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로 창의성을 높인다는 생각은 망상   

2012. 1. 2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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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성과를 평가하겠다고 하면 그 사람의 성과는 높아질까요, 낮아질까요? 올바로 평가만 이루어진다면 일반적으로 평가는 동기를 유발하여 성과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가져다 줍니다. 헌데, 그 성과가 숙련된 기술이나 풍부한 지식이 아니라 '발견적인' 창의력을 요구하는 경우에도 평가가 성과를 향상시키는 장치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까요?

테레사 아마빌레(Teresa M. Amabile) 등 3명의 심리학자들은 브랜다이스 대학의 여학생 40명을 대상으로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창의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연구자들은 학생들에게 주어진 재료만을 써서 개인별로 콜라주 작품을 만들어 보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 다음, '평가 여부'와 '청중 여부'라는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모두 4가지 실험 조건을 설정했습니다.



먼저 '평가-청중' 조건에 무작위로 배정된 학생에게는 한쪽에서만 보이는 거울 뒤에 미술가 4명이 앉아 자신이 콜라주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일러줬습니다. '평가-무청중' 조건의 학생들에게는 콜라주 작품이 완성되면 미술가들이 평가를 내리겠지만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지는 않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무평가-청중' 조건의 학생은 자신들의 작품이 평가될 거라는 일체의 언급을 듣지 않았습니다. 연구자들은 그에게 그저 콜라주를 만들고 난 후의 기분을 알아보기 위한 거라고 거짓으로 설명했죠. 다만, 한쪽에서만 보이는 거울 뒤에 다른 피실험자들이 앉아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콜라주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본다고 말했습니다. '무평가-무청중' 조건의 학생은 평가에 대한 언급도, 자신을 지켜보는 청중의 존재도 듣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콜라주 작품을 다 만든 후에 10명의 미술가들에게 평가를 의뢰했습니다(창의성 점수 신뢰도 0.93). 그랬더니 청중의 유무와 관계없이 평가를 예상하지 않은 집단의 창의성 점수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평가-무청중' 조건의 학생들은 창의성 점수가 24점에 근접한 반면, '평가-무청중' 그룹의 점수는 19점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즉 미술가가 평가하리라 예상한 피실험자들은 평가 받을 것에 집중력이 분산된 까닭에 창의성이 떨어지는 작품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콜라주 만들기가 끝나고 연구자들이 '평가' 그룹('평가-청중', '평가-무청중')의 학생들에게 돌린 설문 결과에서도 평가의 부정적인 측면이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무평가' 그룹보다 불안감을 많이 느꼈다고 보고했고 작품을 만드는 동안 미술가의 평가 결과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고 말했습니다.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주의를 산만하게 만든 것이죠. 테레사 아마빌레가 수행한 또 다른 실험들에서도 평가가 창의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규명되었습니다.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정보사회에서 소셜 네트워크 사회로 진화되면서 개인과 조직에서 창의성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창의성이란 절차와 규칙을 따르기만 하면 누구나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과연 어떻게 해야 개인의 창의성을 자극하고 그것이 고객의 의표를 정확히 찌를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로 이어질지 여러 조직들은 고민을 거듭합니다. 업무 공간의 형태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다든지,업무 스타일과 업무 시간을 개인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한다든지의 해법들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절차와 규칙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기업에서 수용하기에는 문화적 장벽이 아직 높습니다. 그러한 조치가 직원들의 방종을 야기해 통제를 와해시키거나 제품의 하자로 이어질지 염려하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몇몇 기업은 창의성을 평가하여 보상이나 승진에 반영하겠다는 악수(惡手)를 두고 맙니다. 평가가 악수인 이유는 위 실험에서 보듯이 평가가 창의성을 제고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창의성을 좀먹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평가가 필요없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절차적이며 기술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데에 평가가 나름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가가 능사는 아닙니다. 조직이 창출해야 할 성과가 창의성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창의성에 따라 조직의 성패가 결정된다면, 평가를 통한 창의성 제고는 헛된 망상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평가해야 할 영역과 평가하지 말아야 할 영역을 올바르게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뭔가를 도입하여 추진하고자 할 때 산업시대의 틀에서 사고하는 경영자들 대부분은 ‘하면 된다’라는 기치에 몰두하여, 조직의 창의성을 높이는 데에도 강압적이면서도 중앙집권적인 방법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산업시대의 성공요소였던 ‘빨리빨리’ 문화가 창의성 향상에도 먹히리란 환상을 갖습니다. 평가라는 통제적인 장치로부터 나온 아이디어는 기술적으로는 좋아보여도 전혀 창의적이지 못합니다. 그저 누군가가 먼저 나선 길을 뒤늦게 쫓아가려고 발버둥치는 ‘순응’에 지나지 않습니다.

'발견적 창조'에 평가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발목만 잡을 뿐입니다.

(*참고논문 : Social influences on creativity , Evaluation and performance: A two-edged knif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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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직원들을 비협조적으로 만든다   

2012. 1. 2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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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린 보(Kathleen Vohs)등의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돈이라는 이미지를 주입시키면 그들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실험하기로 했습니다. 연구자들은 모두 4가지 실험 조건을 설정했습니다. 첫번째 실험 조건에서 연구자들은 피실험자들에게 모노폴리 게임을 하도록 했는데, 게임 머니를 많이 주는(4000달러) 경우, 적게 주는 경우(200달러), 주지 않는 경우로 조건을 세분했습니다.

두번째 실험 조건에서는 피실험자들에게 돈이 풍족한 삶이나 돈이 부족한 삶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했고, 세번째 실험 조건에서는 돈과 관련된 문장이나 돈과 별 상관없는 문장을 각각 구성하도록 했죠. 마지막 네번째 실험 조건에서는 돈을 연상시키는 그림이나 중립적인 그림을 피실험자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4가지 실험 조건에서 전자에 해당하는 조건들이 피실험자들로 하여금 돈이라는 이미지를 후자에 비해 강하게 주입시키는 조건이었습니다(심리학에서는 이렇게 무언가를 은연 중 주입시키거나 무언가에 대한 관념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것을 프라이밍(priming)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돈에 관한 여러 가지 프라이밍 조건을 설정하고서 연구자들은 피실험자들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행동의 차이를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피실험자들이 지나갈 때 공모자가 실수를 가장하여 27개의 연필을 떨어뜨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위의 4가지 실험 조건에서 돈에 대해 강하게 프라이밍된 피실험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들에 비해 적은 수의 연필을 주워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날말 퍼즐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척하는 공모자가 설명을 부탁했더니 돈의 이미지를 주입 받은 자들보다 그렇지 않은 자들이 120% 정도 오랜 시간을 들여 공모자에게 설명하는 모습이 관찰되었습니다.

피실험자들에게는 수고료로 2달러를 지불했는데, 연구자들은 그들에게 그 돈을 대학의 장학 기금에 기부하면 어떻겠냐며 제안했습니다. 그랬더니 돈에 프라이밍된 피실험자들은 그 돈의 39%를 기부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돈으로 프라이밍되지 않은 대조군의 피실험자들은 67%를 기부하겠다고 말했죠. 돈에 관한 이미지가 주입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인색해짐을 드러내는 결과였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실험에서 발견된 사실을 좀더 확장하기로 하고, 피실험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고 컴퓨터 앞에 앉아 3가지 종류의 스크린 세이버(화면보호기) 중 하나를 바라보도록 지시했습니다. 각각 물고기들이 노니는 스크린 세이버, 아무것도 없이 까맣게만 보이는 스크린 세이버, 지폐가 흘러다니는 스크린 세이버였습니다. 그런 다음, 연구자들은 피실험자들에게 다른 참가자가 들어와 대화할 시간을 줄 테니 그 사람이 앉을 의자를 가져다 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실험의 목적은 피실험자가 다른 참가자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가 아니라, 피실험자가 앉은 의자와 다른 참가자를 위해 가져다 놓은 의자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지폐가 떠다니는 스크린 세이버를 본 피실험자들은 다른 스크린 세이버를 본 사람들에 비해 의자를 15인치 정도 멀리 위치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연구자들이 피실험자들에게 다음에 수행하게 될 과제를 혼자 수행할지 아니면 다른 사람과 같이 수행할지를 물었을 때, 지폐가 떠다니는 스크린 세이버를 본 피실험자들의 16~17%만 같이 일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다른 종류의 스크린 세이버를 본 피실험자들은 70~80%나 같이 과제를 수행하겠다고 말했죠. 이 밖에 여러 가지 세부 실험을 진행했는데 하나 같이 돈에 대해 강하게 프라이밍된 피실험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들에 비해 타인에게 도움을 덜 청하고 혼자 일하려고 하는 모습이 관찰되었습니다.

이 실험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돈이 사람들을 이기적으로 만든다는 것일까요? 연구자들은 돈이 이기심을 증폭시킨다는 의미로 자신들의 실험이 해석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왜냐하면 돈이 이기심을 키운다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함으로써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하는데, 실험 결과에서는 돈에 프라이밍된 사람일수록 혼자 일하길 원하고 도움을 덜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이 실험이 돈에 대한 이미지 주입(프라이밍)은 이기심이 아니라 개인주의적이고 '자기 충족적(self-sufficient)'인 마인드를 강화한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돈이라는 이미지가 공정성을 강조하는 시장경제와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자극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자기 충족적 마인드의 강화가 조직 운영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요? 능력에 따른 연봉, 성과에 따른 성과급의 차등 지급 등 조직 구성원들이 돈이라는 이미지에 강하게 노출될수록 자기 충족적(개인주의적)이 될 가능성이 높음을 위 실험이 시사합니다. 직원들과 부서 간의 협력이 필수적인 조직에서 성과급 등 자기 충족적 마인드를 프라이밍시키는 장치가 더해지거나 지속적으로 강조될 경우, 각자 맡은 임무 범위를 뛰어넘으려고 하지 않아 협력의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직원들이 돈 때문에 이기적으로 변하기 때문이 아니라, 직원들로 하여금 돈이 상징하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상기시켜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 성과 차등을 강조하는 것이 '사회 규범(social norm)'보다는 '시장 규범(market norm)'을 자극하는 까닭이죠.

구성원들의 시장 규범이 자극 받으면 다른 이들로부터 협력이나 자발적인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칼 멜스트룀(Carl Mellström)과 마그누스 요하네손(Magnus Johannesson)이 수행한 연구 결과에서도 증명된 바입니다. 그들은 고텐부르크에 위치한 지역헌혈센터에서 혈액 기증에 의향이 있는 사람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스웨덴에서는 헌혈하려면 그 전에 먼저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고 약 한 달이 지나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통보를 받은 후에야 헌혈할 수 있습니다.

멜스트룀과 요하네손은 사람들에게 헌혈을 위해 건강검진을 받을 의향이 있는지 물었는데, 질문의 조건을 세 가지로 달리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헌혈은 자발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헌혈자가 되기 위한) 건강검진을 신청한다고 해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두 번째 그룹에게는 건강검진의 대가로 50크로노르(약 7달러)를 주겠다고 했고, 세 번째 그룹에게는 건강검진 후 50크로노르를 받고나서 그 돈을 스웨덴의 소아암 자선단체에 기부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험 대상자 중 남성(119명)들은 그룹 간에 건강검진 신청률의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나타나지 않았으나, 여성(153명)들은 그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아무런 보상이 없다는 말을 들은 여성들은 52퍼센트나 건강검진을 신청했지만, 보상을 약속 받은 여성들은 겨우 30퍼센트만 검진 의사를 표했습니다. 돈을 받은 후에 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세 번째 그룹의 여성들은 첫 번째 그룹과 비슷한 53퍼센트의 신청률을 나타냈습니다. 이 실험은 돈이 개입되면 헌혈 지원률이 더욱 늘어날 거라는 주류 경제학의 통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면서 혈액이 돈으로 거래될 때 선행을 베풀려는 내재적 동기는 밀려나고 만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어떤 회사는 부서 간의 협력 여부를 KPI로 측정해서 그에 따라 보상하거나 제재를 가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그 시도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오히려 해악적인지 이 헌혈 실험이 시사합니다.

직원들과 부서 간의 협력을 원한다면, 그리고 협력이 우리 조직의 핵심가치이고 비전 달성의 핵심 추동력이라면, 시장경제라는 공정성과 규칙을 뛰어넘어 서로 양보하고 희생하는 사회 규범을 강조해야 하며 시장 규범을 자극하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직원들이 혼자 일하려고 하고 다른 사람에게 별로 도움을 청하지 않으며 일을 분담하지 않는 조직은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고 공정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평화로움과 공정성이 목표에 도달하려는 조직의 발목을 붙잡고 있을지 모릅니다. 돈이 사람들을 덜 사회적으로 덜 협조적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돈이 더 높은 차원으로 도약하지 못하게 막는 장벽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어떻습니까?


(*참고논문)
The Psychological Consequences of Money 
- Merely Activating the Concept of Money Changes Personal and Interpersonal Behavior 
Crowding Out in Blood Donation:Was Titmuss Right? 
-관련된 YouTube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mW2SByfHp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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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는 정말 '전략적 바보'였을까?   

2012. 1. 1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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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와 마쓰시타 사이에 벌어진 ‘비디오 포맷 전쟁’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니는 베타맥스라는 포맷을, 마쓰시타는 VHS란 포맷을 각각 비디오 녹화 방식으로 채택했는데 결국 VHS가 시장을 석권했다. 이 이야기는 경영의 세계에서 전략의 실패가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베타맥스가 VHS보다 기술 면에서, 비디오 품질 면에서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녹화할 수 있는 분량이 영화 한 편을 다 담기에는 짧아서 영화 보기 좋아하는 소비자들이 외면했다는 이야기, 소비자의 니즈를 사전에 간파하지 못하고 오로지 기술적인 우위에 ‘취해’ 판매자 중심으로 사고했다는 이야기, 개방적인 포맷(VHS)이 폐쇄적인 포맷(베타맥스)보다 여러 VCR 제조업체에 매력적이었다는 이야기 등이 그 내용이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소니는 바보였고 마쓰시타는 영리했다’란 식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진짜로 소니는 ‘전략적 바보’였을까?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런 평가는 소니가 실패했고 마쓰시타는 성공을 거둔 후에 결과론적으로 내린 ‘사후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베타맥스와 VHS가 초기에 시장에 출시될 때는 베타맥스가 시장을 석권하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을 VCR로 녹화했다가 나중에 보려는 니즈가 강했기 때문이다. 사실 소니는 그런 니즈를 잘 파악했기에 그에 딱 맞는 베타맥스 포맷을 내놓은 것이었다. TV프로그램 녹화에는 분량이 특별히 길 필요가 없었고 VHS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테이프 가격은 좋은 화질이라는 장점으로 상쇄할 수 있었다.
 
비싼 테이프 가격, 폐쇄적인 포맷, 필요 이상의 화질 등 전략을 멍청하게 세워서 소니가 실패했다기보다는 소비자들의 니즈가 TV 프로그램 녹화에서 영화 대여를 통한 감상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점을 미리 간파하지 못해서 실패했다고 봐야 정확한 판단이다. 소니는 베타맥스를 출시하기 전에 CTI라는 회사가 영화 대여업에서 크게 실패한 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어 자신들의 전략 방향을 나름대로 옳게 설정했다. CTI 사례를 통해 소비자들이 집에서 영화를 감상하기를 그다지 원하지 않는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반면 VHS의 성공은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인 셈이다. 마쓰시타가 전략을 영리하게 세웠기 때문이 아니다.
 

 
소니가 과거의 사례와 소비자의 니즈를 철저하게 연구해 전략을 세웠는데도 마쓰시타와의 비디오 포맷전쟁에서 패한 이유는 바로 불확실성 때문이다. CTI가 영화 대여업을 시작하고 실패하는 동안 불붙지 않았던 영화 감상 니즈가 갑작스레 커지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이 불확실성이 소니의 실패를 옳게 지적하는 단어다.
 
소니는 베타맥스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1992년에 새로운 레코딩 기술인 MD를 출시했다. 하지만 이 기술 역시 실패하고 만다. 소니는 최근(2011년 7월)에 80분짜리를 제외한 모든 MD의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해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CD보다 작은 크기의 MD는 내구성이 강하고 쉽게 녹음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역시 CD와 후에 나오는 플래시 메모리에 밀리고 말았다.
 
소니가 철저하게 전략을 수립했는데도 MD가 실패한 이유 역시 불확실성이다. 바로 곧이어 인터넷이 일반화되고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소비자들은 MD가 아니라 하드디스크에 음악을 저장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원하는 음악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에 번거롭게 MD에 따로 저장해 재생할 유인이 작았다. 소니의 전략은 훌륭했지만 인터넷이 야기한 불확실성에 대해서까지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이클 레이너는 기업이 실패하는 이유는 잘못된 전략에 있지 않고 훌륭하게 수립된 전략이 예상치 못한 불확실성을 만나기 때문이라고 정리한 바 있다. 훌륭한 전략은 환경의 불확실성에 따라 크게 성공할 수도 있고 크게 실패할 수도 있다. 성공과 실패 중 어디로 갈지는 사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여기에서 ‘내 그럴 줄 알았다’는 사후 가정은 전략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데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훌륭한 전략을 성공으로 이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훌륭한 전략이 처하게 될 미래의 불확실성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시나리오 플래닝’이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훌륭한 전략을 수립할 때 “환경이 이러이러할 것이니 이렇게 하기로 하자”라고 했던 가정을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하는 과정이다. 훌륭한 전략이 처하게 될 미래의 여러 가지 상황을 몇 개의 시나리오로 구분한 다음에 각 시나리오에 맞게 전략을 따로따로 마련하는 ‘전략 포트폴리오’를 가져야 불확실성에 따른 전략의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물론 시나리오 플래닝만 가지고 전략 리스크를 온전하게 헤지(hedge)할 수는 없다. 누가 봐도 훌륭하게 만들어진 전략일수록 ‘이것이 최선이다. 이것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다’는 고집을 유발한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훌륭하게 수립된 전략이 가지게 될 경직성을 부드럽게 완화하는 효과를 가함으로써 불확실성에 크게 휘둘리지 않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소니의 전략은 진짜 멍청했을까? 진짜 멍청한 전략은 무엇일까? 요즘 소니는 상당한 위험에 처했다. 그동안 그들이 세운 전략이 멍청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불확실성 때문일까?


글쓴이 : 유정식 인퓨처컨설팅 대표 jsyu@infuture.co.kr
필자는 포항공대 산업경영공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퓨처(inFuture)컨설팅 대표를 맡고 있다. 전략 및 HR 분야에서 다수의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시나리오 플래닝: 불확실한 미래의 생존전략>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 등의 책을 썼다.
 
(* 이 글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97호(2012년 1월 15일자)에 실린 저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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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직원과 못난 직원의 차이, 과연 있을까?   

2012. 1. 1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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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꽤 어려운 퀴즈를 내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퀴즈를 듣고 맞혀야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 두 사람이 퀴즈를 내고 맞히는 광경을 바라보는 관객입니다. 퀴즈를 내는 사람은 답이 무엇인지 알 테고 답을 맞혀야 할 사람은 퀴즈가 나올 때마다 정답을 말하기 위해 애를 쓰겠죠. 모든 퀴즈가 끝나고 여러분은 한 장의 설문지를 받습니다. 그 설문지에는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란 질문이 쓰여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퀴즈를 낸 사람과 퀴즈를 맞혀야 했던 사람 중 누구의 이름을 쓰겠습니까? 

아마 여러분이 리 로스(Lee Ross) 등 3명의 심리학자가 수행한 이 실험에 관객으로 참여한 스탠포드 대학의 학생들과 같다면, 퀴즈를 낸 사람이 퀴즈를 맞혀야 했던 사람보다 더 똑똑하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고 평가했을 겁니다. 이런 평가가 과연 합리적일까요? 퀴즈를 내는 사람은 사전에 연구자들에게서 퀴즈 문제를 받았기에 어려운 퀴즈의 답을 아는 상황이었고, 퀴즈를 맞혀야 했던 사람은 어려운 퀴즈를 맞히기 위해 애석하게도 쩔쩔 매는 상황에 처해야 했을 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닌 다른 관찰자 앞에서 두 사람의 역할을 바꿔서 실험을 실시했다면 평가가 반대로 나왔을 겁니다.




'잘 되면 내 덕, 안 되면 조상 탓'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떤 일이 잘 끝나면 그것은 '내가 잘났기 때문이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내가 못 났기 때문이 아니라 주변 상황 때문'이라는 뜻이죠. 헌데 남을 바라볼 때는 '잘 되면 조상 덕, 안 되면 네 탓'이라며 거꾸로 말하곤 합니다. 말로 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그렇게 인식하곤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면 그 사람을 둘러싼 상황보다는 그 사람의 성격이나 능력 상의 부족한 면만 눈에 들어오기 쉽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타인의 행동을 평가하거나 해석할 때 주변의 상황보다는 내재된 기질로 현상을 이해함으로써 발생하는 판단의 오류를 '기본적 귀인 오류'라고 부릅니다. 

한 사람의 행동은 그를 둘러싼 상황과 그 사람 자체의 성격적 특성의 합작품입니다. 부하직원의 성과와 역량을 평가하는 관리자(팀장)는 부하직원의 어떤 행동이 상황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그에게 내재된 고유 특성으로부터 발현한 것인지를 면밀하게 따질 필요가 있습니다. 평소 예쁘게 여기는 부하직원이라면 비록 상황이 긍정적이었기 때문이라도 거의 자동적으로 그 부하직원이 원래 '잘난 덕'이라고 평가하기 쉽습니다.

반면 미운 털이 박힌 부하직원이라면 뛰어난 행동을 했더라도 그저 운이었거나 상황이 우호적이었을 뿐이라고 폄하할 가능성이 크죠. 예를 들어 그 직원이 어느 날 제품 전략의 방향을 결정함에 있어 동료들과 크게 언쟁을 벌였을 경우 따지고 보면 정당한 자기 의견 피력인데도 불구하고 원래 의사소통 스킬 상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부하직원을 잘못 평가할지 모릅니다. 똑같은 언쟁을 예뻐하는 직원이 벌였다면 문제가 있다고 여기기보다는 그 사람의 도전의지나 창의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훌륭한 관리자라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거나 칭찬을 하기 전에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다른 부하직원)들은 어떻게 했을까를 먼저 생각해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니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부하직원의 성과 달성 과정을 면밀하게 관찰하지 못하겠다는 말은 스스로 '나는 평가자로서 자격 미달'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기본적 귀인 오류에 빠지지 않았는지 매번 자신을 뒤돌아보고 수정하는 일이 관리자의 가장 중요한 소임 중 하나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또한, 관리자라는 역할은 단순히 연차가 됐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누구에게나 줄 수 있는 타이틀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잘난 직원과 못난 직원의 차이, 과연 있을까요? 물론 있겠죠. 하지만 그 차이가 상황을 무시한 채 성격상 특성만 가지고 평가한 결과는 아닌지 뒤돌아봐야 합니다. 잘나고 잘나지 못한 부하직원은 관리자 자신의 판단 오류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달라질 수도 있음을 안다면 말입니다. 

(*참고논문 : Social roles, social control, and biases in social-perception process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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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은 왜 나를 이상하게 평가할까?   

2012. 1. 1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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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평가합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을 얼마나 옳게 평가할 수 있습니까? 만일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평가가 잘못됐음을 깨달았을 경우, 그 잘못된 평가를 깨끗이 지워내고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평가를 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까? 사람(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가졌던 처음의 인상이나 견해는 부족하거나 부정확한 정보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기에 그 후에 추가로 얻는 정보를 가지고 수정해 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런 믿음이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음을 알려주는 실험이 있습니다. 리 로스(Lee Ross) 등 3명의 심리학자들은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인식의 오류가 얼마나 끈질지게 지속되는지의 여부를 실험을 통해 규명했습니다. 그들은 스탠포드 대학교에 다니는 144명의 여학생들을 피실험자로 모집한 다음, 무작위로 '수행자(actor)'와 '관찰자(observer)'의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연구자들은 72명의 '수행자'에게 25개 세트로 구성된 '자살 노트(suicide note)'를 읽도록 했습니다. 자살 노트란 자살을 감행한 사람들이 일을 저지르기 전에 남긴 글을 말하는데, 한 세트의 자살 노트에는 실제의 것과 가상의 것이 각각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수행자'들은 그것들을 읽어본 후에 그 중에서 무엇이 실제의 것인지 알아 맞혀야 했습니다.

수행자들은 25개 세트를 읽으면서 연구자들에게 자신의 답을 제시했지만 그가 무엇을 답하든지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수행자의 실력과 관계없이 잘 맞히는 사람과 못 맞히는 사람을 미리 정해 놓았던 겁니다. 연구자들은 25개 중 24개 이상을 맞히는 경우를 '우수한 수행자'로, 25개 중 10개를 맞히는 경우를 '저조한 수행자'로 설정했죠.

이렇게 과제를 끝마치고 난 후에 연구자들은 수행자들에게 '향후에 이런 과제를 다시 수행하게 되면 정답률이 어느 정도 될 것 같은가'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우수한 수행자'들은 21개 이상을 맞힐 수 있다고 자신한 반면, '저조한 수행자'들은 11개 정도만 맞힐 수 있을 거라 답했습니다. 또한 실제의 자살 노트를 알아맞힐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7점 척도로 평가해 보라고 하자 '우수한 수행자'는 5.25로, '저조한 수행자'는 2.58로 평가했습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연구자들이 무작위하게 설정한 결과를 자신의 실력으로 오인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후에 벌어졌습니다. 연구자들은 자살 노트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실력과 상관없이 무작위로 우수한 수행자와 저조한 수행자를 배정했노라고 실험의 진실을 밝혔습니다. 자살 노트의 진위 여부에 대한 평가가 의미 없음을 분명히 알린 것이죠. 연구자들은 수행자들에게 자살 노트를 알아맞힐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라고 설문을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우수하다는 평가를 들은 수행자들은 5.00, 저조하다는 평가를 들은 수행자들은 3.83으로 자신을 평가했습니다. 연구자들이 거짓으로 실력을 알려줬음을 고백했는데도 여전히 자신의 실력을 평가하는 데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더욱이 연구자들은 이 실험의 목적이 다른 사람의 평가로 인해 자기 자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고 더욱 자세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경향은 (약해지긴 했지만)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실력에 대한 신념이 얼마나 강하게 지속되었는지 우수하다는 평가를 들은 수행자는 4.75로, 저조하다는 평가를 들은 수행자는 3.83으로 자신의 실력을 평가했으니 말입니다.

리 로스 등의 연구자들이 수행자들을 대상으로 이런 실험을 진행할 때, 관찰자(observer)로 참여한 학생들은 수행자들이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연구자들이 관찰자들에게 수행자의 실력을 평가하라는 설문을 돌렸을 때, 관찰자들은 우수한(우수하다고 평가 받은) 수행자들의 능력을 5.67로, 저조한 수행자들의 능력을 3.83으로 평가했습니다. 연구자들이 거짓으로 우수한 수행자들과 저조한 수행자를 배정했기에 이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연구자들이 관찰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실력과 상관없이 무작위로 '우수와 저조' 여부를 배정한 것이라고 실험의 진실을 밝히고 나서도 그런 경향은 지속됐습니다. 실험의 진짜 목적을 소상하게 밝히고 나서도 마찬가지였죠. 타인의 능력을 평가할 임무를 맡은 관찰자들도 연구자들이 무작위로 설정한 '우수와 저조' 여부에 여전히 묶여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자신 혹은 타인에 대해 최초로 가졌던 인상이나 견해가 시간이 흘러도 계속 지속된다는 점, 더욱이 그 인상이 거짓으로부터 나왔음을 안다 해도 처음 가졌던 인상(혹은 견해)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이 실험이 극명하게 시사합니다. 우리는 처음에 가진 인상이나 견해에 반대되는 증거를 수도 없이 접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웬만하면 바꾸지 않으려 합니다. 자살 노트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능력과 같이 어찌보면 별것 아닌 것에도 그런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사람들은 신념과 반대되는 증거가 나타나도 그것을 보지 않으려 합니다. 자신의 판단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만 받아들이고 그 증거를 통해서 자신의 신념을 발전시킵니다. 반대되는 증거라도 자신의 신념에 맞게 다시 재단하거나 왜곡하여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념에 부합되는 증거만 선별적으로 기억함으로써 반대되는 증거를 아예 기억조차 못하는 경우도 많죠. 또한 반대되는 증거에 따라 자신의 신념을 바꾼다는 것이 자존심을 훼손하는 일이라 여겨서 잘못된 신념을 고집하기도 합니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견해가 선입견, 첫인상, 최초의 평가 등에 의해 좌우되고 그것이 꽤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점은 인사 평가로 인해 발생하는 팀장과 부하직원들 사이의 갈등에 불씨로 작용합니다. 애초에 '나는 이런이런 능력이 뛰어나(혹은 부족해)' 그리고 '저 사람은 이런이런 능력이 뛰어나(혹은 부족해)'라는 인상을 가지게 되면 신념으로 이어지고 서로에 대한 평가가 충돌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팀장이 A라는 부하직원의 프레젠테이션 역량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견해를 한번 가지게 되면 A가 제아무리 뛰어난 프레젼테이션 실력을 보여주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잘하는 점보다도 잘못하는 점만을 집어내려 할 겁니다. A가 프레젠테이션을 잘하지 못하는 그럴싸한 이유를 찾으려 할 겁니다.

팀장과 부하직원이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가지는 최초의 견해가 잘못된 정보로부터 비롯됐을 수 있고 한번 굳어진 견해가 매우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점을 순순히 인정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평가지표를 정교화하고 계량화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계량적 지표는 신념을 강화하고 잘못된 신념을 정당화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잘못된 견해를 희석시키려는 적극적인 노력 없이는 객관적인 평가란 또 하나의 미신입니다.


(*참고논문 : Perseverance in Self-Perception and Social Percep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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