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대학 시나리오 플래닝 워크샵 실시   

2012. 2. 2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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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인퓨처컨설팅 대표 유정식입니다.

인퓨처컨설팅은 지난 번에 총 3일(사전 미팅, 워크샵 1일, 후속 미팅)에 걸쳐 시나리오 플래닝 워크샵을 실시했습니다. 이번 워크샵은 K대학의 2030년 비전 설정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실시됐으며, 급변하는 대학 환경 속에서 K대학이 각 시나리오마다 어떤 장기적 전략 방향을 추구하는지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본 워크샵에는 K대학 내 각 학부별 교수님들과 외부 관련 전문가들(총 20여명)이 참가했으며, 아래의 사진이 짐작케 하듯이 그 자리에서 열띤 토론과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2012년도 이제 2개월이 지나가는 시점에 회사의 전략 방향을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재조정해야 하는 조직들이 많을 겁니다. 시나리오 플래닝(Scenario Planning)을 통해 각각의 변화에 미리 대비함으로써 위험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퓨처컨설팅은 시나리오 플래닝 워크샵을 다양한 포맷(최소 4시간 ~ 최대 5일)으로 진행합니다.

시나리오 플래닝 워크샵의 기본적인 일정을 보려면 여기(http://www.infuture.kr/236)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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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고 합시다'라고 말해야 하는 이유?   

2012. 2. 2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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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심리학자 샤이 댄지거(Shai Danziger)는 수감자의 가석방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관들이 내린 의사결정 패턴을 살펴보던 중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밥을 언제 먹었느냐가 가석방 신청을 통과시키느냐 기각시키냐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뚜렷하고 지대하게 말입니다. 댄지거가 8명의 가석방 심사관들이 내린 1112건의 심사건을 수집해보니, 한 명의 심사관은 하루 동안 14건에서 35건 정도(평균 22.6건)를 심리했고, 하나의 신청건에 대해서 가석방 여부를 결정하는 데에 평균 6분 정도의 시간을 소요했습니다.

또한 심사관들은 심리를 진행하다가 두 번의 식사 겸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심리를 진행하다가 9시49분에서 10시27분 사이에 새참을 먹고, 12시46분에서 2시10분 사이에 점심식사를 했죠. 새참을 먹기 전에 심리관들은 평균적으로 7.8건의 심리를 진행했고, 새참을 먹고 점심을 먹기 전까지는 11.4건의 신청건을 처리했습니다. 심리관들은 전체적으로 가석방 신청의 65% 정도를 기각했습니다.




댄지거는 1112건의 가석방 신청건들을 심리 받은 시간대별로 정렬하고 승인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시간대에 심리를 받느냐가 승인과 기각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였습니다. 아침에 처음 심리를 받거나 식사시간 후에 바로 심리를 받는 가석방 신청건들은 평균적으로 65%의 승인률을 기록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승인률은 뚝뚝 떨어지는 패턴이 발견됐습니다. 그렇게 승인률이 급감하다가 식사시간에 임박해서는 승인률이 거의 0으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또한, 식사시간 직후에 심리한 최초의 3건과 식사시간이 임박할 때 처리한 마지막 3건을 비교하니 전자의 경우엔 52~61%의 승인율을, 후자의 경우에는 9~27%의 승인율을 보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운이 좋게 아침에 제일 먼저 심리를 받거나 식사시간 후에 바로 심리를 받는 수감자들은 가석방 승인을 받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지만, 식사할 시간에 임박할 때 자신의 가석방 여부를 심리 받는 수감자들은 가석방될 확률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였죠. 

심사관들은 스스로 가석방 승인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판단을 내린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신들의 피로도와 혈당 수치가 가석방 승인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죠. 가석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서 죄질의 높고 낮음, 수감 태도, 수감자의 교정 정도 등은 '밥'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습니다. 정의(Justice)와는 한참 거리가 먼 '밥'이라는 요소가 심리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죠.

가석방 심사관들의 '휴식 및 식사' 여부가 의사결정의 중요한 변수라는 댄지거의 연구를 기업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여러 종류의 심사, 평가, 승인은 대상이나 내용의 본질보다는 참석자의 피로도와 배고픔 정도에 따라 좌지우지될지 모른다는 걸 추측할 수 있습니다. 휴식과 식사시간 후에 처음 면접하는 입사지원자들은 높은 합격률을 보이고, 운이 없게 식사시간이나 퇴근시간에 임박할 때 면접관을 만난 지원자들은 어쩌면 실력과는 무관한 '밥(즉 혈당)'이라는 요소 때문에 불행하게도 떨어질지 모릅니다(지원자 데이터가 충분한 회사에서 댄지거의 연구와 비슷한 분석을 해보면 어떨까 제안해 봅니다). 매년 벌어지는 인사평가도 상사가 지금 얼마나 피곤한가, 얼마나 배가 고픈가에 따라 부하직원의 실력과는 별개로 관대하게 혹은 가혹하게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밥'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 사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정보가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는 상당히 많습니다. 독일의 연구자들은 법률 전문가들에게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형량을 개별적으로 판단하라고 요청하기 전에 한 그룹의 전문가들에게는 1과 2만 나오는 주사위 한 쌍을, 다른 그룹에게는 3과 6만 나오는 주사위 한 쌍을 던지게 했습니다. 두 개의 주사위 숫자를 합하면, 3이나 9를 얻게 되겠죠. 주사위를 던진 후에 범죄자의 형량이 주사위 숫자 합보다 큰지 작은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형량을 정하게 했죠.

법률 전문가들이 제시한 형량은 1개월부터 12개월까지 다양하게 분포했는데, 숫자의 합이 3인 주사위를 던진 그룹은 평균 5.28개월, 9인 주사위를 던진 그룹은 평균 7.81개월의 형량을 내렸습니다. 주사위 숫자라는 정보는 형량에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차이가 나왔다는 사실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한다고 해도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함을 시사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의사결정을 내릴 때 대상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판단한다고 자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상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 없는 상황의 조건들이 평가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배가 부르거나(피 속의 혈당이 충분하거나) 정신이 맑을 때는 과감하거나 관대한 결정을, 배가 고프거나 어깨가 처지며 피로가 업습할 때는 현상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발동하여 새로운 사안을 거부하거나 '까칠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음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평가나 의사결정의 객관성은 지표와 판단기준이 아무리 정교할지라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혹시 지금 무언가를 평가 받거나 결재를 받는다면, 의사결정자에게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밥 먹고 합시다!" 예상보다 좋은 평가를 받거나 결재를 빨리 받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참고논문 : Extraneous factors in judicial decisions )
(*참고논문 : Playing Dice With Criminal Sentenc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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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은 '버림의 예술'이다   

2012. 2. 2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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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 독일의 참모총장을 지낸 알프레드 폰 슐리펜(Alfred von Schlieffen)은 일명 '슐리펜 계획'을 전쟁 승리의 전략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독일은 서쪽의 프랑스와 동쪽의 러시아와 대치 중이었는데, 슐리펜은 상대적으로 군사력이 약하고 병력 소집이 더디던 러시아보다는 강대국인 프랑스를 신속하게 제압하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와 면한 서부 전선에는 79개 사단을 배치하고 러시아 쪽의 동부 전선에는 10개 사단만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거의 8대 1의 차이로 서부 전선에 병력을 집중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러시아로부터 반격을 당해 독일의 동쪽 지방(동프로이센)을 잃는다 해도 좋다는 과감한 결정이었습니다.

또한 슐리펜은 프랑스와 대치하기 위해 서부 전선에 투입한 79개 사단 중 68개를 전선의 북쪽에 두었고 나머지 11개 사단을 전선의 남쪽인 알자스, 로렌 지역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7대 1의 병력 집중도 차이는 슐리펜이 전쟁이 승리하기 위한 관건이 서부 전선의 북쪽(독일 입장에서 봤을 때 우익)인 지금의 벨기에 지역에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알자스, 로렌 지역이 산악지역이라 지형적 이점을 최대로 살리면 그만큼 병력을 적게 운용해도 된다고 판단했죠. 슐리펜은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직전인 1913년에 사망할 때 자신의 계획을 유언으로 남기기까지 했습니다. 프랑스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독일이 승리하려면 병력을 분산시키지 말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집중 배치해야 한다고 그는 믿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슐리펜이 1906년에 퇴임하고 후임자로 임명된 헬무트 폰 몰트케는 슐리펜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많은 병력들이 프랑스와 면한 서부 전선의 북쪽으로 쏠려 있으면 러시아와 대치 중인 동부 전선이 약해질까 두려웠습니다. 독일군이 프랑스를 상대하는 동안 러시아가 급습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몰트케는 슐리펜이 중요도를 낮게 여겼던 동부 전선과 서부 전선의 남쪽 지역에 병력을 크게 보강하여 7대 1이었던 병력 집중도를 3대 1로 변경하는 조치를 취하고 말았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서부 전선의 북쪽으로 프랑스를 공략하기로 했던 슐리펜의 계획이 옳았던 것으로 판명 났습니다. 서부 전선의 북쪽에서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의 반격을 뚫지 못한 채 마른(Marne) 전투에서 패해했고 독일군이 가장 원하지 않았던 참호전을 벌이며 서로 대치하는 국면이 형성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물론 학자들 사이에서 슐리펜 계획의 효과에 대한 논란이 있긴 합니다).

연합군의 입장에서 슐리펜 계획을 무산시킨 몰트케에게 감사할 일이지만, 병력을 분산시켜 모든 전선을 지키려 한 몰트케의 실패는 기업들의 전략 수립과 실행에 있어 '집중'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웁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입장처럼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기업일수록 전략의 집중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자신들의 강점에 자원을 최대한 집중하고 약점이 되는 부분은 무시하려는 배짱이 필요하죠. 시장 전체를 상대하려고 하기보다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세그먼트를 선택하고 나머지 세그먼트는 미련 없이 희생시켜야 승리의 돌파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적은 병력을 모든 전선에 고루 배치하면 방어력이 높아지키는커녕 경쟁자에게 취약한 부분을 더 많이 노출시키고 맙니다.

위험에 처하면 과감하게 버리기보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확장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전략가들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단순한 전략을 결행합니다. 2000년에 심각한 경영난에 처한 P&G의 구원투수로 임명된 앨런 래플리가 핵심 성장 동력을 4개 부문으로 설정하고 식품업을 과감하게 포기함으로써 P&G를 두 자리 수 이상의 성장으로 이끌었고 위기로부터 구한 사례는 집중의 가치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래플리는 “CEO가 어느 분야를 포기할지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M&A만큼 중요한 문제이다”라고 말하며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힘든 과정과 고통의 시간을 감내하라고 조언합니다.

1997년 9월에 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애플에 쫓겨났던 창립자 스티브 잡스를 임시 CEO로 복귀했습니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사업의 규모와 범위를 축소하는 일이었습니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와 손을 잡고 첨단제품 개발에 나설 거라던 언론의 예상이 빗나가 버린 것이죠. 잡스는 경영전략가인 리처드 루멜트(Richard P. Rumelt)와 나눈 대화에서 "제품군이 너무 복잡했고 회사는 자금이 부족했습니다. 가족의 친구 중 한 명이 어떤 제품을 사야 하는지 저에게 물어볼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수많은 제품의 차이를 알 수가 없었던 거죠. 저도 명확하게 차이를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잡스는 여러 종의 데스크탑 PC를 하나로 줄이고 프린터와 같은 주변기기 부문을 없애버렸습니다. 또한 거래하던 여섯 개의 유통업체를 하나로 줄임으로써 까다로운 요구로 인해 제품 모델이 다양해지는 근본적 원인을 제거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버리기 전략'으로 잡스는 쓰러져 가던 애플을 회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가능한 한 많은 고객의 요구를 수용하려고 고집하는 경영자들은 “전략의 본질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올바로 선택하는 데 있다. 전략은 곧 버림의 예술이다”라고 말한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의 충고를 유념해야 합니다. 어떤 고객, 상품, 시장을 버릴지를 결정하는 일이 어떤 고객, 상품, 시장을 선택할 것인가란 문제보다 선결되어야 할 의사결정 사안입니다.

일본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고전하다가 과감하게 메모리 사업을 철수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주력사업으로 전환시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인텔(Intel), 빅(Bic)과의 소모적인 경쟁을 피하기 위해 라이터 시장을 철수하고 면도기에 집중한 질레트, IBM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슈퍼컴퓨터에 총력을 기울이 CDC, 휠체어에만 역량을 집중하는 모션디자인스, 검은 양말만 판매하는 블랙삭스닷컴 등은 전략의 집중이 거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의 성공 포인트임을 일깨웁니다.

무언가에 집중하려면 필연적으로 선택의 과정을 거쳐야 해야 합니다. 선택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select는 라틴어인 selectus에서 유래했는데, ‘어딘가로부터(from) 무언가를 분리해서(apart) 취한다’는 뜻을 지녔습니다. 선택이란 무언가를 취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집중이란 취해진 무언가에 모든 힘을 쏟아 붓는다는 의미겠죠.

중국 속담에 "크게 버려야 크게 얻는다"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규모가 작거나, 열세에 있거나,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에게 술리펜 계획 같은 '창조적 파괴'의 실행을 주문합니다. 창조적 파괴는 무엇을 얻을까란 질문보다 무엇을 버릴까란 진지한 고민에서 시작함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어려운 선택을 피하려는 리더는 전략은 버림의 예술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참고도서 : '손자, 이기는 경영을 말하다')
(*참고도서 : '전략의 적은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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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이 아닌가벼'라고 말할 용기를 가져라   

2012. 2. 1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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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시인이자 과학자인 미로슬라프 홀룹(Miroslav Holub)이 쓴 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젊은 헝가리 군 소대장이 자신의 소대원과 함께 알프스 산맥 어딘가에서 작전을 수행 중이었습니다. 소대장은 소대원 중 몇 명을 뽑아 온통 눈으로 뒤덮힌 곳으로 정찰을 내보냅니다. 헌데 정찰을 떠나자마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이틀 동안 지독하게 퍼부어댔습니다. 이미 복귀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지났지만 정찰대원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소대장은 정찰대원들이 필시 눈에 갇혀 죽음을 맞았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자신을 책망했습니다. 

헌데 정찰을 나간지 3일째 되는 날, 정찰대원들은 소대로 복귀했습니다. 그들의 복귀가 반갑고도 놀라웠던 소대장은 어찌된 영문인지 물었습니다. 정찰대원들은 정찰을 떠나자마자 내린 엄청난 눈 때문에 길을 잃고 말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죠. 헌데 어떤 병사가 자신의 호주머니에 지도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 지도가 우리를 안심시켰습니다. 우리는 캠프를 설치하고 눈이 그치기를 기다렸죠. 지도가 있으니 눈이 그치면 그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서 말입니다. 바로 이 지도가 우리를 살린 거죠."

소대장은 정찰대원이 건넨 지도를 살펴봤습니다. 놀랍고도 엉뚱하게도 그것은 알프스 지도가 아니라 피레네 산맥의 지도였습니다. 피레네는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 있는 산악지대라 알프스와는 한참 떨어진 곳이죠. 그런데도 정찰대원은 그 잘못된 지도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겁니다.



이 일화는 희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에서 종종 인용되는데, 경영학자 칼 웨익(Karl Weick)은 미래를 대비하고 미래를 향해 전략을 실행하는 조직에 이 일화를 인용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잘못된 지도라고 있는 게 낫다. 왜냐하면 그 지도가 있으면 알지 못하는 곳으로 나아가는 데 참조할 만한 기준을 제시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려고 애쓰기보다 다소 엉성한 예측이라 할지라도 미래를 가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엉뚱한 방향이라생각될지라도 일단 전진할 필요가 있음을 웨익은 역설합니다.

토마스 쳐맥(Thomas J. Chermack)이 쓴 책에는 이와는 반대되는 입장의 일화가 실려 있습니다. 1539년에 스페인 탐험가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서쪽 해안을 조사하다가 남쪽에 반도가 존재한다고 보고했습니다. 그곳은 오늘날 바자 반도(Baja Peninsula)라고 불리는 곳였습니다. 지도 제작자들은 이 정보를 기초로 미 대륙의 지도를 제작했습니다. 헌데 1635년에 스페인 탐험가들이 그 지도를 가지고 북쪽 해안을 조사하다가 지금의 푸젓 사운드(Puget Sound)라 불리는 만(캐나다 빅토리아와 미국 시애틀 사이의 만)을 발견했습니다. 탐험가들은 이 새로운 정보를 가지고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캘리포니아는 섬이다"라고 말입니다.

이 정보에 기초하여 지도가 다시 그려졌고 그때부터 지도에는 캘리포니아가 미 대륙과는 분리된 거대한 섬으로 표현됩니다. 아래의 지도가 바로 그것입니다(Jan Jasson, 1636).



그 후로 거의 100년 동안 발행된 지도들은 캘리포니아를 섬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중간에 캘리포니아가 섬이 아니라 반도라고 주장하는 지도가 몇 개 나타나긴 했지만, 1747년에 가서야 캘리포니아가 미 본토와 연결된 반도라는 옳은 정보가 지도에 최종적으로 반영됐다고 합니다.

캘리포니아가 섬이라는 지도를 가지고 선교 활동에 파견된 선교사들은 골탕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섬' 서쪽 해안에 내린 그들은 다시 나타날(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바다를 건너기 위해 배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배를 분해한 다음 노새에 싣은 채 행군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가도 가도 바다는 나타나지 않았고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까지 이릅니다. 그 산맥의 건너편에 바다가 있으리라 생각하고서 행군을 이어갔지만 선교사들은 어느덧 네바다 사막의 한가운데에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고 말죠.

화가 난 선교사들은 스페인에 있는 지도 제작자에게 "지도가 잘못됐다. 캘리포니아는 섬이 아니다"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지도 제작자들은 그럴 리 없다며 "당신들이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다. 지도는 맞다"라는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이 사례는 헝가리 소대원들의 일화와는 다른 입장의 시사점을 줍니다. 잘못된 지도라도 있는 게 낫다는 것과 달리, 잘못된 지도는 잘못된 길로 인도할 뿐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지도 제작자들처럼) 그 잘못된 지도를 믿고 나면 마음을 바꾸기가 아주 어렵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미래를 확실하게 예측하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면 엉뚱한 길로 들어서서 오도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정보에 기초하여 형성된 믿음을 굳게 믿고서 융통성 없이 전략을 밀고 나가다가 엄청난 실패를 겪게 됨을 경고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잘못된 지도라도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잘못된 지도는 잘못된 결과만을 낳는다고 생각합니까? 잘못된 지도라도 있어야 어딘가로 전진하기 위한 출발점을 정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전자를, 완벽하지 못한 지도에 근거하여 종착점을 찾아나섰다가 바라지 않았던 곳에 갇힐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후자를 선택할 겁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느 것이 옳으냐를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논쟁에 불과합니다. 이 두 가지 입장은 상반되거나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둘을 합쳐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라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을 정하지 못해 시간만 허비합니다. 전략의 속도가 중요한 요즘 같은 상황에서 이러한 완벽주의적 관점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지름길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알프스 산맥이 아닌 피레네 산맥의 지도를 가지고라도 출발점을 정한 후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결단이 전략 실행의 중요한 모멘텀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지도는 잘못된 곳으로 이끈다는 교훈을 잊지 않는다면, 지금 내가 가진 이 지도는 어디까지나 불완전한 정보를 기초로 만든 지도라는 점을 계속 상기하면서 새로운 정보가 나타날 때마다 지도를 지우고 새로 그리려는 전략적 융통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출발할 때 정했던 전략을 폐기해야만 하는 정보가 숱하게 들어올지라도 많은 경영자들은 처음의 전략을 고수하려는 관성을 보입니다. '이 산이 아닌가벼'라고 말하는 것이 자신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용기 없는 행위라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 산이 아닌가벼'라고 말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선교사들이 전달한 정보를 접하고서도 지도가 맞다고 우긴 지도 제작자들의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미래는 예측 불가능한 대상입니다. 이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해 완벽한 예측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완벽함에 힘을 낭비하지 말고 일단 전진하자는 입장의 대립 관계를 해소하고 하나로 융화시키는 방법이 시나리오 플래닝입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미래에 펼쳐질 여러 시나리오를 가지고 출발점을 정해 전략을 실행하다가 지속적으로 내외부 환경의 정보를 수집하면서 기존의 시나리오를 변경하고 대응 전략을 수정하는 과정입니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미지의 땅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면 시나리오라는, 불완전하지만 희망을 북돋우는 지도를 가지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예상치 못했던 강과 산이 나타나면 정찰대를 내보내 정보를 수집하고 시나리오를 다시 그려가는 것이 미래를 향해 항해하는 우리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마인드입니다. 무엇보다 '이 산이 아닌가벼'라고 말할 용기를 가지기 바랍니다.

(*참고도서 : Scenario Planning in Organizations)
(*참고 사이트 : http://www.philaprintshop.com/cali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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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직원에게 떡 하나 더 줘야 하는 이유   

2012. 2. 1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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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에 한 노인이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집 안에서만 은거하며 지낸 노인은 행색이 남루했고 어딘가 모르게 기이한 면모를 풍겼습니다. 그래서인지 동네에 사는 10살 짜리 철 모르는 꼬마들은 그런 노인을 놀려대기 일쑤였습니다. 아이들은 방과후 집으로 가는 길에 노인의 집 앞에서 노인의 이상한 면모에 대해 비웃곤 했습니다. 어느 날 오후, 노인은 밖에서 아이들이 자신을 가리키며 못생기고 바보 같은 대머리라고 크게 조롱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노인은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습니다. 그는 여느 날처럼 자신을 놀려대는 아이들을 앞마당에서 만났습니다. 노인은 "내일 너희들 중 누구나 여기에 와서 지금처럼 무례한 소리를 질러대면 각자에게 1달러씩 주겠다"라고 말합니다. 이 제안을 들은 아이들은 다음날에 노인의 집 앞을 찾아와 흥에 겨워 욕설을 마구 질러댔습니다.



노인은 그 소리가 듣기 싫었지만 꾹 참고 아이들 모두에게 1달러씩 나눠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내일도 오늘처럼 똑같이 와서 욕설을 퍼부으면 각자에게 25센트씩을 주겠다"라고 말합니다. 25센트라는 돈이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생각한 아이들은 그 다음날에도 노인의 집 앞에 와서 욕지거리를 해댔습니다. 노인은 군말하지 않고 약속대로 25센트를 아이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너희들에게 1센트 줄 테니 내일도 와서 이렇게 해라."라고 말했습니다. "1센트라고?" 아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더니 노인에게 "됐어요!"라고 말하고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아이들은 노인의 집앞에 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노인을 욕하는 소리도 들을 수 없었죠.

이 짧은 이야기는 알피 콘(Alfie Kohn)이 쓴 "Punished by Rewards"에 소개된 일화를 약간 각색한 것입니다. 노인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즐거워서(?) 하던 행위에 돈으로 보상함으로써 아이들이 자신을 놀려대는 '내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를 사라지게 만들고 '외적 동기(extrinsic motivation)'로 대체했습니다. 돈에 의해 유지되던 외적 동기는 노인이 1센트라는 푼돈을 주겠다고 말하자 이내 사라져 버렸고 아이들은 더 이상 노인을 욕하는 행위에서 재미를 찾을 수 없었던 겁니다. 노인의 이야기는 어떤 일에 대한 보상이 사람들의 내적 동기를 갉아먹을 뿐만 아니라, 보상이 줄거나 없어지면 흥미가 떨어져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을 꼬집고 있습니다.

우리 말에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말이 안 되는 속담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이제 살펴보니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미운 아이의 미운 짓에 보상을 하면 그 미운 짓을 할 내적 동기를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니 말입니다.

많은 조직에서 어떤 행위와 성과를 권장하기 위해서 보상을 강화하고 구성원들의 보상 차이를 확대하는 방법을 쓰곤 합니다. 구성원들이 맡은 업무로부터 즐거움을 느끼도록 만들어 생산성을 높이기보다는 돈이라는 당근으로 유혹하면 더 열심히 일하리라 가정하고 기대합니다. 물론 이런 당근이 제시되면 구성원들은 전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려고 노력할 겁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회사가 어려워져 높은 보상을 유지할 수 없게 되거나, 평가 결과에 따라 상대적으로 차등이 돼 남보다 못한 보상을 받는 경우가 지속되면 아이들이 노인을 향해 느꼈듯이 회사에 대한 불만이 쌓이게 됩니다. 그러면서 맡은 업무에 대한 흥미와 열정을 잃어버리고 말죠. 생산성은 답보상태이거나 추락하는 지경까지 이릅니다.

알피 콘은 "A를 하면 B를 주겠다"라고 말하는 방식의 보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A보다는 B에 집중해 버리는 역효과가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일 잘 하면 돈을 주겠다"라는 보상 방식은 직원들에게 일보다는 돈이 더 중요하다는 엉뚱한 신호를 주는 꼴입니다. 또한 오로지 돈이라는 외적 동기에 의해 일의 즐거움을 확인 받도록 직원들을 조건화합니다. 그러니 직원들이 보상에 불만을 강하게 표하면 평가지표를 객관적으로 바꾸고(과연 객관적을 바꿀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차등 보상을 강화하려는 식으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해법을 내놓으려고 하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조성하려는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외면한 채 외적 동기를 강화하는 쉽고 빠른 대증요법을 가함으로써 직원들을 내적 동기가 사라진 '외적 동기의 노예'로 만들지 않았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도 보상이 직원들의 동기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보상은 돈을 벌려는 직원들이 동기를 높일 뿐입니다. 미운 아이에게 떡 하나를 더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상기하기 바랍니다.

(*참고도서 : Punished by Reward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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