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나열하는 A와 B, 두 가지 유형 중 여러분은 어떤 의사를 더 신뢰하는지, 어떤 의사를 전문가라고 생각하는지 골라보기 바랍니다.


A : 인사도 안 받아주는 차가운 의사
B :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항상 웃는 의사

A : 하얀 가운에 넥타이를 매고 양복바지를 입은 의사
B : 하얀 가운에 티셔츠를 입고 청바지를 입은 의사

(환자가 복통이 있다고 말하면)
A : "날카로운 통증입니까, 둔중한 통증입니까?" 라고 묻는 의사
B : "어떻게, 얼마나 아프십니까?" 라고 묻는 의사

A : 병의 원인을 바로 진단 내리는 의사
B : 의학 책을 꺼내 살펴보고 난 후에 진단을 내리는 의사

A : 바로 치료 방법을 이야기하는 의사
B : 몇몇 검사를 해보고 치료 방법을 생각해 보자는 의사

A : 진단 결과를 고수하는 의사
B : 진단 결과를 번복하는 의사

A : 자신의 진단 결과를 소상하게 말하는 의사
B : 환자에게 많이 묻고 듣는 의사

A : '정우성'처럼 아주 잘생긴 의사
B : '옥동자'처럼 아주 못생긴 의사

A : 남자 의사
B : 여자 의사

(남자 의사인 경우)
A : 목소리가 굵고 큰 의사
B : 목소리가 가늘고 작은 의사

A : 뚱뚱한 의사
B : 마른 의사

A : 인테리어가 훌륭한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B : 인테리어가 평범한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A : 전문용어를 자주 섞어 말하는 의사
B : 알아듣기 쉽게 풀어서 말하는 의사



많은 사람들이 B보다는 A유형의 의사가 실력이 뛰어나다는 인상을 가진다고 합니다. 무엇인가 자신감을 보이는 의사, 겉모습이 '의사 답고' 권위를 풍기는 의사, 자신의 의견을 굳게 주장하고 타인의 의견에 쉽게 영향 받지 않는 의사, 환자에게 말을 시키는 의사보다는 자신의 진단 결과를 소상히 말하는 의사를 더 신뢰할 겁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대개 그런 경향을 보입니다. 여러분들은 위의 문장만을 보고 "에이, 전 A보다는 B를 더 신뢰합니다"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여러분이 환자가 되어 의사를 대면하면 알게 모르게 A유형의 의사에게 끌리게 됩니다. 질병이나 외상 때문에 약해진 마음이 그런 경향을 더욱 강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사실 A유형이든 B유형이든 의사의 진짜 실력과는 무관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의사가 자신감을 강하게 보일수록, 의사를 둘러싼 배경이 눈에 보기 좋을수록, '의사다움'이란 이미지에 어울릴수록 의사의 실력이 높을 것이라고 거의 '자동적으로' 인식합니다. 비단 의사뿐만이 아닙니다. 위의 문장에서 의사를 다른 직업으로(예컨대 컨설턴트)로 바꿔도 많은 사람들은 B보다는 A유형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죠.

이처럼 사람들의 '사람 보는 눈'은 꽤나 취약합니다. "하나만 봐도 열을 안다"는 말은 많은 경우 허구이고 호언에 불과합니다. 평소에 "나는 사람보는 눈이 좀 있어" 라고 자신하는 사람은 어떤가요? 처음에 누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능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누군가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라고 말하면서 "거봐, 난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라고 재빨리 말할 줄 아는 순발력(?)이 좋은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호언하고 확언하는 사람들에게 끌린다는 점입니다. 부정적으로 말해 '휘둘리고' 말죠. 또한 결론을 얼버무리는 사람의 능력을 과소 평가해서 일을 그르치는 문제도 큽니다. "솔직히 말해,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의사(혹은 전문가)의 실력이 "그것이 원인인 게 확실합니다" 라고 말하는 의사(혹은 전문가)의 실력보다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죠.

"내가 보기에 그 사람은 실력이 뛰어난 것 같아" 라고 생각했다가 나중에 틀린 적은 없었나요? 아마도 곰곰히 떠올려보면 그런 경우가 꽤 많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예감이 틀렸을 때보다는 맞았을 때를 더 '인상 깊게' 느끼기 때문에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을 과신하는 경향이 계속 유지됩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판단 오류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겁니다.

오늘은 자신의 '사람 보는 눈'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네요.

(*참고도서 : '닥터스 씽킹', '보이지 않는 고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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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Favicon of http://overock.tistory.com BlogIcon oveRock 2011.03.25 10:16

    저는 군복무를 지방공사 의료원에서 공익요원으로 하였습니다.
    뭐, 저야 원무과에서 사무를 봤으니 해당 없지만, 선후배들 중에서는 종종 진료실에서 물리치료나 환자 수발, 의료비품 수급 등을 보조하는 업무를 맡는 공익들도 있었는데, 이런 요원들은 업무특성상 수술복이나 의사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쓴 채로 근무를 했답니다.
    그러다보니 공익요원을 의사로 착각한 장기입원 환자들이 공익요원을 붙들고 자기 병증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지금 받고 있는 치료가 적절한지, 자신이 나을 수 있는 상태인지를 묻는 일이 빈번하게 있었습니다. 치료 기간은 길어지고 약은 점점 늘어나는데 스스로 자각하는 차도가 없으니 불안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겠지요.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공익은 백이면 백 당황해서 '저는 의사가 아닙니다'라고 말하곤 황급히 자리를 뜹니다. 하지만 잔뼈가 굵은 고참들은 달랐죠.
    '음... 이건 곰실린... 아, 곰실린은 항생제의 한 종류에요. 그리고 이건 항생제 때문에 드셔야 되는 소화제네요. 이상한 약 같은 거 없으니 안심하고 복용하십시오. 특히 항생제는 중간에 끊으면 세균의 내성이 강해지므로 절대 중간에 끊지 마세요. 그리고 이런 병 앓으시는 분이 담배 피러 나오시면 안 됩니다. 빨리 퇴원하셔야죠'
    재미있는 건 그 공익요원이 진짜 약종류나 병증을 정확하게 알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냥 대충 '척'을 한 거죠. 하지만 환자는 공익요원의 말에 대체로 안심하고 자기 병실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입고 있는 가운이나 들려주는 이야기의 디테일에 압도된 것입니다.

    다른 예로, 저는 S/W 솔루션 사업부서에서 구축 지원 및 컨설팅을 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데, 고객사가 궁금해 하시는 기술적 부분에 대해서 단도직입적으로 '이 설정을 변경하면 됩니다'라는 말보다는 적당히 용어를 섞어가며 변죽을 울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막연히 느꼈습니다. 물론 저 혼자만의 경험이라 '입증되었다'라는 주장을 펼치기엔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상세(해 보이는) 설명을 들은 고객사는 더 크게 의존하고 지시에 좀 더 순응하더란 것이죠.

    개인적인 경험과 비교하면서 포스팅을 읽다 보니 흥미롭습니다 :)
    참, 의사가 차트를 마구 휘갈기듯 쓰는 것은 의사들이 무척 바쁘거나 악필이라서라기보다는, 환자가 우연찮게 차트를 보았을 때 느끼는 진료행위의 신뢰감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 큽니다.

    perm. |  mod/del. |  reply.
    • Favicon of http://catakablog.blog.me BlogIcon catakablog 2011.03.25 13:33

      댓글 잘 보고 갑니다. ^^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11.03.25 17:10 신고

      저도 긴 댓글 잘 읽었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좋은 사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중에 책을 쓴다면 인용해도 될까요? ^^

    • Favicon of http://overock.tistory.com BlogIcon oveRock 2011.03.26 13:57

      저야 영광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