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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오래된 실험(1970년 대 초에 진행)이긴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일리노이 주립대(얼바나 샴페인)의 조직행동학자 배리 스토(Barry M. Staw)는 60명의 학생들을 무작위로 3명씩 팀을 구성하게 하여 '재무 성과 예측 게임'을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스토는 학생들에게 중간 정도되고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전자 회사의 1969년 연차보고서를 나눠 주었습니다. 그 보고서에는 최근 5년 간의 재무적인 성과 데이터가 포함되어 있었죠.
스토는 각 팀의 학생들에게 그 회사의 1970년 매출액과 주당순이익을 예측해 보라는 과제를 주었습니다. 각 팀은 30분 간 토론한 다음 자기네 팀이 예측한 매출액과 주당순이익 값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스토는 학생들에게 이 게임이 한 팀의 구성원수가 3명일 때의 성과가 4명이나 5명일 때의 성과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평가하기 위한 실험이라고 둘러댔지만, 진짜 목적은 그게 아니었습니다(피실험자들을 이렇게 속아 넘어가게 하는 것이 실험의 성공요소 중 하나인 모양입니다. 어쨌든...)
스토는 각 팀의 학생들이 제출한 결과(매출액, 주당순이익)는 학생들 모르게 캐비넷에 넣고서는 그냥 무작위로 '최고로 잘 예측한 그룹'과 '예측 능력이 저조한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룹 간의 예측 능력 차이는 없었죠. 학생들은 의심하지 않고 스토의 평가를 받아 들였습니다.
스토는 학생들을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가서, 이번엔 아까 게임을 하는 동안 팀 내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면서 학생들에게 설문에 답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예측 게임을 수행하면서 자기네 팀의 단결력, 발언의 영향력, 의사소통, 갈등, 변화에 대한 열린 마음, 동기부여, 실력, 지시의 명확성 등을 어떻게 느꼈는지 각각을 1점부터 11점까지 평가하라는 것이 설문의 내용이었습니다.
예측 능력이 좋으냐 나쁘냐와 상관없이 설문에 대한 평가점수가 비슷하게 나와야겠지만(무작위로 학생들을 나눴기에), '최고로 잘 예측한 그룹'과 '예측 능력이 저조한 그룹'의 평가점수는 명백하게 차이를 보였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전자가 후자보다 자기네 팀을 더 훌륭하게 평가했습니다. 예를 들어 팀의 단결력에 대해서 '최고로 잘 예측한 그룹'은 7.83점이라고 평가한 반면, '예측 능력이 저조한 그룹'은 6.70이라고 평가 내렸습니다. 의사소통에 대한 평가도 이와 비슷한 패턴을 보였지요.
이 실험은 결과가 좋다고 평가 받은 사람들은 결과를 내기까지의 과정도 우수했다고 스스로를 평가함을 보여 줍니다. 또한, 결과가 어떠했든 간에 과정을 따로 떼어 평가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점도 시사하죠. 이처럼 결과에 대한 평가가 과정에 대한 평가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결과는 눈에 잘 보이지만, 결과를 내기까지의 과정(단결력, 의사소통 등)은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묘한 것들입니다. 팀이 단결을 잘 하고 서로 의견을 자유롭게 소통했어도 '당신 팀의 성과는 별로 높지 않습니다'란 평가를 받으면, '우리 팀의 단결력과 의사소통은 그다지 좋지 않구나'라고 지레 짐작하는 것이죠.
팀을 평가할 때뿐만 아니라, 개인을 평가할 때도 이런 현상이 발생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다 느끼고 있는 것이겠죠. 누군가 높은 매출을 달성하거나 중요한 계약을 여러 개 따내면 그 사람의 평소 역량을 ㄱ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상당히 큽니다. 역량(과정)을 업적(결과)과 따로 떼어 평가해야 하는데도, 업적을 보고 역량을 평가하는 우를 범하죠.
평소에 그 사람의 역량을 관찰하려면 사실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야 합니다. 행동이나 말, 다른 사람과의 관계 등을 면밀히 살펴서 중요한 포인트를 기록하고 관리해야 하죠. 하지만 그게 귀찮고 성가신 탓에 연말에 가서야 역량(과정)을 평가합니다. 그때 업적(결과)도 함께 평가하는데, 그 때문에 역량과 업적이 '짬뽕'이 되어 과정과 결과를 분리해서 평가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죠.
역량(과정)을 최대한 옳게 평가하려면 1년 내내 평가시스템을 오픈해 놓고 관리자로 하여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평가를 진행하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1년에 두 번(중간평가, 연말평가)만 평가시스템을 오픈하면 결과가 보통 수치로 결산되어 나오는 업적(결과)에 의해 희석이 되거나 왜곡될 소지가 많습니다. 역량평가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으려면, 그리고 그 평가를 통해 개인의 역량을 옳게 평가해서 계발시켜 주려면, 과정과 결과가 서로 섞이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결과에 대한 평가가 과정에 대한 평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평가의 왜곡을 상당 부분 줄일 수는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보통 결과보다는 과정이 좋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이 힘을 얻으려면, 결과가 어떻든 간에 과정을 옳게 평가해 주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평가에 있어서도 과정 평가와 결과 평가의 중용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그저 또 하나의 클리셰에 지나지 않습니다.
(*참고논문 : Attribution of the "Causes" of Performance :A General Alternative Interpretation of Cross-Sectional Research on Organizati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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