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뽑지 않는 이유   

2012. 4. 1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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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과 같이 일할 한 명의 팀원을 새로 뽑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죠. 이력서를 들여다 봐도 직접 이야기를 나누며 테스트를 해 봐도 그 지원자의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점이 금방 눈에 들어옵니다. 헌데 프레젠테이션 능력은 여러분의 팀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량이고 여러분은 지금까지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가장 뛰어난 직원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일 때 여러분은 조직의 발전을 위해 함께 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지원자에게 악수를 청할까요? 여러 사람의 중지를 모아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라면 그 지원자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스스로에게 솔직하다면,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할 겁니다.

여러분이 특별히 이기적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노벨상 수상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새로 채용할 교수가 자신의 전공 영역에서 뛰어난 업적을 거둔 사람이라면, 신규 채용된 사람과 협업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새로 들어올 교수가 자신이 이미 거둔 업적을 초라하게 만들고 앞으로 이룰 업적을 갉아 먹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향을 '사회적 비교 편향'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자신의 강점 영역에서 자신을 능가하는 사람을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와 자존감을 보호 받으려는 자연스러운 동기에 의해 발생하는 편향입니다. 특히 그 영역에서 자신이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을 때(혹은 그렇게 느낄 때) 이런 편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죠. 우리는 흔히 "예쁜 사람은 자신보다 외모가 덜한 사람과 함께 다닌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는 우리가 사회적 비교 편향을 실생활에서 경험하고 있다는 의미겠죠.



스테판 가르시아(Stephen M. Garcia) 등의 심리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사회적 비교 편향이 같이 일할 사람을 선택할 때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규명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하버드 법대 교수가 되어 두 명의 지원자 중 한 명을 교수로 채용하는 상황을 가정하게 했습니다. 참가자 중 절반에게는 법학 분야의 최고 저널에 25편의 논문을 게재한 교수로, 나머지 절반에겐 지금까지 발표한 논문이 총 95편인 교수라고 상상케 했죠. 다시 말해, 첫 번째 그룹은 논문의 질이 법대 내에서 가장 우수한 교수의 입장이, 두 번째 그룹은 논문의 양이 다른 어떤 교수들보다 많은 교수의 입장이 된 것입니다.

참가자들은 두 명의 가장 지원자 중 한 명을 신규 임용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존스라고 불린 교수는 총 75편의 논문을 썼고 최고 저널에 30편을 게재한 경력이 있고, 스미스 교수는 총 100편의 논문 중 20편을 최고 저널에 실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존스와 스미스 중에 누구를 추천했을까요? 논문의 질이 우수하다고 '프라이밍'된 참가자들 중 69%가 논문의 양이 많은 스미스를 선택했습니다. 반면, 논문의 양이 많다고 가정된 참가자들 중 31%만이 스미스를 선택했죠. 즉, 논문이 질이 우수한 사람은 논문의 양이 많은 사람을 선호하고, 반대로 논문의 양이 우수한 사람은 논문의 질이 우수한 사람을 선호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강점을 능가하는 사람을 은연 중 배제하려는 사회적 비교 편향이 뚜렷하게 나타난 결과죠.

가르시아는 이런 현상이 가상의 상황이 아니라 실제에서도 발생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후속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어휘와 수학 실력을 평가하는 시험을 본 후에 그 결과를 피드백 받았습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실제 점수와 상관없이 무조건 어휘와 수학 실력이 각각 상위 18%-상위 32%, 상위 32%-상위 18%인 두 가지 결과만을 피드백했습니다. 첫 번째 경우는 어휘 실력이 뛰어나다는 피드백이었고, 두 번째 경우는 상대적으로 수학 실력이 뛰어나다는 피드백이었죠.

그런 다음, 연구자들은 학생들에게 자신과 같이 과제를 수행할 팀원을 직접 골라보라며 두 명의 정보를 제시했습니다. 존 하디라 불린 학생은 어휘와 수학 실력이 상위 5%-36%였고, 스콧 워커란 학생은 각각 상위 35%-상위 6% 였죠. 실험 결과, 자신의 어휘 실력이 뛰어나다는 피드백을 받은 참가자들 중 74%가 스콧 워커를 선택했고, 수학 실력이 뛰어나다는 피드백을 받은 참가자들 중 62%가 존 하디를 선호했습니다. 이 결과 역시 자신의 강점 영역에서 자신을 뛰어넘는 사람을 덜 선호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사회적 비교 편향의 근원은 자존감을 보호하려는 본능에 있다는 점은 대학교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또다른 실험에서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높은 연봉을 받는 위치에 있다고 프라이밍된 참가자들은 자신보다 높은 연봉을 받게 될 지원자를 덜 선호했고, 조직 내에서 의사결정 권한이 가장 강하다고 프라이밍된 참가자들은 자신을 능가하는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지원자를 역시 덜 선호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자존감에 있어 높은 연봉과 강력한 의사결정이 각자에게 중요하다고 여긴 까닭이었습니다.

가르시아의 연구는 기업에서 이루어지는 채용 관행에 매우 의미있는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흔히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뽑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실제로 그러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위 실험에서 봤듯이, 특정 영역에서 실력이 보통인 사람들보다는 높은 실력을 지닌 사람들이 사회적 비교 편향을 나타낸다는 사실은 뛰어난 인재를 보유한 조직이 바로 그 뛰어난 직원의 존재로 인해 더 뛰어난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고 결국 더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을지 모른다고 추론케 합니다. 

일반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뛰어난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뛰어난 사람이 뛰어난 사람을 알아볼 능력이 있기에 오히려 뛰어난 사람을 배제하는 역효과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사회적 비교 편향에 의해 우수한 지원자를 배제할 위험을 줄이려면, 지원자에게 요구되는 영역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이는 기존 직원을 채용 심사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조치가 필요할지 모릅니다. 조직이 새로운 우수인력을 수혈하여 보다 높은 위치로 도약하길 원한다면 말입니다.


(*참고논문)
Tainted recommendations: The social comparison b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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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으로 화사했던 이번 주말   

2012. 4. 15.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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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완연하게 느껴지던 이번 주말에 아이폰으로 화사한 봄꽃들을 찍어 봤습니다.

봄꽃으로 충전하고 새로운 한 주를 맞이하려 합니다.

사진에 대한 설명 없이 주욱~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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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우수사원'은 별로 우수하지 않다   

2012. 4. 1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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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기업에서 직원들의 성과 향상을 꾀하고 그 업적을 인정할 목적으로 '이 달의 우수사원'과 같은 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수사원으로 뽑힌 직원에게는 명예 뿐만 아니라 금전적 혹은 비금전적 부상을 함께 수여하기도 하죠. 여러분은 이 제도가 얼마나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상의 도입으로 직원들이 '나도 한번 받아보자'라며 의욕을 불태우던가요, 아니면 '어차피 받을 사람만 받을 텐데 뭐하러 애 쓰냐'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던가요?

웨스턴 미시건 대학의 더글러스 존슨(Douglas A. Johnson)과 앨리스 디킨슨(Alyce M. Dickinson)은 6명의 학생을 선정하여 그들에게 은행의 수표처리자 역할을 부여하고 각자 분리된 장소에 놓여진 컴퓨터 앞에 앉도록 했습니다. 학생들은 모니터 상에 나타나는 10달러에서 999.99달러에 이르는 수표 정보를 보고 그 내용을 화면 아래쪽에 위치한 박스에 입력해야 했습니다. 헌데 학생들이 실험을 위해 사용한 컴퓨터에는 프리셀, 지뢰찾기 등과 같은 게임 프로그램 6종류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수표 정보를 입력하다가 윈도우를 최소화시켜 놓고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게임을 즐길 수 있었죠.



학생들은 10주 동안 1주일에 한번 연구실로 찾아와 45분간 실험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매주 5.25달러를 받기로 했습니다. 연구자들은 학생들에게 1주일 동안 입력이 정확하게 이루어진 건을 헤아리고 20명의 다른 참여자(가상의 참여자)와 실적을 비교하여 1위를 차지한 사람에게 '이 주의 수표처리자' 상을 수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주의 수표처리자'상은 여러 번 받을 수 없고 오직 한 번만 주어진다고 했죠. 하지만 이 상을 받는다 해도 수고료 이외에 추가적인 금전적 보상은 없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상을 받기 전과 받은 후의 실적 변화를 측정하려는 의도로 6명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수표 처리 실적과 상관없이 한번씩 '이 주의 수표처리자'상을 수여했습니다. 실험 결과, 상을 받은 후에 실적이 향상되는 모습은 전혀 관찰되지 않았고 오히려 몇몇 참여자들은 상을 받은 후에 실적이 급감하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이 결과는 '이 달의 우수사원' 제도가 상을 받은 직원에게 더욱 성과를 향상하도록 동기를 부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어차피 한번 밖에 상을 받지 못하니까 상을 받고 나서 성과 향상에 박차를 가할 이유를 찾지 못한 까닭이겠죠. 실제로 많은 기업에서 동일한 사람이 일정 기간 동안 여러 번 상을 받지 못하도록 제한한다는 점에서 볼 때, '이 달의 우수사원' 제도는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성과 창출의 의욕을 꺾는 부작용을 일으키리라 볼 수 있습니다.

만일 '돌아가며 상 타기' 규칙을 없애고 금전적인 보상을 주기로 약속하면 결과가 달라질까요? 연구자들은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후속실험을 수행했습니다. 그들은 첫 번째 실험과 동일하게 몇 주를 진행하다가 학생들에게 1주일 간 가장 실적이 좋은 참여자에게 '이 주의 수표처리자' 상과 함께 50달러의 부상을 수여하겠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학생들은 바뀐 방식에 의해 실적이 뛰어나기만 하면 상을 여러 번 받을 수 있었죠. 하지만 연구자들은 각 학생들에게 20명의 참여자 중 2~5위에 해당하는 실적을 기록했다고 거짓으로 알려줬습니다.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상을 받지 못하도록 조작했던 겁니다. 그래도 학생들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상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겠죠(실험 후에 이 사실을 디브리핑(debriefing)할 때 학생들의 표정이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

개선된 '이 주의 수표처리자'상을 주겠다고 말한 이후, 몇몇 학생의 실적은 향상되긴 했지만 그 상승폭이 아주 작았습니다. 어떤 학생의 실적은 크게 상승하다가 다시 크게 떨어지는 패턴을 보이기도 했죠. 이로써 금전적인 보상을 준다고 약속하고 한번 이상 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이 달의 우수사원' 상은 성과 창출 의욕을 유지시키거나 높이는 데에 효과가 없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번 주에도 상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의욕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까닭이겠죠. 그렇다면 '이 달의 우수사원'은 상이 아니라 '내 성과는 인정 받지 못하는구나'라는 열등감에 빠뜨리는 벌이기도 한 셈입니다.

승자가 모든 걸 가져가는 '이 달의 우수사원' 제도는 승자가 아닌 사람들을 모두 '루저'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죠. 연구자들은 한 발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눌러야 내가 올라간다'는 이 제도의 구조가 다른 직원의 성과 창출 행위를 은연 중에 방해하거나 협조하지 않는 사보타주(sabotage)의 동기를 자극할 위험이 있음을 경고합니다. 성과 창출의 과정이 어땠는지는 전혀 따지지 않고 오직 숫자로 나타나는 결과로만 승자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조직 전체의 성과에 나쁜 영향을 끼침에도 불구하고 전혀 우수하지 않은 사원에게 '이 달의 우수사원' 상을 수여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으로 이어지죠. 아마 이런 '유명무실 현상' 때문에 이 제도를 폐지한 회사도 많을 겁니다.

상을 주면 성과가 올라간다는 발상은 '완전히 오류다'라는 사실을 이제 많은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알고 있지만, 직원들에게 무언가를 하도록 유도할 때마다 '상을 주자'란 아이디어가 가장 먼저 나오는 게 사실입니다. 상이 반짝효과를 줄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지식경영을 활성화할 생각으로 소위 '지식 마일리지'를 통해 상을 주겠다고 했지만, 데이터베이스에 '쓰레기 정보'만 넘쳐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말았죠.

직원들의 성과를 높이려면 '이 달의 우수사원'이라는 안일한 아이디어보다는 성과 창출 과정을 끊임없이 피드백하고 지원하는 것이 먼저이고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번 달에는 누가 '이 달의 우수사원'으로 뽑혔습니까? 그 사람이 진짜 우수사원입니까? 여러분이 우수사원으로 뽑혔다면 앞으로 더욱 열심히 일하겠습니까? 저는 이 질문에 'No'라고 답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참고논문)
Employee-of-the-Month Programs: Do They Really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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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또라이'와 화이트 칼라 범죄   

2012. 4. 1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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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칼라 범죄(White collar criminal)'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권한을 이용하여 행하는 범죄를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흔히 말하는 배임이나 횡령, 탈세, 문서 위조, 뇌물 수수, 회계 장부 조작 등이 화이트 칼라 범죄의 대표적인 예이죠. 유럽의 경우, 대기업의 거의 절반 가까이가 화이트 칼라 범죄로 피해를 본다고 합니다. 화이트 칼라 범죄는 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입히는 중대한 범죄 행위임이 분명하지만(그리고 누구나 그렇게 말은 하지만), 살인이나 강도와 같은 범죄보다 간접적이고 겉으로 보이는 폭력성의 정도가 약하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그 범죄의 심각성을 덜 느끼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는 법 적용 차원에서나 사회적 인식 차원에서나 화이트 칼라 범죄를 특히 관대하게 여깁니다.

더 큰 문제는 화이트 칼라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도 죄책감을 덜 느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권력으로 응당 누려야 할 권리라고 여기는 데에 있습니다. 엔론을 망가뜨린 제프리 스킬링이 의회 청문회에 나와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질문에 거만하게 대답하고 도도하게 굴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도산 직전까지 갔다가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으로 겨우 살아난 금융회사들이 성과급 잔치를 벌였죠. 전혀 도덕적이지 않은 기업의 총수가 사람들을 향해 정직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당당히 훈계하는 모습은 우리를 참담한 마음으로 이끕니다.



허나 높은 위치에 올라 막강한 권력을 소유했다고 해서 모두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건강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여기저기에서 손을 뻗치는 유혹의 손길을 견뎌낼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이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큰 걸까요? 물론 범죄를 일으키는 요인은 범죄자 자체의 성격적 특성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적 구조적 상황 속에서 터져나올 수 있겠죠. 하지만 기업에서 벌어지는 화이트 칼라 범죄의 환경적인 구조는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지위가 있고 그에 따른 권력이 있으며 '돈'이나 권력욕 자체가 범죄의 최종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독일 본 대학의 게르하르트 블릭클레(Gerhard Blickle) 등은 이러한 가정 하에 화이트 칼라 범죄자의 성격적 특성을 연구한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연구자들은 심각한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질러 수감 중인 76명의 죄수를 샘플로 삼았습니다. 그 죄수들이 수감 직전의 연봉 평균은 66,169 유로였고, 그들이 피해를 입힌 금액을 평균 내보니 약 190만 유로(약 24억 원)에 달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범죄자 그룹과의 비교를 위해 범죄자들과 비슷한 지위에 있는 150명의 관리자를 따로 선정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두 그룹을 대상으로 자기통제력, 쾌락주의 성향, 성실성, 나르시시즘 성향 등 4가지 특성을 측정하여 그 특성과 화이트 칼라 범죄와의 연관성을 통계적으로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리더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여성일 때보다는 남성일 때 화이트 칼라 범죄를 범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쾌락주의 성향이 높을수록,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을수록, 자기통제력이 낮을수록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았습니다.  

특이한 것은 성실성 점수가 높을수록 화이트 칼라 범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결과는 성실성이 높으면 도덕에 저촉되는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낮다는 기존의 연구와 반대되는 것이었죠. 연구자들은 화이트 칼라 범죄자들이 그 지위에 오르기 위해 평균 이상의 성실성이 필요하고,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르는 데 필요한 기술적인 능력이 성실성을 바탕으로 갖춰지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성실성은 높을지라도 진실성(integrity)이 결여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연구를 요약하면 욕구를 통제하지 못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나르시스트들이 권력을 잡으면 화이트 칼라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나르시스트들이 드러내 보이는 성실성은 진실함이 부족한, 어디까지나 수단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나르시스트들이 모두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지만, 배임과 횡령, 장부 조작, 탈세 등을 거리낌없이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자들은 자신이 그렇게 해도 될 만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나르시스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 번 글에서 봤듯이 나르시스트인 리더는 성과를 떨어뜨림으로써 조직에 손실을 입히기도 하지만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질러서 재무적인 차원에서 회사의 이미지 차원에서 큰 피햬를 가져올지 모릅니다. 게다가 그들의 범죄가 범죄로 인식되지 않는다면 구성원들 사이에서 '나도 그렇게 해도 되겠지', '왜 나만 가지고 그래?'란 도덕적 해이가 독버섯처럼 자라나겠죠.

회사의 윤리적 기강은 나르시스트들에 의해 허약해질 수 있습니다. 

 
(*참고 논문)
Some Personality Correlates of Business White-Collar Crime

(*추신) 이 블로그에서 언급한 '나르시스트 리더'는 그저 잘난 척 하는 리더가 아니라, 로버트 서튼 교수가 '또라이(asshole)'라고 부르는 리더와 맥을 같이 합니다. 로버트 서튼 교수의 '또라이 제로 조직'이란 책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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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뻑'인 사람이 회사의 CEO가 된다면?   

2012. 4. 1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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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트가 우리 회사의 가장 높은 지위인 CEO에 오른다면 회사 성과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요? 시쳇말로 '자뻑'인 사람이 조직의 리더가 된다면 회사가 좋아질까요, 아니면 나빠질까요? 몇몇 연구 결과들은 나르시스트들이 공상가적인 기질이 있기 때문에 조직의 혁신가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그에 따라 회사 성과도 좋아질 거라 암시합니다. 하지만 나르시스트들이 누구보다 아이디어가 뛰어나고 능력이 출중한 인물이라 스스로를 가리켜 평가한다면, 그리고 성공적으로 조직을 이끈 소수의 나르시스트적 리더(예 : 스티브 잡스)를 보며 나르시스트적 성향이 성공의 핵심요소 중 하나라는 믿음이 든다면,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데이터를 통해 그들이 조직 내 최상의 위치인 CEO 지위에 오른 후의 재무적 성과를 실제로 따져보는 일이 의미가 있을 겁니다.


펜실베니아 대학의 애리지트 채터지(Arijit Chatterjee)와 도널드 햄브리크(Donald C. Hambrick)는 이런 의문을 가지고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업계에 종사하는 111명의 CEO(105개 업체)를 연구 대상으로 삼은 다음 그들이 이끄는 회사의 성과 데이터를 폭넓게 수집했습니다. 나르시스트적 성향의 수준을 측정하는 직접적인 방법이 있지만(통상 NPI라는 설문법이 많이 쓰임), CEO들을 일일이 만나 설문을 수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탓에 그들은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먼저 그들은 매년 발행되는 연례 보고서(annual report)에서 CEO의 사진의 얼마나 크게 나왔는지, 해당 회사에 대한 언론 기사에서 CEO의 이름이 얼마나 많이 언급되는지를 일일이 측정하여 점수를 매겼습니다.



또한 CEO가 행하는 연설에서 '나'라는 1인칭 대명사를 '우리'라는 대명사에 비해 얼마나 많이 하는지를 헤아렸습니다. 자기자신에 몰입하는 성향이 나르시시즘의 특징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죠. 채터지와 햄브리크는 조직 내에서 금전적, 비금전적 보상을 두 번째로 많이 받는 사람에 비해 얼마나 많은 보상을 받는지도 측정하여 나르시스트적 성향을 측정하기 위한 하나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나르시스트는 스스로를 '존귀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그 결과가 2인자와의 보상 차이로 나타난다는 것이 다른 연구에 의해 증명됐기에 이 지표는 CEO의 나르시스트적 성향을 측정하기에 적당하리라 판단됐죠. 이런 간접적인 지표는 별도로 진행된 테스트를 통해 나르시스트적 성향을 측정하는 데에 적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체터지와 햄브리크는 CEO가 이끄는 회사의 광고비 비율, 연구개발비 비율, 판관비 비율, 부채 비율을 가지고 '전력적 활력'을 측정했습니다. 또한 각 회사가 얼마나 많이 다른 기업을 인수했는지, 그 인수 규모는 얼마나 컸는지에 관한 데이터를 수립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총주주수익(Total Shareholder Return)과 자산수익률(Return on Asset)를 측정하여 매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살펴봤죠.

CEO의 나르시스트적 성향과 회사의 성과 지표를 대비하여 분석해 보니 흥미로운 결과가 도출됐습니다. 먼저 CEO가 나르시스트일수록 겉으로 보이는 전략적 활력이 상대적으로 컸습니다. 또한 나르시스트적 CEO들은 남들보다 기업 인수에 적극적이고 그 규모도 크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나르시스트가 남들에게 과시하고 떠벌리는 성향이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당연한 결과죠. 하지만 여기까지는 나르시스트적 CEO가 특별히 문제가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나르시스트적 CEO가 총주주수익과 자산수익률 측면에서 매우 높은 수준을 달성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동시에 매우 낮은 값을 기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자산수익률의 연도별 변화를 살펴보면 그 변동폭이 컸습니다. 성과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들쭉날쭉한다는 의미입니다. 크게 얻기도 하지만 크게 잃기도 했단 말이죠. 나르시스트가 CEO에 오르면 경영의 부침이 심할 것이라는 예측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입니다. 몇몇 기업의 경우 언론이 앞다투어 그 회사의 특출한 성과를 칭송하자마자 곧바로 고꾸라져서 투자자들을 실망시키고 다시 언론으로부터 맹공을 받는 사례가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 회사들의 영락은 어쩌면 CEO의 나르시스트적 성향과 관련이 있을지 모릅니다.

헌데 나르시스트적 CEO가 이끄는 회사가 다른 기업에 비해 비록 부침이 심하지만 기본적으로 성과가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체터지와 햄브리크는 심화된 분석을 통해 CEO의 나르시스적 성향과 회사 성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점을 알아냈습니다. 이 결과는 CEO의 나르시스트적 성향이 성과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적어도 나르시스트를 조직의 리더로 올린다고 해서 좋을 것은 없다는 뜻이죠. 나르시스트는 스스로 자신이 리더가 되어야 회사가 좋아진다고 주장하겠지만 말입니다. 

채터지와 햄브리크는 자신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은 컴퓨터 하드웨어와 스프트웨어 산업이기에 다른 산업에 이런 결과를 다른 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마코비(M. Maccoby)가 나르시시즘이 다이나믹하게 변화하는 산업에 종사하는 경영자들에게는 가치 있는 특성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는 점을 인용하면서, 만일 안정적인 산업이라 한다면 나르시시즘이 회사 성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추론합니다. 나르시시즘이 중요한 특성으로 인정 받는 산업에서조차 나르시시즘과 회사 성과 사이에 체계적인 상관관계가 없다면, 다른 사업에서는 둘 간의 부정적인 관계가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겠죠. 물론 추후 연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문제이지만, 적어도 나르시스트 성향이 높은 리더들은 그들 스스로의 주장과는 달리 회사 성과에 '체계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경영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만은 수용해야 할 겁니다.

앞서 올린 글에서 살펴봤듯이 나르시스트적 리더는 정보 흐름을 막고 자신의 창의적일 것 없는 아이디어를 창의적이라고 강요함으로써 조직의 성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채터지와 햄브리크의 실험으로 짐작하건대, 나르시스트적 리더는 성과 창출의 체계적인 구조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기보다는 과시욕과 명예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 때문에 조직의 성과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어쩌다 특출한 성과를 기록했다고 해서 그들의 경영능력을 칭송하고 그들을 본받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죠. 엔론을 망가뜨린 케네스 레이와 제프리 스킬링이 한때 위대한 경영자로 칭송을 받았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말입니다.

과감한 의사결정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과감한 의사결정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과감한 결정이 나르시스트에게서 나왔다면, 그 과감한의 기저가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조직에서 나르시스트는 누구이며 그들의 결정은 지금까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한번 돌아보기 바랍니다. 


(*참고 논문)
It’s All About Me: Narcissistic CEOs and Their Effects on Company Strategy and Perfor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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