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나는 이런 책을 읽었다   

2012. 1. 3. 09:43
반응형



2011년 12월에 저는 모두 7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많이 읽은 것 같은데, 생각보다 많지 않았군요. ^^ 2011년에 읽은 책을 모두 헤아려보니, 약 80~90권 되는 듯 합니다. 12월이면 다른 달에 비해 책이 쏟아져 나오는데, 제 느낌인지 모르겠으나 예년에 비해 읽을 만한 책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몇 년 전의 책 중에서 미처 읽지 못한 양서를 고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었습니다.

2012년에는 시장에 좋은 책이 꾸준히 출판되기를 바라고, 그 덕에 저도 마음의 양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항상 책을 가까이 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SNS다 뭐다 해서 시간을 빼앗기는 때가 많으니까요.

여러분도 즐거운 독서로 2012년을 활짝 여시기 바랍니다.



어댑트

어댑트 : 미래의 불확실성을 타개하기 위한 전략으로 '적응'의 중요성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는 책. 다양한 돌연변이 전략을 창출하고, 각각의 돌연변이 전략을 실험해 가면서, 실패로부터 뭔가를 배우는 것이 적응의 과정입니다. 적응은 조직을 경영하는 자들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마인드라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모든 것의 가격

모든 것의 가격 : 생명, 여성, 공짜, 문화, 신앙, 미래 등 여러 가지의 대상의 가격은 얼마일까, 라는 흥미로는 주제를 풀어가는 책입니다. 경제학 교과서가 수요-공급이라는 딱딱한 관점으로 가격을 서술하고 있지만, 이 책은 가격의 본래 기능인 교환이라는 관점으로 금기시되는 대상의 가격을 산출해 갑니다. 요즘 행동경제학 책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데, 이 책은 주류 경제학과 행동경제학 사이의 한 지점을 견지하며 가격의 매커니즘을 탐색해 갑니다.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미적분 다이어리

미적분 다이어리 : 고등학교 때 미적분 때문에 골치깨나 아팠던 사람이 많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당황케 하는 것은 그토록 어렵게 배운 미적분이 사회생활에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쓰지도 않을 것을 왜 배우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여러분도 해봤을 겁니다. 이 책은 실생활에서 미적분이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그것을 깨달음으로써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자가 자신의 의도를 얼마나 달성했는지는 의문으로 남습니다. 


선택의 과학

선택의 과학 : 이 책은 뇌과학을 통해 의사결정의 비밀을 이야기합니다. 기능성 자기공명장치(fMRI)가 뇌에서 벌어지는 의사결정의 과정을 어떻게 탐구하고 있는지를 서술합니다.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용어들이 너무 전문적이고 서술 방식이 딱딱하여 쉽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뇌과학에 관심이 많고 배경지식이 충분한 사람에게는 즐거운 독서일지 모르겠으나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제 탓이겠죠? ^^


당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심리실험 45가지

당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심리실험 45가지 : 심리학의 여러 분야에서 이루어진 고전적인 실험들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하는 책입니다. 짤막하게 여러 가지 실험을 소개하다보니 내용이 깊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지만, 이 책을 통해 심리학의 기본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심리학 입문자들이나 애독가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입니다.


앨빈 토플러와 작별하라

앨빈 토플러와 작별하라 : 제목만 보면 앨빈 토플러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책 같지만, 미래를 예측에 실패하면서도 꿋꿋하게 새로운 예측을 끊임없이 내놓는 전문가들을 대표하는 인물로 책의 제목에 등장할 뿐입니다(영어 원서의 제목은 다릅니다). 이 책은 미래 예측이 얼마나 오류 투성이인지 지적하면서 전문가들의 예측에 휘둘리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이 책을 통해 미래를 어떤 관점으로 봐야할지 다시금 마음을 새로이 할 수 있습니다. 꼭 읽어 보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한호림의 진짜 캐나다 이야기

한호림의 진짜 캐나다 이야기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로 유명한 저자가 40대 초반에 캐나다로 이민 가 살면서 느끼고 경험했던 일을 대화하듯 편안한 문체로 풀어가는 책입니다. 전반적으로 캐나다의 문화와 삶의 질을 높이 평가하는 이 책을 읽노라면 캐나다에 살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라는 의심도 한편에서 자라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자처럼 한국에서의 안정된 기반을 버리고 갈 만큼 캐나다가 행복한 낙원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책 내용은 재미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면 좋을 겁니다. 단, 캐나다에 대한 환상은 가지질 않기를....


반응형

  
,

자신만만한 전문가를 믿으면 안 되는 이유   

2012. 1. 2. 12:32
반응형



자칭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이 여러분이 어떤 예측치를 제공하면서 '이 예측이 맞을 확률은 100%나 된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라고 장담하면, 여러분은 그 예측을 믿고 따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반면, 다른 전문가가 자신의 예측치를 말하면서 '이 예측치가 사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60% 정도이다'라고 덧붙인다면, 여러분은 그의 예측에 귀를 기울일까요? 자신의 예측치를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는 전문가와 소심하게 드러내는 전문가, 이 둘 중에 여러분은 누구의 말을 더 신뢰하고 경청하게 될까요?

카네기 멜론 대학의 조셉 래드제비크(Joseph Radzevick)와 돈 무어(Don Moore)라는 심리학자들은 98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 실험은 참가자들에게 사진 속 사람의 몸무게를 예측하여 맞히도록 하는 간단한 과정이었지만, 예측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사람들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에 충분했습니다.



래드제비크와 무어는 실험 참가자들을 '결정자(Guesser)'와 '조언자(Advisor)'로 나눴습니다. 조언자들은 사진 속 사람의 몸무게를 10파운드 단위로 예측한 다음, 그 예측치에 자신의 자신감 수준을 퍼센테이지로 표시했습니다. 예컨대 '사진 속 사람의 몸무게가 170~179파운드일 가능성이 70%가 된다'라고 적어야 했죠. 조언자들은 이러한 예측치를 사진 한 장에 대해 최대 3개씩 내놓을 수 있었는데, 자신감의 수준은 모두 합해 100%가 되어야 했습니다.

결정자들은 사진 한 장에 제시될 때마다 4명의 조언자들이 제시한 자신감 수치만을 보고 누구의 조언을 따를 것인지 선택했습니다. 조언자들은 결정자들이 자신을 얼마나 많이 선택할지에 따라 돈을 받았고, 결정자들은 몸무게의 실제값을 맞힘에 따라 보상을 받았습니다. 

실험의 결과는 흥미로웠습니다. 조언자들은 모두 8장의 사진을 제시 받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감의 최대치가 상승하는 경향이 발견되었습니다. 첫 번째 사진이 제시될 때는 평균 52%였으나 8번째 사진이 제시될 때는 평균 65%로 상승했습니다. 이 결과는 사진 속 인물의 몸무게를 추정하는 간단한 과제를 많이 수행한다는 것이 그 과제에 대한 자신감의 수준을 높인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런 경험의 축적과 그로 인한 자신감의 상승이 실제로 예측의 적중률을 높혔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신감의 수준은 높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측의 적중률은 결코 높아지지 않았으니까요. 자신감과 예측력은 상관성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자들은 예측력보다는 조언자들이 얼마나 자신감이 충만한가에 따라 영향을 받았습니다. 즉, 자신감 넘치는 조언자의 의견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 것이죠. 예컨대 '170~179파운드에 90%, 180~189파운드에 10%'라고 의견을 낸 조언자가 '160~169파운드 30%, 170~179파운드 40%, 180~189파운드 30%'라고 추정한 조언자보다 선택될 가능성이 높았던 겁니다. 이렇게 결정자들이 자신만만한 조언자를 선택하는 경향이 높자 조언자들은 처음에 보였던 신중함을 버리고 점차 과감하게 예측하려는 추세로 이어집니다. 그래야 다른 조언자들보다 더 자주 선택되어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보상에 대한 경쟁이 과도한 자신감을 부추긴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무언가를 자신만만하게, 100%에 가까운 가능성으로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 말이나 수치가 적중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반대로 어떤 예측치를 신중하게(나쁘게 말해, 우유부단하게)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틀리리라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 합니다. 의사결정을 할 때, 더군다나 그 의사결정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을 때, 자신만만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예견을 피력하는 사람의 말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것이 우리의 행동방식입니다.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저렇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가 있다면, '면피하려고 한다'고 폄하하거나 그 사람을 무능한 전문가로 분류해 버립니다. 이것 역시 전문가들로 하여금 다른 전문가들보다 과감해지도록 자극하는 요인이 됩니다.

우리가 접하는 여러 종류의  많은 전문가들이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의견이 좀더 많은 매체나 사람들에 선택되기를 바랍니다. 선택을 받아야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려면 자신의 의견이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야 합니다. 설득력은 전망이나 예측의 적중률을 통해 높아질 수 있겠죠. 하지만,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전문가들의 예측력은 일반인들보다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전문가들이 쌓아온 지식과 경험에 비하면 그 차이가 아주 미미하다고 합니다. 즉 경쟁력을 갖추는 데 있어서 예측의 적중률은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없고 되지도 못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채택하는 것이 바로 자신만만함입니다. 갖가지 근거를 끌고 와서 자신의 의견이 진짜 맞다고, 절대 틀릴 수 없다고 강한 어조로 이야기할수록 사람들의 선택을 받기가 쉽습니다. 게다가 사람들로부터 높은 신뢰까지 받으니 자신만만함은 전문가가 살아남는 데 필요한 필수조건이 되고 맙니다. 

어떤 사람의 자신감이 높으면 그 사람이 옳을 거라고 믿는 경향을 '자신감 휴리스틱(Confidence Heuristic)'이라고 부릅니다. 이 휴리스틱은 머리 속에서 무의식에 가깝게 일어나는 비합리적 현상이라서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을 이끌 때가 매우 많습니다. 

201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장미빛 희망으로 출발해야 할 2012년이 북한의 정세 변화, 유럽발 금융위기의 지속, 국내 정치 상황의 혼돈 등으로 매우 불확실한 것이 사실입니다. 점집만이 호황을 누리는 세태가 작금의 불확실성을 대변합니다. 딱 부러지게 '기면 기다, 아니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점쟁이를 용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자신만만한 전문가들(하지만 실력은 그리 높지 않은)에게 귀가 솔깃해잡니다.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신뢰하여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경계해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참고논문 : Competing To Be Certain (But Wrong): Social Pressure and Overprecision in Judgment )
 
반응형

  
,

카운터 펀치보다는 잽을 날려라   

2011. 12. 30. 12:32
반응형



모든 생물은 진화합니다. 생존을 위해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진화의 매커니즘은 생태계의 '보이지 않는 손'입니다. 진화의 힘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힘의 위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진화의 속도가 느리기 때문입니다. 아니, 진화의 속도가 느리다기보다는 우리 인간이 그 과정을 지켜보기에는 수명이 짧기 때문이겠죠.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사실 이 용어는 부적절하지만...)들의 진화 과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세대와 세대를 거쳐 오랜 기간 관찰해야만 하지만, 박테리아와 같은 생물들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 동적으로 진화가 일어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인간에 비해 한 세대의 기간이 매우 짧기 때문이죠. 거피(Guppy)라고 불리는 작은 물고기도 진화의 양상을 관찰하기에 좋은 생물입니다.



거피는 몸 길이가 암컷이 약 6cm, 수컷이 약 3cm 정도 되는 작은 물고기인데, 수컷의 경우 몸에 화려한 무늬가 많고 색채 또한 다양하여 관상용으로 많이 사육되는 물고기입니다. 하지만 화려한 몸은 포식자 물고기의 눈에 자주 띄기 때문에 생존에 불리한 요소입니다. 존 엔들러(John Endler)라는 생물학자는 '선택압'을 가하면 거피의 화려한 무늬가 어떻게 변할지 알고 싶었습니다.

엔들러는 18곳에서 거피를 채취하여 자신이 만든 온실 내의 인공 연못으로 옮겨 6개월 동안 키웠습니다. 6개월이란 기간은 거피에게 상당히 긴 시간이라서 그 시간 동안 나이 든 개체는 죽고 다시 새로운 개체가 태어나면서 여러 세대를 거치게 되었죠. 엔들러는 이렇게 사육한 거피들을 각각 격리된 10개의 연못으로 분리시켰습니다. 그런 다음, 그 중 4개의 연못에는 시클리드(Cichlid)라 불리는 포식자 한 마리를 넣어 거피와 함께 살도록 했고, 다른 4개의 연못에는 리블루스(Rivulus)라 불리는 물고기 여섯 마리를 함께 넣었죠. 리불루스는 부유물을 먹고 살기 때문에 거피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물고기입니다. 나머지 2개의 연못은 통제군으로서 거피들만 살도록 했습니다.

엔들러는 6개월, 11개월, 20개월 시점에 각 연못에서 수컷 거피들을 추출하여 몸에 있는 점의 숫자를 세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시클리드(포식자 물고기)와 같이 자란 거피들의 점의 개수가 점점 줄어드는 패턴이 발견되었습니다. 반면, 리불루스와 함께 자란 거피들과 자기네끼리 자란 거피들의 몸에서는 점의 개수가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시클리드 한 마리의 존재로 인해 20개월 동안 몸의 점이 점점 사라지는 진화의 과정이 포착된 것입니다.

엔들러는 인공적인 조건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고 의심하고, 야생에서 사는 거피들을 관찰해보기로 했습니다. 결과는 위의 인공적인 실험과 같았습니다. 엔들러는 시클리드와 같이 살던 거피 100여 마리를 리불루스만 서식하는 냇물로 옮겨 봤습니다. 2년이 지나고 그 냇물로 다시 찾아간 엔들러는 거피 몸에 점의 개수가 평균 10개에서 13개 정도로 증가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점의 개수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몸의 색깔이 화려해진 현상도 발견했죠.

진화 프로세스가 거피로 하여금 화려한 몸으로 암컷을 유혹하여 얻는 유전적 이득과 그로 인해 포식자에게 잡아 먹히는 유전적 손실(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하지 못하는) 간의 균형을 재빨리 잡아가면서 생존이라는 지상목표를 달성케 하는 것이죠. 이처럼 포식자의 출현이라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재빨리 진화 프로세스를 작동하는 거피의 생존법은 생태계의 보편적인 법칙입니다.

여러분이 시클리드와 함께 사는 거피라면 어떤 생존전략을 취해야 할까요? 시클리드의 위협으로 살아남기 위한 거피의 진화는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피들이 스스로 진화 프로세스를 인식하고 계획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시클리드에게 금방 눈에 띄는 거피들은 잡아먹히고 어쩌다가 화려하지 않은 몸을 타고난 거피들은 살아남아서 그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줬기 때문이죠. 거피들 스스로 적응했다기보다는 '적응을 당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스스로 적응할 수 있는 '의지'가 있습니다. 여기서 '적응의 의지'라 함은 시클리드와 같은 위험한 존재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정교한 전략을 수립하여 실행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물론 그러면 좋으련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 항상 꼭맞는 전략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오늘 유효한 전략이 내일이면 휴지조각이 되는 현상을 매번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한때 각광 받던 회사가 구시대적으로 변한 전략을 끌어안고 추락하는 기업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거기서 기업 경영의 교훈을 찾으라고 강요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진화의 관점에서 적응이란 이런 것입니다. 먼저 몇 가지의 새로운 것을 시도해 봅니다. 한 가지가 아니라 반드시 여러 가지를 끊임없이 시도해야 합니다. 생명체가 진화의 과정에서 생존을 이어가는 힘이 환경에 적응력이 높은 돌연변이를 끊임없이 창출하는 데 있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부터 성공 가능성이 높은 '돌연변이'는 없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이러이러하니 이 전략이 가장 좋을 거야'라는 전통적인 전략 수립 방법은 '기업 생태계'의 진화를 너무나 얕보고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자초하는 만용입니다. 수많은 돌연변이들은 실패로 끝나고 그 중에서 단 하나의 돌연변이만이 생명체의 생존을 보장하는 해법으로 선택되듯이, 다양한 시도 끝에 가장 적합한 전략이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도록 해야 합니다.

요컨대, 다양한 여러 전략들을 실험하라는 말입니다. 기업의 사활을 걸겠다면서 하나의 전략에 올인하는 행동은 생존 아니면 절멸이라는 도박과 같습니다. 이런 러시안 룰렛 게임의 유혹에 빠져들기보다 전략의 실패 가능성을 인정하고, 실패하더라도 피해가 덜 가는 방식으로 여러 개의 전략들을 실행에 옮기는 '치고 빠지기'가 현명한 행동입니다. 카운터 펀치보다는 수차례 잽을 날려야 합니다. 직전에 날렸던 잽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으면서 적합성이 증명된 전략을 점진적으로 찾아내 그것에 집중하는 방식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취해야만 하는) 올바른 적응의 과정입니다. 이것이 기업이 환경에 적응해 간다는 말의 진짜 의미입니다.

거피의 예에서 봤듯이 생명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진화합니다. 생명체는 진화의 흐름을 거부하지 않으며 거부할 의지도 없습니다. 기업은 어떻습니까? 진화의 흐름을 거부하는 기업, 옛날의 달콤한 환경을 그리워하는 기업, 스스로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그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기업 생태계에서 그런 기업들은 제일 먼저 자연선택되고 말, 겉만 화려한 거피 같은 존재입니다.

적응하지 않는다면 적응 당합니다. 여러분의 회사는 어떻습니까?

(*참고논문 : Natural Selection on Color Patterns in Poecilia reticulata )
 
반응형

  
,

전문가들도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2011. 12. 29. 12:00
반응형



여러분은 평소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지식과 반대되는 결과를 접할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그 반하는 결과가 그냥 제시된 것이 아니라 엄정한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나온 것이라면, 여러분은 자신의 신념을 버리거나 의심하게 될까요, 아니면 여전히 믿음을 고수할까요? 우리는 보통 '나는 객관적인 사람이야'라고 스스로를 평가합니다. 그래서 철저한 조건과 방법을 통해 산출된 객관적인 결과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수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무엇이든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운 사람이라고 자신을 평가하죠.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마이클 마호니(Michael J. Mahoney)라는 학자는 교묘한 실험을 실시함으로써 '나는 객관적인 사람이야'라고 자평하는 사람들의 믿음이 얼마나 취약한지, 자신이 평소 가지고 있는 신념이 사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마호니가 실험 대상으로 삼은 자들은 75명의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이었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이란 간단히 말해서 어떤 외부 자극(보상과 처벌 등)을 지속적으로 가하면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고 원하는 행동 패턴을 강화하고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심리학의 분파입니다. 쥐로 하여금 지렛대를 눌러 먹이를 먹도록 훈련시킨 B. F. 스키너가 행동주의 심리학을 대표하는 학자였죠.

마호니는 75명의 행동주의 심리학자에게 학술지에 게재될 예정인 논문 하나를 읽고 그 논문의 질과 학술잡지 게재 여부를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그 논문에는 아이들에게 나무 퍼즐 놀이와 책 읽기를 할 때 보상을 하느냐에 따라 그 두 가지 활동에 아이들이 계속 흥미를 느끼는지의 여부를 실험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만약 그 논문이 보상을 통해 두 가지 활동에 대한 흥미가 계속 유지됐다는 결과를 담고 있다면,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에게는 '마음에 쏙 드는' 논문일 겁니다. 반대로 보상이 오히려 놀이에 대한 아이들의 흥미를 떨어뜨린다는 논문이라면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의 심기는 꽤 불편하겠죠? 허나 그 논문은 엄밀한 데이터를 담고 있기에 실험 대상자인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내용이더라도 그 논문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과학자로서 지성과 양심이 있다면 말입니다.

마호니는 동일한 주제와 동일한 실험 방법을 담았지만 실험 결과가 다르게 조작된 5가지 버전의 논문을 만들었고, 심리학자들을 5개의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런 다음, 각 그룹에게 5가지 버전 중 하나를 읽고 논문의 질과 잡지 게재 여부를 평가하여 45일 안에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예를 들어, 1그룹에게는 행동주의 심리학을 뒷받침하는 논문을 보냈고, 2그룹에게는 데이터만 살짝 바꿔 상반되는 내용의 논문을 보냈던 것이죠(나머지 3개 그룹은 비교 목적으로 설정. 자세한 사항은 이 글 맨 아래의 참고논문 참조). 

수거된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의 평가 결과는 전문가들도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보통 사람들의 편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뚜렷하게 나타냈습니다. 동일한 실험 방법론을 적용한 논문이기에 객관적인 눈을 가진 학자라면 편견 없이 두 가지 논문을 거의 비슷한 점수로 평가해야 옳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일치하는 논문은 높게 평가하고 학술지에 게재해도 무난한 수준이라 평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믿음과 상반되는 논문은 질이 낮고 실험 방법에도 문제가 있으며 학술지에 게재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나타냈습니다.

마호니의 실험으로부터 우리는 전문가들이 무언가를 평가할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관적 편향이 강하게 개입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믿는 것만 보이고 믿는 것만 믿는다는 '확증 편향'은 보통 사람들보다 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의 수준이 높은 전문가들에게도 만연된 현상이라는 점을 느끼게 합니다. 객관적인 판단이라는 것이 얼마나 달성 불가능한 목표인지 실감케 합니다.

알게 모르게 확증편향에 좌우된다면 우리가 내리는 판단이나 평가가 얼마나 취약한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 내려진 평가를 고수할 것이 아니라 '내 판단에 무슨 문제는 없는가? 나의 주관성이 개입되지 않았나?'라는 질문을 통해 수정해 가야 합니다. 또한 '나는 객관적인 사람이다'라며 자신감을 보이는 사람의 말을 한번 정도는 걸러서 들어야겠죠. 오히려 '나는 결코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의 판단을 되돌아볼 때 비로소 주관적 편향에서 벗어나 객관적 판단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죠.

상사가 부하직원의 성과와 역량을 평가할 때, 신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할 때,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을 도입할 때, 확증편향은 도처에서 우리의 객관적 판단에 검은 안대를 씌웁니다. 그 검은 안대는 벗기려 해도 절대 벗겨지지 않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현명할까요? '이쪽으로 가는 게 맞으니' 한 방향을 정해서 뚜벅뚜벅 걸어 가야할까요, 아니면 조금씩 앞을 더듬으며 나아가야 할까요? 후자의 행동이 확증 편향이라는 검은 안대의 방해로부터 우리의 판단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겁니다.

(*참고논문 : Publication Prejudices: An Experimental Study of Confirmatory Bias in the Peer Review System )


반응형

  
,

日 택배업체, 경찰서를 벤치마킹한 까닭은?   

2011. 12. 28. 11:53
반응형



1971년에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은 일본 야마토운송의 오구라 마사오 사장은 화물운송 사업 위주였던 회사의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택배 사업으로 확장해 야마토운송을 급성장시켰다. 그의 성공 비결 가운데 하나는 경찰서 벤치마킹이다. 택배사업과 전혀 무관한 것 같은 경찰서에서 그는 성공의 비법을 찾아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95호(2011년 12월 15일자)에 실린 오구라 사장의 ‘창조적 모방’ 사례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경영자들에게 좋은 교훈을 준다.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오구라 사장은 택배 서비스를 일본에 처음으로 도입하면서 영업소 네트워크 등 인프라를 어떻게 구축해야 할지 좀처럼 감을 잡지 못했다. 영업소가 지나치게 많으면 운영비가 너무 많이 들 것이고, 반대로 적으면 배달 시간이 길어져 고객들에게 외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업소를 어디에 설치해야 할지도 고민거리였다.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문제였지만 택배 서비스로 한정됐던 사고의 틀을 벗어나니 전혀 새로운 대안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택배영업소처럼 전국 네트워크를 갖춘 다른 산업을 모방하기로 했다. 먼저 그는 당시 일본 내 우편물 취급소의 수를 확인해 봤다. 그 수는 5000개가 넘었다. 그러나 오구라 사장은 우편집배국이 소포를 취급하긴 했지만 다른 종류의 우편물들을 더 많이 배달하기 때문에 택배영업소 수가 이처럼 많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 그가 생각해낸 것은 중학교였다. 당시 중학교 수는 1만1250개였다. 그러나 중학교도 보통 걸어서 통학할 수 있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자동차를 이용한 택배 서비스의 참고 대상이 되기는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참고한 대상은 경찰서였다. 경찰서는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인구밀도와 거리를 잘 따져서 자리를 잡았다. 게다가 경찰들은 차량으로 관할지역을 순찰했다. 오구라 사장은 전국의 경찰서 수와 비슷한 규모로 1200개의 영업소를 개설했고 영업소의 위치도 경찰서를 참고하여 결정해 합리적 비용으로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새 일을 시작할 때 참고할 대상을 찾지 못해 의사결정에 애를 먹는 사례가 많다. 이때 사고의 범위를 익숙한 영역에만 한정시키지 말고 다른 영역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해답은 이미 다른 곳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글 : 유정식 인퓨처컨설팅 대표

(*본 글은 '동아 비즈니스 리뷰' 95호(2011.12.9)'에 실린 칼럼입니다.)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