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차이가 시위를 확산시킨다   

2011. 7. 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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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특정 장소에 모여 사는 100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정부의 어떤 시책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를 상대로 시위를 벌이려는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헌데 이 사람들은 시위에 참여하느냐 마느냐를 '다른 사람은 얼마나 시위에 참여하는가'를 보고 결정합니다. 정부 시책에 대한 불만도 시위에 참가하게 만드는 동력이지만 다른 사람의 시위 참여 여부가 그들에겐 또 하나의 변수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이 고작 서너 명 밖에 안 되면 경찰에게 표적이 되어 바로 연행될 위험이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시위에 가담하면 그만큼 체포되거나 물리적인 위협을 당할 가능성이 적어지니까 말입니다. 괜히 나섰다가 총대 메는 건 아닌지, 주저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성향이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이들이 시위에 참여하든지 말든지 제일 먼저 앞장 서서 나갑니다. 그만큼 사회에 불만이 크기 때문일 수도 있고 성격이 원래 다혈질인 까닭일지도 모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을 제외한 99명의 사람이 시위에 가담할 때야 비로소 시위에 참여하기로 합니다. '다른 사람이 시위에 얼마나 참여하느냐'라는 '문턱값(Threshold)'가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의 사람들의 문턱값은 대개 그 사이에 있죠.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란 사회학자는 이렇게 시위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는 상황을 아주 단순화시켜서 100명의 사람들이 0부터 99까지의 문턱값을 각각 갖는다고 가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은 문턱값이 0, 그 다음 사람은 문턱값이 1, 세 번째 사람은 문턱값이 2라고 차례로 가정하고, 가장 보수적인 100번째 사람의 문턱값은 99라고 설정한 것이죠. 만약 문턱값이 0인 사람이 시위에 가담하면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문턱값이 0부터 99까지 고루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한 명씩 시위에 가담하다가 결국에는 100명의 사람들이 모두 시위에 나서게 될 겁니다.

이번엔 상황을 조금만 변형해 볼까요? 예를 들어 문턱값이 3인 사람이 존재하지 않고 대신에 문턱값이 4인 사람이 두 명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나머지 사람들은 앞의 상황과 같은 문턱값 분포를 갖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문턱값이 0, 1, 2 인 사람이 시위에 가담하지만 문턱값이 3인 사람이 없기 때문에 문턱값이 4인 사람들을 '자극'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100명 모두 시위에 가담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나거나 쉽게 진압되고 말겠죠. 문턱값이 3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주 작은 차이 때문에 시위의 양상이 아주 달라지는 겁니다.

만일 동일한 이슈에 대해서 어떤 집단은 크게 반발하여 급기야 폭력적인 성향을 보여주고, 반면에 비슷한 다른 집단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반발을 보였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필시 전자의 집단을 구성하는 개개인들이 이슈에 대해 더 분노했거나 더 폭력적인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두 집단 사이에 무언가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한다고 여기겠죠. 그래서 전자의 집단을 소위 '문제 집단'이라고 규정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라노베터의 '사고실험'에 의하면 두 집단 사이의 차이는 아주 미미합니다. 문턱값이 3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작은 차이가 시위를 발전시키거나 흐지부지되게 만드는 요인이니까 말입니다. 물론 그라노베터가 설정한 상황은 아주 단순하기 때문에 실제 시위가 벌어지는 원인과 시위의 양상을 완벽하게 표현하지는 못합니다. 사람들의 문턱값이 중복되지 않고 고루 퍼져 있다고 가정한 것도 현실과 다르죠. 그래서 그라노베터의 실험은 여러 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죠.

그러나 그의 사고실험은 개인의 성향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환경 조건 등에서 발생하는 아주 작은 차이가 사건의 양상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진작에 나온 테블릿 PC가 이제야 확산되는 현상, 튀니지에서 촉발된 민주화 열풍이 이집트와 리비아 등으로 번진 재스민 혁명 등이 가장 단적인 예입니다.

또한 그라노베터의 사고실험은 어떤 사건이 발생할 때 뭔가 대단하고 심오한 이유를 말하는 것이 의미 없는 말장난에 불과할지도 모름을 시사합니다. 어떤 노래가 갑작스레 유행을 타서 음원판매 1위를 달성하면 그 노래가 1위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음악평론가들이 갖다 붙이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평론가들이 제시하는 논리는 "그 노래가 1위를 차지한 이유는 1위를 차지할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노래가 1위를 차지한 이유는 사람들이 그 노래를 원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노래를 원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바로 그 노래가 1위가 됐기 때문이다"라는 식의 순환논리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라노베터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겁니다.

마케팅이나 조직의 변화관리에 힘쓰는 기업들은 미미한 차이가 큰 격차로 확산된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사후 약방문' 격인 판단은 의미가 없거나 상황을 오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두어야 하겠습니다.  

(*참고논문 : Threshold Models of Collective Behavi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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