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들은 나를 이상하게 평가할까?   

2011. 3. 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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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비곤 호수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라디오 진행자인 개리슨 케일러(Garrison Keiler)가 "워비곤 호수가에 사는 남자들은 모두 잘 생겼고 모든 여자들은 강하며, 모든 아이들의 지능은 평균 이상이다" 라고 언급하면서 생긴 심리학 용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평균 이상으로 여긴다는 점을 지적하는 말이죠. 대략 90퍼센트의 사람들은 지능과 능력에 있어 상위 10%에 속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엄밀히 따지면, 50퍼센트의 사람들이 상위 50%에 속한다고 생각해야 옳은데도 말입니다.

바로 이런 '워비곤 호수 효과' 때문에 다면평가(360도 피드백)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기분 나빠하고 심하면 크게 충격을 받고 좌절하는 현상을 보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과 타인이 생각하는 자신 사이의 괴리가 왜 그렇게 큰지를 수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심리학자 쉬나 아이엔가는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의 MBA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다면평가를 정례화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신입생(대개 직장을 다니다가 들어온)들의 예전 동료, 고객, 그리고 현재의 급우들이 다면평가자가 되었죠.



다면평가를 실시하자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평가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90퍼센트 이상의 학생들이 왜 자신이 느끼는 자신과 타인이 느끼는 자신이 다른지 이해하지 못했죠. 자신을 리더라고 생각한 어느 학생은 남들이 자신을 똑똑하게 평가하지만 경영자가 될 재목은 아니라는 평가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격이 다혈질은 어느 학생은 남들로부터 정서가 불안하다는 평가를 받고서 매우 기분 나빠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이엔가는 이런 '부조화' 현상이 매년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죠.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과 타인이 생각하는 자신 사이에 왜 이런 갭이 생기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은 나의 행동이나 사고에 대해 합리화할 기회를 가지지만, 타인은 나의 행동이나 사고를 그들의 경험에 근거하여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합리화'라는 색안경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고, 타인은 '그들 자신의 경험'이라는 색안경으로 나를 바라보기 때문이죠.

'워비곤 호수 효과'는 '지식의 저주'라는 말과도 연관이 됩니다. 1990년에 엘리자베스 뉴턴은 스탠퍼드 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녀는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후, 한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생일 축하송'과 같은 간단한 노래의 멜로디를 입으로 소리내지 말고 오직 박자에 맞춰 테이블을 손가락으로만 두드리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무슨 노래인지 알아맞히라는 임무를 부여했죠.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노래의 제목을 맞혔을까요? 실험에 사용된 노래는 모두 120곡이었는데, 그 중 3곡 밖에 맞히지 못했답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테이블을 두드리는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테이블을 두드리면, '듣는 그룹'의 학생들 중 50%는 곡명을 알아맞히리라 추측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못미치게 결과가 나오자 상당히 의아해 했습니다. "이렇게 쉬운 곡도 못 맞히다니, 바보 아냐?" 라는 반응도 나왔죠.

이것이 바로 '지식의 저주'입니다. 테이블을 두드리는 사람은 자신이 이미 노래를 알고 있기 때문에 박자를 듣는 사람들이 왜 곡명을 모르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아는 것을 다른 사람이 모른다는 것이 '용서'가 안 되는 것이죠. 칩 히스와 댄 히스는 그들의 책 '스틱'에서 "무언가를 알게 되면 알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상상할 수 없게 된다" 고 지적합니다. 즉 자신의 행동과 사고에는 분명한 이유와 근거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는 알지만, 남들이 그것을 모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이죠.

미국에서는 '포춘 지' 선정 500대 기업 중 90%가 다면평가를 채택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 초반부터 많은 기업들과 공공기관들이 다면평가를 도입했는데, 운영하다가 비중을 줄이거나 아예 폐지해 버리는 조직이 많습니다. 제도를 운영해서 구성원의 불만만 야기하느니 차라리 폐지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모양입니다. '워비곤 호수 효과'와 '지식의 저주 효과'로 인한 구성원들의 불만과 갈등을 다면평가 자체의 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하지만 다면평가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점검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입니다. '좋은 게 좋다'란 생각으로 다면평가를 '인기투표'로 변질시키지 않는 한(대개 다면평가를 보상으로 연결시킬 때 인기투표의 경향이 나타남), 다면평가는 남들이 생각하는 '나'를 통해 좀더 나은 '나'를 만들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비록 평가 결과를 받는 순간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과 타인이 생각하는 자신 간의 괴리 때문에 기분이 나쁘고 충격을 받겠지만, 그런 자극을 통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하죠. 1년에 한번 정도 그런 자극은 직원 개인에게 꼭 필요한 '입에 쓴 약'입니다.

다면평가에 문제가 많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남들의 평가을 통해 스스로를 계발할 동기를 찾지 못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에게는 타인의 평가가 그저 기분 나쁜 것에 그칠 뿐입니다. '목소리 큰' 그들의 불만을 잠재우려고 다면평가를 폐지한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일입니다.

다면평가에 대한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다면평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채택해야 합니다. 하지만 '보상'에는 반영하지 않아야 합니다. 연봉이나 승진 점수에 반영하기 시작하면 인기투표로 흐르거나 건강한 긴장감을 소모적인 갈등으로 변질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직원 각자에게 피드백하여 역량 계발의 동기를 가지도록 유도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평가로만 끝나고 개인들에게 피드백하지 않는 기업들이 종종 있는데, 그렇게 하면 직원들은 자신의 다면평가 결과가 이상한 용도로 쓰인다고 오해를 키울 뿐입니다.

다면평가를 통해 직원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워비곤 호수 효과'와 '지식의 저주'를 깨뜨림으로써 다른 직원과 조화롭게 어울리고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신과 타인 사이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협력을 촉진하는 장치로 다면평가를 유도하는 일이 인사부서와 경영자의 몫이 아닐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왜 남들은 나를 이상하게 평가할까?" 라고 말하면서 다면평가로부터 아무것도 배우려하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인내심'도 필요합니다.

(*참고도서 : '쉬나의 선택실험실', '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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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관리의 리스크   

2011. 3.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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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증권회사, 보험회사와 같은 금융기관들은 금리, 환율, 유가 등에 시시각각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리스크 관리 시스템(RMS)를 갖추고 있습니다(물론 없는 곳도 찾아보면 있겠지만). 요즘에는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제조업이나 일반 서비스업에서도 환경을 둘러싼 여러 가지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리스크 관리 기법을 채용하는 회사들이 제법 많아졌습니다.

회사마다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리스크 관리 체계의 기본적인 얼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조직 내외부에 존재하는 리스크를 파악합니다. 재무적인 리스크도 있고, 운영적인 리스크도 있습니다. 천재지변과 같은 자연 리스크가 있고, 사람들의 행동과 의사결정에 따른 리스크도 있지요. 이렇게 가능한 한 빠짐없이 기업의 성과에 영향을 미칠 만한 리스크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리스크 관리가 시작됩니다.



그 다음엔 각 리스크의 발생 가능성, 즉 발생확률을 추정합니다. 동시에 리스크가 현실로 나타났을 때 그 영향의 크기가 어떨지를 예측해 봅니다. 그러고는 발생확률과 영향의 크기를 곱해서 위험의 크기를 계산합니다. 예를 들어 공장에 화재가 발생한다는 '재해 리스크'의 확률을 1%이고 공장이 전소됐을 때의 예상 손실액이 100억 원이라고 하면, 이 리스크의 위험은 1억 원이 됩니다.

모든 리스크에 대해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어떤 리스크가 가장 큰 위협이 되는지가 파악이 되겠죠? 이제 해야 할 일은 리스크를 헷지(hedge)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환 리스크를 헷지하려면, 결제 통화의 비율을 조정한다든지 다른 회사에 환 리스크를 전가한다든지 등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운영리스크(직원의 비리, 운영상의 실수 등)에 대해서도 헷지 계획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이젠 수립된 헷지 계획을 실행합니다. 그러면서 제대로 실행에 옮겨지는지 점검하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기존의 헷지 계획을 수정 보완합니다. 만일 새로운 리스크가 발견된다든지, 발생확률과 영향의 크기가 달라져서 '가장 큰 위협이 되는 리스크'가 바뀐다면 그에 대한 헷지 계획도 수립해야 하겠죠. 리스크 관리는 이와 같이 전형적인 Plan-Do-See의 절차로 이루어집니다. 만일 여러분의 회사가 이와 같은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면, 어떤 리스크가 현실로 나타나도 튼튼하게 대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 겁니다.

하지만, 리스크 관리 체계에 대한 지나친 믿음은 오히려 매우 위험합니다. RMS 내에 리스크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 리스크는 바로 '블랙 스완(Black swan)'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리스크 관리의 첫 단계가 조직을 둘러싼 내외부의 리스크를 파악하는 일이라고 했는데, 이 단계에서 '발생확률은 아주 낮지만, 한번 발생하면 그 영향이 상상을 초월하는' 블랙 스완을 찾아내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설령 인지를 했더라도 '설마 그런 일이 발생하겠냐'며 쉽게 무시 당하기 때문이죠. 또한 광범위하게 리스크를 규명하면 할수록 '자신감 착각'이 강화되기 때문에 블랙 스완을 놓치는 역설에 빠집니다.

이번 일본 원전 사고가 블랙 스완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지진에 철저히 대비해왔던 일본조차 높이 10m 이상의 쯔나미가 몰려올지,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원전을 위태롭게 만들지를 예측하지 못했죠. 리스크 관리가 다른 산업에 비해 체계적으로 잘 구축된 미국 금융기관들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를 대비하지 못해(혹은 알고도 무시해서)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몰고 온 것도 역시 블랙 스완의 대표적인 사례죠. 2001년에 발생한 9.11 테러, 최근에 중동을 휩쓰는 '쟈스민 혁명' 등도 역시 블랙 스완입니다.

이상하게도 사고는 예상했던 리스크가 아니라, 전혀 예상하지 않은 리스크게서 발생하고, 그 영향도 매우 큽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리스크 관리 시스템은 관리가 가능한 리스크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정되고 질서정연한 산업에서 유용합니다. 관리할 수 없는 리스크(블랙 스완)이 뛰쳐나오는 복잡한 환경에서는 가치가 적죠.

리스크 관리 체계의 두 번째 약점은 발생확률과 영향의 크기를 사전적으로 결정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발생확률이 1%인지, 80%인지는 매우 자의적입니다. 게다가 미래의 일이라서 아무리 객관적인 정보를 수집한다 해도 발생확률의 정확성을 기하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특정 정보 하나가 발생확률을 1%에서 90%로 갑자기 끌어올리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왕왕 발생하니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위협이 되는 리스크'가 무엇인지를 잘못 결정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수립된 리스크 헷지 계획도 무용지물이 되는 일이 허다합니다.

리스크 관리 체계의 세 번째 약점은 리스크 헷지 계획이 '자신감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 착각은 리스크를 파악할 때도 발생하지만, 가장 위협이 되는 리스크를 헷지하기 위해 정교한 기법과 절차를 수립함과 동시에 출현합니다. "자, 이렇게 만반의 대책을 세웠으니 문제 없겠지?" 라며 긴장의 끈을 놓는 것입니다. 또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을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 혼동하는 '실행 착각'도 발생합니다. 근사한 비전 문구를 액자로 만들어 벽에 걸어두면 그게 저절로 이뤄질 것처럼 믿는 것처럼 말입니다.

블랙 스완이 갑자기 출몰하는 복잡한 상황 하에서는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리스크를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는 목표는 매번 좌절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리스크 관리 체계라도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 고 생각합니까?

환경이 복잡해지고 매번 급변한다면 철저한 리스크 관리보다는 '적응'이 생존의 키워드입니다. 미래의 변화를 미리 그려보고 그에 따라 조직의 적응력을 길러가도록 체질을 개선해야 합니다. 일본이 대지진이라는 재앙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했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빠르게 회복하고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느냐가 그들의 저력을 말해줄 잣대입니다.

사전 대비와 사후 적응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중용적 시각이 필요합니다. 철저히 대비하는 조직도 좋지만, 빠르게 회복 가능한 적응력을 갖춘 조직으로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참고도서 : '블랙 스완', '이기는 결정의 제1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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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이 좋을까, 분석이 좋을까?   

2011. 3. 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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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티모시 윌슨(Timothy D. Wilson)과 조나단 스쿨러(Jonathan W. Schooler)가 1991년에 발표한 논문은 '직관'에 관한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윌슨과 스쿨러는 학점에 유리한 점수를 부여하겠다고 하고서 '잼 시식 테스트'에 참가할 49명의 대학생들을 피실험자로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학생들에게 실험에 참가하기 3시간 전부터는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요청했죠.



학생들이 시식해야 할 잼은 '컨슈머 리포트'라는 잡지에 소개된 45개의 잼 중 5개였습니다. 1985년에 발행된 컨슈머 리포트에는 잼 전문가 7명이 45개의 잼을 맛보고 나서 달콤함, 씁쓸함, 향 등 16가지의 항목 평가를 통해 매긴 순위가 실려 있었는데, 윌슨과 스쿨러는 그 중에서 5개의 잼을 구입했습니다. 무작위로 고른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각각 1등, 11등, 24등, 32등, 44등이라고 점수를 매긴 잼들을 구입했죠. 순위의 격차가 커야 학생들이 맛 평가를 내릴 때 혼동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윌슨과 스쿨러는 학생들이 과연 전문가들과 비슷하게나마 '맛 감별력'을 나타낼지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을 달리해서 말입니다. 그 한 가지 조건은 '맛에 대한 심사숙고'를 하느냐 마느냐였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다음, 첫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잼의 맛을 본 다음 곧바로 1~9점의 척도로 평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각각의 잼을 시식하고서 왜 그 잼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지 이유를 종이에 적은 다음에 1~9점으로 평가하라고 했죠. 다시 말해 두 번째 그룹의 학생들은 자신의 '맛 평가'를 분석해야 했던 겁니다.

어느 그룹의 학생들이 전문가들의 맛 평가와 유사했을까요? 아마 자신의 맛을 분석하고 심사숙고한 학생들이 전문가들의 평가와 유사할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습니다. 맛에 대해 생각할 시간 없이 바로 평가해야 했던 학생들이 전문가들과 상대적으로 비슷하게 평가 내렸으니 말입니다.

왜 맛에 대한 분석과 심사숙고가 평가의 질을 떨어뜨린 걸까요? 왜 미각에 따라 곧바로 평가 내린 학생들이 전문가들의 평가와 유사했던 걸까요? 맛 감별에 있어 문외한이라고 할 만한 학생들이 고민하고 분석한다고 해서 맛에 관한 정보가 더 이상 생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맛을 분석하려고 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상한 정보가 끼어 들어가 맛을 '오판'하기가 쉽죠.

게다가 미각은 감각이라서 논리적인 분석(심사숙고)의 대상이 아닙니다. 감정적인 반응이니 논리로 설명하려고 하면 왜곡이 나타나는 겁니다. 물론 컨슈머 리포트의 잼 전문가들이 16가지의 항목으로 미각을 분석해서 평가했다지만, 그것은 그들이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통해 충분하게 훈련했기 때문입니다.

이 실험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고민해야 할 때와 그럴 필요가 없는 때를 잘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민한다고 해서 더 이상의 정보가 생기지 않는 경우에는 심사숙고에 의해서 의사결정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숙련된 잼 전문가들처럼 맛의 여러 가지 특성을 구분함으로써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심사숙고가 좋은 의사결정(혹은 선택)에 도움이 되지만, 아무리 애써도 직면한 상황 이외의 정보가 없다면 고민스러운 분석은 무용할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해롭기까지 합니다.

윌슨은 '잼 시식 테스트' 뿐만 아니라 '그림 고르기 실험'을 수행한 바 있습니다. 윌슨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모네와 고흐가 그린 그림과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동물 그림 3점, 이렇게 5점의 그림을 보여주고 자기 집에 걸어놓을 그림을 고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미술에는 문외한에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떠오르는 인상에 따라 선택하라고 하자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모네와 고흐가 그린 작품을 선호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왜 그 그림을 좋아하는지를 묘사(분석)하라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동물 그림을 선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보다는 동물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를 대기가 더 쉬웠기 때문인 듯 합니다.

하지만 몇 달 동안 동물 그림을 자신의 집에 걸어놓은 참가자 중 75% 정도는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에 바로 떠오르는 직관에 따라 모네와 고흐 그림을 선택했던 참가자들은 아무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역시 그림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분석을 해봤자 더 좋은 선택을 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나쁜 선택을 하게 됨을 알 수 있는 실험입니다.

이 실험들은 분석보다는 직관이 더 우수하다는 인상을 우리에게 주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이 실험의 숨겨진 교훈은 우리가 의사결정에서 직관을 적용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명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분석을 하면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다각도로 얻을 수 있는 상태인데도 빠르게 의사결정을 한답시고 직관을 적용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잼 전문가들의 직관이 뛰어나서 바로 평가를 내리는 것 같지만, 실은 10년 이상의 경험이 축적되어 잼에 맛에 관한 한 여러 가지 정보를 혀를 통해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니까요.

의사결정에 있어 직관이 유리하냐 분석이 유리하냐는 질문은 단순하게 대답할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의 직관을 믿고 따라야 할 때와 분석을 통해 좀더 많은 정보에 접근해야 할 때를 분명히 판단할 줄 알아야 옳은 의사결정의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물론 '중용'의 문제라 쉽지만은 않죠.

(*참고 논문 :
http://www.som.yale.edu/faculty/keith.chen/negot.%20papers/WilsonSchooler_Think2Much91.pd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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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태권도 승품 심사를 받다   

2011. 3. 26.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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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들의 승품 심사가 국기원에서 있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기대감과 긴장 사이를 왔다갔다 하던 아들이 드디어 1품이 되기 위한 심사를 받게 된 거죠. 학교 공부하랴 학원 다니랴, 게다가 승품 심사를 위해 일주일 동안 밤 8시에 특별훈련까지 받으랴 수고가 참 많았지요.

국기원 승품 심사장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을 올립니다.



↑ 국기원 정문의 모습. '국기원이 이렇게 생긴 곳이구나!'



↑ 국기원 내부의 모습. 생각보다 크기가 작은 경기장이었습니다.



↑ 태극 8장 품세를 연기하는 아들. 대견하게도 발차기 하나, 지르기 하나에도 힘이 느껴집니다.



↑ 아들이 가장 걱정했던 겨루기. 심사위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에서 긴장이 느껴집니다. 상대편 아이가 아들보다 커서 염려가 되더군요. 



↑ 드디어 겨루기 시작! 처음엔 약간 탐색전을 벌이다가....



↑ 서로 발차기를 교환하기 시작합니다. 


 
↑ 회심의 돌려차기! 아쉽게도 상대편 아이의 엉덩이를 살짝 빗나갔습니다. 아이들 경기라 그런지 1분도 안 되어 겨루기가 종료되더군요. 몸이 풀릴 새도 없이 끝나고 맙니다.



↑ 이번엔 격파 순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그래서 잘 쪼개지는 기왓장 1장을 격파해야 하죠. 아들이 표효(?)하며 손날을 날립니다.


 
↑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경쾌하게 쪼개지는 기왓장.  


제가 어렸을 때도 태권도를 했었는데, 빨간 띠까지만 하고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집안 형편상 승품 심사비가 부담스러웠던 모양입니다. 그때 빨간색과 검은색이 예쁘게 들어간 품띠를 따지 못해 어린 마음에 속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품띠를 매고 지나가는 친구들이 한없이 부러웠었죠.

별 실수없이 심사를 치렀으니 2주 뒤엔 아들이 꿈에 그리던 품띠를 딸 수 있겠지요? 물론 1품 승품이야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거의 모두가 합격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름 석자가 '오바로크'된 품띠를 매고 싶었던 제 어릴 적 소망을 아들이 대신 이루어주겠군요. ^^

수고했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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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사가 더 믿음직스럽습니까?   

2011. 3. 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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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나열하는 A와 B, 두 가지 유형 중 여러분은 어떤 의사를 더 신뢰하는지, 어떤 의사를 전문가라고 생각하는지 골라보기 바랍니다.


A : 인사도 안 받아주는 차가운 의사
B :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항상 웃는 의사

A : 하얀 가운에 넥타이를 매고 양복바지를 입은 의사
B : 하얀 가운에 티셔츠를 입고 청바지를 입은 의사

(환자가 복통이 있다고 말하면)
A : "날카로운 통증입니까, 둔중한 통증입니까?" 라고 묻는 의사
B : "어떻게, 얼마나 아프십니까?" 라고 묻는 의사

A : 병의 원인을 바로 진단 내리는 의사
B : 의학 책을 꺼내 살펴보고 난 후에 진단을 내리는 의사

A : 바로 치료 방법을 이야기하는 의사
B : 몇몇 검사를 해보고 치료 방법을 생각해 보자는 의사

A : 진단 결과를 고수하는 의사
B : 진단 결과를 번복하는 의사

A : 자신의 진단 결과를 소상하게 말하는 의사
B : 환자에게 많이 묻고 듣는 의사

A : '정우성'처럼 아주 잘생긴 의사
B : '옥동자'처럼 아주 못생긴 의사

A : 남자 의사
B : 여자 의사

(남자 의사인 경우)
A : 목소리가 굵고 큰 의사
B : 목소리가 가늘고 작은 의사

A : 뚱뚱한 의사
B : 마른 의사

A : 인테리어가 훌륭한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B : 인테리어가 평범한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A : 전문용어를 자주 섞어 말하는 의사
B : 알아듣기 쉽게 풀어서 말하는 의사



많은 사람들이 B보다는 A유형의 의사가 실력이 뛰어나다는 인상을 가진다고 합니다. 무엇인가 자신감을 보이는 의사, 겉모습이 '의사 답고' 권위를 풍기는 의사, 자신의 의견을 굳게 주장하고 타인의 의견에 쉽게 영향 받지 않는 의사, 환자에게 말을 시키는 의사보다는 자신의 진단 결과를 소상히 말하는 의사를 더 신뢰할 겁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대개 그런 경향을 보입니다. 여러분들은 위의 문장만을 보고 "에이, 전 A보다는 B를 더 신뢰합니다"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여러분이 환자가 되어 의사를 대면하면 알게 모르게 A유형의 의사에게 끌리게 됩니다. 질병이나 외상 때문에 약해진 마음이 그런 경향을 더욱 강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사실 A유형이든 B유형이든 의사의 진짜 실력과는 무관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의사가 자신감을 강하게 보일수록, 의사를 둘러싼 배경이 눈에 보기 좋을수록, '의사다움'이란 이미지에 어울릴수록 의사의 실력이 높을 것이라고 거의 '자동적으로' 인식합니다. 비단 의사뿐만이 아닙니다. 위의 문장에서 의사를 다른 직업으로(예컨대 컨설턴트)로 바꿔도 많은 사람들은 B보다는 A유형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죠.

이처럼 사람들의 '사람 보는 눈'은 꽤나 취약합니다. "하나만 봐도 열을 안다"는 말은 많은 경우 허구이고 호언에 불과합니다. 평소에 "나는 사람보는 눈이 좀 있어" 라고 자신하는 사람은 어떤가요? 처음에 누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능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누군가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라고 말하면서 "거봐, 난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라고 재빨리 말할 줄 아는 순발력(?)이 좋은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호언하고 확언하는 사람들에게 끌린다는 점입니다. 부정적으로 말해 '휘둘리고' 말죠. 또한 결론을 얼버무리는 사람의 능력을 과소 평가해서 일을 그르치는 문제도 큽니다. "솔직히 말해,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의사(혹은 전문가)의 실력이 "그것이 원인인 게 확실합니다" 라고 말하는 의사(혹은 전문가)의 실력보다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죠.

"내가 보기에 그 사람은 실력이 뛰어난 것 같아" 라고 생각했다가 나중에 틀린 적은 없었나요? 아마도 곰곰히 떠올려보면 그런 경우가 꽤 많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예감이 틀렸을 때보다는 맞았을 때를 더 '인상 깊게' 느끼기 때문에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을 과신하는 경향이 계속 유지됩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판단 오류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겁니다.

오늘은 자신의 '사람 보는 눈'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네요.

(*참고도서 : '닥터스 씽킹', '보이지 않는 고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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