 수 증가의 위험은 9점, 10점, 10점으로 크게 설정한 다음 동일한 방식으로 참가자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두 상황 중에서 범죄 사건 관리의 경우만 예산을 배정하도록 요청 받은 참가자들은 43,222달러를, 사슴 수 통제 상황만을 본 참가자들은 41,080달러를 지출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첫 번째 실험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결과였습니다. 두 상황을 모두 알지 않고 한 가지 상황만 접했기에 위험도를 비교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겠죠. 

두 상황을 함께 놓고 비교 평가하여 예산을 배분하라고 하면 사슴 수 통제에 월등하게 많은 돈을 배정하리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비록 참가자들은 31,464달러 대 36,213달러로 사슴 수 통제에 더 많은 돈을 배정했지만, 그 차이는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위험도와 상관없이 동일한 금액을 양쪽 상황에 배분했다는 뜻입니다. 이것 역시 사건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한다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실험은 기업에서 여러 가지 전략과제의 우선순위나 예산을 결정할 때 각 전략과제의 효과와 비용(혹은 예상되는 리스크)에 따라 합리적인 결정이 훼손될 가능성이 큼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매출 하락의 대처와 선행기술 투자라는 두 가지 전략과제 중 무엇을 더 빨리 실행에 옮겨야 할지, 무엇에 더 많은 노력과 예산을 투여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때, 참석자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쉬울까요? 

각 전략과제를 따로 평가해서 선행기술 투자가가 더 중요하고 회사의 존립에 더 시급하다고 판단됐다 하더라도, 여기에 매출 하락이란 상황이 나란히 놓이면 참석자들은 감정에 영향을 받기 시작합니다. 매출이 하락 추세에 있다는 그래프가 눈에 들어오고 그로 인한 위험이 곧바로 회사의 재무제표와 참석자 자신의 연봉에 영향을 끼치리란 상황이 자동적으로 연상됩니다. 반면 선행기술 투자는 그것이 아무리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해도 초기 투자의 시점에서는 그 기술의 이미지가 모호하고 성공 여부도 불안하기 마련이라 매출 하락과 같은 단기적이고 '생생한' 상황 대처보다 후순위로 밀리고 적정 투자액을 얻을 가능성이 낮아지고 맙니다. 여러 회사에서 장기전략은 그저 문서로만 존재하는 근사한 말 뿐이고 실제 실행은 발등에 떨어진 단기전략에 집중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기전략과 관련된 상황이 더 쉽게 떠올려지고 그 위험이 더 빨리 감정을 흔들기 때문입니다.

기업에서 행해지는 여러 의사결정이 이처럼 감정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모든 참여자들이 의사결정 순간에 떠올릴 수만 있다면, 즉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어렵다는 점을 공감할 수 있다면, 적어도 객관적으로 더 위험하고 더 효과가 큰 사안을 옆으로 치운 채 단기적인 사안(대개 눈에 잘 그릴 수 있는 사안)에 필요 이상의 비중을 두는 오류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조직에서 이런 오류에 빠진 적은 없는지, 그리고 앞으로 없을 것 같은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참고 논문)
When Less is More: How Affect Influences Preferences When Comparing Low and High-risk Op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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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좋은 리더가 아니다   

2012. 3. 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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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팀에 외부로부터 새로운 팀장이 부임했습니다. 그가 말하고 행동하는 스타일을 보아하니 어딘가 모르게 자신감이 넘치고 남을 지배하고 이끌고자 하는 성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자신만만함이 넘치다 못해 독단적이고 자아도취적인 면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결정이나 예측이 옳다는 강한 확신을 나타내고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도 확실하게 가지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팀장이 드러내는 리더십에 마음이 끌릴 것 같습니까? 그가 여러분의 팀을 훌륭하게 이끌 뛰어난 리더라는 좋은 인상을 받을까요? 아마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하겠지만, 실제로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리더로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토론 과제를 부여하면 그렇게 '나르시스트적'인 사람이 스스로 그룹의 리더로 나서거나 자연스레 그룹의 리더로 인식됩니다. 또한 리더십에 관한 평가를 내리라고 하면 나르시스트적인 사람이 다른 이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얻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로 전형적인 인물이 바로 얼마 전 타계한 스티브 잡스입니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평전 '스티브 잡스'를 읽어보면 애플을 처음 창업할 때부터 그가 동료들에게 드러낸 말이나 행동에서 강한 나르시시즘(narcissism)이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맨발로 회사를 돌아다니던 것, 몸에서 냄새가 진동하지만 자신은 채식만 하는 사람이라서 몸을 씻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던 것, 자신의 의견이 동료들에게 수용되지 않으면 눈물을 자주 보이던 것 등이 단적이 사례입니다.




아이작슨은 평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현실 왜곡장'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는 잡스가 거짓말 하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을 수사적으로 그럴듯하게 표현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거짓말보다 훨씬 더 복잡한 유형의 조작 행위를 가리켰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이어갑니다. "세계 역사와 관련된 특정 사실이든,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누구였듯이 대한 기억이든, 그는 진실은 고려하지 않은 채 단언하듯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스티브 잡스가 전형적인 나르시스트였음은 평전에 등장하는 옛동료들의 말에서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부하직원이었던 브루스 혼은 "한번은 제가 생각하던 아이디어를 그에게 이야기했더니 미친 소리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다음 주에 찾아와서는 굉장한 아이디어가 있다면서 제가 야기한 아이디어를 들려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한 거잖아요'라고 했더니 그는 '그래, 그래, 그래.'하고는 그냥 넘어가 버리는 겁니다."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들은 조직의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까요? 아마도 스티브 잡스의 사례만 놓고 생각하면 리더의 자아도취적인 성향이 성과를 향상시키도록 구성원들을 독려하고 때로는 몰아붙임으로써 종국엔 높은 성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잡스가 이끌었던 애플은 지금 '잘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르보라 네비카(Barbora Nevicka) 등 암스테르담 대학의 심리학자들은 이를 부정하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네비카 등은 조직 성과를 높이고 '질 좋은' 성과를 얻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보의 공유와 이를 통한 시너지 창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다른 학자들의 선행 연구에서 이미 입증된 사실입니다. 네비카 등은 나르시스트적인 리더가 이끄는 조직의 정보 공유가 과연 원활하게 이루어질지를 실험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네비카는 실험 참가자들을 3명씩 무작위로 뽑아 모두 50개의 팀을 구성한 다음, 컴퓨터를 통해 무작위로 3명 중 1명을 리더로 선정했습니다. 그러고는 각 팀에게 가상의 비밀조직에서 일할 요원 1명을 3명의 지원자 중에서 선발하라는 의사결정 과제를 부여했죠. 모두 15가지 요소로 계량화하여 평가된 지원자들의 특성 정보(강약점 모두 포함)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배포되었는데, 참가자 각자는 15개 정보 중에서 9개씩만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3명의 참가자에게 똑같이 주어진 공통 정보와, 한 사람의 참가자에게만 주어진 고유 정보가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를 들어, 'F-16 비행기 조종 실력'이란 항목은 3명의 참가자에게 모두 주었고 '성급하고 다혈질적인 면'이란 항목은 3명의 참가자 중 한 사람에게만 정보를 주었습니다. 참가자 각자에게 지원자들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주지 않은 것이죠.

네비카는 의도적으로 지원자 A가 3명의 지원자 중 상대적으로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특성 정보를 구성했습니다. 만일 참가자들이 지원자 B나 지원자 C를 합격자로 선정하면 의사결정의 성과가 좋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겠죠. 실험에 들어가기에 앞서 참가자들은 40개의 질문을 통해 각자가 얼마나 '나르시스트적'인지를 측정 받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누구를 합격시킬 것인가를 선정하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각자가 가진 정보를 과연 공유하는지, 공유를 통해 좋은 의사결정을 이끌어내는지, 리더의 나르시스트 적인 성향이 의사결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실험 결과, 리더의 나르시스트적 성향이 높을수록 다른 참가자들로부터 리더로서 권위를 인정 받고 리더의 리더십이 그룹의 성과에 긍정적일 거라는 인식을 얻었습니다. 선행된 다른 연구에서도 이런 경향이 발견된 바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정보의 공유 정도였습니다. 리더가 나르시스트적일수록 구성원 간의 정보가 덜 공유된다는 것이 정량적인 분석 결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의사결정의 질은 어땠을까요? 리더가 나르시스트적일수록 좋지 않은 의사결정(지원자 B나 C를 뽑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결국 나르시스트적인 리더가 다른 구성원들이 가진 고유 정보가 서로 공유되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형성했고 그에 따라 좋은 의사결정(지원자 A를 뽑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 밝혀졌죠. 나르시스트적 리더가 조직의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는 처음의 인식과는 반대되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자신만만하고 때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강하게 밀고 나가는 리더는 좋은 리더라는 인상을 다른 이들로부터 받겠지만, 그것이 좋은 성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입니다. 바꿔 말하면, 직원들은 나르시스트적인 성향을 보이는 리더를 그렇지 못한 겸손한 리더들에 비해 자신의 의견을 포기해도 좋을 만큼 믿고 따를 만하다는 긍정적인 인상을 가지기 쉽지만, 그런 인상과 실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들은 이 실험에서 봤듯이 자신이 가진 정보나 지식이 가장 우수하고 고유하다고 인식함으로써 정보 공유를 어렵게 만듭니다. 또한 공감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감수성이 요구되는 일의 성과를 저해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르시스트 리더들은 겸손한 리더들에 비해 압박 받는 상황을 즐기고 그 상황에서 일을 잘 수행하는 경향이 있기에 다른 직원들에게도 물리적이고 시간적인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 또한 조직의 성과를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겠죠.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는 처음에는 굉장히 독창적이고 뛰어난 것으로 평가 받기도 합니다. 천천히 살펴보면 다른 직원들의 아이디어보다 나을 것이 별로 없는데도 말입니다. 이 점은 여러분도 종종 경험했을 겁니다. 처음엔 리더의 아이디어가 정말 그럴싸해 보여서 감동하기도 했지만 막상 실행하려고 들면 막막해지고 왜 아이디어를 처음 들었을 때 가슴이 뛰었는지 의아했던 경험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를 좋아하고 그가 조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하는 걸까요? 사람들은 '리더는 이러한 모습이어야 해'라는 공통적인 리더상(像)을 가지고 있습니다. 리더라는 말을 들으면 역사 속에 등장하는 제왕들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를 자동적으로 연상됩니다. 나르시스트들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지닌 리더상과 일치되는 면이 많기 때문에 좋은 리더로, 좋은 성과를 낼 리더로 인식되는 것입니다. 면접으로 직원을 채용할 때도 나르시스트적인 면모를 보이는 지원자가 합격될 확률이 높은 이유도 동일합니다.

나르시스트들이 조직에서 실제로 좋은 성과를 낼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 팀장은 유약해. 팀원들의 생각을 너무나 존중해. 강하게 주장하는 법이 없어.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 팀장이 되면 우리 팀이 달라질 텐데 말이야'라는 생각은 조직의 성과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어떤 과정을 통해야 의사결정의 질이 높아지는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듯, 나르시스트적인 리더의 겉모습이 성과의 전부를 말해주지 못합니다.

스티브 잡스 같은 나르시스트는 일반적인 팀의 리더로 그리 적당한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여러분의 팀장, 여러분의 임원은 얼마나 나르시스트적인가요?


(*참고 논문)

Reality at Odds With Perceptions:Narcissistic Leaders and GroupPerformance


(*추신) 스티브 잡스 평전을 읽으며 '이런 사람이 내 상사라면 회사를 당장 그만 뒀을 거야'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더군요. 여러분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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