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지난 2월에 '걸리버 여행기'라는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별 재미를 보지 못한 작품이었죠. 알다시피 이 영화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소설을 각색해서 만든 영화입니다. 어릴 적 걸리버 여행기를 읽고 소인국이나 거인국에 가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 보며 시간을 보내던 때가 생각나는군요. 걸리버 여행기를 많은 사람들은 동화 정도로 생각하지만 실은 당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신랄하게 비꼰 성인용 풍자소설입니다.
그런데 소인국 사람이나 거인국 사람들은 정말로 우리의 모습과 같을까요? 조나단 스위프트의 원작에서나 여러 번 각색되어 상영된 영화에서나 소인국 사람들과 거인국 사람들은 우리와 크기와 다를 뿐 생김새가 똑같습니다. 수학용어로 말하자면 '닮은꼴'이죠. 머리, 몸통, 팔과 다리의 비율이 우리 인간과 똑같아서 소인국 사람을 가까이에서 보거나 거인국 사람을 멀리에서 보면 우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요? 몸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힘'과 몸의 '크기 '사이의 관계를 적용한다면 소인국 사람과 거인국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모습이어야 함을 알게 됩니다. 생쥐의 골격은 몸무게의 8퍼센트 밖에 되지 않으나 인간의 골격은 체중의 18% 정도입니다.
몸무게의 증가에 비례하여 골격의 무게도 증가한다면 생쥐나 인간이나 모두 골격의 비중은 동일해야 하지만, 몸무게가 증가하면 골격이 더 크게 증가합니다. 폭이 2미터 밖에 안 되는 도랑을 편히 건너려면 나무 판자 하나만 걸치면 충분하지만, 폭이 20미터가 되면 나무 판자로는 안전한 다리를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소설을 보면 걸리버의 키보다 소인국 사람의 키가 12분의 1이라고 합니다. 걸리버의 키를 174센티미터라고 하면 소인국 사람은 14.5 센티미터가 됩니다. 키와 동일한 비율로 다리의 굵기가 줄어들면 소인국 사람의 다리 굵기는 새의 다리처럼 굉장히 가느다랗겠죠? 걸리버의 몸무게를 68킬로그램이라고 하면 소인국 사람들은 대략 500그램의 몸무게를 가지는데, 그렇게 가느다란 다리를 가지고는 500그램의 몸무게를 지탱하기가 힘들 겁니다.
반대로 거인국 사람들은 어떨까요? 그들은 걸리버에 비해 12배나 크다고 했으니, 키가 21미터 정도가 될 겁니다. 이 정도 키가 되면 몸무게는 12톤이 넘어가는데, 인간과 동일한 모양의 골격을 가지게 되면 거인국 사람들은 일어서자마자 골절상을 입고 말 겁니다. 따라서 그들이 제대로 생활을 하려면 코끼리가 굵은 다리로 몸을 지탱하듯이 몸에 비해 훨씬 굵은 다리를 가져야 합니다.
크기가 변하면 구조도 변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기업 경영에 주는 시사점임을 말하기 위해 걸리버 여행기를 서두에 올렸습니다. 기업의 규모가 작을 때와 확장될 때, 그리고 커져있을 때 경영시스템도 큰 규모에 걸맞게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더욱 중요한 점은 기업의 규모와 비례해서 경영시스템이 확대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기업의 규모가 2배 커졌다고 해서 양적으로 경영시스템을 2배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커진 회사의 규모를 지탱하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기업 규모가 커지면 코끼리의 다리 골격이 작은 동물보다 다르듯이 경영시스템의 구조적인 혁신이 뒤따라야만 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초기에 성장을 구가하다가 중간에 잠시 주춤하는 시기를 겪습니다. 소수의 창업자 그룹들이 회사를 이끌어오던 방식(제품개발, 마케팅, 영업, 생산 등 전반)이 커져버린 몸에 더 이상 맞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모습이죠. 직원들이 늘면 책상을 늘려주고 일할 공간을 확대하면 된다는 '비례적인' 마인드로는 커진 덩치를 감당하기가 버겁습니다.
생명체의 진화 과정을 보면 몸집이 커지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재료(뼈와 근육 등)가 갖춰져야 자연선택에서 살아남는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단세포 동물들을 모두 한 비이커에 가득차게 넣는다고 해서 생쥐가 만들어질 리 없습니다. 생쥐가 탄생하려면 생쥐의 모양이 나오게끔 만드는 뼈와 근육 등의 구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겠죠. 생명체가 진화와 자연선택이라는 장치로 이런 혁신을 이끌어 가듯이, 기업도 의도적인 변화와 혁신을 통해 구조적으로 이전 것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골격을 갖춰나가야 합니다.
물론 구조적인 변화 없이 기업의 규모를 확대해도 별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 프랜차이즈 형태의 비즈니스가 그러하죠. 일정한 시스템만 갖춰지면 그것을 복제해서 여러 가맹점으로 확대하면 됩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형태이든 아니든 확대 과정에서 효과와 효율의 한계에 부딪히고 맙니다. 생명체는 이런 한계에 다다르면 진화의 압박('선택압'이라고 함)을 받게 되어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분화해 갑니다.
이런 진화의 양상을 따른다면, 기업 규모의 확대가 한계에 부딪힐 때 지금까지의 허물을 벗고 새로운 골격을 갖추려는 노력이 반드시 진행되어야 하겠죠. 규모를 확대하는 것이 답이 아닐 때는 작은 골격으로 갈아타거나, 시장점유율 확대에만 집중하는 것보다는 비즈니스 디자인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더 큰 시장지배력을 가져올 혁신일 겁니다.
여러분 조직의 골격은 회사를 지탱할 만큼 튼튼합니까? 거인의 거대한 몸통에 소인의 가냘픈 다리가 달린 그런 모습은 아닙니까?
(*참고도서 : '크기의 과학')
반응형
'[경영] 컨텐츠 > 경영전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제까지 제품으로 승부할 겁니까? (0) | 2011.04.22 |
---|---|
욕조가 탄생시킨 아이폰 (7) | 2011.04.21 |
성공은 독약이고, 실패는 도약이다 (0) | 2011.04.19 |
경영 베스트셀러에 속지 않는 법 (2) | 2011.04.18 |
우리가 전문가들의 실패를 조장한다 (0) | 2011.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