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어떻게 행동할지 머리 속에서 미리 시뮬레이션해 두면 그냥 앉아서 미래가 다가오길 기다리는 것보다 대체적으로 실수할 위험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원하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여러분도 익히 아는 바입니다. 기업에서 매번 수립하는 여러 종류의 전략이나 실행계획들은 바로 이런 목적으로 존재하죠. 

그런데 미래에 벌어질 일이나 취할 행동들 중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또 어떤 것들은 부정적인 느낌을 전달합니다. 고객의 구매 패턴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아서거나 우리의 전략이 경쟁사의 마케팅 효과를 상쇄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예상되는 경우, 미래를 상상하고 그에 따라 전략을 수립하는 사람의 머리 속은 온통 장미빛 미래로 가득하겠죠.

반면 애써 연구하여 출시한 제품이 성장 궤도를 타기는커녕 소비자의 관심조차 얻지 못하거나 내부적인 역량의 한계로 인해 전략 실행이 더딜 가능성이 존재하리라 본다면, 당연히 전략가의 마음에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려질 겁니다. 주도면밀한 전략가라면 미래의 여러 가지 시나리오들이 장미빛인지 회색빛인지에 감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각각을 동일한 비중으로 면밀하게 살핀 후에 역시 동일한 노력을 기울여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래를 상상하고 다시 떠올릴 때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것에 더 끌리는 편향이 존재한다는 칼 쉬푸나르(Karl K. Szpunar)와 동료들의 연구 결과는 미래를 바라보는 전략가들이 당혹스럽게 만들기 충분합니다. 쉬푸나르는 보스턴 대학교 학생들 48명에게 과거 10년 간의 기억 속에서 110개의 특별한 장면을 떠올려보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 다음,인물(자신 이외의), 장소, 특정 물건이 반드시 들어가도록 각 장면을 간단하게 기술하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달에 스티브와 함께 베스트 바이란 상점에서 새 아이팟을 샀다. 비싼 가격이었지만 그럴 만했다." 라고 써야 했죠. 쉬푸나르는 학생들이 제시한 110개의 정보를 기초로 인물, 장소, 물건을 무작위로 섞어 90개의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를테면 "데이비드 - 월마트 - 담배"라는 식이었죠.

일주일 후 쉬푸나르는 학생들을 실험실로 다시 불러 미리 무작위로 만들어 놓은 90개의 조합을 차례로 제시했습니다. 학생들은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 '중립적으로'라는 꼬리표가 하나씩 달려 있는 조합을 본 후에 꼬리표의 내용대로 향후 5년 내에 일어날 일을 상상해야 했습니다. "데이비드 - 월마트 - 담배"란 조합에 '부정적으로'란 꼬리표가 붙었다면 "데이비드와 함께 금연 장소인 월마트 매장 내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매장 관리 직원에 의해 쫓겨날 것이다"란 식으로 미래를 부정적으로 상상하도록 한 것입니다.

90개의 조합에 대하여 이렇게 미래를 상상한 직후(10분 후)에 학생들 중 일부는 쉬푸나르로부터 갑자기 '기억력 테스트'를 하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1일 후에 기억력 테스트를 하겠다는 말을 역시 갑자기 들었죠. 쉬푸나르는 앞서 제시한 각 조합에서 한 가지 요소를 지운 다음(예를 들어 "데이비드 - _____ - 담배") 지워진 내용이 무엇인지 맞혀보라고 학생들에게 요청했습니다. 

학생들은 90개의 조합 속에서 지워진 내용이 무엇인지 잘 맞혔을까요? 10분 후에 테스트 받은 학생과 1일 후에 테스트 받은 학생 중 누가 더 기억을 잘 해냈을까요? 당연히 10분 후에 바로 테스트 받은 학생들이 빈칸의 내용을 맞혔습니다. 하지만 쉬푸나르의 관심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긍정적으로 미래를 상상할 때와 부정적으로 미래를 그릴 때의 기억력 차이가 있는지를 보고자 했습니다.

10분 후에 테스트 받은 학생들은 조합에 달려있던 꼬리표의 내용에 따른 기억력의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1일 후에 테스트 받은 학생들은 긍정적으로 미래를 그리라고 요구 받았던 조합의 내용을 더 잘 기억하는 경향(35% 정도)이 발견됐습니다. 학생들은 부정적으로 미래를 상상해야 했던 조합의 내용은 상대적으로 기억을 못했습니다(25% 정도만 기억). 중립적인 미래를 그리라고 한 조합에 대해서 학생들은 중간 정도의 기억률을 보였죠.

왜 부정적인 미래의 디테일을 더 빨리 망각하는 걸까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 실험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 기억과 관련된 우리 뇌의 생리적 한계 때문이라고 추측됩니다. 우리가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할 때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라고 말하며 부정적인 기억을 덜 떠올리는 이유와 동일한 메커니즘 때문이라고 짐작됩니다. 

어찌됐든, 부정적인 시나리오보다 긍정적인 시나리오의 내용을 더 잘 기억해낸다는 쉬푸나르의 실험은 전략가가 미래의 여러 상황을 머리 속에 그리고 대응전략을 수립할 때 긍정적인 시나리오에 끌릴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우울한 회색빛 시나리오보다는 장미빛으로 반짝거리는 시나리오를 기대하고 그것에 대비하는 데에 힘을 더 쏟을 거라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정적인 시나리오의 내용을 더 빨리 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야기할 리스크를 시의적절하게 최소화시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제 경험상, 시나리오 플래닝의 결과물로 여러 개의 시나리오를 의사결정자들에게 제시하면 그들은 가장 최선의 시나리오(장미빛 시나리오)가 가장 실현가능성이 높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처음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뿐 시간이 지날수록 관심의 영역에서 멀어집니다. 심지어 의사결정자들은 어떻게 하면 장미빛 시나리오가 일어나도록 할 수 있을지에 관심을 보입니다. 시나리오는 컨트롤이 불가능한 외부환경의 거대한 흐름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네들의 조치를 통해 원하는 시나리오를 유도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입니다.

편향에 빠지지 않은 채 중심을 잘 잡을 줄 아는 전략가는 미래가 긍정적으로 보이든 부정적으로 느껴지든 간에 항상 동일한 비중으로 세부내용을 검토하려고 대비해야 합니다. 과거의 일이든 미래의 시나리오든 부정적인 것을 더 빨리 망각한다는 인간의 심리를 염두에 둔다면 회색빛 미래를 애써 무시하며 장미빛 미래에 헛된 기대를 거는 오류를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나치면 안 되겠지만 일부러 회색빛 시나리오를 잊지 않으려고 되새기는 것도 필요하겠죠. 긍정적인 미래만 보려는, 부정적인 미래는 쉽게 망각하는 편향을 주의하기 바랍니다. 장미빛 미래가 품고 있는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참고논문)
Memory for Emotional Simulations:Remembering a Rosy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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