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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제인(Jane)이라고 명명된 가상의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가 일주일 동안 무엇을 했고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한 시시콜콜하고 방대한 자료가 여러분에게 주어졌고 그녀의 이야기에 재미를 느낀 여러분은 그것을 다 읽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 절반은 그녀가 활동적이고 외향적이라는 내용의 정보를 읽었고, 나머지 절반은 그와 반대로 그녀가 조용하고 내성적이라는 이야기를 읽었죠. 여러분에게 정보를 전달한 사람이 중간에서 일부러 그렇게 조작한 겁니다.
이틀이 지나고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직업이 무엇일까요? 부동산 중개인일까요, 아니면 도서관 사서일까요?" 알다시피 부동산 중개인은 직업의 이미지 상 사교적이고 활달한 느낌을 주는 반면, 도서관 사서는 차분하고 덜 활동적인 직업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여러분은 이틀 전에 습득한 정보를 통해 그녀에게 맞는 직업을 정해 줘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녀가 조용하고 내성적이라는 내용의 정보를 읽었다면 그녀에게 적합한 직업이 무엇이라고 생각할까요? 아마도 여러분은 도서관 사서라고 암묵적으로 느낄 겁니다. 반대로 그녀가 활동적이고 외향적이라는 정보를 전달 받았다면 도서관 사서보다는 부동산 중개인이 낫겠다고 대부분 생각하겠죠.
그런데 적합한 직업을 찾아 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여러분에게 제인이라는 여자를 직접 대면하게 합니다. 사전 정보로만 판단하지 말고 제인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녀의 성격에 적합한 직업을 찾아주라는 미션을 주면서 말입니다. 여러분은 제인에게 도움이 되도록 가능한 한 여러 질문을 던지면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하려고 할 겁니다. 자신이 접한 사전 정보가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한다고 말하겠죠.
그러나 1978년(꽤 오래 전이군요)에 이 실험을 진행한 마크 스나이더(Mark Snyder)와 낸시 캔터(Nancy Cantor)는 여러분의 의지와는 반대되는 결과를 얻을 거라고 말합니다. 내성적인 프로필을 읽은 사람들은 제인에게 내성적임을 증명하려는 의도의 질문을 주로 던졌고, 외향적인 프로필을 읽은 사람은 제인이 외향적임을 밝히기 위해 질문하는 경향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제인에 대해 가진 믿음을 확인하려는 의지가 강해서 믿음에 반대되는 질문은 무시하거나 재해석하려 한다는 것을 스나이더와 캔터가 증명한 겁니다.
이렇게 자신의 믿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만을 찾으려 하고 반대되는 근거는 보지 않으려는 경향을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서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라고 부릅니다. 레이몬드 닉커슨이라는 심리학자가 "확증 편향은 개인, 집단, 국가에서 발생하는 많은 갈등, 오해, 분쟁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잘 알지 못한다" 라고 말할 정도로 확증 편향은 매우 강력하고 침투력이 강합니다.
기업의 관리자들 역시 확증 편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만일 외모가 출중하거나 학력이 높고 게다가 집안까지 '빵빵'한 직원이 있다면 실제보다 그를 높게 평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반대로 어딘가 모르게 부족하고 사회성이 떨어질뿐더러 학력이 그저그런 직원들은 관리자로부터 능력의 실제 수준보다 낮게 평가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이것은 추론이 아니라 실험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심리학자 존 달리(John Darley)와 폴 그로스(Paul Gross)는 어떤 아이가 시험 본 결과를 피실험자들에게 보여주고 그 아이의 학업능력을 평가하라고 했습니다. 피실험자들 중 절반에게는 그 아이가 상류층 자재라고 이야기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아이가 하위계층 출신이라고 말했죠. 결과가 어땠을까요? 여러분의 예상대로 아기가 상류층 출신이라고 들은 피실험자들은 그 아이의 학업능력을 높게 평가했지만, 하위계층 출신이라고 들은 피실험자들은 그 아이의 학업능력을 낮다고 판단했습니다. 똑같은 시험 점수를 보고 판단했는데도 결과는 이처럼 극명하게 달랐습니다.
직원들은 상사가 자신을 평가할 때 확증 편향의 오류에 빠진 것 같다는 불만을 종종 합니다. 물론 그들이 확증 편향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한번 찍히면 계속 간다" 는 직원들의 말은 곧 관리자가 자신도 모르게 '확증 편향된' 평가를 내림을 드러내는 불만이겠죠. 직원을 한번 밉게 보면 그와 반대되는 긍정적인 업무 성과를 직원이 냈다 해도 '그건 필시 걔가 잘해서가 아니라 뭔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일 거야' 라고 폄하하거나 재해석(?)하는 관리자들이 생각보다 아주 많습니다.
관리자의 확증 편향된 평가를 바로 잡을 수는 없을까요? 많은 기업들이 평가의 객관성을 높이려고 관리자들에게 피평가자들의 성과 창출과 역량 향상에 대해 기록하고 또 근거를 수집하라고 권고합니다. 감이 아니라 근거에 의해 평가하면 주관적 평가의 위험을 덜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위의 실험에서 봤듯이 기록하고 근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도 확증 편향이 끈덕지게 달라 붙습니다. 확증 편향된 체로 걸러서 자신의 믿음을 공고히 해 줄 근거만을 수집하기 때문이죠. 관리자들의 평가 역량을 기르라는 말로는 평가의 오류를 바로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명의 피평가자들을 여러 명이 다각도로 평가하는 다면평가가 대안으로 제시됩니다. 관리자가 가진 확증 편향을 다른 사람들이 중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면평가자 모두 그 피평가자가에게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면 한 사람이 평가하나 여러 사람이 평가하나 비슷한 결과가 나오겠죠. 다면평가자하고 해서 확증 편향을 없애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피평가자의 지근거리에 위치한 사람, 직접 업무를 같이 수행한 사람들의 의견들은 관리자의 시각과는 다른 관점의 확증 편향을 제공합니다. 피평가자 한 명에 대해 다면평가자들 각각은 자신만의 확증 편향을 갖는다면, 그것들이 모두 합쳐졌을 때는 그나마 피평가자의 실제 역량과 성과를 최대한 온전하게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과학자들은 실험을 수행하고 해석할 때 확증 편향이 작용할 것을 우려해서 '이중맹검법'이라고 부르는 조치를 취합니다. 실험자도 피실험자도 실험의 조건에 대해 알지 못하도록 해서 믿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찾고 믿음에 반하는 근거는 무시하려는 무의식적인 편향을 줄이기 위해서죠. 비유하자면, 다면평가는 과학에서의 이중맹검법입니다. 비록 둘이 똑같지는 않지만, 확증 편향의 '교정 기구'로 본다면 두 개념은 동일한 위상을 갖습니다.
물론 운영 상의 오류로 다면평가가 왜곡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죠. 다면평가가 인기투표에 불과하고 '좋은 게 좋다'라며 지나치게 관대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많은 기업에서 축소하거나 폐지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해보니까 안 되더라' 고 해서 그냥 버리기 전에, 관리자 일방의 확증 편향을 중화한다는 목적을 최대한 살려 현재의 다면평가 제도를 손질하는 것이 어떨까요? 확증 편향을 없애거나 차단할 다른 대안이 아직 없다면 말입니다. 색안경을 끼고 직원을 평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면 말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평가하는 일은 확증 편향과의 지루한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서 어떻게 이길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 Testing hypotheses about other people: The use of historical knowledge )
(*참고논문 : A hypothesis-Confirming Bias in Labeling Effec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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