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에 무임승차자는 몇 명일까?   

2012. 2. 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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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 주립대의 심리학자 로버트 쿠르즈반(Robert Kurzban)과 다니엘 하우저(Daniel Houser)는 84명의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공공재 게임'이라 불리는 실험을 수행한 바 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을 4명씩 그룹을 이루게 한 후 각자에게 50개씩 토큰을 나눠 줬습니다. 학생들은 받은 토큰을 자신의 개인 계좌에 둘 수도 있고 그 중 일부를 떼어 그룹의 공동 계좌에 기부할 수 있었죠. 실험자는 공동 계좌에 기부된 돈을 2배로 증액해 주었습니다. 공동 계좌에 적립된 돈은 나중에 4명이 똑같이 분배하는 것이 규칙이었습니다. 

학생들이 기부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주어졌는데(회수는 4번에서 34번까지 무작위로 실시), 매번 기부를 결정하기 전에 공동 계좌에 얼마나 적립됐는지 알려주었습니다. 그 정보를 들으면 그룹 내 학생들이 이기적으로 결정을 내렸는지 아니면 그룹을 위해 협력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었겠죠.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학생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까요? 자신은 기부를 한푼도 하지 않고(즉 50개의 토큰을 확보해 두고) 나머지 3명이 공동 계좌에 기부한 돈을 나눠 가지면 될 겁니다. 하지만 4명이 학생이 모두 그런 생각을 하면 공동 계좌에 한푼도 적립되지 않을 테고 공동 계좌에 적립된 돈을 2배로 불려준다는 혜택을 얻지 못하겠죠.

그래서 공동의 이득을 위해 협조적으로 행동하는 학생이라면 공동 계좌에 기부하는 것이 자신이 받아갈 절대금액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또 어떤 학생은 매번 기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공동 계좌에 얼마나 기부됐는지의 정보를 듣고서 기부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겠죠. 만일 다른 학생들이 직전에 기부를 별로 하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기부하지 않겠다', 반대로 공동 계좌에 쌓인 금액이 이전보다 많아졌다면(직전에 기부가 많이 이뤄졌다면) '이번에는 기부해야겠군'이라는 전략을 취할 겁니다. 하지만 그룹 내에는 남들이 협조적으로 행동할 때(매번 기부를 하거나, 상호호혜의 원칙에 따라 기부를 결정하거나) 자신은 이기적으로 행동함으로써 공동의 이익에 '무임승차'하려는 학생도 있을 겁니다.

쿠르즈반과 하우저가 여러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반복한 결과, 예상한대로 학생들의 성향이 협력자(cooperator), 보답자(reciprocator), 무임승차자(free rider)로 뚜렷하게 나뉘었습니다. 협력자는 매번 기부하려는 사람인 반면, 보답자는 조건에 따라 협조 여부를 결정하는 자로서 남들이 많이 기부할 때만 자신도 기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무임승차자는 자신이 가진 50개의 토큰을 내어주지 않고 다른 사람의 기부로부터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이죠. 중간값(median)을 따져보니 무임승차자는 1개, 보답자는 25개, 협력자는 50개의 토큰을 기부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향의 분포였습니다. 협력자는 13%, 보답자는 63%, 무임승차자는 20%로 나타났습니다. 합쳐서 100%가 안 되는 이유는 유형을 정하기가 애매한 3명의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아마 3명의 학생들은 전략 없이 무작위로 행동한 탓일지도 모름). 이러한 분포로 인해 공공재 게임을 충분히 반복해 보면 세 유형의 사람들이 비슷한 이익을 얻는 상태로 수렴되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무임승차한다고 해서 특별히 많은 금액을 독차지하는 것도 아니었고, 매번 기부를 행하는 협력자라고 해서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었죠. 이론적으로 보면 25에서 125의 범위로 가져가는 이익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었지만 학생들은 대략 70에서 77.5 정도의 이익을 나눠 가졌습니다.

쿠르즈반과 하우저는 이 실험을 통해 협력자, 보답자, 무임승차자로 이루어진 인구 분포가 안정적인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다는 시사점을 얻었습니다. 그룹의 크기가 충분히 크다면, 대략 13 : 63 : 20의 분포로 협력자, 보답자, 무임승차자가 존재하리란 점도 알려주죠. 물론 이 실험으로는 개인이 어떤 종류의 게임(혹은 의사결정)이든 항상 자신의 협력 유형을 고수하는지, 아니면 종류가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협력자-보답자-무임승차자 전략을 넘나드는지의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추후에 다른 실험으로 증명해야 할 가설이지만, 개인의 협력 유형은 다른 종류의 게임(혹은 의사결정)이라고 해서 크게 바뀌지 않을 거라 짐작됩니다.

여러분의 조직을 둘러보면, 새로운 제도나 전략에 앞장서서 참여하려는 사람, 다른 직원들의 태도를 보고 결정하려는 사람, 뒷짐 지고 있다가 다른 직원들이 이뤄낸 성과에 얹혀 가려는 사람이 눈에 띌 겁니다. 쿠르즈반과 하우저의 실험을 일반화해 본다면, 충분히 큰 조직에서 10명 중 8명 정도는 협조적이고 나머지 2명은 상황에 묻어가려는 무임승차자가 존재하리라 짐작됩니다.

그렇다면 조직의 공동 이익을 위해 무임승차자를 최소화하는 조치가 필요할 겁니다. 쿠르즈반과 하우저의 분석에 따르면, 3명의 보답자가 1명의 협력자와 그룹을 이룰 때와 1명의 무임승차자와 그룹을 이룰 때, 전자가 후자보다 약 40% 많은 이익을 달성하리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과연 무임승차자를 없앨 수 있을까요? 예전의 글(무임승차자, 그들을 어떻게 할까요?)에서 언급했듯이, 무임승차자의 존재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며 그들을 모두 발본색원하겠다는 조치는 힘만 많이 들 뿐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무임승차자 제거 때문에 '부칙'을 잔뜩 달릴수록 제도가 누더기가 되고 제도의 본래 목적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무임승차자가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에 무임승차자는 과연 몇 명입니까? 소수의 무임승차자를 그대로 두면서 협력을 권장하는 조직관리가 필요합니다. 무임승차자를 '발라내겠다'는 극단과, 무임승차자를 '방치하는' 극단 사이에서 적절하게 무게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참고논문 : Experiments investigating cooperative types in huma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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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디 이타적이다   

2012. 2. 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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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디 이기적일까요, 아니면 이타적일까요? 이 질문은 사실 꽤 민감해서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니 하면서 오래 전부터 여러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는 양상과 비슷한 논란을 야기합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보느냐 이타적인 존재로 보느냐에 따라 인간을 대하고 다루는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생존을 위해 자기에게 유리한 것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존재로 인간을 규정한다면, 그러한 이기심이 조직과 사회의 안녕을 해치지 않도록 하고 나아가 시너지를 구축하도록 하기 위해 통제와 명령으로 인간을 다스리고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 당위성을 갖습니다. 반대로, 생래적으로 타인을 돕고 자신을 기꺼이 희생함으로써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 받고 보호 받으려는 존재로 인간을 바라본다면,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을 존중하고 타인과 사회에 기여하려는 내적 동기를 극대화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습니다.



인간이 본디 이기적인지 이타적인지에 관한 논쟁은 이 블로그에서 다루기에는 상당히 버거운 주제입니다. 하지만,   유아와 침팬지를 대상으로 실험한  펠릭스 바르네켄(Felix Warneken)과 마이클 토마셀로(Michael Tomasello)의 연구 결과를 들여다 본다면, 인간이 본디 이타적인 동물이라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연구자들은 17.5~18.5 개월 정도인 24명의 유아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 간단한 과업을 진행했습니다. 실험자가 일부러 펜이나 빨개집게를 떨어 뜨리고 손에 안 닿는 척 하거나, 손에 물건을 가득 들고 있어서 캐비넷 문을 열지 못하는 척 하거나, 또는 책을 쌓다가 실수로 책을 미끄러뜨렸을 때 유아들이 어떤 행동을 보일지 관찰했습니다. 모두 10가지의 과업을 각각 몇 차례씩 수행한 결과, 유아들은 10회 시도할 때마다 5.3회 정도 실험자를 도와주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대조 조건(control condition)일 때의 1.5회에 비하면 확실하게 차이가 나는 결과였죠. 

유아 각각을 대상으로 분석해 보니 24명 중 22명의 유아들이 적어도 한 번 이상 실험자를 도왔습니다. 개인별로 차이가 있긴 했지만, 어떤 유아가 항상 남을 돕는지 또 어떤 유아가 절대로 남을 돕지 않는지 구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바르네켄과 토마셀로는 비슷한 실험을 세 마리의 침팬지를 대상으로 실시했습니다. 침팬지는 인간과 동일한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영장류이기에 이타성의 본류를 확인하는 데에 좋은 실험 대상이죠. 침팬지들에게도 모두 10가지 종류의 과업을 실시했는데, 예를 들어 실험자가 테이블을 스폰지로 닦다가 일부러 떨어뜨리고는 집어올릴 수 없는 척 하거나, 손에 물건을 잔뜩 들고 있어서 바닥에 있는 물건을 치우지 못해 바닥에 앉지 못하는 척 하거나 했죠. 그 결과, 유아를 대상으로 했을 때와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비록 유아들보다는 도와주는 회수가 적었지만(물건을 가지고 놀려는 습성을 보여서), 침팬지들은 대조 조건에 속할 때보다 실험 조건에 속할 때 도움이 필요한 실험자를 더 많이 돕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다음의 링크를 누르면, 실험의 결과를 동영상으로 간단하게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1번부터 4번은 유아들 대상의 실험이고, 나머지는 침팬지 대상의 실험입니다.

Movie S1
Clothespin Task

Movie S2
Cabinet Task

Movie S3
Book Task

Movie S4
Flap Task

Movie S5
Lid Task (Alexandra)

Movie S6
Mould Task (Alexandra)

Movie S7
Sponge Task (Alexandra)

Movie S8
Lid Task (Annet)


바르네켄과 토마셀로의 실험은 인간이 남을 도우려는 이타심을 타고났을 거라고 짐작케 합니다. 이타심이 발현되는 이유가 사회로부터 배척 당하지 않고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해도, 또는 '이기적 유전자' 관점에서 유전자가 자신의 복제 가능성을 높이려고 숙주인 인간을 이타적으로 행동하도록 조종하는 것이라 말한다 해도, 그 이유가 뭐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댓가 없이 타인을 도우려는 심성을 가지고 있음을 이 실험이 (비록 단편적이지만) 보여줍니다.

심리학자이자 경영학자인 더글러스 맥그리거(Douglas McGregor)는 조직의 구성원들을 어떤 가정을 가지고 대하느냐에 따라 'X이론'과 'Y이론'을 주창했습니다. X이론은 직원들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체크해야 하고, 동기가 사라지면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바른 길로 가도록 끊임없이 동기를 불어넣어야 한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통제와 규율, 당근과 채찍을 통한 경쟁을 강조하죠. 반면, Y이론은 직원들이 성취감과 자기실현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솔선하며 자율적인 책임 하에 목표에 헌신한다는 관점입니다. 따라서 Y이론 하에서는 자유와 창의, 협력과 상호존중을 기치로 삼습니다.

바르네켄과 토마셀로의 실험은 Y이론을 지지합니다. 인간은 본디 이타적이고 선한 존재이므로 자율을 부여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할 경우 최고의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는 길임을 시사합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여러분을 이타적인 존재로 대합니까, 아니면 이기적인 대상으로 바라봅니까? 이는 매우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입니다. 인간은 본디 이타적이고 적어도 이기적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참고논문 : Altruistic Helping in Human Infants and Young Chimpanze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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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이 나쁜 행위를 오히려 조장한다?   

2012. 2. 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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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자인 유리 그니지(Uri Gneezy)와 알도 루스티치니(Aldo Rustichini)는 벌금이 사람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20주 동안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실험 대상으로 삼은 곳은 이스라엘 하이파 시내에 위치한 11개의 사설 탁아소들이었죠. 탁아소의 운영시간은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였습니다. 몇몇 엄마들이 직장일로 인해 아이를 늦게 찾아가는 일이 있었고 그 때문에 탁아소 직원 중 한 명이 초과근무를 해야 했지만, 늦은 것에 대한 벌금은 없었습니다.

그니지와 루스티치니는 4주 동안 엄마들이 몇 시에 아이를 찾아가는지 살펴보고 그 중 지각건수가 얼마나 되는지 기록했습니다. 4주 후에 그들은 11곳의 탁아소 중 7곳의 엄마들에게 아이를 10분 이상 늦게 찾아 갈 경우 10세겔 (약 3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나중에 비용을 합산하여 청구하겠다고 알렸습니다. 비교를 위해서 나머지 4곳의 탁아소에는 벌금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죠.



벌금을 도입한 7곳의 탁아소에서 과연 지각건수가 감소했을까요? 예상과 달리 지각이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이 확연하게 발견되었습니다. 벌금을 부과하기 전에는 탁아소 한 곳당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7~8명의 엄마들이 지각하곤 했는데, 벌금 제도를 도입한 첫째 주에 11건, 둘째 주에 14건으로 오르더니 한 달이 지나자 20건에 육박했습니다. 벌금 제도를 운영한 12주 동안 지각건수는 대략 14~18건 사이를 왔다 갔다 했죠. 벌금이 지각을 줄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무색해지고 말았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벌금 제도를 폐지한 이후(17주차 이후)에 나타났습니다. 벌금을 없앴으니 예전처럼 7~8건 정도로 지각건수가 내려 오리라 기대했지만, 한 번 늘어난 지각건수를 줄어들 줄 몰랐습니다. 벌금 제도를 운영할 때와 변함이 없었죠.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벌금은 바람하지 않은(혹은 원하지 않는) 무언가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하는 장치입니다. 그런데 그런 장치가 오히려 원치 않는 일을 자극한다는 것은 뒤통수를 얻어 맞는 듯한,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벌금으로 인해 한번 자극 받은 '불복종'이나 '일탈'은 벌금이 없어진 후에도 계속되는 현상 또한 궁금증을 자아내는 대목입니다. 

그니지와 루스티치니는 벌금이라는 장치가 아이를 늦게 찾아가는 미안함으로부터 엄마들을 자유롭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벌금이 아이를 늦게까지 봐주는 '무료 봉사'를 돈이 거래되는 서비스 상품으로 바꿔 버렸기 때문이죠. 비록 소액이지만 벌금이 늦게까지 아이를 봐준 것에 대한 정당한 가격이라고 인식된 까닭입니다.

한번 이렇게 엄마들의 마인드가 형성되고나니 벌금 제도가 없어져도 탁아소 직원은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선의에 의해 아이를 늦게까지 봐주는 직원과 그런 선의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가능한 한 늦지 않으려는 엄마들 사이의 '사회 규범(social norm)'이 약화되어, 엄마들이 탁아소 직원을 '돈을 받으면 일해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두 명의 법학자가 실시한 이 실험은 벌금이 과연 '억지 효과(무언가를 금지하는 효과)'가 있는지에 관한 것이지만, 많은 기업이 성과를 높일 목적으로 도입하는(도입해야 한다고 믿는) 성과급 제도에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예전에 '연봉을 왕창 못 주면, 차등하지 마라'란 글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전반적으로 임금 수준이 낮은 회사들은 일 잘하는 직원들에게 돈을 '몰아 주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성과급 도입을 추진하곤 합니다.

인건비 예산이 얼마 되지 않으니 일 잘하는 직원이 1년에 더 받는 금액은 고작 2~300만원 정도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몇몇 경영자는 그 정도의 차등액이 일 잘하는 직원들의 사기를 높일 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을 동기부여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기는 '순진함'을 드러내곤 합니다.

일을 잘하지 못한(정확히 말하면 평가를 잘 받지 못한) 직원들은 2~300만원을 덜 받는 '벌금'을 부과 받은 후에 성과를 높이려고 애쓰려 할까요? 위 실험 결과를 음미해 보면, 이는 헛된 희망일지 모릅니다. 상대적으로 덜 받게 되는 돈은 일을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댓가'라고 인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성과급 받으려고 고생할 바에야 난 그냥 이렇게 일할래"라고 말하는 직원들의 말은 억지스럽게 운영하는 성과급 제도가 일을 잘하지 못한 탓에 가져야 했던 미안함으로부터 직원들을 자유롭게 만들고 또한 일을 잘하지 못함에 대한 좋은 명분을 부여한다는 증거는 아닐까요? 실제로 직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성과급에 대한 냉소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새삼 느끼곤 합니다. 탁아소에 아이를 맡기는 엄마들이 원하는 방향과 반대로 행동했듯이, 직원들도 회사 성과를 높이기 위한 어설픈 의도에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할 겁니다.

자기 자신은 돈 몇 푼 준다고 좋아하지 않는 줏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남들은 돈 몇 푼에 쉽게 의욕을 불태우리라 여기는 오류에 빠져 있진 않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회사가 실시하는 여러 가지 금전적, 비금전적 보상이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하기는커녕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해도 괜찮도록 명분을 주는 '이상한 벌금'으로 인식되지는 않은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 A fine is a pri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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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른 아침에 밀크쉐이크를 많이 살까?   

2012. 2.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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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패스트 푸드 업체가 밀크쉐이크의 판매를 늘리기 위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밀크쉐이크 시장을 여러 개의 세그먼트로 나눈 다음, 각 세그먼트에 해당하는 고객들을 초청하여 어떤 밀크쉐이크를 좋아하는지를 묻는, 아주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고객들이 걸쭉한 것을 좋아하는지, 얼음이 많이 들어가서 차가운 것을 좋아하는지, 당도가 높은 것을 원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라고 봤습니다. 다시 말해, 고객들이 밀크쉐이크 자체의 어떤 특성을 좋아하는지를 올바로 캐내기만 하면 보다 여러 고객들에게 선택되는 밀크쉐이크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밀크쉐이크의 판매는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마케팅 연구자가 매장에서 밀크쉐이크 등 여러 제품이 판매되는 모습을 하루 종일 지켜보다가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특이하게도 밀크쉐이크 판매의 40%가 아침에 발생했던 겁니다. 그것도 사람들이 출근을 서두르는 이른 아침에 말입니다. 게다가 밀크쉐이크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거의 매장에 혼자 들어와 주문했고, 매장에서 먹지 않은 채 가지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그는 왜 하필 그 사람들이 밀크쉐이크를 이른 아침에 사가지고 가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밀크쉐이크를 구입하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사람들은 출근을 위해 먼 거리를 자동차로 달리는 동안, 지루함을 달래거나 아침식사를 대신하기 위해 손에 잡고 먹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운전에 방해되니 햄버거는 적당하지 않겠죠. 감자칩은 손에 기름이 묻어 자칫 입고 있던 정장을 더럽힐지 모르기 때문에 좋은 대안이 아닙니다. 바나나는 먹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기 때문에 출근시간의 지루함을 달래주지 못합니다. 커피는 너무 뜨거워서 운전하면서 먹기 어렵습니다. 콜라와 같은 탄산음료는 아침에 먹기에는 부담스럽고 건강에 좋다고 보기 어렵죠. 밀크쉐이크가 점심을 먹기 전까지 허기를 달래줄 만하고, 건강에 좋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콜라보다는 낫습니다. 결국 그래서 자가용 승용차로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안성마춤인 먹을거리로 밀크쉐이크가 선택된 것입니다.

그는 이 사실을 접하고 밀크쉐이크라는 제품 자체의 특성에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달았습니다. 제품 자체가 아니라 제품을 둘러싼 상황과 맥락을 살펴야 문제의 진짜 해답을 얻을 수 있음을 배운 것이죠. 그래서 제품을 세그먼트로 나눌 것이 아니라, 제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직업을 세그먼트해야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제품의 관점이 아니라, 고객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을 새삼 절감했죠. 

그렇다면 이른 아침에는 출근을 서두르는 자가용 승용차 통근자들이 좋아할 만한 밀크쉐이크를 제공하것이 전략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밀크쉐이크에 과일을 첨가한다든지, 밀크쉐이크가 쉽게 빨대를 통과하지 않도록 걸쭉하게 만들어서 자동차를 모는 내내 밀크쉐이크를 즐기게 한다든지 등을 생각할 수 있겠죠. 또한, 메뉴판에는 똑같이 밀크쉐이크라 씌여 있다 해도 아침에 파는 것과 한낮에 파는 것의 특성을 다르게 해야 할 겁니다. 한낮에는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주부, 학생 등)이 밀크쉐이크의 주요 대상이니까 말입니다.

IT전문가인 클레이 셔키(Clay Shirky)는 자신의 저서 '많아지면 달라진다(Cognitive Surplus)'에서 시장조사 전문가인 제럴드 버스텔(Gerald Berstell)이 경험한 이 일화를 '밀크쉐이크 실수(Milkshake Mistake)'라는 말로 정리했습니다. 이 말은 버스텔처럼 실제로 어떤 고객들이 밀크쉐이크를 사가는지 관찰하지 않은 채 밀크쉐이크라는 제품 자체만을 개선하려 했던 다른 마케팅 전략가들을 비꼬는 말입니다. 경영학자 헨리 민츠버그(Henry Mintzberg)는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전략을 멋대로 예측하거나, 실제의 상품과 고객을 접촉하지 않고 전략을 결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또한 '밀크쉐이크 오류'는 상황과 맥락을 보지 않은 채 제품이라는 대상 자체에 조치를 취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오류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많아지면 개인의 유약함에 혀를 차면서도 사회의 구조적인 병폐를 직시하지 않으려는 것, 청년실업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엄두가 나지 않거나 용기가 없어서 신입사원 임금을 깎는 식의 단기적이고 차별을 심화시키는 해법을 실행하는 것 등이 밀크쉐이크 실수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전략의 핵심과 문제의 해법은 어떤 대상보다도 그것을 둘러싼 상황에 있을 때가 더 많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전략을 수립하든 문제를 해결하든 간에 '밀크쉐이크 실수'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데, 괜히 애먼 제품에만 관심을 집중하거나 엉뚱한 사람만 잡고 있을지 모르니 말입니다. 대상보다는 맥락을 바라보는 자야말로 현자라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현자입니까?

(*참고논문 :  Finding the right job for your product )
(*참고도서 : Henry Mintzberg, Strategy Safari : A guided tour through  the wilds of strategic management, 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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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원을 늘린다고 창의성이 늘지 않는다   

2012. 1. 3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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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혼자 개별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해법을 찾는 것이 나을까요? 사내에서 교육을 하거나 워크숍을 진행할 때 대개 조를 편성해 조별로 실습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혼자서 생각하는 것보다 여럿이 생각을 모아 토론으로 결정해낸 의견이 더 우수하다고 기대합니다.

6명씩 조를 이루는 것이 보통인데, 워크숍을 진행하며 토론을 진행하는 광경을 지켜보면 6명 중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2~4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구성원은 소극적으로 듣기만 하거나 아예 딴짓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딴짓을 하다가 다른 구성원들이 내놓은 의견을 뒤늦게 반대하며 발목을 잡는 경우도 가끔 있지요. 그래서 조를 이루어 토론하게 하되 그 인원 규모를 적절하게 설정하는 것이 생산성 측면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느끼곤 합니다. 어쩔 때는 조를 만들 게 아니라 혼자 개별적으로 과제를 수행케 하는 것이 낫겠다 싶을 때도 있죠.



하나의 조를 몇 명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을까요? 워크숍에서 기대하는 산출물이 절차적이고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고 한다면 코네티컷 대학교의 스티븐 오언(Steven V. Owen) 등이 수행한 실험에서 힌트를 얻는 것도 좋을 겁니다. 연구자들은 교육심리학을 수강하는 163명의 학부생들을 각각 1명, 3명, 6명, 12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으로 나눈 다음, 모두 3가지 과제를 부여했습니다.

첫 번째 과제는 철사로 된 옷걸이의 용도를 다양하게 생각하라는 것이었고, 두번째 과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키가 12인치로 갑자기 줄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상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양말처럼 세상에서 '쌍'으로 존재하는 것 중에서 가능한 한 특이한 것을 찾아내라는 과제를 부여했습니다. 각 과제를 수행하는 데에 시간을 길게 주지 않고 5~10분 내에 완성하도록 했습니다.  

각 그룹이 내놓은 의견을 양, 유연성, 독창성이라는 3가지 요소로 평가했더니, 3명 짜리 그룹의 결과가 6명 짜리 그룹과 별다른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은 그룹 인원을 3명에서 6명으로 늘려도 인원을 추가시킨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학생 1명이 평균적으로 각 그룹에 기여한 바를 측정하니 그룹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 값이 줄어드는 현상이 발견되었습니다. 결국 6명 짜리 그룹과 12명짜리 그룹에서는 규모 자체가 개인으로 하여금 동등하게 기여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는 의미죠. 물론 개인이 혼자 과제를 수행하는 1명 짜리 그룹보다 3~12명 짜리 그룹이 더 생산적인 결과물을 내놨지만 말입니다.

그룹 규모가 3명이든 6명이든 별 차이가 없다는 위 실험의 결과를 실무에 적용해 본다면, 한 조의 인원수를 3명으로 하는 것이 낫습니다. 왜냐하면 3명으로 조를 구성하면 6명일 때보다 하나의 과제를 더 많은 조가 논의할 수 있고, 서로 다른 과제를 분담해 토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행해야 할 과제가 절차적이고 명확하며 '노동집약적'이라면 그룹 규모가 커질수록 생산성이 높아집니다. 분업을 통해 결과물의 양과 질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 산출을 위한 과제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인원을 많이 참여시킨다고 해서 나아지지 않습니다. 활발하게 의견을 낼 줄 아는 3명만 있어도 충분하죠. 

3명 정도로 하나의 조를 구성한다고 해도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위에서 학생 1명이 기여하는 정도가 그룹 규모가 커질수록 작아진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혼자 수행할 때보다 3명이 함께 수행할 때 개인의 기여도가 낮아진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아이디어를 함께 내는 것보다는 각자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진 후에 각자의 결과물을 취합하고 정제하는 방식이   아이디어의 양적, 질적 생산성 측면에서 더 나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연구자들의 실험 결과에서 여러 차례 증명된 바이기도 합니다.

며칠 후에 크고 작은 워크숍을 기획하고 있습니까? 워크숍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한 조의 구성원을 몇 명으로 할까도 중요합니다. 조 인원을 적절하게 운용하는 간단한 조치만으로 워크숍의 생산성을 증대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참고논문 : Fluency flexibility and originality as a function of group siz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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