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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공단이 급조성된 신도시의 신설학교였다. 나는 그곳에서 한 두 번을 빼고 늘 전교 1등이었다. 자랑이 절대 아니다. 급조된 신도시의 신설학교가 항상 그렇듯, 고입 시험에 두 자리 점수를 받고도 능히 들어가는 학교였으니까.
그러던 내가 운좋게도 나름 어렵다던 대학에 끄트머리로 합격했다. 진짜 '겨우'였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난다긴다 하는 동급생들에 기가 죽었다. 이름없는 신설학교에서 얻은 전교 1등이란 감투는 보잘것없는 허울이었다. 한 학기에 4번 있는 시험에 허덕이고, 국어와 국사를 제외하고 원서로 된 교과서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해석하기에도 버거웠다.
나는 적어도 1학년 때는 대학생의 자유를 맛보고 싶다는 얄팍한 핑계로 공부를 멀리했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폼만 잡은 셈이다. 이런 도피는 학사경고로 이어졌고 안 내도 되는 수업료를 전액 낼 수밖에 없어서 가뜩이나 어려운 집안 사정에 큰 짐이 됐다. 나는 두 번 연속으로 학사경고를 받았고 학칙에 의해 1년 정학을 먹었다. 자의반 타의반 군대에 갔다.
그땐 참 절망스러웠고 슬펐다. 군대는 나를 강인하게 만들기는커녕 실패한 사람들이 모이는 수용소처럼 느껴졌다. 요새 잇단 자살로 문제가 된 모 대학 학생들이 느꼈을, 그리고 느끼고 있을 절망은 과거의 내것과 유사하리라.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지나고 나니 그때의 좌절도 아름다운 꽃이다. 지구가 둥글듯이 삶도 둥글다. 그때 세상의 가장자리로 한없이 밀려났던 나는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 여기 이곳에 서있으니까. 세상의 중심이 아니면 어떠리. 내가 선 이 자리에 중심의 좌표를 설정하고 살면 될 일. 내가 가는 이 거친 길이 남이 아닌, 나만의 중심으로 향하는 길이라 여기면 그만일 뿐.
좌절은 젊음의 자유. 그러나 절망은 젊음의 파산 선고이자 죄악이다. 절망의 늪에 빠진 스스로를 잡아 끌고 나와 뚜벅뚜벅 걸어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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