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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헨리 타이펠(Henri Tajfel)은 한 슬로베니아 친구가 유고슬라비아의 빈민촌에서 이주해 온 보스니아인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말하는 것을 듣고 실험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그와 동료들은 자신이 소속된 집단(in-group, 내집단)과 소속되지 않은 집단(out-group, 외집단)을 대하는 태도와 행동이 다른지를 실험을 통해 규명하기로 했죠. 타이펠은 영국의 브리스톨 시에 사는 14~15살 남자 학생 64명을 상대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학생들은 수많은 점들이 찍힌 화면을 보고 정해진 시간 내에 점의 개수를 세어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점들이 많이 찍혀 있기 때문에 개수를 세는 일이 그리 녹록치는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 타이펠은 학생들을 실제의 개수보다 많이 헤아린 그룹과 실제의 개수보다 적게 헤아린 그룹, 이렇게 8명씩 두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이렇게 과대측정 그룹과 과소측정 그룹으로 구분했다고 학생들에게 알려줬죠. 하지만 타이펠은 학생들을 무작위로 두 그룹에 배정하는 트릭을 썼습니다. 점의 개수를 센 것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룹을 나눈 겁니다.
이렇게 그룹을 나누고 나서 타이펠은 학생들에게 돈을 주고 그 돈을 다른 학생들에게 배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지시 받은 학생은 그 돈의 일부를 가져서는 안 되고 모두 배분해야 했죠. 이 때 그 학생은 자신이 돈을 배분해 줄 다른 학생이 내집단인지 외집단인지 알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의사결정은 철저하게 익명성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죠. 이를 통해 타이펠은 학생들이 내집단과 외집단에 대해 차별적인 결정을 내릴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어느 정도 결과를 예상할 겁니다. 실험 결과, 내집단 학생들에게는 돈을 더 많이 분배하고 외집단 학생들에게는 적게 분배하는 패턴이 발견되었습니다. 즉 과대평가 그룹은 과대평가 그룹에게, 과소평가 그룹은 과소평가 그룹에게 우호적인 의사결정을 내린 것이죠. 자신이 돈을 가질 수가 없었기에 어떻게 결정하든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집단에게 유리하도록 외집단을 차별한 겁니다. 그저 점의 개수를 많이 헤아리거나 적게 헤아렸다는, 의미 없는 구분에 의해서도 이런 차별이 발생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죠.
타이펠은 후속 실험을 통해 내집단을 옹호하고 외집단을 차별하는 경향이 '상대성'의 특징을 가진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는 피실험자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자기 집단에 11점을 주고 타집단에 7점을 준다' 였고, 다른 하나는 '두 집단 모두에게 17점을 준다'였습니다.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안다면 두 집단 모두에게 17점을 준다는 옵션을 선택할 겁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첫 번째 옵션을 선택한 사람들이 아주 많았죠. 6점이나 손해를 보면서도 자기집단을 타집단과 구분하려는 욕구가 크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 실험이었습니다.
타이펠의 실험은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지금도 만만찮은 반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분리하면 알게모르게 구성원들 사이에 불안과 긴장감이 조성되는데 이를 제거하면 내집단을 옹호하는 현상이 사라진다고 마이클 호그(Michael Hogg)라는 학자는 주장합니다.
그러나 타이펠의 실험에서 점의 개수를 단순하게 많이 세거나 적게 셌다는 최소한의 이유로 집단을 나눴는데도(이를 '최소집단'이라고 함) 내집단과 외집단 간의 차별이 명확해졌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집단을 구분할 만한 이유가 보다 그럴 듯하고 보다 논리적이라면(예를 들어 수학 문제를 잘 푼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으로 나누면), 외집단에 대한 차별과 고정관념, 그리고 내집단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이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의미 없는 '집단 구분'조차 구성원들의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 실험은 기업에서 단위조직을 나누고 합치는 '조직도 그리기'에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업무의 효율과 효과를 따져 팀이나 사업부를 구분하는데, 이렇게 정해진 팀과 사업부가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이기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전사적으로 볼 때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피해를 주는 경우가 왕왕 나타납니다. 여기에 냉정한 성과주의가 결합되면 단위조직 사이에 놓은 벽은 더 높아지기 마련이죠.
하다못해 사무실에 파티션(큐비클)을 설치하는 '작은 행동'에 의해서도 내집단과 외집단 간의 긴장감이 더욱 높아질 수 있습니다. 보통 팀과 팀을 구분하기 위해서 앉은 상태에서는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파티션을 높게 설치하는데, 하루 종일 다른 팀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퇴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팀 내부의 결속과 우의를 다지는 데 좋을지는 몰라도, 고작 몇 센티미터 높은 파티션이 팀 간의 협력과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요소로 자리잡는다면 파티션 설치에 들어간 비용보다 훨씬 큰 돈이 빠져나간다는 뜻이겠죠.
그렇다고 단위조직을 나누지 않고 '통으로' 조직을 관리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쾌적한 근무환경을 위해 파티션을 설치하지 않을 수도 없겠죠. 문제는 집단 구분으로 인한 이득과 비용의 최적점을 찾는 일입니다. 지나치게 조직을 세분해서도 안 되고 지나치게 조직을 방대하게 가져가서도 안 되겠죠.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높은 사람에게 자리를 주기 위해서 기존의 팀을 쪼개 새로운 팀을 만들거나, 성과 측정을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팀을 세분하는 일은 팀과 팀 사이의 의사소통 비용을 증가시켜 결과적으로 회사의 성과를 좀먹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병폐가 될 겁니다.
요즘엔 팀과 팀 사이, 개인과 개인 사이의 파티션을 없애거나 낮추고 상대방의 얼굴이 보이도록 유리로 바꾸는 회사가 늘어난다고 합니다. 업무의 필요에 의해 팀을 구분하되 팀 사이의 '물리적인 장벽'은 없앰으로써 팀 간의 협력을 도모하겠다는 뜻이겠죠. 여러분의 회사가 '팀 이기주의'로 만연해 있다면 파티션을 없애거나 낮추는 작은 조치만으로 문제를 해결할지도 모릅니다. 타이펠이 점의 개수를 많이 셌느냐 적게 셌느냐는 사소한 차이로 집단을 구분해도 집단 간 차별이 발생했다는 것의 '역(易) 적용'이 되겠죠.
단위조직 구분의 최적점을 찾는 일. 이것은 늘 조직의 숙제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겁니다. 상황에 따라 최적점이 변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죠. 집단과 집단 사이의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일. 이것이 중용의 마인드를 가져야 할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이것이 어렵다면 당장 파티션부터 낮추거나 없애보면 어떨까요?
(*참고논문 :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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