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눈에 자주 보여야 평가에 유리하다?   

2012. 6. 2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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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직원이 아침에 일찍 출근하여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고 또 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인다면 여러분은 그를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성실하고 책임감 있으며 회사에 헌신적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여러분이 그 직원의 상사라면 평가 점수를 다른 이들보다 높게 주고 싶은 마음도 들겠죠. 직원들이 회사에 일찍 출근하여 밤늦도록 근무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상사에게 얼굴을 '오랫동안 보여주면' 상사로부터 좋은 인상을 얻어 평가나 보상 혹은 승진에 유리할 거라 믿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경영학자인 킴벌리 엘스바흐(Kimberly D. Elsbach)와 동료들은 간단한 연구를 통해 이렇게 암묵적으로만 짐작하고 있던 현상이 사실임을 드러냈습니다. '단순히 얼굴을 보여주는 시간(passive face time)'이 부하직원에 대한 상사의 인식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밝혀낸 것이죠. 부하직원의 성과를 관찰하는 상사는 손에 잡히는 성과를 중요시한다고 말은 하겠지만, 애석하게도 평가 요소의 상당 부분(특히 역량평가)은 '얼굴 보여주는 시간'에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엘스바흐는 얼굴을 보여주는 시간이 긴 직원일수록 독창적이고 헌신적이며 리더십이 있고 팀워크에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여러 경험적 사실을 정량적으로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엘스바흐는 먼저 MBA를 졸업한 39명의 관리자와 심도 있는 인터뷰를 통해 각자의 직장에서 자신이나 다른 직원의 '얼굴 보여주는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물었고 구체적인 사례를 가능한 한 자세히 묘사해 달라고도 요청했습니다. 또한 멀리 떨어져 일하거나 집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얼굴 보여주는 시간이 제한된 직원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하는지도 물었죠. 

인터뷰에서 나온 말을 종합하고 분류해 본 결과, 근무시간 동안 항상 자리를 지키고 늘 얼굴을 보이는 직원들은 '책임감 있고 믿음직하다'는 인상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근무시간 이외에 매우 자주 얼굴을 보이는 직원들은 관리자로부터 '열성적이고 헌신적인' 사람으로 인식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얼굴을 오래 보여주는 직원들이 비효율적으로 일하기 때문이고 잘 보이기 위해서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고 말하는 관리자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인터뷰에서 나온 결과를 정량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엘스바흐는 경영대학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60명의 고참 직장인(평균연령 40.4세)들을 실험 참가자로 모집했습니다. 처음에 본 정보를 나중에 얼마나 기억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에 참여하는 줄 알았던 참가자들은 어떤 사람에 대해서 세 문장으로 짧게 기술한 글을 받아 보았습니다. 참가자 중 절반은 '나는 근무시간 내내 항상 그가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라는 문장을 읽었고, 나머지 절반은 '나는 밤 늦게 혹은 주말에도 항상 그가 일하는 모습을 본다'라는 봤습니다. 이 문장 이외에 글의 나머지 내용은 두 그룹 모두 동일했습니다.

30초 동안 글을 읽게 한 후 엘스바흐는 참가자들에게 3분 동안 낱말 맞히기 게임을 하도록 해서 신경을 분산시켰습니다. 그런 다음, 15개의 단어를 주고서 참가자 자신들이 읽었던 글에서 나온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라고 요청했죠. 15개의 단어 중 5개는 글에서 나왔지만 나머지 10개는 나오지 않은 단어였습니다. 나오지 않은 10개의 단어 중에는 앞서 관리자들과 했던 인터뷰에서 종합되었던 '책임감 있다', '믿음직하다', '열성적이다', '헌신적이다'란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죠. 엘스바흐는 원래의 글에 나오지 않았는데도 나왔다고 잘못 지적하는 경우가 얼마나 다른지를 보고자 했던 겁니다.

결과를 분석해보니, '근무시간 내내 항상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는 글을 읽은 참가자들은 (원래의 글에는 나오지 않았는데도) '책임감 있다'와 '믿음직하다'란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는 경우가 많았고, '밤 늦게 혹은 주말에 항상 일하는 모습을 본다'는 글을 읽은 참가자들은 상대적으로 '열성적이다'와 '헌신적이다'란 단어를 골랐습니다. 

이 실험 결과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근무시간 동안 얼굴을 항상 보이는 직원일수록 상사로부터 책임감 있고 믿음직하다란 인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업무 특성상 자리를 자주 비워야 하거나 다른 장소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고 신뢰감이 떨어진다는 불리한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존재함을 나타내죠. 둘째, 야근하는 직원일수록 소위 '칼퇴근'하는 직원들에 비해 상사로부터 열성적이고 헌신적이라고 평가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에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직원들은 좋은 성과물을 산출한다고 해도 열성과 헌신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죠.

얼굴 보여주는 시간에 의해 편향적인 평가가 이루어짐으로써 야기되는 문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실재하는 역량과 성과가 아니라 얼굴 보여주는 시간이 보상이나 승진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 글('야근을 많이 해야 승진이 잘 된다')에서 봤듯이, 부하직원들의 역량과 성과 차이를 뚜렷하게 평가하기 어려울 때 야근의 강도와 지속성이 승진에 유리하도록 만들죠. 부하직원의 역량과 성과를 올바르게 평가하고자 하는 상사들은 이런 편향이 존재함을 항상 유념해야 합니다. 또한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는 직원들을 불리하게 평가할지도 모른다는 점도 항상 유의해야겠죠.

어떤 직원이 상사 자신에게 얼굴 보여주는 시간이 길다면 그 시간과 성과가 비례하는지 면밀하게 살펴봐야 하겠죠. 쉽지 않겠지만 그런 관점으로 직원들을 평가하고 독려해야 쓸데없이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는 직원들의 동기가 줄어듭니다. 물론 일이 절대적으로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야근하고 휴일에도 출근해야 하는 경우라면 그건 직원의 잘못이 아니라 그렇게 많은 일을 부과한 상사나 조직의 과실이므로 즉시 시정되어야 할 겁니다.

어쩔 수 없이 오래 근무해야 하는 분위기도 문제지만, 얼굴 보여주는 시간이 길어야 평가와 보상에 유리하다고 인식하는 문화도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어떻습니까?


(*참고논문)
How passive ‘face time’ affects perceptions of employees: Evidence of spontaneous trait in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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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으로 그린 그림   

2012. 6. 17.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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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폰으로 그림 그리는 맛에 빠졌습니다.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아이폰의 '그림판 프로' 앱을 실행시켜서 눈 앞에 보이는 정물을 그리거나, 상상 속의 장면을 스케치하곤 합니다. 손가락이 굵고 또 아이폰 화면 크기는 작아서 선 하나를 그리는 데 애를 먹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어지러운 머리 속이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몰입의 순간을 느끼기도 하지요.

못 그린 그림이지만, 여기에 그동안 그렸던 그림을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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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직원은 승진하기 어렵다   

2012. 6. 1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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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은 리더에게 여러 가지 역량을 기대합니다. 특히 외부환경이 급변하고 고객들의 취향이 다양해지면서 리더의 창의력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창의적인 리더가 그렇지 못한 리더에 비해 구성원들의 창의력을 자극하고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직원들보다 창의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곧잘 제시하는 직원을 조직의 리더로 선발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죠.

하지만 어떤 직원이 창의적일수록 잠재적인 리더십 역량을 낮게 평가 받는다는, 그래서 승진에 불리하다는 다소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제니퍼 뮬러(Jennifer S. Mueller)와 동료들은 실험실에서의 연구와 실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규명했습니다. 



뮬러는 194명의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아이디어 제시자와 평가자로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디어 제시자를 다시 둘로 나눠 한 그룹은 '참신하고 유용한' 아이디어를 구상하도록 하고 다른 그룹에게는 '유용하지만 참신하지 않은' 아이디어를 생각하도록 했습니다. 아이디어 제시자들에게 주어진 질문은 "항공사가 승객으로부터 더 많은 매출을 끌어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였죠. 아이디어 제시자들이 평가자들에게 10분 동안 자신의 아이디어를 프레젠테이션하면, 평가자들은 아이디어의 창의성, 참신성, 유용성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 제시자의 잠재적 리더십을 3가지 차원으로 평가했습니다.

통계 분석 결과, '참신하면서 유용한' 아이디어를 제시한 참가자들은 '유용하기만 한' 아이디어를 내놓은 참가자들에 비해 평가자들로부터 더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잠재적 리더십 점수는 훨씬 낮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두 그룹의 아이디어 제시자 모두 역량과 인간적인 따뜻함에서는 동일한 평가를 받았죠. 이는 리더로 선발될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곧잘 제시하는 사람이 불리한 상황에 처한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기 때문은 아닐까 의심한 뮬러는 인도 중부에 위치한 다국적 정유 회사에 근무하는 346명의 직원을 연구 대상으로 설정했습니다. 뮬러는 346명 중 55명을 평가자로, 나머지 291명을 피평가자로 구분했습니다. 그런 다음, 평가자들에게 피평가자의 잠재적 리더십 역량과 창의력을 평가하도록 했죠. 

결과는 실험실에서의 결과와 동일했습니다. 성별, 근속년수, 교육, 내적동기 수준 등을 통제한 상태에서 분석해 보니 창의적인 성과를 낸다고 인식되는 직원일수록 잠재적 리더십 역량은 부정적으로 여겨졌던 겁니다. 창의적인 리더를 요구하는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인 직원들은 리더로서의 잠재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아직까지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죠. 창의적인 사람은 현상 유지의 관성을 깨뜨리고 아직 증명되지 않은 아이디어들을 제시하는 경향이 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임의적이고 불확실하며 불편하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뮬러는 이런 고정관념 때문에 창의적인 사람들이 리더로서의 잠재력을 부정적으로 평가 받는다고 추측합니다. 뮬러의 연구는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현상을 추구하고 참신하기보다는 상투적인 아이디어를 고수하는 사람이 리더로 선발될 가능성이 높음을 경고합니다. 창의적인 리더를 원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덜 창의적인 사람이 리더로 선호된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기업이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기민한 속도로 변화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부정하고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는 사람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그들을 리더의 위치에서 알게모르게 제외시키려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일 겁니다. 또한 직원들도 리더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튀지 말고' 기존의 규율과 조직 논리를 따라야 한다는 점을 은연 중 깨닫고 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회사는 창의적인 리더를 원한다면서 창의적이지 않은 사람을 리더로 선호하는 모순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참고논문)
Recognizing Creative Leadership: Can Creative Idea Expression Negatively Relate to Perceptions of Leadership Potent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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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는 그저 우연일 뿐이다   

2012. 6. 1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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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그림 중 어떤 것이 더 마음에 드는지 선택해보기 바랍니다. 보다시피 (a)는 두 언덕 사이 정가운데에 나무가 서있고, (b)는 한쪽 언덕에 나무가 치우쳐 서있습니다.


(출처 : The Tell-Tale Brain (명령하는 뇌, 착각하는 뇌)


어떤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집니까?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 여러분들은 (a)보다는 (b)가 더 자연스럽다고 말하고, 벽에 걸 그림을 고르다면 역시 (b)를 선택하겠다고 말하리라 짐작됩니다. (a)가 부자연스러운 이유는 여러 지점이 있는데 왜 하필 골짜기 가운데에 나무가 서 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 때문일 겁니다. (b)처럼 나무가  한쪽으로 치우쳐 자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a)와 (b)의 발생 가능성은 똑같습니다. 두 언덕의 존재와 나무의 위치는 서로 독립적인 사건입니다. 언덕의 위치를 감안하여 나무가 자신이 자랄 자리를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상하게도 (a)보다는 (b)가 더 자연스럽고 더 발생 가능하다고 말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a)나 (b)나 모두 우연일 뿐입니다. (a)라고 해서 더 우연이라고 여길 이유가 없죠.

위 사례는 어렸을 적에 미술 선생으로부터 '언덕 사이 중간에 나무를 두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라고 핀잔을 들었다는 뇌과학자 V.S. 라마찬드란의 일화입니다. 그는 (b)를 선호하는 경향이 '우연의 일치'에 대한 우리의 혐오에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로또 번호를 택할 때 1, 2, 3, 4, 5, 6 이 나올 확률이나 2, 16, 21, 24, 33, 42 이 나올 확률이나 모두 동일한데도, 전자를 우연의 일치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왠만하면 후자의 번호를 택하려 하죠.

우연의 일치라고 보여지는 현상은 우연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경우 중 하나일 뿐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두거나 혐오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엇이 우연의 결과인지 필연의 결과인지를 분명히 가릴 수 있는 능력도 환경 변화를 올바로 읽어내야 할 전략가에게 요구되는 역량입니다. 우연의 일치는 그저 우연일 뿐입니다.


(*참고도서 : The Tell-Tale Brain (명령하는 뇌, 착각하는 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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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와 부하 사이, 갈등의 원인은?   

2012. 6. 1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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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친한 친구가 있다면, 여러분은 그 친구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친구는 여러분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까? 그 친구가 여러분에 대해 아는 것보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잘 안다고 믿습니까? 자신이 자신에 대해 아는 바와 남이 자신에 대해 아는 것 사이에 차이는 인간관계와 조직 생활의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기에 이 질문들에 사람들이 어떻게 대답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에밀리 프로닌(Emily Pronin) 등의 연구자들은 '나는 나에 대해 잘 안다'와 '타인은 나에 대해 잘 안다' 사이의 인식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아보기 위해 일련의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먼저 125명의 참가자들에게 가장 친한 친구를 떠올리게 한 다음, 여러 항목의 질문을 던져 그 친구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아는지 11점 척도로 평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참가자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지를 역시 11점 척도로 평가하도록 했죠. 결과를 분석하니, 친구가 참가자를 안다고 믿는 점수보다 참가자가 친구에 대해 안다고 믿는 점수가 더 높았습니다. 쉽게 말해, 타인은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자신은 타인에 대해 잘 안다고 믿는다는 뜻이었습니다.



프로닌은 이러한 믿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참가자들에게 물 밖에 완전히 드러난 빙산부터 물 속에 완전히 잠긴 빙산까지 모두 10개의 그림을 보여주고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자기 자신의 본 모습이 친구에게 드러난 정도를 가장 잘 표현하는 그림(A)을 하나 선택하도록 했고, 친구의 본 모습이 자신에게 드러난 정도를 가장 잘 나타내는 그림(B)을 또한 선택하도록 했죠. 그 결과, A가 B보다 물 속에 더 깊게 잠긴 모습이었습니다. 친구가 나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보다 내가 친구에게 드러내지 않은 것이 더 크다고 느낀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널 잘 알지만, 너는 나를 그만큼은 알지 못한다'라고 인식하는 것이죠.

좀더 면밀하게 이러한 인식의 차이를 살피기 위해 프로닌은 기숙사 룸메이트 45쌍을 대상으로 후속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자기 룸메이트의 답변 내용을 보지 못하도록 서로 격리된 채 질문에 응답했습니다. 질문의 내용은 수줍음, 불결함, 경쟁력, 리스크 수용 경향 등 다양했습니다. 프로닌은 참가자들에게 문항별로 다음과 같이 4가지 질문을 던지고 9점 척도로 측정하게 했습니다.


나-남 : 당신은 룸메이트가 얼마나 '수줍음을 타는지'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남-나 : 룸메이트는 당신이 얼마나 '수줍음을 타는지'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나-나 : 당신은 당신 자신이 얼마나 '수줍음을 타는지'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남-남: 룸메이트는 그 자신이 얼마나 '수줍음을 타는지'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통계 분석 결과, 내가 나 자신을 아는 정도(나-나)와 남이 나 자신을 아는 정도(남-나)의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나는 나를 잘 알지만, 남은 나를 그만큼은 알지 못한다는 뜻이죠.  '나-나'와 '남-남' 사이에도 차이가 발견되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알지만, 상대적으로 남은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남'과 '남-나' 사이의 차이는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남을 잘 알지만, 남은 나를 그만큼은 알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개인 사이 뿐만 아니라 집단 사이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보수주의자 집단과 진보주의자 집단, 낙태 찬성 집단과 낙태 반대 집단, 남성 집단과 여성 집단 등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우리 집단은 상대 집단을 잘 알지만 상대 집단은 우리 집단을 그만큼은 알지 못한다는 믿음이 나타났습니다.

프로닌의 연구는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 동료와 동료 사이, 팀과 팀 사이에서 곧잘 발생하는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이러한 갈등은 평가 시즌이 되면 가장 극렬하게 표출되죠. 양측이 무언가를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널 잘 알지만, 너는 날 그 정도로는 알지 못한다'는 인식의 차이가 갈등과 불만의 시초가 됨을 짐작케 합니다. 또한, 자신의 의견과 행동에 대하여 타인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를 꺼리거나 거부하는 현상도 이러한 인식의 편향으로 설명됩니다. 상사나 동료가 나의 잘못을 지적하면 '당신이 나에 대해 뭔 안다고 이래라 저래라야? 내가 날 더 잘 안다고!'라고 반발심이 생기기 때문이죠. 갈등이 한번 자리잡으면 이런 인식의 편향이 양측 간에 올바른 정보가 공유되지 못하도록 악순환을 야기하는 까닭에 그 갈등이 해소되기가 아주 어려워집니다.

해법은 '나는 널 잘 알지만, 너는 날 그 정도로는 알지 못한다'는 편향이 존재함을 양측이 순순히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대화를 통해 어떤 부분에서 서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하는지 파악함으로써 오해를 푸는 것이 최선입니다. 인식의 차이를 인정하고 교정하는 과정이 없으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를 증명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거나, 남이 자신을 평가하거나 조언하는 행위를 삐딱하게 받아들일 겁니다.

'나는 널 잘 알지만, 너는 날 그만큼은 알지 못한다'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나는 널 잘 알지 못하고, 너도 날 잘 알지 못한다'라고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 직원과 직원 사이, 팀과 팀 사이의 갈등을 풀 수 있지 않을까요?


(*참고논문)
You Don't Know Me, But I Know You: The Illusion of Asymmetric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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