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출발하는 자의 마인드 3종 세트   

2011. 6. 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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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가수 배리 매닐로의 얼굴이 그려져 보기에도 민망한 티셔츠를 어떤 학생에게 입게 한 후에 다른 학생들이 모인 강의실에 들어가게 했다. 이 실험을 진행한 길로비치는 적어도 2분의 1 정도의 학생들이 그 민망한 티셔츠를 알아볼 거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겨우 23%의 학생들만이 그 티셔츠를 알아차렸다고 한다. 여러 종류의 티셔츠(남루한 것, 촌스러운 것 등)를 가지고 실험해도 결과는 비슷했다.

실패의 공포를 벗어라
새출발의 두려움은 실패의 기억으로부터 나온다. ‘타인이 다시 시작하는 나를 어떻게 볼까?’, ‘만약 내가 또 실패하면 그들은 날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라는 걱정이 새출발하는 자의 마음을 옥죄어 온다. 굳세게 마음 먹고 시작한 일이 실패하면 '난 왜 이리 못 낳을까?'라며 자신을 꾸짖는다.

실패에 대한 자책이 반성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타인의 시각을 ‘상상’하기 때문에 더 큰 열패감에 사로잡힌다. 길로비치의 실험은 이 같은 걱정이 기우에 불과함을 말해준다. 타인은 우리의 새출발에 대해서도 우리의 실패에 대해서도 큰 관심이 없다. 이는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이다. 우리의 새출발이 실패할 수는 있어도 상처 받을 필요는 없다는 뜻이니까.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곡을 쓴 사무엘 베케트는 "이번에도 또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더 세련되게 실패했다." 라고 말했다. 실패는 좌절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좀더 세련되게 만드는 법을 깨달아가는 과정이고 기회라는 뜻이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해럴드 크로토는 "열 번의 실험 중에 아홉 번을 실패했다면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아주 좋은 기록이다"라고 말하며 실패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라고 충고한다.
 
실패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면 새출발에 앞서 실패를 '성공을 위한 실패'가 아니라 '더 나은 실패'라고 다짐하면 어떨까? 성공과 실패를 별개의 것으로 떨어뜨려 놓자는 말이다. 만일 지금의 출발이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이번에도 실패했군. 그렇지만 저번 실패보다는 조금 나아졌다'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야 출발선 밖으로 한걸음 내디딜 용기와 동력을 얻을 것이다. 실패의 기억으로 새출발의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낮게 달린 사과’만 따려고 하는 안일함에 빠지기도 한다.

어려운 길로 가라
하지만 쉬운 목표는 우리를 결코 발전시키지 못한다. 영어 단어의 철자가 하나 정도 바뀌어도 그것이 어떤 말인지 쉽게 인식할 수 있다. 가령 일부러 어떤 문장 속에 'FOOTBLAL'이라는 잘못된 단어를 써놔도 그것이 'FOOTBALL'이라고 이해한다. 우리가 단어를 철자 하나하나의 조합으로 인식하지 않고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FOOTBALL'의 철자를 뒤죽박죽 섞어서 'LBOFTOAL'이라고 쓰면 어떨까? 아마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철자를 재조합하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그것이 FOOTBALL임을 알아 맞힌다. 심리학자 S.W. 타일러는 실험참여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서 A그룹에게는 철자 하나만 바꾼 단어들을, B그룹에게는 철자를 마구 뒤섞은 단어들을 여러 개 보여주고 어떤 단어인지 맞히게 했다. 그런 다음,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자신들이 푼 단어들이 무엇인지 기억해보라는 질문을 각 그룹의 참여자들에게 던졌다. 그랬더니 A그룹보다 B그룹의 참여자들이 더 많은 단어들을 기억해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난이도가 높은 문제를 푼 B그룹의 사람들은 뒤죽박죽 섞인 철자를 재조합하여 올바른 단어를 만들기 위해 집중력을 높여야 했다. 타일러는 'LBOFTOAL'로부터 'FOOTBALL'이란 답을 얻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단어가 머리 속에 각인되기 때문에 기억이 오래 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실험 결과는 '쉽게 이룬 것일수록 쉽게 잊혀진다, 어렵게 얻은 것일수록 오래 남는다'는 오래된 지혜를 다시금 명백하게 보여준다. 또한, 쉬운 부분이나 잘하는 부분만을 집중해서 연습하는 것보다 어렵고 못하는 부분을 지속적으로 훈련하는 것이 결국에는 더 효과적임을 깨닫게 한다.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이 출발점 앞에 놓여 있다면, 어렵고 험한 길을 택하는 용기가 우리의 출발을 더욱 값지게 할 것이다. 쉽고 평탄한 길을 선택하는 일은 '내가 잘 하고 있구나'란 거짓된 확인을 받기 위한 자기기만을 아닐까 되돌아봐야 한다. 새출발의 선상에 선 우리는 이런 자기기만의 껍질을 먼저 깨야 한다.

데드 포인트를 넘어서라 
출발선을 뛰쳐나가 결승점이 눈 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하면 "난 정말 노력했어, 최선을 다했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전에 “노력 = Dead Point + 1” 라는 공식을 떠올려 보라. 데드 포인트(Dead Point)는 마라톤에서 쓰는 말이다. 달리고 나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목이 타 들어 가고 가슴이 터질 듯 괴로워서 죽을 것만 같은 시점에 이르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데드 포인트이다. 하지만 데드 포인트를 지나고 30초에서 2분 정도 지나면 숨쉬기가 편해지고 오히려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이 때가 바로 세컨드 윈드(Second wind)다. 선수가 장거리 경주를 완주하려면 반드시 데드 포인트를 극복해서 세컨드 윈드 상태에 돌입해야 한다.

노력은 누구나 한다. 힘들 때까지 노력했다고 해도 그 정도는 남들도 다 한다. 사람들은 서로 비슷해서 힘듦을 느끼는 정도도 비슷하다. 데드 포인트까지 이르는 시간이 비슷하다는 뜻이다. 데드 포인트에 이르면 엄청나게 힘들기 때문에 자신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진정한 노력은 데드 포인트를 뛰어넘는 것이다. 마라톤 선수가 데드 포인트에 이르러 달리기를 포기한다면, 그가 과연 결승 테이프를 끊을 수 있을까? 데드 포인트를 지나 한 발 더 앞으로 더 나아가야 '노력을 다했으며 최선을 다했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인가를 성취하려고 새출발 선상에 섰다면, 일단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뛰겠노라고 다짐하라. 그리고 포기하고 싶어지는 때가 언제인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관찰해 보라. 만일 ‘정말로 이제 그만 두고 싶다’고 느껴진다면 그때가 바로 데드 포인트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결승점에 이르지 못한다. 멈추면 남들과 다를 바 없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더 뛰자면서 스스로를 독려해야 한다. 그래야 세컨드 윈드가 찾아오고 남들보다 오래 정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성공은 빠르게 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오래 정진하는 자의 것임을 기억하자.
 
실패의 두려움을 벗어 던지고, 쉬운 길보다 어려운 길을 헤쳐 나가며, 그 어떤 고통에도 멈추지 않겠다는, 이 3가지 마인드세트를 갖춘 사람만이 성공이란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다. 출발선에 선 당신에게 부부젤라보다 더 큰 응원의 축포를 보낸다.

(*이 글은 'SPP조선'의 사보 'SPP Magazine 17호' 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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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은 당신의 권리이자 의무다   

2011. 6.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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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비하를 멈추는 것에서 도전은 시작된다
나는 가끔 수첩에 그림을 그린다. 주로 찻집에서 혼자 커피를 마실 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리곤 한다. 취미 수준에도 미치지 않을 법한 그림 수준이라 꽤 조심스럽게 그린다 해도 어긋나는 선이 생기곤 한다. 지울 수 없는 볼펜으로 그리기 때문인데, 그냥 선 몇 개를 더 그려 넣어 실수를 대충 무마한다. 특히 사람의 얼굴을 표현하는 데엔 아주 젬병이다.



어느 날은 누워있는 아들의 모습을 그렸다. 다 그리고 아들에게 보여주니 "내가 왜 이렇게 생겼어?"라며 울상을 지었다. 초등학생을 늙은 아저씨의 얼굴로 그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들은 그림이 싫다며 수첩을 찢을 기세로 달려들고 아이의 엄마도 합세하여 면박을 주었다. 나름 힘들여 그린지라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가 봐도 한심하고 쓰레기 같은 그림이라서 반박하기 어려웠다. ‘정말 못 그린 그림이야!’ 라며 자학하는 수밖에.
 
반면 내 그림을 무시하는 아들은 자기 그림을 폄하하는 법이 결코 없다. 아들은 뭔가를 열심히 그리고는 늘 이렇게 말한다. "정말 잘 그렸지요? 예쁘죠?"라고. 감탄이 나오는 그림도 있지만 솔직히 낙서 같은 그림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들은 항상 자신의 그림에 무한한 자긍심을 보인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그리지요?"라며 스스로를 극찬하기도 하니까.
 
발달심리학에 따르면 어린이들은 자기비하를 할 줄 모른다. 9살 이하의 아이는 언제나 자기 작품을 한없이 사랑하고 자신의 재능을 자랑하며 높은 자존감을 드러낸다. 이런 아이들이 커가면서 불행히도 자기비하를 배운다. 사회화의 과정이라지만 씁쓸하다. 자신을 혹평하는 법을 배운다는 말은 포기를 합리화할 줄 알게 된다는 의미이고 소질이 계발될 기회를 스스로 묻어버림을 뜻하기 때문이다. 자기비하는 무언가를 이루어가는 즐거움과 희열을 싸구려 감정으로 전락시키고 그대로 마음의 앙금으로 쌓이게 만든다.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정체(停滯)이다. 자기비하가 계속되면 정체의 늪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다. 자기비하의 관성을 버리고 도전하려는 태도를 가질 때 개선과 발전의 기회가 주어진다. 자신의 못난 작품을 감상하듯 즐기고 반성을 통해 배운다면 다음엔 조금 더 나은 작품과 만나게 된다. 자신의 못난 그림에도 뻔뻔해지자.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자. 아무렴 어떤가? "세상에서 제일 잘 그린 그림이다"라고 외치자. 자기비하라는 가뭄을 끝내고 자신감이라는 단비를 내려주어야 도전의지가 자란다. 자기비하는 개인과 조직의 도전의지를 갉아먹는 해충일 뿐이다.

도전하지 않는 조직은 위험하다
1979년에 유나이티드 항공의 DC-8-61편이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비행기가 포틀랜드 공항에 접근했을 때 랜딩 기어가 말을 듣지 않아 기장과 부기장은 애를 먹었다. 그들은 랜딩 기어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기를 기다리면서 공항 근처를 1시간 정도 선회하려고 했는데, 2명의 승무원이 연료계의 바늘이 0을 향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런 상황은 즉각 기장에게 보고해야 할 위급한 상태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그들은 기장이 무서워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기장은 평소에 자신에게 질문하거나 의견을 제안하는 걸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매우 권위적인 사람이었다. 승무원들은 혼나는 게 무서워 죽음을 택하는 믿기 힘든 결정을 했다. 연료가 다 소진되자 모든 엔진은 꺼지고 말았고 비행기는 공항에서 10Km 떨어진 지점에 추락했다. 기장의 거짓된 권위와 승무원들의 나약함 때문에 무고한 승객들이 죽거나 크게 부상 당했다.
 
사고의 근본원인은 도전을 허용치 않은 권위의식에 있었다. 이처럼 바람직한 도전을 굴복시키는 권위의식이 팽배할 때 조직은 치명적인 위험을 스스로 자초하고 만다. 도전이라고 번역되는 영어의 Challenge를 영영사전에서 찾아보면 ‘진실, 가치, 권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라는 뜻이다. 전통, 규칙, 습관 등처럼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 익숙해져서 바꾸기 힘들 것이 부정적인 권위를 형성한다. 그런 권위들을 밑바닥에서부터 하나씩 따져보며 옳은 것은 수용하고 옳지 않은 것은 가차 없이 깨뜨려 나가지 못한다면 비행기가 추락해도 입을 봉하던 승무원과 다를 바 없다. 여러분은 그런 비행기에 타고 싶은가?

도전은 도약의 엔진
위대한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맹목적으로 권위를 존중하는 것은 진리에 대한 가장 큰 적이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던 실업자 시절에 그는 물리학 논문들을 탐독하며 마음을 달래곤 했는데, 유명한 학자들의 논문에서 잘못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그가 누구든 상관없이 편지를 보내어 오류를 지적하곤 했다. 그 때문에 ‘권위자’들의 분노를 사 소망하던 대학 교수 자리를 오랫동안 얻지 못했지만 그는 의지를 결코 꺾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이 그 유명한 ‘상대성 원리’를 발견할 수 있었던 까닭도 바로 그의 무모한 도전에 있었다. 사실 동시대에 앙리 푸엥카레 역시 시간의 상대성을 주장했지만 그는 여전히 뉴턴의 결정론적 세계관에 함몰된 탓에 과거의 이론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푸엥카레는 전형적인 완고한 전통주의자로서 ‘에테르’라고 하는 가상의 물질을 고집하느라 위대한 발견의 문턱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반면 아인슈타인은 거추장스러운 기존의 틀을 폐기하면서 물리학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그는 수백 년 동안 과학을 지배해왔던 기존의 사고방식과 권위에 도전하는 용기가 있었고, 그로 인해 물리학의 커다란 도약을 이루어냈다.
 
HP의 창립자 중 한 사람인 데이비드 팩커드는 어느 날 연구소를 방문해서 모니터를 개발 중이던 젊은 엔지니어에게 개발을 포기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그 엔지니어는 이에 불응하고 휴가를 냈다. 휴가를 낸 목적은 쉬기 위한 게 아니라 캘리포니아 주를 돌아다니면서 잠재고객들에게 모니터를 보여주고 반응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고객들이 모니터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연구를 강행하고 상사를 설득해 결국 모니터를 생산해내어 결국 3,500만 달러라는 높은 매출을 올렸다. 팩커드는 그 엔지니어를 벌하기는커녕 "탁월한 도전"이라고 치하하며 메달을 수여했다. 팩커드는 도전이 도약의 엔진임을 아는 경영자였기 때문이다.
 
모든 권위를 차가운 머리로 의심하고 도전하라. 최고권력자든, 오래된 믿음이든, 최신 유행이든, 난공불락의 경쟁사이든,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덤벼 이겨라. 도전이야말로 불확실한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권리이자 의무이다.

(*이 글은 'SPP조선'의 사보 'SPP Magazine 18호' 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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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 외우는 것이 창조의 기본이다   

2011. 6. 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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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하지 말라!” 이 말은 학습법을 다루는 여러 책에서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조언입니다. 그런 책은 “외우는 것보다 이해를 하는 게 중요하다”란 말도 덧붙입니다. 사고의 폭을 좁히고 창의력을 저해한다는 이유 때문에 암기는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조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암기하라. 당신이 기본기를 키우고 싶다면, 그리고 성공하고 싶다면.” 머리와 몸을 통해 자기 분야의 지식을 암기할 때 기본기가 정립됩니다. 기본과 기초를 도외시하는 사람은 그가 어떤 영역에 종사하든 변화의 중심이 되지 못합니다.


독일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인 힐데 도민(Hilde Domin)은 미망인이 된 인생의 후반기에 가서야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그녀의 시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킨 이유는 젊은 시절 여러 언어를 배우고 암기하면서 기초를 탄탄히 했기 때문입니다. 피카소의 난해한 그림이나 괴발개발 그린 듯한 추상화를 보면서 ‘이런 그림은 나도 그리겠다!’란 생각이 든 적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피카소가 입체파 화풍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훨씬 전인 7살 때 그린 데생을 보면 그가 얼마나 기본이 탄탄한 화가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손 끝으로 미술의 기법을 암기했던 겁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스무 살이 되지 않는 제자들에게는 붓과 색채물감을 절대로 만지지 못하도록 하고, 오직 철필만을 사용해서 유명 작품을 따라 그리도록 함으로써 기본을 다지도록 독려했습니다. 몸으로 체득하는 암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죠. 피아노의 거장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말합니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 자신이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평론가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안다.”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2008년에 프로골퍼인 타이거 우즈(Tiger Woods)가 무릎 부상에도 불구하고 2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US 오픈의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그가 14번째 메이저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할 수 있었던 힘은 타고난 그의 재능 덕이기도 하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른 선수라면 쉽게 질려버릴 법한 기초 연습을 싫증 내지 않고 반복하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죠. 요즘엔 떠들썩했던 스캔들로 실력이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연습벌레였다는 점은 인정해 줄만한 선수입니다.

암기를 백안시하는 이유는 모든 걸 통째로 외우라고 강요하던 예전의 교육방식 때문입니다. 피카소나 루빈스타인처럼 ‘몸’으로 기본기를 연마하는 스포츠 스타나 예술가들의 노력은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머리’로 기초를 다지는 암기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매우 모순입니다.
 
우리는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곤 합니다. 초심은 기본을 지킴으로써 회복됩니다. 기본이 기교로 변질됨을 막는 것은 부단한 연습과 암기 이외에는 없습니다. 열심히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늘 제자리에서 맴돈다는 느낌이 든다면 기본을 멀리하고 기교 높이기에 열중하고 있기 때문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요즘은 Know-Where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지식이나 정보가 여기저기에 넘쳐 나고 그것을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검색 엔진들이 막강해진 탓에 자신이 원하는 지식과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한(그렇게 해야 생산성이 높아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암기가 필요한 Know-what이나 Know-how는 구시대의 용어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Know-what과 Know-how를 아는 사람, 즉 머리와 몸으로 지식과 스킬을 '암기'해 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항상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눈 앞에 어떤 장면이 펼쳐졌을 때 기본 지식을 외우고 있는 사람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발화(發火)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본 지식이 없는 사람은 그것을 그냥 스쳐 지나가고 맙니다. 여러분이 기본 지식을 제대로 암기하지 않으면 어떤 상황에 직면할 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는커녕 그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할 겁니다.

외우는 것이 창조의 기본조건입니다.

(*3년 전에 올린 글을 rewrite해서 올립니다)
(*참고도서 : '문제해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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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하루는 반동주의자로 살자   

2011. 6. 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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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의과대학의 신경학자인 알바로 파스쿠알 레온은 국립보건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때에 이런 실험을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피아노 연주 경험이 없는 피실험자를 여럿 모은 다음에 단순한 음으로 된 멜로디를 그들이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피실험자들을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첫 번째 그룹의 피실험자들에게는 앞으로 5일 동안 키보드로 멜로디를 연습하도록 지시했고, 다른 그룹에게는 같은 기간 동안 자신들이 배운 멜로디를 머리 속 건반으로 연주하는 상상만 하도록 했습니다.

파스쿠알 레온은 실험을 시작하기 전, 실험 도중, 실험 후에 피실험자들의 뇌 활동을 기록함으로써 그들의 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알아내려 했습니다. 그는 그룹과 상관없이 피실험자 모두 뇌 활동의 변화가 일어났음을 밝혔습니다. 놀라운 것은 머리 속으로 상상의 연주만 하도록 허용됐던 그룹이 실제 건반을 사용해서 연습하도록 했던 그룹과 뇌 활동 변화에 있어 큰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상상만으로도 실제 손가락으로 연습한 것과 동일하게 뇌 활동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파스쿠알 레온의 실험은 우리가 흔히 '마인드 트레이닝'이라 부르는 방법이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죠.



인간의 뇌가 이처럼 일정 기간의 '상상 훈련'만으로 변화할 수 있는 이유는 '가소성(plasticity)'라고 부르는 뇌의 특성 때문입니다. 가소성은 인간의 뇌가 계속해서 환경과 반응하면서 처음의 구조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성질을 말합니다. 우리는 보통 나이가 들면 '머리가 굳는다'라고 말하면서 뇌의 가소성은 어렸을 때나 존재하는 특징이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외부나 내부에서 가해지는 힘, 긴장, 집중적인 사고 등에 의해 여전히 가소성은 유지됩니다.

뉴런은 항상 환경과 반응하면서 기존의 연결을 끊고 새로운 연결을 취합니다. 역동적으로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성되기도 하죠. 한번 만들어지면 변하지 않는 기계가 아니라, 늘 말랑말랑한 유연성을 유지하면서 환경 적응력을 최고조로 유지하죠. 뇌의 가소성 덕에 우리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고 새로운 사실을 배우거나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죠. 피아노를 연주한 적이 없는 피실험자들이 5일 간의 연습과 마인드 트레이닝만으로 뇌에 변화가 생겼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뇌의 가소성이 우리에게 환경 적응력이라는 긍정적인 능력만을 부여한 것처럼 생각되겠지만, 사실 가소성이란 성질은 뇌를 다르게 변화시키는 환경이 인간에게 '좋으냐, 나쁘냐'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도 없습니다. 그저 환경의 자극과 긴장에 따라 반응할 뿐이죠. 그래서 '나쁜 습관'이나 '바람직하지 못한 환경'이 강하게 자극을 가하면 우리의 뇌는 그런 방향으로 고착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 노먼 도이지(Norman Doidge)는 "일단 우리의 뇌 속에 새로운 회로를 만들어낸다면 오랫동안 그 회로를 활동하도록 둔다"고 말합니다.

도이지의 이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우리의 뇌가 유연하기도 하고 동시에 '완고'하다는 뜻이죠. 특히 쾌락의 물질인 도파민을 갈망하는 쪽으로 뇌의 구조가 변하면, 웬만해서는 도파민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 회로를 더욱 강화시키게 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다시 말해 뇌의 가소성이 지적 능력의 쇠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러합니다.

인터넷과 월드와이드웹의 일반화, 스마트폰과 SNS의 폭발적 증가, 증강현실의 확대가 낳은 긍정적인 변화의 이면에는 사람들이 점차 깊게 사고하며 정보를 탐색하는 능력을 상실해 간다는 어두운 그늘이 분명 존재합니다. 
한번의 클릭으로 광범위한 대량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우리의 뇌는 가소성 덕에 점차 그것에 맞춰지고 있습니다. 정보를 찾기 위해 책을 읽기보다는 인터넷을 검색합니다. 모니터에서 기사를 읽을 때도 뛰엄뛰엄 읽고는 다른 사이트로 재빨리 이동합니다. 그래서 긴 글을 읽을라치면 머리부터 아파옵니다. 정보와 지식을 배우는 능력보다는 어디에 있는지 잘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우선이라고 믿게 됐습니다.

정보기술이 고도화할수록 우리의 집중력 또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기웃거리느라 업무를 중단하는 경우가 잣습니다. 특별히 볼 것도 없는데 웹브라우저를 켜놓아야만 안심이 됩니다. 
찻집에 차분히 앉아 차를 마실 때도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으면 불안해집니다. 스마트폰이 일반화되면서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도 고개를 숙이며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대화에 몰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인데, 1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교육을 받다가 특별한 이유없이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다른 행위를 하는 교육생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이처럼 단편화된 정보만을 취하고 집중하지 못한 채 여기저기 방랑하는 인간의 뇌는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니콜라스 카는 경고합니다.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우리의 사고방식을 얕고 가볍게 만든다며 일침을 가합니다. 스마트한 정보기술 환경이 인간의 뇌를 스마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정보가 차고 넘친다고 해서 우리의 뇌가 그만큼 똑똑해진 것은 아니라는 그의 생각은 깊은 동의를 불러 일으킵니다.

일주일에 하루 쯤은 철저히 오프라인으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요? 내 말랑말랑한 뇌가 자꾸만 편한 쪽으로 고착되지 않도록, 인터넷에 의존하느라 덜 생각하지 않도록, 한줄의 글을 읽더라도 글쓴이의 심상과 교감할 수 있도록, 나의 내면과 대화하고 상대방의 눈을 응시할 수 있도록, 일주일 중 하루는 '언플러그드 라이프(Unplugged Life)'를 즐기면 어떨까요? 
의미 있는 삶을 탐색하고 회복하기 위해 나의 뇌를 수호하는 반동주의자가 되면 어떨까요?

(*참고도서 :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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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컨설팅 회사의 거짓말?   

2011. 6. 2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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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컨설팅 회사가 자기네들의 컨설팅 능력을 과시하면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컨설팅 서비스를 받은 고객들이 그렇지 않은 고객들보다 주가가 훨씬 올랐습니다. 무려 4배나 높은 주가수익률을 보였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의 컨설팅을 받으세요."  이런 말을 전하는 컨설턴트는 자기 말이 진짜임을 분명하다면서 주가 그래프를 여러분에게 보여주겠죠. 그렇게 말할 만큼 자신들의 전문 컨설팅 서비스가 우수함을 자랑하면서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 사람의 말을 믿어야 할까요, 아니면 의심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이 블로그를 자주 방문했다면 어떤 답을 해야 할지 알 겁니다. 맞습니다. 여러분은 자랑스레 말하는 그 컨설턴트의 말을 무시하고 "그건 그렇고, 당신네들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뭡니까?"라고 말해도 무방합니다. 그 사람의 말은 완전히 엉터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엉터리로 선전하는 컨설팅 사가 어딘지 궁금할 겁니다. 바로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베인 앤 컴퍼니'입니다. 그들은2006년에 자신들의 웹사이트에 이렇게 올렸습니다. "베인의 고객들은 시장수익률보다 4배나 높은 주가수익률을 올렸습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1980년에서 2004년까지의 S&P 500 지수였습니다. S&P 500 지수는 그 기간 동안 15배 상승했지만, 베인의 고객들은 같은 기간 동안 60배가 상승했습니다. 고로 시장보다 4배나 높게 주가가 올랐다고 주장했던 겁니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올린 이 문구에서 무엇이 문제일까요? 첫 번째 치명적인 결함은 주가 상승을 비교한 기간에 있습니다. 베인이 근거로 내세운 S&P 500 지수의 상승 기간은 25년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고객이 25년 동안 컨설팅 서비스를 받지는 않습니다. 길어 봤자 2~3년이죠. 기껏 2~3년 간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주가 상승 비교는 25년 간의 데이터를 사용하다니, 이것만 봐도 정말 엉터리입니다. 자기네 컨설팅 서비스가 유용하고 해도 그 효과가 그렇게 오래 갈까요? 갈수록 환경이 급변하는 시기에?

두 번째 문제점은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헷갈렸다는 데 있습니다. 베인의 주장을 받아 들여서 그들의 고객이 다른 기업보다 시장수익률을 초과하는 성과를 달성했다고 치죠. 그래도 그것이 베인의 컨설팅 서비스가 고객사에게 높은 실적을 가져다 준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컨설팅 서비스가 아니라 다른 요인 때문에 베인의 고객들이 우연히 더 높은 실적을 보였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베인의 고객들이 컨설팅을 받을 만큼 자금의 여력이 있기 때문에, 즉 다른 기업보다 주가수익률이 높아서 베인에게 컨설팅을 해달라고 요청했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더 타당한 이유겠죠.

아마도 베인은 자신들의 주장에 이런 치명적인 두 가지의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홈페이지에 그런 이야기를 올렸는지도 모릅니다. 아무 생각 없이 홈페이지를 방문한 사람들을 현혹시킬 목적으로 말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직도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페이지 하단에 다음과 같은 그래프를 볼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고객이 4배나 더 큰 수익을 올렸다는 말이 자랑스레 써 있군요.

(출처 : Bain & Company 홈페이지)


아마도 베인이 아니라 다른 컨설팅 사에서도 자기네 고객들의 주가수익률 그래프를 그려 보면 위의 그래프와 거의 같은 패턴이 나올 겁니다. 베인 측에서는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말하려면 이렇게 단순한 비교 그래프가 아니라, 자신들의 서비스를 받기 전과 받은 후의 성과 차이를 근거로 내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베인의 컨설팅 서비스가 기업의 성과에 도움이 된다는 인과관계의 설명력을 높일 수 있죠(그렇다고 해서 완전하게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자신들의 주장이 거짓말이 아님을 주장해야 합니다. 그냥 위의 그래프만 달랑 보여주는 것은 고객들을 기만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무엇을 주장할 때 그 주장의 진위 여부를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판단해야 합니다. 그럴 듯하게 들리는 말일수록 철저하게 따져야 합니다. 안 그러면 컨설팅에 돈을 썼다가 아무런 소득 없이 '그래도 효과가 있겠지'하는 자기 위안에 빠질지 모를 일입니다.

(*참고도서 : 헤일로 이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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