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냐 다수결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2012. 1. 3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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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럿이서 무언가를 결정할 때 합의를 거치거나 투표를 통한 다수결 방식을 사용하곤 합니다. 사적으로 점심 메뉴를 정할 때 뿐만 아니라, 조직 내의 중요한 의사결정 사안에 대해 구성원 전체의 합의를 이끌어낼 것인가, 아니면 다수결로 깔끔하게(?) 정리할 것인가를 놓고 대립하는 경우가 가끔 발생합니다. 과연 어떤 방법이 좋은 걸까요?

딘 토즈볼드(Dean Tjosvold)와 리차드 필드(Richard H.G. Field)는 사이먼 프레이저 대의 학부생 114명을 대상으로 상황이나 맥락(context)이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을 5명씩 그룹을 만들게 한 후에 '달에서 살아남기'라는 의사결정 게임을 부여했습니다. 이 게임은 예전에 이 블로그를 통해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모선(mother ship)에서 200Km 떨어진 달의 어느 곳에서 조난 당했을 경우 생존을 위해서 가지고 있던 15개 물품(성냥, 나침반, 우유 등)의 우선순위를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결정하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이 끝난 후에 토즈볼드와 필드는 하나의 이슈를 토론하고 각 그룹의 의견을 내는 두 번째 과제를 학생들에게 부여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문지를 돌려서 자기가 속했던 그룹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토즈볼드와 필드는 먼저 '협력 조건'이냐 '경쟁 조건'이냐에 따라 학생들을 편성했습니다. 협력 조건의 학생들은 과제를 협력적으로 수행해야 했습니다. 이 조건의 학생들은 상호 이득을 추구해야 하며 결코 이기려 하거나 다른 사람을 압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연구자들로부터 전달 받았습니다. 반면 경쟁 조건의 학생들에게는 동료의 의견보다 자신의 것이 낫다는 점을 주장하게 함으로써 경쟁적인 토론 분위기를 유도해 냈습니다.

토즈볼드와 필드는 이렇게 편성된 학생들을 '합의 조건'이냐 '다수결 조건'이냐에 따라 다시 나눴습니다. 합의 조건의 학생들은 그룹 구성원들 모두가 동의하는 의견을 합의를 통해 이끌어내야 했고, 다수결 조건의 학생들은 합의 과정 없이 투표로 그룹의 의견을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모두 4가지 실험조건(협력-합의, 협력-다수결, 경쟁-합의, 경쟁-다수결)을 설정한 후, 의사결정의 질, 그룹의 결정에 대한 동의(commitment), 과제에 대한 이해 수준, 소요 시간, 해당 그룹과 다시 활동하고 싶은지의 여부 등을 측정했습니다.

분석 결과, 의사결정의 질은 '협력-다수결' 조건의 학생들이 가장 뛰어났고, 의사결정에 걸리는 시간은 '협력-합의' 조건의 학생들이 가장 짧았습니다. 과제에 대한 이해 수준은 '협력-다수결' 조건의 학생들이 가장 우수했습니다. 반면, 의사결정에 대한 동의(commitment)는 '경쟁-합의' 조건일 때가 가장 높았습니다.

이 실험의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먼저 '협력이냐 경쟁이냐'라는 한 가지 차원만 생각하면, 의사결정의 질과 소요시간 측면에서 협력적인 상황이 경쟁적인 상황보다 대체적으로(엄밀하게 따지지 않는다면) 나았습니다. 특히 소요시간은 월등한 차이를 나타냈습니다. 학습의 효과도 구성원들이 경쟁적일 때보다도 협력적으로 토론할 때가 더 높음을 이 실험은 보여주었죠. 물론 '경쟁-합의' 조건에서 의사결정에 대한 동의 수준이 가장 높았기에 경쟁 상황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 생각할 수 있지만, '경쟁-다수결' 조건일 때 이 측정치가 가장 저조했다는 점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이 실험의 시사점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합의를 통해 의사결정할 때 그룹과 개인의 의견 차이를 좁혀서 동의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 협력적인 상황에서는 서로 합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해야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경쟁적인 상황 하에서는 합의보다는 다수결 원칙이 의사결정의 논란과 소요시간을 줄이는 데 있어 좋은 방법이라는 점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적이냐 경쟁적이냐에 따라 의사결정의 방식을 조절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무조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무엇이든 다수결 원칙을 들이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죠. 그리고 같은 조건이라면 구성원들끼리 서로 경쟁하고 공격하는 분위기보다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소모적인 논쟁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일 겁니다.

의사결정은 상황 또는 맥락(context)의 함수입니다. 이를 잘 살펴 운용하는 것이 조직을 운용하는 사람이 세밀히 살펴야 할 또 하나의 요소입니다.


(*참고논문 : Effects of social context on consensus and majority vote decision mak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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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표정   

2012. 1. 2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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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월의 마지막 일요일입니다. 2012년 시작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시간은 항상 빠릅니다. 산책을 겸해 찍은, 겨울의 표정 몇 장을 올리며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되잡아 봅니다.

남은 일요일 오후, 편안하게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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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이 내 창의력을 꺾는 건 아닐까?   

2012. 1. 2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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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J. A. 체임버스(J. A. Chambers)는 창의력을 촉진시키는 교육 방법과 반대로 저해하는 교육 방법의 차이가 무엇인지 규명하기 위해서 각자의 영역에서 창의적인 성과를 거둔 화학자와 심리학자들에게 설문지를 돌렸습니다. 체임버스는 설문지를 통해 피설문자들 자신에게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스승(교수)의 특성을 말해 달라고 요청한 다음, 답변을 분석하여 창의력을 촉진하는 스승의 특성과 창의력을 저해하는 스승의 특성을 구분했죠. 그 결과, 차이가 확연하게 나타났습니다.



체임버스는 제자들의 창의력을 촉진시키는 교수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10가지로 정리했습니다.

1. 독립적인 개체로 존중한다.
2. 참여를 독려한다.
3. 롤모델이 된다.
4. 정해진 시간 외에도 상당한 시간을 같이 보낸다.
5. 탁월한 성과를 기대하고, 탁월한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고 표현한다.
6. 열정적이다.
7. 동등하게 대한다.
8. 창의적 행동이나 결과물에 직접적으로 보상한다.
9. 재미있고 활기 넘친다.
10. 사람을 일대일로 대하는 데 뛰어나다. 



반면, 창의력을 저해하는 교수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8가지로 정리됐죠.

1. 의욕을 꺾는다.
2. 성격이 불안정하고 트집 잡거나 빈정거린다.
3. 열정이 부족하다.
4. 기계적인 학습을 강조한다.
5. 독단적이고 엄격하다.
6. 최신 경향을 따라가지 못하고 전반적으로 무능력하다. 
7. 관심 분야가 좁다.
8. 개인적인 시간을 함께 하지 않는다.



이 결과가 비록 창의력을 촉진시키거나 저해하는 교수의 특성을 연구한 것이고, 실험적 방법이 아니라 설문에 의존했다는 한계(다른 원인이 존재할 가능성)가 있긴 하지만, 회사 내에서 부하직원들의 창의력을 북돋우는 팀장과 창의력을 꺾어 버리는 팀장이 누구인지에 관해 힌트를 줍니다.

조직의 성공을 위해 창의력이 무엇보다 강조되는 이 시기에 부하직원들의 창의력을 고양시키는 팀장의 역량 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은 누구나 동의하는 바입니다. 위의 항목에 몇 개나 해당되는지 평가해 보거나,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 보면 어떨까요? 

여러분의 팀장님들, 혹은 임원님들은 어떠하십니까?  여러분의 창의력을 북돋워 줍니까, 아니면 무참히 꺾어 버리곤 합니까?

(*참고논문 : College teachers: Their effect on creativity of students )
(*참고도서 : '창조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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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없는 직원들이 더 많이 착각한다?   

2012. 1. 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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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기업에서 직원들 스스로 자신의 역량을 평가하는 '자기평가' 과정이 있습니다. 자기평가의 목적은 지난 1년 간의 역량 개발 과정을 반성하면서 자신의 장단점을 다시금 성찰하고 향후 역량 개발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부하직원들과 관리자들이 이러한 목적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이행하는 경우는 애석하게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자기평가는 평가 절차 중 하나의 요식 행위로 여겨지거나, 부하직원들이 관리자들에게 자신의 역량을 어필하고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현실이죠.

보통 자기평가 결과는 최종 평가점수에 반영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에 대한 반론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관리자(팀장)가 부하직원의 역량을 평가할 때 자기평가 결과를 참조해야 하는가를 놓고서는 종종 의견이 대립되곤 합니다. 자기평가 결과를 참조하거나 혹은 옆에 나란히 놓고 평가하는 방식(수기로 이뤄지든 PC를 통하든)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부하직원이 스스로 느끼는 자기의 '역량 수준'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팀장이 부하직원 개개인의 역량 개발 과정과 단계를 모두 알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자기평가 결과를 참조하지 않을 바에야 왜 자기평가라는 소모적인 과정을 진행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이와 반대측에 서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팀장이 부하직원의 역량을 독자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기평가 결과는 대개 '관대하게' 나온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과대평가된 자기평가 결과를 참조하면 아무리 관리자가 주관을 가지고 평가하려 해도 영향 받기 마련이라고 주장하죠. 능력이 출중하지만 겸손한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하고, 능력이 없으면서 자기PR에는 능한 직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줄지도 모른다고 염려합니다. 그래서 평가의 왜곡을 막으려면 자기평가 결과는 일체 들춰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 상반되는 주장 중에서 어떤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코넬 대학교의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와 데이비드 더닝(David Dunning)이 수행한 유명한 실험을 살펴보는 것이 좋겠군요. 크루거와 더닝은 실험에 참여하면 학점에 유리한 점수를 주겠다고 하고  45명의 코넬대 학생들을 모았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20개로 이루어진 논리적 사고 시험을 치르도록 했습니다. 그런 다음, 크루거와 더닝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자신의 논리적 사고 역량 수준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percentile)"였고, 두 번째는 "시험 점수가 다른 학생들과 비교하여 몇 등이라고 생각하는가?(percentile)"였습니다.

답변 결과를 평균하니 학생들은 자신의 논리적 사고 역량을 상위 34%라고 답했습니다. 또한 시험 점수도 상위 39%에 해당할 거라고 말했죠. 학생들이 자신의 역량과 시험점수를 객관적으로 판단했다면 평균이 상위 50% 라고 나왔겠지만, 실험 결과는 학생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과대평가하는 경향은 시험 점수가 저조한 학생(하위 25% 이하)들에게서 가장 크게 나타났습니다. 논리 문제를 못 풀었으면서도 자신의 논리적 사고 역량 수준이 높고 시험도 잘 봤을 거라고 착각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자신감 착각'이라고 부릅니다.

크루거와 더닝은 유머 감각과 문법 실력 등에 대해서도 비슷한 실험을 수행했는데 결과는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먼저 학생들의 유머 감각을 테스트해서 상위자부터 하위자까지의 '유머 감각 서열'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 다음 코미디 작가들이 쓴 우스운 이야기 30개를 골라서 코미디언들에게 메일로 보냈죠. 코미디언들이 30개의 이야기를 읽고 전혀 재미있지 않음(1점)부터 아주 재미있음(11점)까지 평가해 주길 요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8명의 코미디언이 답변을 보내왔는데 이야기의 재미에 대한 그들의 의견은 거의 일치했습니다. 일관성이 있다는 뜻이었죠.

크루거와 더닝은 학생들에게 똑같은 30개의 이야기를 평가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유머 감각 테스트에서 고득점을 얻은 학생들은 코미디언들의 판단과 78퍼센트 정도 일치했습니다. 하지만 유머 감각 테스트에서 하위 25%에 해당하는 저득점자들은 코미디언들이 재밌다고 평가한 이야기 중에서 44퍼센트만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재미없는 이야기 중 56퍼센트를 재미있다고 평가 내렸습니다. 본래 유머 감각 테스트에서 하위 그룹에 랭크됐으니 이같은 불일치는 예상된 결과였습니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유머 감각이 평균보다 얼마나 높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66퍼센트의 학생들이 다른 사람보다 유머 감각이 좋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유머 감각 테스트에서 하위 25%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자신의 유머 감각을 평균보다 높게 평가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시 말해 객관적으로 능력이 처지는 사람들이 '자신감 착각'을 더 강하게 보였습니다.

이 실험은 우리 인간에게 '자신의 능력을 인식하는 능력'이 진화되지 않았음을 시사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실제보다 과대하게 인식하는 능력이 환경 적응에 유리했기 때문일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크루거와 더닝의 실험에서 나타나는 소위 '더닝-크루거 효과'는 자기평가를 참조하거나 열람하는 일이 평가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합니다. 또한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가 관리자의 '관대한 평가 경향'을 부추겨 이득을 보는 직원들은 역량이 부족한 사람들일지 모른다는 점도 시사합니다. 결과적으로 역량을 높게 평가 받아 마땅한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입습니다. 게다가 겸손하기까지 하면 더욱 그렇겠죠. 

서두에 언급했듯이 자기평가는 반성과 계획을 위한 보조장치이지, 점수에 반영한다거나 관리자의 평가에 영향을 주는 견제장치가 아닙니다. 평가의 왜곡을 막으려면 직원들의 심리가 어떠하고, 평가의 과정에서 어떠한 심리적 오류가 발생하는지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의 평가제도가 '더닝-크루거 효과'를 방관하여 직원들의 '자신감 착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참고논문 : Unskilled and Unaware of 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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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로 창의성을 높인다는 생각은 망상   

2012. 1. 2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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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성과를 평가하겠다고 하면 그 사람의 성과는 높아질까요, 낮아질까요? 올바로 평가만 이루어진다면 일반적으로 평가는 동기를 유발하여 성과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가져다 줍니다. 헌데, 그 성과가 숙련된 기술이나 풍부한 지식이 아니라 '발견적인' 창의력을 요구하는 경우에도 평가가 성과를 향상시키는 장치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까요?

테레사 아마빌레(Teresa M. Amabile) 등 3명의 심리학자들은 브랜다이스 대학의 여학생 40명을 대상으로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창의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연구자들은 학생들에게 주어진 재료만을 써서 개인별로 콜라주 작품을 만들어 보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 다음, '평가 여부'와 '청중 여부'라는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모두 4가지 실험 조건을 설정했습니다.



먼저 '평가-청중' 조건에 무작위로 배정된 학생에게는 한쪽에서만 보이는 거울 뒤에 미술가 4명이 앉아 자신이 콜라주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일러줬습니다. '평가-무청중' 조건의 학생들에게는 콜라주 작품이 완성되면 미술가들이 평가를 내리겠지만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지는 않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무평가-청중' 조건의 학생은 자신들의 작품이 평가될 거라는 일체의 언급을 듣지 않았습니다. 연구자들은 그에게 그저 콜라주를 만들고 난 후의 기분을 알아보기 위한 거라고 거짓으로 설명했죠. 다만, 한쪽에서만 보이는 거울 뒤에 다른 피실험자들이 앉아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콜라주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본다고 말했습니다. '무평가-무청중' 조건의 학생은 평가에 대한 언급도, 자신을 지켜보는 청중의 존재도 듣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콜라주 작품을 다 만든 후에 10명의 미술가들에게 평가를 의뢰했습니다(창의성 점수 신뢰도 0.93). 그랬더니 청중의 유무와 관계없이 평가를 예상하지 않은 집단의 창의성 점수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평가-무청중' 조건의 학생들은 창의성 점수가 24점에 근접한 반면, '평가-무청중' 그룹의 점수는 19점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즉 미술가가 평가하리라 예상한 피실험자들은 평가 받을 것에 집중력이 분산된 까닭에 창의성이 떨어지는 작품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콜라주 만들기가 끝나고 연구자들이 '평가' 그룹('평가-청중', '평가-무청중')의 학생들에게 돌린 설문 결과에서도 평가의 부정적인 측면이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무평가' 그룹보다 불안감을 많이 느꼈다고 보고했고 작품을 만드는 동안 미술가의 평가 결과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고 말했습니다.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주의를 산만하게 만든 것이죠. 테레사 아마빌레가 수행한 또 다른 실험들에서도 평가가 창의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규명되었습니다.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정보사회에서 소셜 네트워크 사회로 진화되면서 개인과 조직에서 창의성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창의성이란 절차와 규칙을 따르기만 하면 누구나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과연 어떻게 해야 개인의 창의성을 자극하고 그것이 고객의 의표를 정확히 찌를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로 이어질지 여러 조직들은 고민을 거듭합니다. 업무 공간의 형태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다든지,업무 스타일과 업무 시간을 개인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한다든지의 해법들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절차와 규칙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기업에서 수용하기에는 문화적 장벽이 아직 높습니다. 그러한 조치가 직원들의 방종을 야기해 통제를 와해시키거나 제품의 하자로 이어질지 염려하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몇몇 기업은 창의성을 평가하여 보상이나 승진에 반영하겠다는 악수(惡手)를 두고 맙니다. 평가가 악수인 이유는 위 실험에서 보듯이 평가가 창의성을 제고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창의성을 좀먹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평가가 필요없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절차적이며 기술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데에 평가가 나름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가가 능사는 아닙니다. 조직이 창출해야 할 성과가 창의성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창의성에 따라 조직의 성패가 결정된다면, 평가를 통한 창의성 제고는 헛된 망상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평가해야 할 영역과 평가하지 말아야 할 영역을 올바르게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뭔가를 도입하여 추진하고자 할 때 산업시대의 틀에서 사고하는 경영자들 대부분은 ‘하면 된다’라는 기치에 몰두하여, 조직의 창의성을 높이는 데에도 강압적이면서도 중앙집권적인 방법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산업시대의 성공요소였던 ‘빨리빨리’ 문화가 창의성 향상에도 먹히리란 환상을 갖습니다. 평가라는 통제적인 장치로부터 나온 아이디어는 기술적으로는 좋아보여도 전혀 창의적이지 못합니다. 그저 누군가가 먼저 나선 길을 뒤늦게 쫓아가려고 발버둥치는 ‘순응’에 지나지 않습니다.

'발견적 창조'에 평가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발목만 잡을 뿐입니다.

(*참고논문 : Social influences on creativity , Evaluation and performance: A two-edged knif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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