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말하고도 답을 모르는 이유   

2011. 1. 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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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전에 잠깐 TV에서 '꽃다발'이라는 오락 프로그램을 보게 됐습니다.  처음 봐서 모르겠지만 여러 출연자가 게임을 하면서 퀴즈를 맞히는 프로그램인 듯 했습니다. 그런데 별 생각 없이 보던 중에 하나의 장면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사회자(개그맨 정형돈)가 이런 문제를 냈습니다. "우울증 치료에 탁월하고, 폐암 환자의 5년 후 생존확률을 2배나 높여주는 것으로서,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출연자들이 문제를 듣자마자 서로 자기가 답을 말하겠다고 아우성을 치더군요. 저도 답이 무엇일까, 궁금했답니다. '대체 하늘이 내린 선물이 뭘까?'



사회자는 가수 유채영에게 답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줬습니다. 유채영은 특유의 목소리로 "음...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면 바로.... 하늘의 햇빛을 듬뿍 받으며 자란...... 파?"라고 대답하더군요. 사회자는 대답을 듣자마자 '땡!'을 외쳤습니다. 그러면서 "아, 바로 답 근처까지 왔는데...."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졌습니다. 유채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내가 뭐라고 말했지?"라며 방금 전에 자기가 한 말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답답해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늘의 햇빛을 받고 자란.....파"라고 말했음을 기억해 내고도 정답을 대답하지 못하더군요.

사회자가 "유채영 씨가 이미 답을 말했다"라고 다른 출연자들에게 힌트를 주니까 "파가 아니라 양파!", "파가 아니니까 마?"라는 대답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졌습니다. 사회자는 "유채영 씨가 답을 수 차례 이야기했다구요!"라고 배를 부여잡으며 웃더군요. 출연자들이 왜 답을 말하지 못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이때 저는 답이 무엇인지 알아차렸습니다).

다른 출연자들이 오답의 바다를 표류하는 동안, 유채영은 결정적 발언을 한 자격(?)으로 문제를 맞힐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가졌지만 답을 맞히지 못했습니다. 결국 어떤 여자 출연자가 "햇빛!"이라고 정답을 말하고 나서야 유채영은 정답을 말해 놓고도 답을 맞히지 못한 것이 어이가 없었던지 쓰러질듯 웃음을 터뜨리더군요. 사회자들은 그렇게 말해줬는데도 못 맞힐 수 있냐며 유채영을 비롯한 출연자들을 장난스레 꾸짖으면서 다음 문제로 넘어갔습니다.

이런 장면은 '사고의 프레임(Frame)'을 전형적으로 보여줍니다. 유채영이 "하늘의 햇빛을 듬뿍 받고 자란 파"라고 말하는 순간, 하늘이 내린 선물은 바로 음식이라는 '프레임'을 출연자와 TV를 보던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빛의 속도로 설치했습니다. 물론 유채영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사람들에게 형성된 사고의 프레임은 아주 강력했습니다. 그래서 "파가 아니라 양파", "그렇다면 마?"라는 식으로 밭에서 자란 채소류 이외의 답은 떠올릴 수조차 없었던 겁니다. "햇빛"이라는 단어를 말해놓고도 그게 답인지 모를 수밖에 없었던 거죠.

여러분이 이미 정답을 알고 느긋하게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입장이라면(혹은 사회자의 입장이라면), 정답을 다 말해놓고도 못 맞히는 상황이 우스꽝스럽고 출연자들이 바보스럽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낫을 보고도 기역자를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프레임에 한번 '갇히게' 되면, 프레임에 갇혔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사고를 제약하고 맙니다. 프레임 안에서 여러분의 사고는 프레임의 노예가 되는 것이죠.

위와 같은 퀴즈나 게임에서는 사고의 프레임을 깨뜨리기가 비교적 용이합니다. 아주 순식간에 많은 사람의 머리 속에 사고의 '감옥'을 설치하는 놀라운 속도를 보이지만, 그만큼 깨지기도 쉽습니다. 창의적 사고를 주제로 한 워크숍이나 강의에서 사고의 틀을 깨야만 풀 수 있는 퍼즐을 본 적이 있다면(그리고 퍼즐 풀기에 어느 정도 연습이 되었다면) 퍼즐이 형성한 프레임 쯤이야 간단하게 없앨 수 있겠죠.

한번 형성되면 웬만한 공격에도 깨지지 않는 사고의 프레임들은 '느리지만 집요하고 체계적인' 것들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보통 '이론(理論)'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어떤 이론이 시대의 주류가 될 때, 그것을 패러다임이라고 부르죠. 이론들은 서로 경쟁하고 다툼을 벌이기도 합니다. 진화론과 창조론, 신자유주의와 그것과 대척점에 서있는 케인스주의 등이 그렇죠.

이런 이론들은 오랜 학습과 연구와 같이 '느린' 과정을 통해 사람들의 머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철옹성 같은 프레임을 형성하고 마침내 자신의 숙주인 인간의 사고를 지배합니다. 그러고는 이론의 틀로만 현상을 이해하게 하고, 이론과 반대되는 현상들을 예외일 뿐이라 배척케 합니다.

게다가 프레임은 이론과 다른 주장을 펴는 사람들을 맹렬하게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비록 이론이 현상을 올바로 반영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해도, 이론을 훼손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론이 현실과는 다른 차원에 존재할 때, 혹은 이론이 다른 차원으로 스스로를 위치시킬 때 우리는 그것을 '이상(理想)'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2010년의 마지막 날,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뜨겁게 달군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자기계발 전문가로 이름이 자자한 모 씨의 트윗 때문이었죠. 여기서 그의 트윗을 인용하지는 않겠으나 진보진영이 추진하는 '무상급식'을 맹렬히 비난하는 투의 트윗이었습니다. 그걸 두고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과 옹호하는 사람들(비난하는 사람들이 제 타임라인에는 더 많았지만)들의 트윗과 RT가 세밑의 트위터를 달궜습니다.

그는 자신의 트윗이 일파만파로 퍼지자 짐짓 당황했는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내용의 트윗을 추가로 올리더군요. 맞습니다. 그에겐 분명히 '무상급식은 나쁘다'고 주장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주장을 한다고 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비판하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주장할 권리는 그에게는 없습니다. 자신의 주장이 존중 받으려면 자신의 주장에 대한 타인의 반박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가 그토록 비판 받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그가 신자유주의 경제라는 사고의 프레임 속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무상급식에 상당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이유는 그것이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를 위협하는 '빈자(貧者)'들의 아우성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가 한 달이 멀다 하고 내놓는 책에서 꾸준히 주장하는 생각도 그러하죠. 자신이 신봉하는 이론의 틀로만 세상을 바라보려는 교조주의적이고 편협한 사고 방식이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분노한 이유입니다.

어렵게 배웠고 수십 년간 외쳐온 이론이 잘못됐다고 순순히 인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고의 프레임이 자신의 숙주인 인간이 감지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결점을 숨길 뿐만 아니라, 설령 현상을 틀리게 설명하고 반영하는 오류를 나타났다 해도 어떻게든 '삐져나온' 옷자락을 이론의 구멍 안에 쑤셔 넣게 만듭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그동안 쌓은 탑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리란 공포심도 완고한 고집에 한몫합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변화'를 촉구하는 진정한 자기계발 전문가라면 바로 자신이 사고의 프레임을 깨고 새로운 시각에 눈떠야 하지 않을까요? 신자유주의와 반대되고 신자유주의를 훼손한다 해서 현실을 외면하거나 예외로 치부하는 일은 변화하지 않으려는 '관성'과 무엇이 다를까요? 이론을 천착하다 못해 그것을 범접치 못할 이상(理想)으로 떠받들며 신성(神性)을 수호하는 행위는 '항상 깨어있으라'라는 자신의 가르침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아닐까요?

이론이 만든 프레임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이론이 있어야 현상을 설명할 수 있고 뭔가 일을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사고의 프레임은 맹목이란 부작용도 함께 선물합니다. "하늘의 햇빛을 듬뿍 받고 자란 파"라고 말해 놓고 "햇빛"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론을 앞세우고 현실은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는 일은 '꽃다발'의 출연자들이 밭에서 자란 채소류에서만 답을 찾으려는 것과 같죠. 곰팡내 나는 이론의 책갈피에 갇힌 그의 모습이 안쓰러운 이유입니다.

사고의 프레임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나를 지배하는 프레임이 무엇인가'라고 자문할 때 철옹성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열린 사고(open-mind)의 시작이고 바로 옆에 있는 답을 찾아내는 동력이겠죠. 그러나 이런 자문조차 부단한 노력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항상 깨어 있으려면 말입니다.

'열린' 월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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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겨울바다, 당일치기 강릉 여행   

2011. 1. 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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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강원도 쪽에 업무상 갈 일이 있었는데, 이왕 나선 김에 가족들과 '당일치기 강릉 여행'을 겸했습니다. 한겨울의 바다도 보고, 맛있는 점심과 맛있는 커피도 먹고 싶었습니다. 사진 몇 장으로 어제의 짧은 여행을 가름해 봅니다.

2년 전에 맛있게 먹었던 전복수제비를 다시 먹고 싶어서 들른 곳. 정동진 바로 위쪽의 등명해수욕장 입구에 있습니다. 평일 낮인데도 손님이 제법 있습니다.


음식점 내부의 모습.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복수제비가 나왔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이 시원합니다 . 해물파전도 고소하죠.

식사를 마치고 바로 앞에 있는 등명해수욕장에 바닷바람을 쐬러 갔습니다.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닷물이 가슴을 뻥 뚫어줍니다. 모래밭에 쌓인 하얀 눈도 묘한 정경을 자아냅니다.


강한 바람을 타고 실려온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모래밭에 부서집니다.


등명해수욕장에서 정동진 방향으로 본 풍경입니다. 저멀리 '배가 산으로 갔다는' 썬크루즈 리조트가 보이네요. 2년 전에 저기에서 하룻밤 묵었었죠. 다시 보니 반갑네요.


사진만 보면 한여름의 파도 같습니다. 정말 푸른 빛깔입니다.


발 아래 펼쳐지는, 파도의 하얀 치맛자락.


여름이면 저 위에 인명구조요원이 썬글라스를 끼고 앉아 있겠죠? 한겨울에 보는 해수욕장 풍경엔 세월의 흐름이 고여 있습니다.


정동진으로 향하는 기찻길. 해안을 따라 달리는 기차를 타는 맛도 꽤 운치 있겠죠?


등명해수욕장을 뒤로 하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찾은 곳, '커피 보헤미안'.


사람들이 입소문을 듣고 멀리서도 찾는 곳입니다. 월/화요일은 쉰답니다.


로스팅한 커피콩을 보관하는 곳. 저기에서 바로 원두를 덜어다가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뽑습니다.


커피를 볶는 로스팅룸입니다.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제가 마신 '하와이안 코나'입니다. 다른곳에서는 맛보기 힘든 커피인 듯해서 골라 봤습니다. 바디감이 가볍고 신맛이 납니다. 이것 말고 가장 비싼(?) '블루 마운틴'도 마셨는데, 여러 가지 맛이 풍부하고 바디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게 가히 커피의 왕이라 부를만 하더군요.


2년 전에 갔던 '카페 테라로사'와 이곳 '커피 보헤미안'을 자연스레 비교할 수밖에 없더군요. 둘다 강릉 지역에 위치한 로스팅 하우스이기 때문입니다. 두곳 모두 커피맛은 좋지만, 인테리어가 커피 하우스답고 이것저것 볼거리도 많은 테라로사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커피 맛을 잘 모르는 문외한의 판단이니, 참고하지는 말아 주세요. ^^

커피를 마시고 나니 오후 3시. 저녁을 먹기엔 너무나 이른 시간인데 추운 날씨에 갈곳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계획상 '교동반점'이란 곳에서 저녁으로 짬뽕을 먹으려 했지만, 사정이 생겨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 했습니다.

서울에서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강릉, 그곳은 생각보다 가까웠습니다. 가슴이 답답할 때 휭~하니 다녀올 만큼 겨울바다는 손에 잡힐 듯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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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나는 이런 책을 읽었다   

2011. 1. 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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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마지막 달 12월에는 모두 6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리 많은 독서량은 아니었지만, 워낙 몇몇 책들이 400~7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었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해봅니다. ^^

12월에 읽은 책을 정리해 보니, 나름대로 다방면의 책을 읽으려고 노력했으나 아무래도 관심 영역이 아니거나 생소한 내용이 많은 책들은 읽어가기가 부담스러웠고 때로는 지루하기까지 했음을 느끼게 됩니다. 아직 제 독서의 '근육'이 자라지 못한 탓이겠죠. 또한, 천천히 읽으면 될 텐데 누구에게 검사 받기라고 하는 것처럼 '권수'에 집착하는 성급함도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2011년엔 양보다는 질적인 독서에 집중해야겠습니다. 이것이 금년의 '독서 지향점'입니다. 잘 읽히지 않는 책이라면(하지만 읽어야 할 좋은 책이라면), 하루에 한 페이지씩만 야금야금 파들어가듯이 읽으면 되겠죠.

12월에 읽은 6권의 책은 아래와 같습니다. 간단하게 서평을 달아놓으니 선서(選書)할 때 참고하기 바랍니다.


행복은 전염된다

행복은 전염된다 : 행복의 유지와 확산에 네트워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일러주는, 보기 드믄 주제의 책입니다. 네트워크가 개인의 정서, 건강, 정치적 성향 등에 매우 중요한 결정인자로 작용한다는 여러 가지 매력적인 실험들과 연구 결과를 담은 책입니다.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기획서 제안서 작성법

기획서/제안서 작성법 : '기획서 쓰기'와 관련하여 강의를 하기 위해 참고도서로 읽은 책입니다. 초보자들에게 타겟이 맞춰진 터라 고급 기술은 다루지 않는 게 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그런 내용을 표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겠죠. 결국 고급 기술은 스스로 연마해야 할 과제죠. 여러 가지 주제별 기획서 샘플이 다양하게 나와 있어서 기획서의 얼개를 잡는 데 유용하게 쓰이리라 생각됩니다.


사회적 원자

사회적 원자 : '사회물리학'이라고 하는 생소한 분야를 일반인들에게 쉽게 소개하는 책입니다. 사회현상을 연구할 때 개인들을 원자나 분자로 간주하고 여기에 간단한 몇 가지 규칙을 대입하면, 실제로 벌어지는 사회현상을 상당히 근사하게 묘사할 수 있을뿐더러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사회물리학의 연구 방법입니다. 기업경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내용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의 일독을 권합니다.


창조의 순간: 새로움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창조의 순간 : 이 책은 인공지능의 관점에서 창조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밝히는 독특한 관점의 책입니다. 창조성(창의성)이 인간에게만 허락된 재능이 아니라 컴퓨터도 충분히 창의적이라는 과감한 주장을 펼칩니다. 그러나 책은 읽기가 좀 버겁습니다. 뭐랄까요, 간단하게 말해도 될 것을 현학적이고 추상적으로 서술하는 저자의 문체는 책을 읽는 것을 노동으로 느끼게 만듭니다. 인공지능, 기호학, 정보학 쪽에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만 권합니다.


이성적 낙관주의자

이성적 낙관주의자 : 지구온난화와 자원고갈과 같이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인간들이 현명하게 이겨나갈 수 있다는 요지의 책입니다. 희망적인 메시지이지만, 저자의 논거는 인간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놀라운 문명과 업적을 이루었으니 앞으로도 잘하리라는 식이 대부분이어서 읽어가는 동안 불편한 마음이었습니다. 재기 넘치던 매트 리들리도 '외삽의 오류'에 빠진 듯합니다. 또한, 자신의 박물학적 지식을 과시하려는 듯 쏟아부을 듯이 나열한 예시들이 책읽기를 오히려 버겁게 만듭니다.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 이 책은 원제처럼 '지적인 자기방어법'을 다룹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언어, 숫자, 과학, 언론 등에 숨어있는 거짓정보와 선전선동에 속지 않는 법을 가르칩니다. 특히 언론이 저지르는 교묘한 속임수를 어떻게 찾아내고 어떻게 면역을 길러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몇몇 사례는 이미 다른 책에서 자주 봤던 터라 신선감이 떨어지는 흠이 좀 있으나,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데에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주리라 생각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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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새와 배부른 새, 누가 공격적일까?   

2011. 1. 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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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 속에 배고픈 새와 배부른 새가 각각 한 마리씩 있습니다. 두 마리의 새에게 생전 처음 보는 먹이를 던져 주면 둘 중에 누가 먼저 쪼아댈까요? 아마 여러분은 배고픈 새라고 생각하겠지만, 정답은 배부른 새입니다. 오랫동안 굶주린 새들은 배고픔을 이기려고 아무 먹이나 쪼아댈 것 같지만, 먹이를 선택하는 데에 매우 보수적으로 변합니다.

배고픈 새들은 이상하게 보이는 먹이를 본능적으로 피합니다. 기력도 허약한데 이상한 먹이를 먹었다가 치명적인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반면 배부른 새들은 매우 과감하게 행동한다고 합니다. 배가 불렀기 때문에 맛있는 먹이만 골라 먹을 것 같지만,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새로운 먹이를 찾아 다니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와 같이 환경이 우호적이면 공격적으로 변하고, 반대로 환경이 좋지 않으면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게 동물들의 생태적인 특징입니다.



이런 특징이 나타나는 이유는 환경의 변화가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의 수치를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테스토스테론은 자신감, 공격성, 대담성, 그리고 심지어는 광기를 유발하는 호르몬입니다. 다른 무리를 이루는 붉은원숭이들은 서로 서식지가 겹치면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는 게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서식지를 지키는 일은 먹이와 암컷들을 확보하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치열한 싸움 끝에 결국 한 무리가 다른 무리를 제압하면서 서식지를 독차지하게 되고 두 집단은 하나로 통합됩니다. 그런데 현장을 관찰하던 연구자들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패배한 원숭이들은 예전보다 적게 싸움을 벌이고 유순해진 반면, 승리한 원숭이들은 예전보다 더 포악한 행동을 나타냈기 때문이죠.

연구자들은 양측 원숭이들을 포획해서 호르몬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조사해 봤습니다. 그 결과, 승리한 원숭이들에게서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게 상승했지만, 패배한 원숭이에게서는 수치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서식 환경이 갑작스럽게 개선(예 : 서식지를 독차지)되면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촉진되고, 분비된 테스토스테론이 원숭이로 하여금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을 강화하게 만든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동물들만 그런 게 아니라 기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상황이나 환경이 열악해지면 매우 보수적으로 변하고, 내외부 환경이 좋아지면 상당히 공격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엔론’입니다. 엔론은 한때 미국에서 일곱 번째로 큰 회사이고 가장 입사하고 싶은 회사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던 곳이었지만, 알다시피 분식회계 스캔들로 하루아침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회사가 잘 나가다보니 경영진들은 자신감에 차서 보다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공격성은 공격적인 경영을 더욱 강화하는 '포지티브 피드백' 현상을 보였습니다. 회사의 공격적인 경영 방식은 공격적인 성향의 직원들이 더 많이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전체적으로 엔론의 조직문화가 상당히 공격적으로 '유지'된 탓에 분식회계 쯤이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저질러 버린 겁니다. 엔론이 몰락하기 바로 직전에 호르몬 수치를 재봤다면, 아마 구성원 전체의 테스토스테론가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호르몬이지만 여성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자들이 대부분 남성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환원주의적 생각이지만) 구성원 각자의 테스토스테론 상승은 조직의 문화와 의사결정의 성향 등을 공격적으로 변모시키는 중요한 인자(因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배고픈 새들은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업 역시 어려움에 빠지게 되면 보수적으로 변합니다. 이런 상황을 역발상적으로 타파하겠다는 취지로 '공격경영'이란 기치를 내걸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전혀 공격적이지 않고 상당히 보수적인 관점에서 급조된 전략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열악한 상황과 환경이 조직 구성원 전체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보신주의와 무력감이 조직을 장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워진 전략들은 말만 공격경영입니다. 그저 기존에 해왔던 방식을 '좀더 열심히 하자'라는 식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나빠진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진짜 공격경영'을 성공시키려면, 전략보다는 일단 구성원들이 활력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력감을 탈피하고 동기부여가 되어야 좋은 전략이 나오고 실행력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테스토스테론이란 호르몬은 공격성을 부추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만감에 빠지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역사를 호령했던 수많은 강대국이 몰락한 근본적인 이유는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라 내부적인 ‘나태함’ 때문이었습니다. 기원전 3천년 당시 이집트는 사방 600마일에 이르는 초강대국이었습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풍요롭고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지요. 하지만 풍요는 안정을, 안정은 나태를 낳았으며, 미개한 민족이라 무시해 온 힉소스인들에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성공을 경계해야 합니다. 조직이 잘 나갈 때 공격적으로 과감하게 내리는 의사결정이 자칫 여러분의 기업을 몰락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호르몬 변화를 주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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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이 힘들고 불편한 이유   

2011. 1. 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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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인사평가가 끝난 회사도 있고 이제 평가를 시작하는 회사도 있을 겁니다. 평가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피평가자(부하직원)들의 불만 중 하나는 평가자(상사)가 객관적인 기준이나 근거 없이 주관적인 관점으로 평가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의를 제기할 겨를 없이 평가 결과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관행도 불만을 키우는 주범이죠.

이런 불만을 최소화하기 위해 평가자와 피평가자가 각각 자신이 생각하는 평가 결과를 한 자리에 모여 '합의'하는 절차를 운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절차를 진행하면 평가자나 피평가자가 아주 어색해 하거나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평가자는 피평가자에게 자신의 평가 결과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난감해 하고, 피평가자는 자기평가의 근거를 어떻게 제시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죠.



합의하는 자리에서 서로 생각이 달라서 얼굴을 붉히거나 고성이 오갈 수 있고, 피평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평가가 관대해질 수 있으며, 합의라고 말은 하지만 결국 평가자가 일방적으로 통보하듯이 되어버린다는, 새로운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서로 잘 해보자는 제도가 구성원들의 불화를 야기하는 불씨라고 공격 받기도 하죠. 그래서 평가 합의 절차는 없던 것으로 하고 과거의 '밀실 평가' 방식으로 회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왜 평가 결과를 합의하고 타협하는 걸 불편해 하고 두려워하는 걸까요? 왜 우리는 합의를 어려워하는 걸까요?

에릭 와이너는 "서구 사람들, 특히 미국 사람들은 타협의 필요성을 없애 버리려고 애쓴다"고 말합니다. 요즘 나오는 자동차를 보면 탑승자 각각이 자신에 맞는 온도를 조절하는 장치가 있습니다. 자동차 실내의 적정온도도 서로 타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각자 알아서 조절하도록 만든 것이죠. 주위를 살펴보면 점차 이런 물건들이 많아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커스터마이제이션(customization)이 강조되면서 하나의 물건을 공유하는 개인들이 각자의 취향을 '개별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에릭 와이너는 개별온도조절장치를 예로 들면서 "이렇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물건을 놓고 타협할 필요가 없다면, 정말로 중요한 문제 앞에서는 어떻게 될까?"라고 진지하게 묻습니다. 그러면서 "타협은 기술이다. 모든 기술이 그렇듯이 사용하지 않으면 점점 퇴화한다"고 덧붙입니다. 개인화된 편안한 생활 뒤에 숨은 비용이 생각보다 큼을 경고합니다.

저는 이 말을 들었을 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평가 합의 절차가 불편하고 어색하다는 새로운 불만을 없애려고 '평가지표'를 객관적이고 계량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쪽으로 제도 개선의 방향을 잡는 것, 바로 이것이 타협의 필요성을 없애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성원 각자의 업무를 객관적으로 평가해내는 평가지표만 잘 구축되면 평가자나 피평가자나 평가 결과에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구성원 각자의 업무를 미시적으로 분석해서 '개인화'된 평가지표를 만들면 타협과 합의와 같이 불편한 과정 없이도 모두가 납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개인화된 물건들과 서비스가 넘쳐나면서 평가제도도 그렇게 개인화될 수 있다고, 우리는 믿게 된 건 아닐까요? 에릭 와이너의 말처럼 타협이 힘들고 불편하다고 해서 제도가 개인적으로 치달으면 우리는 타협과 합의의 기술을 잊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계속 개인화가 심화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겠죠.

타협은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의 중요한 절차로서 매우 소중한 기술입니다. 그 과정이 불편하고 어색하다고 해서 타협의 필요성을 없애는 쪽으로 제도가 설계되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승용차에 탄 서너 명의 승객이 "조금 더우니 온도를 낮추자"라는 아주 간단한 타협의 필요조차 없도록 개별온도조절장치를 설치하는 비용, 그것은 생각보다 아주 클지 모릅니다.

(*참고도서 : '행복의 지도', 에릭 와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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