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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15년까지 2조 2천억 원을 투입하여 소위 '스마트 교육'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정책이 기사화됐습니다. 학생들과 교원들에게 갤럭시 탭이나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 PC를 지급하고 종이 교과서를 디지털 교과서로 전면 전환하겠다는 내용이 스마트 교육의 주된 내용이더군요. 정부는 학생들이 스마트 기기를 통해서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컨텐츠를 검색하며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웁니다. 일석이조로 사교육비까지 줄일 수 있으니 2조 2천억 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교과부가 생각하는 대로 정말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교육이 학생들과 교원들에게 스마트한 교육을 가능하게 할까요? 인터넷을 통해서 학생들의 문제해결력과 의사소통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요? 과연 스마트 교육은 스마트할까요?
얼핑 주(Erping Zhu)라는 학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PC로 하나의 글을 읽으라고 지시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모두 동일한 글이 주어졌지만 어떤 학생들은 글에 링크(URL)가 많은 글을, 어떤 학생들은 링크가 없거나 몇 개 안 되는 글을 읽어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얼핑 주는 학생들에게 읽은 내용을 요약하도록 했고 이해력을 평가하기 위한 객관식 문제를 냈습니다. 그랬더니 링크의 개수가 많은 글을 읽을수록 이해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링크가 '인지 과부하'를 일으킴으로써 글읽기에 몰입하는 데 필요한 집중력을 분산시킨다는 증거로 볼 수 있죠.
이런 실험도 있습니다. 스티븐 록웰(Steven C. Rockwell)과 로이 싱글턴(Loy A. Singleton)은 피실험자 100명에게 웹브라우저를 통해 어떤 발표문을 읽도록 했습니다. 피실험자들은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한 그룹은 순전히 텍스트로만 이뤄진 글을 읽었고, 어떤 그룹은 텍스트와 함께 동영상과 같은 시청각 자료가 포함된 글을 읽었습니다. 그들은 피실험자들에게 10개의 문제를 풀도록 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요?
순전히 텍스트로 이뤄진 글을 본 사람들은 평균 7.04개의 문제를 맞혔습니다. 반면에 멀티미디어 자료가 포함된 글을 읽은 사람들은 5.98개(약 6개)의 정답을 말했습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이 정도의 차이는 유의미한 수준입니다. 설문조사를 해보니 차이가 더욱 명확했습니다. 텍스트만으로 된 글을 읽은 사람들은 내용이 흥미롭고 이해하기 쉬었다고 답했고, 멀티미디어 자료를 읽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라고 대답한 빈도가 훨씬 높았으니 말입니다. 이 실험 역시 멀티미디어 자료가 글의 내용에 몰입하지 못하게 방해한다는 증거를 보여 줍니다.
요즘에 CNN뉴스나 YTN뉴스를 보면 화면에 이것저것 여러 가지 정보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앵커가 전하는 뉴스가 화면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지만, 화면 하단에는 '오늘의 주요뉴스', '주가 현황', '지역별 날씨' 등의 자막이 왼쪽으로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로리 베르겐(Lori Bergen) 등의 심리학자들은 한 그룹의 피실험자들에게 전형적인 CNN뉴스 프로그램을 보여주었고, 다른 그룹에게는 동일한 프로그램을 보여주되 화면 하단의 자막방송과 그래픽을 없앴습니다. 두 그룹 중 어떤 그룹의 사람들이 뉴스 내용을 더 많이 기억했을까요? 당연히 자막과 그래픽이 제외된 뉴스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 메시지를 한꺼번에 전달하면 '인지 과부하'와 '집중력 저하'가 야기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명백한 증거입니다.
서두에 던졌던 질문을 다시 던져볼까요?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교육이 정말 학생들을 스마트하게 만들까요? 스마트 교육이 학생들의 문제해결력과 의사소통능력을 향상할 수 있을까요? 다양한 형태의 멀티미디어 자료와 이곳저곳으로 넘나들 수 있는 수많은 하이퍼링크를 학생들에게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정책입안자의 주장에 강한 의문이 듭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실험들은 멀티미디어, 링크, 많은 정보에 노출될수록 이해력과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사실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문제해결력과 의사소통력과 무관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그러나 학습의 시작과 기초는 이해력에서 출발하고 기억력에 의해 강화됩니다. 또한 이해력과 기억력은 집중력이라는 엔진 없이는 불가능하죠. 헬레네 헴브루크(Helene Hembrooke)와 게리 게이(Geri Gay)는 실험을 통해 인터넷을 활용한 교육이 문제가 있음을 보였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관련된 정보를 인터넷으로 서핑하게 한 그룹과 강의만 듣게 한 그룹 사이에서 기억력과 이해력의 큰 차이가 발견된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인터넷을 사용한 학생들의 점수가 형편없게 나왔죠.
인터넷, 멀티미디어, 스마트 기기 등은 인간으로 하여금 많은 주제를 폭넓게 탐구하도록 만드는 좋은 효과를 주지만, 깊게 배우려는 능력과 의지를 갉아먹는 심각한 부작용을 함께 낳습니다. 사람들이 정보통신 기기를 통해 예전보다 많은 글을 읽지만, 많은 이들이 그 글들을 깊게 읽지 않고 '대충 훑어보는' 습관에 이미 젖어 있으니 말입니다.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스마트 기기를 통해 이득을 보는 측은 학생이나 교원들이 아니라 스마트 기기를 제조하는 업체일지 모릅니다. 교육의 질을 높이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스마트 기기와 같은 수단에 기대는 일은 근시안적인 조치입니다. 이미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정보와 지식에 노출되어 있고 알게 모르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삽니다. 적어도 학교에서만큼은 하이퍼링크와 멀티미디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까요?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4~6시간 만큼은 깊게 읽고 깊게 사고할 기회를 주면 안되는 걸까요?
정부가 제시한 스마트 교육은 그리 스마트해보이지는 않습니다. 스마트 교육이 진짜로 스마트해지려면 스마트 기기를 버리고 교육의 본질을 놓고 머리를 맞대야 하지 않을까요?
(*참고도서 :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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