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가냘픈 다리   

2011. 4. 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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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에 '걸리버 여행기'라는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별 재미를 보지 못한 작품이었죠. 알다시피 이 영화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소설을 각색해서 만든 영화입니다. 어릴 적 걸리버 여행기를 읽고 소인국이나 거인국에 가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 보며 시간을 보내던 때가 생각나는군요. 걸리버 여행기를 많은 사람들은 동화 정도로 생각하지만 실은 당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신랄하게 비꼰 성인용 풍자소설입니다.

그런데 소인국 사람이나 거인국 사람들은 정말로 우리의 모습과 같을까요? 조나단 스위프트의 원작에서나 여러 번 각색되어 상영된 영화에서나 소인국 사람들과 거인국 사람들은 우리와 크기와 다를 뿐 생김새가 똑같습니다. 수학용어로 말하자면 '닮은꼴'이죠. 머리, 몸통, 팔과 다리의 비율이 우리 인간과 똑같아서 소인국 사람을 가까이에서 보거나 거인국 사람을 멀리에서 보면 우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요? 몸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힘'과 몸의 '크기 '사이의 관계를 적용한다면 소인국 사람과 거인국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모습이어야 함을 알게 됩니다. 생쥐의 골격은 몸무게의 8퍼센트 밖에 되지 않으나 인간의 골격은 체중의 18% 정도입니다.

몸무게의 증가에 비례하여 골격의 무게도 증가한다면 생쥐나 인간이나 모두 골격의 비중은 동일해야 하지만, 몸무게가 증가하면 골격이 더 크게 증가합니다. 폭이 2미터 밖에 안 되는 도랑을 편히 건너려면 나무 판자 하나만 걸치면 충분하지만, 폭이 20미터가 되면 나무 판자로는 안전한 다리를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소설을 보면 걸리버의 키보다 소인국 사람의 키가 12분의 1이라고 합니다. 걸리버의 키를 174센티미터라고 하면 소인국 사람은 14.5 센티미터가 됩니다. 키와 동일한 비율로 다리의 굵기가 줄어들면 소인국 사람의 다리 굵기는 새의 다리처럼 굉장히 가느다랗겠죠? 걸리버의 몸무게를 68킬로그램이라고 하면 소인국 사람들은 대략 500그램의 몸무게를 가지는데, 그렇게 가느다란 다리를 가지고는 500그램의 몸무게를 지탱하기가 힘들 겁니다.

반대로 거인국 사람들은 어떨까요? 그들은 걸리버에 비해 12배나 크다고 했으니, 키가 21미터 정도가 될 겁니다. 이 정도 키가 되면 몸무게는 12톤이 넘어가는데, 인간과 동일한 모양의 골격을 가지게 되면 거인국 사람들은 일어서자마자 골절상을 입고 말 겁니다. 따라서 그들이 제대로 생활을 하려면 코끼리가 굵은 다리로 몸을 지탱하듯이 몸에 비해 훨씬 굵은 다리를 가져야 합니다.

크기가 변하면 구조도 변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기업 경영에 주는 시사점임을 말하기 위해 걸리버 여행기를 서두에 올렸습니다. 기업의 규모가 작을 때와 확장될 때, 그리고 커져있을 때 경영시스템도 큰 규모에 걸맞게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더욱 중요한 점은 기업의 규모와 비례해서 경영시스템이 확대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기업의 규모가 2배 커졌다고 해서 양적으로 경영시스템을 2배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커진 회사의 규모를 지탱하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기업 규모가 커지면 코끼리의 다리 골격이 작은 동물보다 다르듯이 경영시스템의 구조적인 혁신이 뒤따라야만 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초기에 성장을 구가하다가 중간에 잠시 주춤하는 시기를 겪습니다. 소수의 창업자 그룹들이 회사를 이끌어오던 방식(제품개발, 마케팅, 영업, 생산 등 전반)이 커져버린 몸에 더 이상 맞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모습이죠. 직원들이 늘면 책상을 늘려주고 일할 공간을 확대하면 된다는 '비례적인' 마인드로는 커진 덩치를 감당하기가 버겁습니다.

생명체의 진화 과정을 보면 몸집이 커지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재료(뼈와 근육 등)가 갖춰져야 자연선택에서 살아남는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단세포 동물들을 모두 한 비이커에 가득차게 넣는다고 해서 생쥐가 만들어질 리 없습니다. 생쥐가 탄생하려면 생쥐의 모양이 나오게끔 만드는 뼈와 근육 등의 구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겠죠. 생명체가 진화와 자연선택이라는 장치로 이런 혁신을 이끌어 가듯이, 기업도 의도적인 변화와 혁신을 통해 구조적으로 이전 것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골격을 갖춰나가야 합니다.

물론 구조적인 변화 없이 기업의 규모를 확대해도 별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 프랜차이즈 형태의 비즈니스가 그러하죠. 일정한 시스템만 갖춰지면 그것을 복제해서 여러 가맹점으로 확대하면 됩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형태이든 아니든 확대 과정에서 효과와 효율의 한계에 부딪히고 맙니다. 생명체는 이런 한계에 다다르면 진화의 압박('선택압'이라고 함)을 받게 되어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분화해 갑니다.

이런 진화의 양상을 따른다면, 기업 규모의 확대가 한계에 부딪힐 때 지금까지의 허물을 벗고 새로운 골격을 갖추려는 노력이 반드시 진행되어야 하겠죠. 규모를 확대하는 것이 답이 아닐 때는 작은 골격으로 갈아타거나, 시장점유율 확대에만 집중하는 것보다는 비즈니스 디자인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더 큰 시장지배력을 가져올 혁신일 겁니다.

여러분 조직의 골격은 회사를 지탱할 만큼 튼튼합니까? 거인의 거대한 몸통에 소인의 가냘픈 다리가 달린 그런 모습은 아닙니까?

(*참고도서 : '크기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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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은 독약이고, 실패는 도약이다   

2011. 4. 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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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다니는 회사가 '비즈니스 위크', '포브스', '포츈'과 같은 유명한 경영 잡지에 커버 스토리를 장식하며 성공기업으로 소개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회사에 아주 불만이 크지 않는 한, '우리 회사가 이렇게 유명해지다니!' 하며 자부심을 느낄 겁니다. 하지만, 회사 성과가 급격히 악화되었다든지 회계 부정과 같은 스캔들에 연루됐다든지 등과 같은 이유로 잡지 표지를 장식한다면 주위에서 '너네 회사 괜찮냐? 망하는 건 아니냐?'란 말을 듣겠거니 하면서 우울할 겁니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유명 잡지의 1면에 오르는 영광(혹은 불명예)을 반대로 생각하라는 속설이 있습니다. 커버 스토리에 오른다는 것이 기업의 향후 성과를 '반대로' 알려주는 지표라는 인식이 존재합니다. 즉 '성공기업으로 1면에 오르고 나면 이후의 성과는 추락한다', '불명예스럽게 1면에 오른 이후에는 성과가 올라가거나 적어도 더 이상 추락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유명 잡지의 표지에 어떤 기업이 어떤 이유로 올라가느냐를 보고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죠. 주식 투자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아마 이런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런 속설이 과연 옳을까요? 이런 신화(myth)같은 믿음이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을까요?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 대학에 근무하는 3명의 교수(톰 아놀드, 존 얼, 데이비드 노스)는 이 속설을 통계적으로 검증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1983년부터 2002년까지 비즈니스 위크, 포브스, 포츈 지의 1면에 오른 기업들(모두 549개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그 기업들을 성공과 실패의 정도에 따라 5개의 카테고리로 나눈 다음, 커버 스토리로 소개된 시점으로부터 전, 후 2년 간(총 4년 간) 주식시장에서의 성과를 따져 봤습니다.

그랬더니 2가지 현상이 발견됐습니다. 그 중 하나는 '극적인 성과를 달성하거나 반대로 최악의 성과를 기록한 이후에 경영 잡지의 표지에 등장한다'라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당연하겠죠. 경영 잡지들은 뉴스 거리가 될 만한 극적인 사례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발견한 두 번째 현상은 '경영 잡지의 표지에 등장했다는 것이 극적인 성과(반대로 최악의 성과)가 이제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이다'라는 것입니다. 톰 아놀드 등은 성공기업으로 소개된 이후의 성과는 보잘 것 없거나 추락하고, 실패기업으로 낙인 찍힌 이후에는 극적인 상승은 아니지만 서서히 성과가 나아졌음을 통계로 보여줬습니다.

이로써 증권가에서 떠돌던 속설이 어느 정도는 타당성이 있음이 실제로 밝혀졌죠. 만약 성과가 추락하는 기업의 주식을 언제 팔아치워야 하는지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그 기업이 불명예스럽게 경영 잡지의 표지에 등장했다면 이제 바닥을 쳤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게 좋다고 연구자들은 말합니다. 좀더 기다렸다가 주가가 오를 때 파는 게 낫다는 조언이겠죠.

그런데 왜 경영 잡지의 1면에 오른다는 것이 미래 성과를 '반대로' 가리키는 지표가 되는 걸까요? 왜 극적인 성공 후엔 추락이, 한없는 추락 후엔 비상(飛上)이 있는 걸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에는 기업 구성원들의 심리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성공이 자만을 불러일으킨다는 '성공의 저주', 그리고 실패하고 나서야 무엇을 어떻게 할지 알게 된다는 '실패의 쓴 약'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2004년에 '순이익 100억 달러 클럽'에 가입하고 난 직후 순이익은 다시 100억 달러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현대자동차는 미국 시장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기업으로 소개되자마자 요즘 주춤한 상태입니다. 작년과 재작년에 구글과 관련된 책들이 봇물처럼 나오더니 요즘 구글은 페이스북에 밀리는 형국입니다. 요새 주목 받는 페이스북도 언제 추락할지 아무도 모르죠.

극적인 성공은 독약과도 같습니다.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늘 새로운 기회를 찾아나서는 일. 이것이 성공의 저주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또한 실패했다고 절망하지 말고 실패를 도약의 기회로 삼는 것이 실패로부터 빨리 빠져나오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진부한 조언이지만 이 말만큼 진리인 것도 없습니다.

(*참고논문 :http://www.cfapubs.org/doi/pdf/10.2469/faj.v63.n2.4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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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베스트셀러에 속지 않는 법   

2011. 4. 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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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기업들의 성공요소를 살펴본 결과, 그들 중 78%는 핵심사업에 집중한다." 여러분이 최신 경영 베스트셀러을 읽다가 이런 문구를 발견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아마도 "우리 회사도 핵심사업에 집중해야겠군."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혹은 "이렇게 사업을 문어발처럼 확장해서는 성공은커녕 나중에 실패하기 딱 좋을거야"라고도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간단한 수학을 할 줄만 안다면, 수학 중에서도 간단한 집합 개념만 이해하고 있다면, 최신의 경영 베스트셀러가 주장하는 말이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공한 기업'이란 말은 정의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매출, 이익, 시장점유율 면에서 남들보다 탁월한 성적을 거둔 기업을 일컫는 말이겠죠. 그들 중 78%가 핵심사업에 집중한다는 말을 들으면 여러분은 '핵심사업 집중이 곧 성공'이라는 도식을 머리에 떠올리겠지만, 밴다이어그램을 그려보면 그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래의 그림은 '성공한 기업의 78%가 핵심사업에 집중한다'란 말을 밴다이어그램으로 나타낸 것입니다(그림을 손으로 그린 터라 그림의 비율이 맞지 않은 점을 양해 바랍니다).



경영 베스트셀러의 주장에 따르면, 성공기업 중 78%에 해당하는 부분은 '성공기업'의 집합과 '핵심사업 집중기업' 집합이 서로 겹치는 부분이 됩니다. 나머지 부분은 22%가 되겠죠. 문제는 물음표라고 표시된 부분입니다. 만일 물음표 부분의 크기가 아주 작다면, 경영 베스트셀러의 주장이 상당히 타당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물음표 부분의 크기가 아주 크다면, 핵심사업에 집중하는 것이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소리가 됩니다.

'성공기업'의 집합 입장에서 보면 겹치는 부분(그림에서 빗금 쳐진 부분)이 78%나 되지만, '핵심사업 집중사업'의 집합의 입장에서는 겹치는 부분이 고작 몇 %에 불과할지 모르기 때문이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성공한 기업들의 78%'란 말을 '핵심사업에 집중한 기업들의 78%'라는 말로 오인하여, 핵심사업에 집중하기만 하면 성공이 78%의 확률로 뒤따라오는 것이라는 판단에 이릅니다. 핵심사업에 집중했다가 실패할 확률은 22%에 불과하다고 오해하고 말죠.

실제로 따져보면 어떨까요? 스탠포드 대의 저커 덴렐(Jerker Denrell)은 '성공한 기업들 중 78%가 핵심사업에 집중한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핵심사업에 집중한 기업들 중 얼마나 성공했는가?'라고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꿔 말하면, 위의 벤다이어그램에서 물음표 부분이 얼마나 클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는 뜻이죠. 그가 동료들과 함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핵심사업에 집중한 기업들 중 성공한 기업은 겨우 35%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78%에는 한참 못미치는 수치죠. 35%라는 수치는 성공을 보장 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결과입니다.

덴렐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핵심사업 집중기업'의 입장에서 벤다이어그램을 다시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65%의 기업이 핵심사업에 집중했음에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바로 드러납니다.



수많은 경영 베스트셀러 저자들은 "성공한 기업들의 전체 혹은 대부분은 무엇무엇을 했다"라는 말하면서 "그 무엇무엇을 하면 성공에 이른다"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위에서 살펴봤듯 논리적으로 따지면 엉터리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그들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그 무엇무엇을 했음에도 실패한 경우는 얼마인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초우량기업의 조건',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등 대형 베스트셀러에서 성공모델로 추앙 받던 기업들은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톰 피터스가 '초우량기업의 조건'에서 상위 43위에 드는 기업들을 초우량기업으로 치켜세웠지만, 우습게도 그 책이 출간되고 2년 후에 그 기업들 중 14곳이 경영 악화로 허덕이고 말았습니다.

또한 짐 콜린스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란 책에서 '위대하다'고 칭송하던 기업들 중 상당수가 책이 나온지 10년 안에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작년에 '위대한 기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란 책을 출간함으로써 왜 위대한 기업들이 실패했는지를 분석하는 자가당착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이렇게 해서 실패했다. 그러니 그렇게 하지 않아야 실패하지 않는다'라고 그는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도 '성공한 기업들은 이렇게 한다. 그러니 그렇게 하면 성공한다'란 말처럼 논리적으로 엉성할 뿐입니다.

경영 베스트셀러를 보고 그대로 따라했다가 어려움을 겪은 기업들은 얼마나 될까요? 또 왜 우리는 성공기업처럼 되지 못할까, 라며 자괴감에 빠진 기업은 얼마나 많을까요? 아마 베스트셀러 저자들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성공기업의 방식을 100%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입니다. 참 편리한 논리죠?

성공기업의 성공요소는 모든 기업에 들어맞는 경영의 진리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맞고 어울리는 성공의 포인트를 스스로 찾아내야 합니다. 이것이 성공기업을 바라보는 중용의 시각입니다. 적어도 그들의 성공요소에 현혹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참고도서 : '욕망을 파는 사람들', '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
(*참고자료 : http://www.gsb.stanford.edu/news/research/ob_successfulfailures.s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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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는 젊음에게 보내는 쪽지   

2011. 4. 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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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공단이 급조성된 신도시의 신설학교였다. 나는 그곳에서 한 두 번을 빼고 늘 전교 1등이었다. 자랑이 절대 아니다. 급조된 신도시의 신설학교가 항상 그렇듯, 고입 시험에 두 자리 점수를 받고도 능히 들어가는 학교였으니까.
 
그러던 내가 운좋게도 나름 어렵다던 대학에 끄트머리로 합격했다. 진짜 '겨우'였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난다긴다 하는 동급생들에 기가 죽었다. 이름없는 신설학교에서 얻은 전교 1등이란 감투는 보잘것없는 허울이었다. 한 학기에 4번 있는 시험에 허덕이고, 국어와 국사를 제외하고 원서로 된 교과서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해석하기에도 버거웠다.

 

나는 적어도 1학년 때는 대학생의 자유를 맛보고 싶다는 얄팍한 핑계로 공부를 멀리했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폼만 잡은 셈이다. 이런 도피는 학사경고로 이어졌고 안 내도 되는 수업료를 전액 낼 수밖에 없어서 가뜩이나 어려운 집안 사정에 큰 짐이 됐다. 나는 두 번 연속으로 학사경고를 받았고 학칙에 의해 1년 정학을 먹었다. 자의반 타의반 군대에 갔다.

그땐 참 절망스러웠고 슬펐다. 군대는 나를 강인하게 만들기는커녕 실패한 사람들이 모이는 수용소처럼 느껴졌다. 요새 잇단 자살로 문제가 된 모 대학 학생들이 느꼈을, 그리고 느끼고 있을 절망은 과거의 내것과 유사하리라.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지나고 나니 그때의 좌절도 아름다운 꽃이다. 지구가 둥글듯이 삶도 둥글다. 그때 세상의 가장자리로 한없이 밀려났던 나는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 여기 이곳에 서있으니까. 세상의 중심이 아니면 어떠리. 내가 선 이 자리에 중심의 좌표를 설정하고 살면 될 일. 내가 가는 이 거친 길이 남이 아닌, 나만의 중심으로 향하는 길이라 여기면 그만일 뿐.
 
좌절은 젊음의 자유. 그러나 절망은 젊음의 파산 선고이자 죄악이다. 절망의 늪에 빠진 스스로를 잡아 끌고 나와 뚜벅뚜벅 걸어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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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하현달   

2011. 4. 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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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달



어둠 속으로 기억이 가라앉는다. 밤의 서풍은 동쪽으로 쌓이고 언덕 아래로 기억이 흘러내린다. 잊을 수 있을 때 잊었으면 좋았을 기억이다. 떠날 수 있었을 때 떠났으면 좋았을 기억이다. 기억은 결이 엉킨 채로 서풍 따라 구르고 어둠을 몰고 다니는 그는 늘 여윈 눈이다. 상실은 늘 나의 몫이고 한때의 기억은 하현달처럼 빛을 잃는다.

누워 어둠 속의 어둠을 본다. 어둠 속의 어둠 같은 그를 본다. 어둠 속의 어둠 같은 그의 기억을 본다. 그는 내게 어둠으로 입맞춘 기억 한조각을 건네고 느리게 돌아눕는다. 그는 만져지지 않는 기억이고 만져서도 안되는 기억이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언제나 슬플 것을 염려하며 언제나 떠날 때를 가늠했다. 언제나 어둠 같은 표정으로 하현달 같이 웃었다. 언제나 손을 먼저 거두고 언젠가 만날 것을 먼저 약속했다.

무모함은 어리석음보다 슬픈 법. 파란 공중전화 앞에 얼어가던 그 겨울날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행복했을까? 자정을 넘어 어둠보다 더 어둔 역으로 몸을 누이던 그날의 석탄차는 내 무모함의 상징이었을까? 나는 젊었지만 여위고 가난했다.

방백을 듣는 관객인 양 그는 하현달의 상실만을 응시한다. 어둠보다 더 어둡게 귀를 닫은 채 일 밀리미터씩 밀리는 서풍처럼 언덕 아래로 구른다. 기억 따윈 존재하지 않는 무덤인 양 천천히, 그는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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