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이 지치고 힘들어 하는 이유는?   

2012. 3. 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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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업무에서 자아실현의 감동을 얻기는커녕 염증을 느끼고 매너리즘에 휩싸여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새로운 일이 발생하거나 기존의 업무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면 자신을 성장시키는 계기로 삼기보다 습관과도 같은 피로감에 먼저 사로잡힙니다. 아무런 변화 없이 그저 정해진 대로만 진행되기를 바랄 뿐 개선이나 혁신의 의지는 에너지 넘치는 다른 사람들의 일로 치부하고 맙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자신의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직원들이 수명이 다 되어가는 건전지처럼 에너지가 소진된 듯한 느낌을 갖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단순하게 업무량이 많고 업무의 난이도가 높기 때문일까요? 사람들 사이의 관계, 특히 상사와의 관계에 치유가 어려운 문제가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직원 자신의 의지력이 박약한 탓일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업무에서 활력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활력을 빼앗긴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직원들이 업무로부터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스스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업무나 활동으로부터 배제되고 위에서 떨어지는 일, 맡은 직무나 조직의 생리상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처럼 내적 동기를 갖기 힘든 업무 환경 속에 놓여져 있는 까닭입니다.




사람들은 돈보다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가치를 느끼는 업무나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개인적으로 직원들은 활기 넘치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조직의 생산성 향상과 혁신을 추진할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요 클리닉(Mayo Clinic)이란 의료기관에서 실시한 조사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연구팀은 마요 클리닉의 모든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각자 환자 진료 및 치료, 연구, 교육, 행정업무 등에 어느 정도의 시간을 소요하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또한 의사들이 각각의 영역 중에서 무엇을 가장 '가치 있는' 일로 느끼는지도 조사했습니다. 예상대로 68%의 의사들이 환자 진료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지만, 연구, 교육, 행정업무에도 각각 19%, 9%, 3%의 의사들이 가치를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각 업무 영역에 실제로 소요하는 시간과 가치를 느끼는 정도를 비교하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 교육 활동에서 가치를 느끼는 의사들은 환자 관리에 64%의 시간을 썼지만 교육 업무에는 15.1%의 시간 밖에 쓰지 못하고 있었죠.

연구자들은 바로 이 불일치가 업무 피로감의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검증할 목적으로 Maslash Burnout Inventory라는 측정도구를 써서 의사들의 업무 피로도를 측정했습니다. 그랬더니 가치를 느끼는 업무 영역에 20% 미만의 시간(일주일에 하루 미만)을 사용하는 의사들이 더 많이 '번-아웃(burn out)'되었다는 결과가 확연하게 드러났습니다. 이렇게 번-아웃된 의사들은 36개월 내에 현재의 직무를 떠나고 싶다는 의지를 크게 나타냈고, 24개월 내에 상근직에서 파트타임직으로 이동하기를 희망하는 경향이 더 컸습니다. 

이 연구는 설문을 통해 상관관계의 존재 여부를 따져본 것이기에 완전한 인과관계를 증명한 것은 아니지만 직원들의 내적 동기와 실제 업무 사이의 괴리가 클수록 직원 개인의 건강한 삶과 조직의 활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짐작케 합니다. 외부적인 이유로 직원들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일에 충분한 시간을 쏟지 못할 경우 쉽게 번-아웃될 가능성이 높을지 모른다는 것, 번-아웃된 직원일수록 현재의 직무에서 기대하는 만큼의 생산성을 내지 못한다는 것, 향후에 직무를 이탈함으로써 무형의 업무 노하우도 함께 사라져 버릴 확률도 높다는 것 등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조직 혁신의 에너지와 성과는 개인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조직을 운영하는 시스템에서 나옵니다. 이 말은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개인의 역량을 조직의 성과로 연결시키는 데 있어 책임을 지는 주체는 직원이 아니라는 뜻이죠. 책임은 시스템에게 있습니다. 개인의 역량, 내적 동기의 근원, 경력개발의 요구 등에 적합하게 운영되는 시스템(제도, 인프라, 조직문화 등)을 갖추지 못한 채 직원 개인의 부단한 노력과 기여를 당근으로 유도하고 채찍으로 강요하는 조직은 직원들을 쉽게 번-아웃시키고 방치할지 모릅니다. 

물론 인력 운용상, 조직의 생리상 직원들이 의미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업무 프로세스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일주일에 적어도 10%의 시간(대략 4시간) 정도는 기존의 담당 업무를 떠나 마음대로 의미 있는 업무를 하도록 권장하면 어떨까요? 뭘 하든 상관없이 자신의 내적 동기를 발화시킬 탈출구를 만들어 두자는 뜻입니다. 구글이 일주일에 20%의 시간을 직원들에게 마음대로 쓰게 하면서도 그런 자유시간을 통해 지메일(Gmail), 구글 어쓰(Earth) 등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얻어냈다는 사례를 떠올려 보면, 그 시간이 생산성을 해치고 직원들을 나태하게 만들 거라고 우려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직원들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조직 내에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보이려는 동기를 가진 성인입니다. 방종에 쉬이 빠질 사춘기 청소년이 아니죠.

애니메이션 제작업체 픽사(Pixar)는 만화영화 제작자와 회계담당자부터 보안 요원에 이르는 모든 직원들이 1주일에 4시간까지 교육 받도록 권장 받습니다. ‘픽사 대학’은 110개 과목의 교육 프로그램을 직원들에게 제공하는데,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미술 및 영화제작 과정과 동일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학장인 랜디 넬슨(Randy Nelson)은 “왜 회계담당자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줄 아세요? 그림 수업은 사람들에게 그리는 방법만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관찰력을 향상시켜서 혜택을 얻는 회사는 픽사 말고 지구 상에는 없지요.”라고 말합니다. 직원들에게 본업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분야를 접하도록 기회를 줌으로써 업무 만족도 향상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흥행작을 연달아 내놓을 수 있는 힘을 확보하는 픽사를 그저 부러워하거나 그들이니까 가능한 일로 치부해야 할까요?

직원들은 성과를 만들어내도록 임금을 주고 구입한 '성과 기계'가 아니라, 성과 그 자체입니다. 직원들이 가치를 상실하고 번-아웃됐다면 성과도 번-아웃되는 것이죠. 이때는 직원들에게 엄격한 평가와 높은 성과급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흔들어대기보다는 그들이 조직 내에서 살아가는 환경, 즉 시스템을 혁신해야 합니다. 구성원들이 시스템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구성원에게 적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번-아웃된 상태입니까? 무엇때문입니까? 여러분 자신 때문입니까, 아니면 조직의 시스템 때문입니까?


(*참고 논문 : Career Fit and Burnout Among Academic Faculty )
(*참고 도서 : Demand: Creating What People Love Before They Know They Want 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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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2012. 2.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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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록스는 오랫동안 복사기 업계의 강자로 군림하며 복사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제록스는 복사기로 창출한 막대한 여유자금을 가지고 IBM이 장악하고 있던 대형 컴퓨터 업계로의 진출을 모색하면서 IBM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그들은 엄청난 자본을 쏟아 부으며 공세를 펼쳤지만  IBM의 강력한 반격에 타격을 받아 큰 손실을 떠안은 채 대형 컴퓨터 시장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더 큰 손실이 제록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록스가 대형 컴퓨터 시장을 비집고 들어가려고 분투하는 동안, 제록스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캐논이 잠시 비어있던 복사기 시장을 치고 들어와 업계의 1인자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제록스가 입은 손실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제록스는 원래 퍼스널 컴퓨터 기술 분야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제록스 산하의 팔로알토 연구소를 견학하며 마우스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 기술 등을 베껴 갈 정도였다. 하지만 IBM이 장악한 대형 컴퓨터 시장에 마음을 빼앗긴 탓에 퍼스널 컴퓨터 분야의 엔지니어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를 당했고 그 때문에 스티브 잡스의 애플로 대거 이직해 버렸다. 한 번의 잘못된 의사결정이 대형 컴퓨터 시장의 진입 실패, 복사기 시장의 지배력 상실, 차세대 컴퓨터 시장의 기회 상실 등 무려 3가지의 커다란 손실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 책 ‘손자, 이기는 경영을 말하다’는 제록스의 패착이 병법 중의 가장 저급한 책략인 공성(攻城)을 채택한 것에 있다고 말한다. 엄청난 여유자금만을 믿고 무턱대고 덤볐다가 안 하니만 못한 결과를 얻은 제록스를 ‘손자병법’을 쓴 손무가 평가 내린다면 “어쩔 수 없을 때 써야 할 공성 전략을 쓴 제록스는 하수 중의 하수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 장군도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생이 아니라 전략을 통해 전과를 올렸다”라고 말하며 자원을 소모하면서까지 승리를 도모하려 했던 제록스 경영자의 무지를 꼬집을 것이다.
 
우리는 기업 간이 경쟁을 전쟁으로 곧잘 묘사한다. 군사학에서 쓰는 말인 전략(strategy)이나 전술(tactics)이란 말이 경영에서 오히려 더 많이 쓰이고 수많은 비즈니스 전략들의 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군사전략가의 이론과 맥을 같이 한다. 헌데  비즈니스계의 경쟁은 곧 전쟁과 같다는 생각 때문인지 경쟁사를 향해 격렬하게 공격을 감행하는 것을 경쟁의 전형적인 이미지로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손자병법은 개별 전투에 관한 ‘필드 매뉴얼’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잘 이기기 위한 방책, 즉 전략의 방향을 제시하는 지혜의 결정체이다. 

손무는 이 책을 통해 이 시대의 불확실성을 헤쳐 가는 경영자들에게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승리 모델이다”라고 조언한다. 손자병법의 철학을 올바로 이해하고 기업 간의 경쟁에 적용하려면 이 의미를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저자는 싸우지 않고 온전히 이기는 가치를 손자병법의 최상의 지향점으로 놓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실천적 방도로 지승(知勝), 전승(戰勝), 선승(先勝)으로 구체화하여 설명한다. 지승은 경쟁의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이긴다는 것이며, 전승은 전쟁에서 싸워 이긴다는 것이며, 선승은 싸우기 전에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먼저 만들어 놓고 이긴다는 뜻이다.
 
제록스가 IBM을 상대로 무모한 공성전을 벌이느라 무주공산이 된 복사기 시장을 점령한 캐논은 손자병법이 제시한 전승의 방책 중 출기(出奇) 전략을 제대로 활용한 대표적 사례이다. 제록스의 기본전략은 방대한 직판 체제와 대형 복사기 임대 센터를 갖추고 고객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캐논은 가격이 비싸고 사용하기 복잡한 대형 복사기 부문에 집중하던 제록스의 전략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갔다. 캐논은 복사기 부품을 표준화하여 복사기 가격을 낮추었고, 임대 방식이 아니라 중개상을 통한 판매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직영점과 임대 센터 유지에 들어가는 막대한 운영비용을 제거해 버렸다. 또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복사기를 제작함으로써 고객층을 복사기 담당부서가 아니라 회사 경영진으로 전환했다. 이를 통해 캐논은 제록스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출기 전략을 경영의 용어로 풀면 ‘차별화 전략’이다. 캐논은 차별화를 통해 제록스가 지배하던 시장의 경쟁 규칙을 자기편에 유리하도록 바꿈으로써 제록스의 강점을 약점으로 만든 출기 전략의 전형을 보여준다. 강력한 경쟁자를 상대하려는 도전자는 관례를 깨뜨리는 방법으로 돌파 기회를 잡아야 하며 그러한 사고를 가져야만 현재의 경쟁 구도와 경쟁자의 우위를 뒤집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공법의 올바른 의미는 경쟁자가 지닌 A라는 강점에 A라는 전략으로 상대한다는 것(제록스의 IBM 공격 사례)이 아니라, A'이라는 변형되고 차별화된 전략으로 기습한다는 것(캐논의 사례)이라 말할 수 있다.
 
차별화 전략인 출기는 상대방의 약한 부분을 공략하라는 ‘격허(擊虛)’ 전략과 종종 함께 맞물려 돌아간다. 손무는 “깃발이 정렬된 군대와 싸우지 말고, 기세가 당당한 진영을 공격하지 말라”라고 말하면서 경쟁자가 우세를 점한 부분에 저돌적으로 공격하지 말고 취약한 점을 탐색하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캐논이 그리 했듯이 차별화의 초점을 경쟁자의 ‘강점 뒤에 숨은 약점’에 두라는 의미이다. PC제조업체인 컴팩(Compaq)의 최대 강점은 촘촘한 유통망이었다. 컴팩은 이 강점을 바탕으로 전 세계로 제품을 확산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강점은 필연적으로 약점을 담고 있었다. 델(Dell)은 촘촘한 유통망 때문에 최종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기 어렵다는 강점 속의 약점을 간파했다. 델은 중간 판매망 없이 최종 소비자에게 맞춤화된 PC를 직접 판매하는 방식을 채택하여 1990년대 말에 이르러 최대의 PC판매업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강점의 배후에는 항상 숨기고 싶은 약점이 존재함을 간파하는 것이 격허 전략이고, 그런 약점에 기반하여 우리의 제품 가치를 차별화하는 것이 출기 전략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손자병법은 ‘집중(集中)’의 가치를 역설한다는 점에서 리더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고전이다. 군사전략가인 클라우제비츠는 “전략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간단한 준칙은 병력 집중이다. 우리는 이 원칙을 엄격히 따르고, 믿을 만한 행동 지핌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경쟁에서 그만큼 집중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병력을 분산시키면 전선이 길게 형성되고 상대방이 공격하기 좋은 허점이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들도 여러 분야에 문어발을 뻗치거나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한다면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2000년에 심각한 경영난에 처한 P&G의 구원투수로 임명된 앨런 래플리가 핵심 성장 동력을 4개 부문으로 설정하고 식품업을 과감하게 포기함으로써 P&G를 두 자리 수 이상의 성장으로 이끌었고 위기로부터 구한 사례는 손자병법이 제시하는 집중의 가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래플리는 “CEO가 어느 분야를 포기할지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M&A만큼 중요한 문제이다”라고 말하며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힘든 과정과 고통의 시간을 감내하라고 조언한다. 가능한 한 많은 고객의 요구를 수용하려는 경영자들은 “전략의 본질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올바로 선택하는 데 있다. 전략은 곧 버림의 예술이다”라고 말한 마이클 포터의 충고를 유념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출기, 격허, 집중 이외에 궤도(詭道), 임세(任勢), 주동(主動), 선지(先知), 오사(五事)라는 승리의 핵심 원칙을 제시한다. 저자는 이 원칙을 따르고 승리한 전쟁의 사례뿐만 아니라 여러 기업의 사례를 함께 이야기하며 불확실성이라는 안개 속에서 경쟁자를 맞이해야 하는 리더들에게 바람직한 경쟁 전략이라는 나침반을 건네준다.
 
저자는 손자병법은 경쟁이 존재하는 영역이면 어디든지 적용할 수 있는 광범위한 가치라고 말한다. 또한 손자병법은 심오한 철학적 이치를 보여주고 풍부한 경험과 지력, 민첩한 임기응변 능력과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방도를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경쟁을 피할 수 없다면 이겨야 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손자병법이 담아낸 ‘이기는 방법’을 수용할 것을 주문한다.

그렇다고 손자병법은 경쟁 자체를 최고의 목적에 두지 않는다. 손무는 경쟁을 질질 끌지 말 것, 전쟁의 폐해를 항상 염두에 둘 것, 모든 결정은 이성적으로 판단한 후 내릴 것, 늘 차가운 머리를 유지할 것, 목숨 걸고 싸우려 들지 말 것을 충고한다. 손자병법의 가치는 탁월한 리더가 되려면 이렇게 승산 없는 경쟁을 피하고 승산 있는 경쟁에만 나서야 함을 역설하는 데에 있다. 손자병법의 지혜를 경영의 관점으로 정리한 이 책 ‘손자, 이기는 경영을 말하다’은 힘이나 돈이 아니라 지혜와 전략으로 경쟁자와 대결하려는 자에게 전승(全勝)을 위한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 글쓴이 : 유정식 (인퓨처컨설팅 대표)

(*이 글은 2012년 2월 29일자 교보문고 북모닝 CEO에 실린 서평임)
(*참고도서 : 손자, 이기는 경영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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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의 사망원인을 미리 부검하라   

2012. 2. 2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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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혹은 전략)들이 모두 성공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쉬쉬하지만 사실 실패가 다반사죠. 어떤 프로젝트가 실패로 판명되면 어떤 이유로 그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뜯어보고 여기서 얻은 교훈을 다른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거울로 삼는 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당연한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는 일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실패의 책임을 떠안지 않기 위해서 성공인지 실패인지 모르도록 프로젝트를 흐지부지 끝내거나 관심을 다른 프로젝트로 돌리려고 하기 때문에 실패를 통한 진정한 배움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실패를 쉬쉬하지 않고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으려는 기업이 건강한 문화를 지닌 조직임에는 틀림없지만, 더욱 건강한 조직이라면 '사후 부검(post-mortem)'보다는 '사전 부검(pre-mortem)'을 통해 실패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줄 압니다. 알다시피 부검은 불분명한 이유로 죽은 사람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한 과정이죠. 사전 부검이란, 말 그대로 프로젝트가 '죽기 전'에 실시하는 부검으로서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단계에서 "이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났다"라고 가상으로 선언한 다음 "왜 이 프로젝트가 실패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예상되는 실패원인을 찾는 과정입니다. 규명된 실패원인을 통해 프로젝트 계획을 수정함으로써 성공확률을 끌어올리려는 게 목적이죠.



실패를 기정사실화한 후에 실패원인을 미리 찾자는 것은 말이 쉽지 의외로 실행이 어렵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성공을 꿈꾸며 프로젝트를 실행해도 성공할까 말까인데, 뭐? 실패를 기정사실화하자고?'라는 집단사고에 밀려 사전 부검란 말은 금기시되고 맙니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프로젝트에 몰입하지 않는 자로 '찍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전 부검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는 데 있습니다. 데보라 미첼(Deborah Mitchell), 제이 루소(Jay Russo), 낸시 페닝턴(Nancy Pennington)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사전 부검이 프로젝트의 산출물을 옳게 설정할 확률을 30% 높여준다고 합니다. 

사전 부검의 단계는 이렇습니다. 먼저 프로젝트 매니저가 '프로젝트의 사망'을 선언합니다. 그런 다음 팀원들에게 왜 프로젝트가 사망했는지를 묻습니다. 팀원들은 처음에 프로젝트의 사망원인을 끄집어내는 일을 꺼려합니다. 불충한 사람으로 비춰질까봐 나서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언을 종용하기보다는 각자 독립적으로 실패원인을 종이에 적게 함으로써 의견이 집단사고에 의해 공격 받거나 폐기될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이때 프로젝트 매니저는 분위기를 잘 조성해야 합니다. 재미삼아 거치는 과정이 아니라, 진짜로 프로젝트가 사망했다는 상황으로 팀원들을 몰입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프로젝트 계획서의 말미에 양념처럼 들어가는, 아무도 참조하지 않는 리스크 계획에 그치고 맙니다.

프로젝트 매니저부터 시작해 모든 팀원들이 각자의 의견을 발표한 다음, 각각의 실패원인을 사전에 막으려면 프로젝트 계획을 어떻게 수정 보완해야 하는지 논의하는 단계를 거치면서 사전 부검을 마무리합니다. 사전 부검을 거치면 현실적이지 않은 희망(특히 프로젝트에 공을 많이 들인 사람들)에 부풀어 오르는 일을 줄일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의 완료기간을 지나치게 짧게 잡거나 예산을 필요 수준보다 적게 설정하려는 오류를 피하고 실질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죠. 또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다가 중간에 CEO가 교체되면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끊길 수도 있다는, 입에 올리기 힘든 '진짜 실패원인'을 제기하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발생하는 위험신호를 재빨리 감지해서 대응하도록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효과도 있죠.

지금 프로젝트를 착수 중이라면 사전 부검의 과정을 꼭 진행하기 바랍니다. 부검이라는 말 자체가 꺼림칙하다고요? 약간의 충격적인 용어가 프로젝트의 실패를 직시하도록 만듭니다. 바로 실행에 옮기세요!


(*참고논문 : Performing a Project Premorte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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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착각에 빠져 있습니까?   

2012. 2. 2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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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에 이스라엘의 교육부는 학자들과 교사들로 이루어진 연구팀에게 새로 생기는 교과목을 위한 커리큘럼을 마련하라는 과제를 부여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착수하던 연구팀원들은 이 과제를 완료하여 최종 보고서를 교육부에 제출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 가늠해보기로 했습니다. 팀원들 각자에게 종이에 예상 프로젝트 기간을 쓰게 한 다음 취합해 보니 18개월에서 30개월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이때 팀원 중 한 사람이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는 "여러분들은 모두 과거에는 없던 과목의 커리큘럼을 설계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와 지금을 서로 비교해 보고 프로젝트의 예상 소요 기간을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제안합니다. 사람들이 질문에 반응이 없자 그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커리큘럼 설계를 맡았던 연구팀들이 프로젝트를 모두 완료하지는 못했습니다. 40%가 중단을 선언했죠. 게다가 제가 알기로 프로젝트를 완료했던 연구팀들도 7년 내에 과업을 완수하지 못했고 어떤 연구팀은 10년이나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번에 꾸려진 연구팀이 다른 연구팀들에 비해 능력이 특별히 뛰어난 전문가들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다른 연구팀들보다 가용자원도 적고 연구능력도 조금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용기 있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그 팀원은 커리큘럼 개발 전문가이자 후에 헤브루 대학교의 교육대학 학장이 된 시모어 폭스(Seymour Fox)였습니다. 그가 말하고자 한 요점은 여러 커리큘럼 연구팀들의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프로젝트의 예상 완료 기간을 객관적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수용해야 할 의견임에도 불구하고 연구팀은 그의 제안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결국 그 프로젝트는 완료하는 데까지 8년이나 걸렸고 팀원들의 노력은 아무런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을 소요해 만들어진 커리큘럼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니까요.

이 사례는 행동경제학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다니엘 카네만이 연구팀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직접 목격했던 일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처음의 예상과 빗나가도 한참을 빗나간 여러 사례를 알고 있습니다. 1980년대 초에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이 신형 전투기인 유로파이터(EuroFighter)를 1997년에 하늘에 띄우겠다고 선언했을 때 예상했던 개발비용은 200억 달러였습니다. 하지만 1997년이 넘도록 프로젝트는 완료되지 못했고 비용은 두 배가 넘어 450억 달러나 되었습니다.

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또다른 대표적 사례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위치한 의회 건물입니다. 이 건물의 신축을 1997년에 처음 계획할 때는 4천만 파운드의 예산이 책정됐지만 1999년 6월이 되자 예상 비용은 1억 9백만 파운드를 훌쩍 넘었고 2002년 말에는 2억 9천 5백만 파운드를 돌파하더니 급기야 2004년에 최종 완공될 때는 총비용이 무려 4억 3천 1백만 파운드에 이르러 최초의 예상을 10배나 뛰어 넘어 버렸습니다. 

사회간접자본 사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005년에 실시된 연구에 따르면 1969년부터 1998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이루어진 철도 건설 사업 중 90퍼센트 이상이 철도 이용 고객수를 과도하게 예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평균적으로 실제 이용객 규모보다 106퍼센트 많게 예상했고 예산은 평균 45퍼센트를 초과했다고 합니다. 30년 동안 예측력은 나아지지 못했던 겁니다.

카네만은 이러한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들이 '성공의 착각(Delusion of Success)'으로부터 기인한다고 진단합니다. 계획 오류란 프로젝트나 전략의 성공 가능성과 성공으로 인한 이득을 과장하는 반면 실패 가능성과 실패에 따른 비용을 실제보다 낮게 책정하려는 경향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성공의 착각은 어떤 분야의 초심자가 아니라 전문가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카네만은 말합니다.

오랜 경력과 높은 전문성을 보유한 전문가들은 과거에 성공했던 경험 또한 많겠죠. 하지만 그 성공 경험들은 '그때 잘 했으니 이번에는 더 잘 수행할 수 있을 거야'라고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새로 시도하는 전략이나 프로젝트의 성공 확률을 판단하는 데에 오류를 일으키고 맙니다. 분명 실패했던 경험도 있었고 다른 사람의 실패를 접한 적도 많았을 터이지만,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그런 기억은 참조되지 못하고 예방주사가 되지도 못합니다. 

실패를 떠올릴 때마다 나빠지는 감정은 실패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조언을 자연스레 무시하도록 만듭니다. 또한 위의 사례처럼 누군가가 과거의 사례에 비춰볼 때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에 문제가 있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제기한다면, 그 의견을 수용하여 프로젝트를 재검토하기보다는 '어디서 고추가루를 뿌리고 그래?'라고 핀잔을 주면서 그 사람을 프로젝트에 몰입하려 하지 않는 자, 나아가 조직에 충성을 다하지 않는 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착수할 때 많은 개인이나 조직들은 프로젝트 자체에 지나치게 집중하느라 외부에서 이미 일어났던 여러 실패 사례를 프로젝트 수행에 감안하지 못하는 '내부적 시각'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프로젝트의 목적, 수행에 필요한 자원들, 예상되는 장애, 미래의 트렌드 등을 고려할 때 외부 사례를 참조한다고 해도 프로젝트의 성공을 뒷받침해주는 것들만 눈에 들어올 뿐이죠. 이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까닭은 90퍼센트의 사람들이 자신의 지능이 상위 10퍼센트에 속한다고 믿는 이유(이를 '워비곤 효과'라고 부름)와 맞닿아 있습니다.

카네만은 '외부적 시각(outside view)'을 가지라고 조언합니다. 외부적 시각이란 예전의 비슷한 경험과 유사한 외부 사례들의 입장에서 지금 계획하는 프로젝트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외부적 시각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려는 내부적 시각(inside view)의 오류를 줄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프로젝트를 재검토하도록 이끌 수 있습니다. 대학생들에게 앞으로의 학업 성과가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을 던지니 자신들이 동급생들의 84퍼센트보다 나을 거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자신의 입학시험 점수와 동급생의 점수에 대해 물어 본 후에 동일한 질문을 제시하니 동급생의 64퍼센트보다 자신의 학업 성과가 더 뛰어날 거라고 답했습니다. 내부적 시각에 의해 낙관적으로 생각했던 학생들이 외부적 시각을 주입 받은 후에 보다 현실적인 답변을 내놓은 것입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나 전략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희망은 참여의 동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낙관적 희망이 '성공의 착각'에 휩싸인 내부적 시각에서 나온 것이라면 외부적 시각을 통해 경계하고 교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성공의 착각에 빠져 있습니까?


(*참고논문 : Delusions of Success: How Optimism Undermines Executives' Decisi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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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보고서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하다   

2012. 2. 23.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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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두 개의 보고서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의 보고서는 글씨체가 또렷하고 바탕색과의 대비가 커서 알아보기 쉽게 쓰여져 있는 반면, 다른 보고서는 폰트가 조악하고 흐리게 인쇄되어 있습니다. 내용상의 차이가 전혀 없을 때 보고서를 읽은 사람들은 둘 중 어느 보고서에 높은 점수를 줄까요? 상식적으로 볼 때 당연히 전자의 보고서가 사람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으리라 추측할 겁니다.

아누즈 샤흐(Anuj Shah)는 이런 상식이 맞는지를 실험을 통해 증명하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실험에서 108명의 실험참가자들은 MP3 플레이어의 재원(성능)과 그 제품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고객 리뷰 정보를 읽고 나서 MP3 플레이어의 적정 가격을 0달러에서 300달러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요청 받았습니다. 샤흐는 참가자들 중 절반에게는 12폰트 짜리 Times New Roman체의 검정 글씨라서 읽기 쉽게 쓰여진 정보를 주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읽기 힘든 12폰트 짜리 이탤릭 Monotype Corsive체의 회색 글씨로 적힌 정보를 읽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읽기 쉬운 정보를 접한 참가자들은 MP3 플레이어의 가격을 평균 126.3달러로 책정한 반면, 읽기 어려운 정보를 받은 참가자들은 평균 162.1달러를 써냈습니다. 읽기 편안한 글을 제공 받은 참가자들이 부정적인 고객 리뷰에 크게 영향 받았다는 의미였죠. 다시 말하면, 읽기 어려운 정보를 접한 참가자들은 부정적으로 평가된 고객 리뷰에 높은 가중치를 두지 않았는다는  뜻입니다. 이는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어도 표면적인 형식이 의사결정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샤흐는 심화된 두 번째 실험을 통해 표면적인 형식이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고 들어갔습니다. 이번 실험참가자들에게 주어진 정보는 가상의 로비스트 집단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샤흐는 참가자들에게 특정 로비스트 집단을 평가한 결과라며 두 개의 가짜 평가지수를 제시했는데, 139명의 참가자 중 절반에게는 이미지가 선명한 평가지수를, 나머지 절반에게는 흐릿하게 인쇄된 평가지수를 나눠 준 다음, 해당 로비스트 집단의 능력을 100점 만점 기준으로 평가해 보라고 지시했습니다.

또한 그 집단이 로비에 성공하면 2백만 달러 중에서 얼마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을지, 6점 척도로 그 로비스트 집단을 얼마나 추천하고 싶은지를 물었습니다. 그 결과, 선명한 이미지를 본 참석자들은 흐릿한 이미지를 접한 참석자들보다 로비스트 집단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컸습니다. 이 실험 역시 내용과 상관없이 눈에 편안한 정보에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의 경향을 드러냈죠.

세 번째로 실시한 실험은 눈으로 쉽게 인지되는지의 여부가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아 본 위의 두 실험과 다른 주제를 다뤘습니다. 샤흐는 터키어로 된 가상의 증권회사 이름 중에서 Artan, Kado, Boya 처럼 발음하기 쉬운 것들과, Lasiea, Taahhut, Emniyet 과 같이 발음이 어려운 것들을 구성했습니다. 그런 다음, 144명의 참가자에게 발음하기 쉬운 증권회사와 발음하기 어려운 증권회사가 각각 특정 기업을 대상으로 내놓은 평가 의견들을 제시했습니다.

참석자들에게 주어진 두 증권회사의 의견은 때때로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석자들은 각 의견을 면밀히 살펴보고 판단을 해야 했죠. 하지만 참석자들은 의견의 내용과 상관없이 발음이 어려운 증권회사(Taahhut 등)보다 발음이 편한 증권회사(Artan 등)에 높은 가중치를 주었습니다. 즉, 발음하기 쉬운 증권회사의 의견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었죠. 또한 참석자들은 발음이 쉬운 증권회사를 터키의 투자자들에게 더 많이 추천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샤흐의 실험을 통해 눈에 얼마나 편안한가, 그리고 말하기가 얼마나 편안한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통설이 확인되었습니다. 감각기관을 불편하게 만드는 정보는 피하고 쉽게 감각되는 정보를 수용하려는 이유는 가능하면 인지 노력을 덜 부담하려는 인간의 본능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작성한 보고서는 그게 무엇이든 간에 상대방의 인지 부담을 가중시킵니다. 상대방의 미간을 찌뿌리게 만들고 동공을 확장시키죠. 그래서 상대방은 그 내용을 들여다 보기도 전에 무의식 속에서 보고서를 거부하고 싶은 마음, 꼬투리를 잡고 싶은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발동하기 시작합니다.

보고서의 내용이 전달되고 설득되려면 그러한 '활성화 에너지'의 벽을 극복해야 합니다. 화학반응을 촉진시키는 촉매가 활성화 에너지의 벽을 낮추듯이, 읽기 쉽고 또렷한 글씨체와 시원한 글자 배치 등의 형식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용에 몰입하기 좋은 조건을 형성합니다.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쉽게 전달하고 설득하려면 겉으로 보이는 형식이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을 항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물론 일부러 흐릿하게 보이고 발음이 어렵도록 만들어서 '뭔가 있어 보이는' 효과를 높이는 경우도 있지만, 의사소통의 속도와 질을 감안한다면 형식적인 '또렷함'이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 때로는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내용보다 형식이 더 중요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작성하고 있는 보고서를 살펴 보세요. 글씨가 크고 또렷하며, 문장은 발음하기 좋고 리드미컬합니까? 내용이 좋다고 형식을 무시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겠죠?

(*참고논문 : Easy does it: The role of fluency in cue weight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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