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이 책 <지금, 경계선에서>를 서점에서 발견하고 몇 페이지를 읽어보던 중에 뒷통수를 한 대 얻어 맞는 듯한 충격이 무엇인지 새삼 실감했다. 책 두께가 두꺼운 편이지만 2~3일만에 독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명의 몰락을 나타내는 몇 가지 징후를 설명하면서 인간의 진화가 문명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데에서 원인을 찾는 저자의 시각이 나에게는 매우 신선했다. 컨설턴트로 일하는 나에게 기업이란 조직의 흥망을 새롭고 근본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내 삶에 들어온 몇 안 되는 책으로 손꼽을 만하다.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로 나의 컨설턴트 경력을 나눌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에는 표면적인 현상과 증상 위주로 기업을 진단하고 조언했다면, 이 책을 읽은 후에는 경영진과 구성원의 잠재된 사고방식을 들여다 보는 쪽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찬란한 꽃을 피웠던 마야 문명은 왜 갑자기 멸망했을까?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며 위세를 떨치던 로마는 왜 분열되었을까? 거대 석상 ‘모아이'를 만들 만큼 높은 문화 수준을 자랑한 이스터 섬의 사람들은 왜 서로 잡아먹을 지경까지 이르렀고 끝내 붕괴되고 말았을까? 이들 문명이 몰락한 원인들에 대해 많은 고고학자와 인류학자들은 오랫동안 계속된 가뭄이 원인이다, 이방인들의 침입을 막지 못해서다, 자원을 무분별하게 고갈시켰기 때문이다 등 여러 가설을 내놓으며 논쟁을 벌인다. 그들의 의견은 각기 일리가 있지만, 애석하게도 문명의 몰락을 아우르는 공통적인 근본원인을 잡아내지 못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레베카 코스타
이 책의 저자인 레베카 코스타가 제시한 근본원인 2가지는 문명 몰락의 공통점을 정확히 지적할 뿐만 아니라 내가 컨설팅을 하며 목격했던 ‘망하는 조직’의 실체를 놀랍도록 선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코스타는 ‘정체 상태’와 ‘믿음이 사실을 대신하는 상태’가 바로 문명 몰락의 2가지 징후라고 말한다.
문명은 필연적으로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를 직면하게 되고 이를 해결하느라 숱한 곤경을 겪는다. 정체 상태란 바로 복잡하고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마야인들은 수천 년간 고질적인 물 부족 문제에 시달렸다. 이 말은 그들에게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수천 년이나 있었음을 뜻했지만, 마야인들은 저수지를 조성하거나 수로를 정비하는 것과 같은 오래전의 방법을 해결책으로 고집했다. 저수지와 수로를 만들어 봤자 비가 오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을까? 그들은 주민을 물이 풍부한 곳으로 이주시킨다든지, 새로운 수원(水源)을 찾는다든지 하는 획기적 해결책을 시도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문명이 정체 상태에 빠져 오랜 기간 문제 해결에 실패하면 ‘믿음이 사실을 대신하는 현상’이 심각해진다. 코스타는 이것을 문명 몰락의 두 번째 징후라고 진단한다. 마야 유적지에서 신체가 절단된 여성과 어린이의 유해가 대거 발굴되었는데, 이는 마야인들이 문명 말기에 이르러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주술 행위에 집착했음을 의미한다. 문제를 해결할 실질적이고 논리적이며 과학적인 해법을 멀리하고 격노한 신을 위로하는 것을 유일한 해법으로 인식했던 탓이다.
그렇다면 문명 몰락의 2가지 징후는 왜 발생하는 걸까? 코스타는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언급하면서 진화학적으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바로 인간의 진화 속도가 문명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매우 더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문명을 이루며 살게 된 것은 고작 1만 년 전부터인데, 1만 년이란 시간은 두뇌가 진화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발생하는 문제의 복잡성 역시 심화되고 결국 인간의 두뇌로 풀 수 있는 지점을 넘어서는 '인식의 한계점'에 도달하게 된다는 게 코스타의 주장이다. 인식의 한계점에 이르면 기존에 계속해 왔던 미봉책을 적용하다가 다음 세대에 책임을 전가해 버리는 지경에 이른다. 이것이 문명이 붕괴하는 진정한 원인이라고 코스타는 경고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체 상태’와 ‘믿음이 사실을 대신하는 상태’는 크고 작은 기업의 흥망을 가늠하는 데 더없이 좋은 열쇠다.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서 한때는 별로 심각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여기저기서 불거지고 복잡성을 더해간다. 매출이 점점 떨어진다든지, 시장에서 지배력을 상실해 간다든지, 직원들의 애사심이 희미해져 간다든지 등의 문제 등은 기업의 생존을 위태롭게 만들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가격을 인하하거나, 틈새상품을 출시하거나, 직원들의 성과평가를 강화하거나, 연봉을 인상해 보거나 하는 방법을 동원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완화책이거나 미봉책에 불과하다. 기존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거나, 컨셉트가 완전히 다른 제품을 개발하는 전면적이고 혁신적인 해결책이 필요하지만, 한곳에 모여사는 걸 당연시했던 마야인들이 인구를 분산시키는 해결책을 생각하지 않았듯이 웬만해선 그런 해결책을 고안하지 못한다. 설령 누군가가 혁신책을 내놨다 해도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는 게 다반사다. 그저 ‘해보지 않았다’란 이유를 대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행한다. 그러고는 과거에도 여러 번 해왔던, 하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던 ‘열심히 하자’식의 방안을 해결책이랍시고 제시할 뿐이다.
나는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만을 추억하거나, 환경이 변했음에도 과거에 ‘먹혔던’ 해결책을 고집하거나, 늘 동일한 문제가 테이블에 올라오지만 매번 동일한 해결책을 반복하는 기업을 만나면, 지금은 아무리 잘나간다 하더라도 머지않아 위험해질 거라고 경고하곤 했다. 대부분은 내게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거나 ‘뭘 모르는 소리’라며 가볍게 무시했다. 그 중 몇몇 기업은 타기업에 인수되거나 알짜 사업까지 매각해야 하는 생존 위기를 직면했다.
모 기업은 소비자 트렌드의 변화로 오랜 기간 판매 부진에 시달렸는데, 그들이 위기 돌파를 위해 제시한 전략을 과연 전략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트렌드를 선도할 제품 컨셉트 도입, 사업 포트폴리오 혁신 등의 해결책을 충분히 논의할 수 있었으나 “전 직원은 앞으로 1시간 일찍 출근하고 1시간 늦게 퇴근한다!”는 해마다 반복되는 전략을 이길 도리는 없었다. 미봉책도 이런 미봉책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정체 상태’에 빠졌다는 징후! 왜 이를 전략으로 수립했는가를 물어보는 내게 그들은 이렇게 답했다. “직원들에게 위기감과 결기를 심어주면 돌파하지 못할 리스크는 없다.” 4차 산업 혁명을 운운하는 시대에 ‘하면 된다’식의 헝그리 정신을 끌어오는 촌스러움은 ‘믿음이 사실을 대신한다’는 적확한 징후! 이 회사는 현재 수년 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모 회사는 2005년에 외국기업을 주인으로 맞이하며 기업을 회생시킬 목적으로 ‘공격경영 전략’을 기치로 내세웠다. 하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새로운 성장동력 없이 영업망의 확충으로만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방안이 주를 이뤘다. 매일 되풀이되었던 영업강화 전략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미친 짓이란 매번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시장과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시한다는 전략을 무시하고 단순히 영업을 강화해 많이 파는 것을 공격경영이라 이름 붙이다니,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회사의 공격경영은 그저 ‘더 많은 인력과 비용을 들여서 더 열심히 팔아보자’라는 의미로 해석될 뿐이었다. 결국 이 회사는 몇 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외국기업에게 매각되고 말았다.
어찌 기업만 그럴까? 나를 찾아와 “저도 책을 쓰고 싶습니다.”며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때마다 나는 “하루에 1페이지씩이라도 써보세요.”라고 권하는데, 도깨비 방망이 같은 비결을 기대했는지 몇몇은 고개를 갸웃하며 “일이 바빠서 그건 좀 쉽지 않네요.”라는 반응을 보인다. 글과 책 쓰는 법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고 글쓰기 강좌도 여러 번 수강했다며 자랑하더니 이게 웬말인가? 나 말고도 많은 이에게 조언을 구하는 모양이었는데, 그렇게 열심히 읽고 강의 듣고 찾아 다니며 조언 듣는다고 책이 절로 써질까? 편리한 해결책을 반복하고 ‘공부하면 써지겠지’라는 믿음을 가진 그들과의 만남은 빨리 파하는 게 상책이었다.
코스타는 문명이 정체 상태를 깨고 믿음이 사실을 대신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기존의 규칙을 완전히 허무는 아이디어를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에서 주인공 에버그네일은 의사, 항공기 조종사, 대학교수, 검사 등을 사칭하고 다니며 국제적으로 사기 행각을 벌이다가 결국 체포되어 징역 12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4년만 복역하고 풀려났다. 왜 그랬을까? 숱한 사기 범죄를 해결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던 FBI에게 “범죄자로 범죄자를 잡으면 어떨까?”란 통찰이 생겨났던 것이다. 에버그네일은 이후 35년 동안 자신의 뛰어난 사기 수법을 대입해 FBI가 사기범보다 한발 앞서 갈 수 있도록 도왔고 FBI 아카데미에서 요원을 가르치기까지 했다. 다수의 사기 범죄자를 체포하고 사기 행위를 미리 발각할 수 있었던 데에는 골칫거리를 ‘자산’으로 탈바꿈시킨 FBI의 ‘틀을 깬’ 통찰이 있었다.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라고 말했다. 나는 문명과 조직의 흥망에 있어서는 이 말이 이렇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흥하는 문명(조직)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흥하고, 망하는 문명(조직) 역시 모두 비슷한 이유로 망한다.” 당신의 조직 혹은 당신 자신이 ‘정체 상태’와 ‘믿음이 사실을 대신하는 상태’에 빠져 있다면 이 책 <지금, 경계선에서>을 통해 위기 탈출의 실마리를 잡기 바란다.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경계선에 당신이 지금 서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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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일상화되고 SNS와 유튜브가 우리 삶에 떼려야뗄수없는 매체가 되었기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줄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해마다 도서판매량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어 머지않아 출판시장 자체가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염려하는 이들이 많다. ‘단군 이래 최악의 불황’이라는 출판인들의 입버릇이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분명 전통적인 의미의 독서 인구는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독서’ 자체는 줄기는커녕 오히려 크게 늘었다! 독서라는 행위를 어디까지 포괄하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나는 블로그 글과 SNS를 읽고 웹사이트의 기사를 검색하고 정보성 유튜브를 찾아 시청하는 행위 역시 독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매일 읽고 소화하는 글의 양을 책과 비교해 따져보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수십 페이지 분량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일주일에 1~2 권 정도 읽는 셈이니, 이 정도면 다독가 수준은 아니더라도 독서애호가 수준은 된다.
그러니 여러분이 SNS나 웹사이트를 보면서 “아, 책 읽어야 하는데…”라고 지나치게 자책할 필요는 없다. 여러분은 이미 훌륭한 독서가다. 이렇게 서두부터 여러분을 ‘띄워주는’ 이유는 인터넷과 SNS 등 정보시대의 총아를 활용하는 데 지금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책 속에만 길이 있지 않다. 사이버 세계에는 보다 빠르고 보다 넓고 보다 신선한 정보가 가득하다.
책은 정보와 지식의 ‘밀도’가 뛰어나고 신뢰성과 학술적 가치 역시 높다는 장점이 있다. 책은 저자가 몇 년간 분투하며 응집시킨 지식의 결정체이기에(물론 훌륭한 책일 경우) 1~2만원의 책값으로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가성비 높은 ‘제품’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단점 역시 만만치 않다. 정보가 생성되어 독자에게 닿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리고 도중에 내용에 변화가 생겨도 업데이트를 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개정판을 내는 방법이 있지만 알다시피 개정판을 내주는 출판사는 드물뿐만 아니라 개정판을 기대한 독자 역시 드물다(책 한 권 내는 데 최소 1,500만원 가량이 소요된다. 손익분기점을 넘으려면 출판사가 몇 권 팔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라. 출판사의 마진은 20~30% 가량이다).
반면, 온라인 매체에 올라온 글들을 읽는 데 짧게는 몇 초, 길어봤자 몇 분 정도라서 읽기의 지속성 측면에서는 과연 이걸 독서라 말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든다. 정보와 지식이 단편적이고 미시적이라서 ‘숲을 보지 못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그래서 책을 멀리하고 대신 온라인 매체에만 의존하여 지식을 습득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디서 본 건 많아서 눈은 높지만’ 하나의 체계로 지식을 결정화시키는 능력이 약하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그러나 장점은 이런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정보의 습득량과 다양성, 즉시성 측면으로 볼 때는 책(종이책과 이-북)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월등할 뿐만 아니라 업데이트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검색이 편하다는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자료 수집의 원천 중 하나로 온라인 매체를 적극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문제는 ‘어떻게 활용하는가?’일 것이다. 이제는 입 속의 혀처럼 아무런 거리낌없이 인터넷을 활용한다지만, 보다 전략적으로 온라인 매체를 활용해야 한다. 그저 SNS를 접속해 타임라인을 살피고 블로그 글과 온라인 기사를 보는 행위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온라인에서 정보를 얻고 자료를 수집하는 방법을 여기에 소개할 테니 취사선택하기 바란다. 단, 여기서 말하는 방법은 책을 쓰겠다고 결심한 다음 책 저술에 필요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각 잡고’ 수집하는 행위가 아니라, 다람쥐가 먹이를 모아 땅에 묻어 두듯이 언젠가 책에 쓰일 자료를 평소에 일상적으로 수집해 두는 방법이라는 점을 인지하기 바란다.
첫째, 매일 접속할 웹사이트 목록을 구성하라. 여러분의 관심 분야를 다루는 웹사이트가 적어도 몇 개는 될 것이다. 여러분이 해당 관심 분야에 어느 정도 발을 담구고 있다면 어떤 사이트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테니(그간 검색도 많이 했을 테니) 웹사이트 목록 구성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특정 분야를 다루는 국내 사이트가 별로 없거나 빈약한 경우도 분명 있다. 그렇다면 해외 사이트, 즉 영어로 된 해외 사이트(주로 미국 웹사이트)로 눈을 돌려보라. 고맙게도 수많은 사이트가 여러분의 레이더 안에 걸릴 것이다.
내가 이렇게 조언하면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저는 영어를 잘 읽지 못해서…” 평소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영어로 된 글을 읽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 여담이지만, 내가 페이스북에 미국 사이트의 기사를 링크해서 올리면 “핵심 내용을 번역 좀 해 주세요.”라는 장난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댓글이 종종 달리곤 한다. 분명 영어를 잘함직한 사람이 그런 댓글을 남기는 걸로 봐서 아무래도 영어 기사를 읽는다는 ‘인지적 부담’이 꽤 큰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영어라는 장벽을 뛰어넘어 해외 사이트로 반드시 확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남들과 다른 ‘자료 수집의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과 동일한 주제로 책을 내려는 사람이 우리말로 된 책(번역서 포함)과 웹사이트에 의존할 때, 그래서 어디선가 들어봄직했을 내용으로 계속 ‘울궈먹고’ 있을 때, 여러분이 해외 사이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수집된 자료의 양과 질 측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으니 말이다. 차별화란 무엇인가? 남들과 ‘다른 물에서 노는 것’ 아닌가? 여러분의 책이 차별성을 갖기 위해서는 자료 수집의 원천부터 차별적이어야 한다.
나라고 영어 기사를 읽는 게 쉬운 건 아니다. 똑같은 양의 한국어 기사를 더 편한 마음으로 읽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서(20년 전) 꽤나 자연스럽게 영어 문장이 읽히는 까닭은 매일 조금이라도 영어 기사를 읽으며 꾸준히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하루에 영어 기사 하나(대략 A4용지로 2~4페이지 분량)를 3개월간 꾸준히 읽겠다는 목표를 실천해 보라. 빨리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렇게 3개월을 연습하면 기사 읽는 속도가 대폭 빨라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20년 전에 썼던 방법이니 참고하기 바란다.
둘째, RSS를 적극 활용하라. 웹사이트 목록을 어느 정도 구성했다면 각 웹사이트에서 RSS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살펴보라. RSS는 웹사이트에 접속하지 않더라도 새로 올라오는 글을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라서 편리하다. 이런 각 웹사이트의 RSS 피드를 모아서 서비스하는 사이트가 몇 군데 있는데, 나는 feedly.com 을 애용한다. feedly의 사용법은 해당 사이트에서 자세하게 설명하니 여기에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아래의 그림은 내가 feedly에 등록해서 받아보는 피드 중 일부를 보여준다.
feedly가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여러분이 미처 찾아내지 못한 해외 웹사이트(언어별)를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관심 분야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해당되는 웹사이트(그리고 RSS를 제공하는 웹사이트)를 찾아볼 수 있다. ‘고양이’가 관심 분야라면 ‘#cat’을 검색해 보라. 아래 그림과 같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이렇게 feedly에 웹사이트를 등록해 두면 매일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글을 ‘한곳에서 한꺼번에’ 읽을 수 있다. 나의 경우, 하루에 200~300개 정도의 글이 새로 올라와서 자칫 게을러지면 며칠 후에 1,000개 이상의 글이 쌓이곤 한다.
그러면 “그걸 진짜로 다 읽습니까?”라고 물어보고 싶을 것이다. 나는 “아뇨.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답한다. 그걸 다 읽으려면 아무일도 못할 것이다. 수백 개의 글 중에는 흥미로운 것도 있고 내 관심분야와 그다지 상관없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요즘 미국 대선 이슈가 한창이라서 이와 관련된 기사(“대선이 끝난 후에 직원들을 실무에 몰입하게 하는 방법”과 같은)들이 종종 나오는데, 일시적일 뿐만 아니라 나의 흥미를 끌지 못하기 때문에 글 제목만 보고 그냥 넘겨버린다. 글의 제목을 보고 내 관심 분야와 일치하거나 읽고 싶어지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면 클릭해서 본문을 읽곤 한다.
이렇게 매일 나에게 ‘간택’된 글은 10~20개 가량이 된다. 이 말은 내가 하루에 읽는 기사 수가 그 정도 된다는 뜻이다. 기사 하나를 읽는 데 평균 3~5분 정도 소요되니까(어려운 글은 더 오래 걸린다), 하루에 적어도 1시간 정도를 영어 기사 읽기에 소요한다. 배정한다고 해서 특정 시간을 정해 놓은 것은 아니고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그때마다 접속해서 읽는다. 언제 읽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매일 이 ‘루틴’을 수행하느냐가 중요하다.
여기에 한 가지 팁이 있다. 만약 하루에 수백 개의 새 글이 올라오면, 글제목들만 읽는 것도 ‘영어라서’ 버겁게 느껴질 것이다. 이럴 경우, 글제목들이 올라온 브라우저 화면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기능을 써보라. ‘구글 번역기’를 돌린 결과이기 때문에 번역된 글제목들이 어색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해당 글이 어떤 주제를 말하려고 하는지는 비교적 정확히 유추할 수는 있다. 이렇게 한국어로 번역된 글제목들을 죽 살피면 어떤 글을 읽어야 할지 금방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 역시 내가 애용하는 팁인데, 시간 절약에 아주 효과적이다. 물론 본문을 읽을 때는 번역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발번역’된 문장을 읽는 게 더 고통스러울 것이고 글 내용을 오해하기 쉬울 테니 말이다.
[세 줄 요약] 웹사이트는 일상적인 자료 수집 수단으로 매우 훌륭한 수단이다. 국내 사이트에 연연말고 해외 사이트(영어로 된)로 눈을 확장하라 RSS를 적극 활용하여 매일 일정량의 기사를 읽는 습관을 가져라
책을 쓰겠다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책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명성을 얻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자신의 인생과 경험을 정리한다는 차원일 수도 있다. 혹은 누가 책을 써서 ‘작가’라는 칭호를 얻는 걸 보고 부러운 마음에 책을 써보자 결심했을 수도 있다. 나는 ‘책은 이런 목적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할 마음은 전혀 없다. 인세로 몇 억 벌어보겠다는 야심도 훌륭한 목적이다. 이름 석 자가 담긴 책을 죽기 전까지 한 권쯤 가지고 싶다는 욕망도 힘껏 박수쳐 줄 수 있는 목적이다.
누군가를 위해하고 근거없이 비방할 목적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반드시 인류의 행복과 공영을 위해 책을 써야하는 것은 아니니 걱정할 것 없다. 책을 써야겠다는 동기 자체가 생긴 것이 중요하지 목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책을 쓰는 목적이 뭔가 원대한 이상과 이어져 있을수록 책은 잘 써지지 않을 것이니 조심하라. 글을 쓸라치면 들이닥치는 자기검열의 잣대가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게 막을 테니 말이다. 책 하나 쓰는 데 지나친 ‘엄숙주의’를 스스로에게 (그리고 남에게도) 강요하지 마라.
그렇다면 어떤 주제로 책을 써야 할까? 이런 질문을 나에게 하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그걸 저에게 왜 묻나요?’라고 의아하게 여긴다. 그건 내가 답해줄 질문이 아니거나와 답을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그간 살아오면서 느낀 소소한 감상이어도 좋고, 몇 년 동안 개인적으로 연구해 온 주제여도 좋다. 아니면 아직 잘 알지 못하지만 책을 써가면서 동시에 지식을 쌓고 싶은 주제여도 상관없다. 직장에서 특정 직무를 오랫동안 수행하면서 얻은 실무적인 지식과 노하우를 체계화하겠다는 주제여도 좋다.
“어떤 주제로 책을 써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은 “책 한 권 분량이 될 만한 주제라고 생각되나요? 그러면 책으로 쓰세요.”이다. 알다시피 책은 보통 짧게는 200여 페이지에서 길게는 5~6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가진다. 책을 어떻게 편집하냐에 따라 페이지가 팍팍하게 혹은 ‘널널하게’ 구성될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의 책 두께가 보장되지 않으면 외양상 곤란하다. 평소에 자신의 관심분야에 속한 여러 책들을 접했을 터이니 ‘이 분야의 책들은 대략 이 정도의 분량이구나’라고 감을 잡았을 것이다. 통상적인 분량의 책으로 담아낼 수 있기만 한다면, 무슨 주제라도 좋다. 만약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몇 페이지면 끝날 주제라면 책으로 펴내기보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올리는 편이 낫다.
이렇게 여러분이 각자 책을 쓰는 목적과 주제가 나름대로 결정됐다는 전제에서 앞으로의 책쓰기 강좌를 진행하겠다.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후에 다가오는 여러 가지 두려움들 중 가장 압박이 크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펴내면 잘 팔릴까일까? 아니다. 책을 잘 쓰면 될 일이고 원고를 다 쓰고 나서 잘 팔릴 방법을 생각하면 된다. 책을 처음 쓰는 입장이라면 김칫국을 너무 빨리 마셨다.
그렇다면, 책의 목차를 어떻게 구성할까일까? 글쎄, 나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책 전체의 논리 구조를 수립하고 그 밑에 글을 배치하는 일은 분명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라서 대다수의 ‘책쓰기 관련 책’에서 무엇보다 강조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나도 처음 책을 쓸 때는 그런 책에서 제시하는 지침을 충실히 따라보려고 애를 썼다. 먼저 책의 전체 주제를 맨 꼭대기에 두고 그 밑에 파트를 배치하고 파트 밑에는 챕터로 세분하고 챕터 밑에는 소주제를 나열하는 방식, 소위 ‘피라미드 구조’로 책의 전체 목차를 구성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피라미드 구조는 논리적인 보고서를 쓰기 위해 무엇보다 훌륭한 가이드인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해보니 그 구조를 만들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아무리 목차를 만들고 수정해도 엉성해 보이고 중간중간에 구멍이 숭숭 뚫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원대한 주제가 지붕으로 올라가 있는데 가느다란 기둥 몇 개로 겨우 받치고 있는 듯 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며칠 동안 끙끙거린 후에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자료 수집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책으로 쓰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여러분이 수년간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책을 쓰려면 그 경험과 노하우 뿐만 아니라 각종 자료(논문, 기사, 사례 등)를 반드시 수집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와 논리를 각종 자료로 백업해야 할 뿐만 아니라, 본인의 지식, 경험, 노하우만으로는 책의 주제를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 세상에는 여러분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이미 여러분에 앞서 무언가를 미리 해놓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자료를 수집하다 보면 “아, 이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주장이군. 일리가 있어.’ 혹은 ‘이 자료는 내가 추가로 연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군. 목차에 추가해야겠어.’라고 깨닫게 된다. 이런 작은 깨달음들이 어느 정도 모여야 그때서야 피라미드 구조라는 집을 이렇게 설계하면 되겠네, 라는 눈을 가질 수 있다. 붓을 들기 전에 반드시 벼루에 먹을 갈듯이, 책쓰기 전에 자료 수집부터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자료 수집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란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자료 수집에 특별한 지름길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자료 수집처럼 묵묵하고 우직하게 진행해야 하는 일도 없다. 내가 사용하는 자료 수집 방법을 소개할 테니 참고하기 바란다. 먼저, 자료 수집의 채널에는 공식적인 것과 비공식적 것이 있다. ‘공식적인 채널’은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탐색하는 정보 채널을 말하는데, 나에게는 책과 경영 관련 사이트가 대표적인 것들이다. 우선, 공식적인 자료 수집 채널로서 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여러분이 어떤 주제로 책을 쓰겠다고 마음 먹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관련 책을 검색하는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문학 분야가 아니라면 분명 동일하거나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책들이 적어도 몇 권은 존재할 것이다.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책이라 해도 어떤 책은 여러분의 생각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쓰여졌고 또 어떤 책은 여러분의 논리와 완전히 반대쪽을 지향하기도 할 것이다. 무엇이든 개의치 말고 그 책들을 장바구니에 넣어라. 물론, 수십, 수백 권의 관련도서를 모두 구입하라는 소리는 아니다.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책을 엄선하기 바란다
나는 책을 쓰려면 그 주제와 관련된 책들을 적어도 10~20권 정도는 먼저 읽어 볼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여러분이 지향하는 논리를 강화하고 보강하는 데 이보다 손쉽고 시간이 적게 드는 방법은 없다. 그 책의 저자들은 여러분보다 책쓰기에 있어 ‘선배’들이다. 그들이 어떤 구조로 책을 구성했는지, 어디에서 사례를 구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장과 문단 배치를 어떻게 했는지를 참조하는 데 훌륭한 교재가 되어 준다. 또한, 책을 읽어 가다가 ‘어, 이건 좀 아닌데…’하며 논리상의 오류나 비약을 발견하고 ‘나라면 어떻게 이 논리적 오류를 극복할까?’라며 반면교사적인 공부를 할 수도 있다. 독서광이 돼라는 소리는 아니다. ‘자기 분야’ 선배들의 책을 제대로 정독한 적도 없으면서 책을 쓰겠다고 덤비는 것은 스파링 훈련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채 링에 오르는 얼치기 복싱선수와 마찬가지다.
이렇게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책들을 온라인으로 바로 주문하는 것도 좋지만, 사정이 된다면 오프라인 대형서점에 가서 그 책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웹페이지에 나온 소개글은 대단하게 되어 있지만 정작 몇 페이지 들춰보니 ‘하나마나 한’ 이야기만 나열된 책들이 좀 많은가? 이런 책이라면 구입하지는 말고 ‘아, 이렇게 책을 쓰면 안 되겠구나’라는 점을 파악하는 용도로만 사용하라. 책 구입비용뿐만 아니라 책 읽는 시간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책들은 책 말미에 참고문헌 목록이 충실하게 적혀 있는 것들이다. 참고문헌이 생략돼 있거나 대충 적힌 책들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저자 본인만의 생각과 지식, 사례만으로 글을 쓰지는 않았을 터인데 참고문헌이 생략돼 있거나 대충 적혀 있으면 독자에게 무언가를 기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거 그냥 상상으로 쓰거나 조작한 거 아닌가?’ 분명 타인의 지식을 참고하거나 인용했는데 그걸 밝히지 않는다는 것은 표절에 준하는 비윤리적인 행동이기에 비판 받아 마땅하다.
참고문헌 목록을 잘 갖춘 책을 내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출처를 내가 직접 찾아내 읽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출처가 논문이라면 구글에서 그 논문을 초록(abstract)를 읽어보고 “이거 괜찮네” 싶으면 논문 전체를 다운로드해서 읽곤 한다. 출처가 누군가의 책인 경우에는 아마존에 들어가 킨들 버전(이-북)으로 읽거나 직접 서점에서 구입하곤 한다. 참고문헌이 충실하게 적힌 책들은 이렇게 자료 수집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참고문헌 자료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나의 해석이 다를 수도 있음을 발견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본문만 읽지 말고 참고문헌을 하나씩 검색해서 읽는 습관을 갖기 바란다.
[ 세 줄 요약 ] 책쓰는 목적과 주제는 무엇이든 좋다. 책 목차를 쉽게 구성하려면 사전에 자료 수집이 필수다. 자료 수집의 공식적 채널인 ‘남이 쓴 책들’을 충분히 활용하라.
당연히 많은 직원들이 리더가 되기를 원할 거라 추측하겠지만, 놀랍게도 상당수의 직원들은 가능하다면 리더가 되고 싶지 않다, 팀장으로 승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요즘의 실태다. 요즘 젊은 직원들은 굳이 리더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속내를 그대로 내보인다. 승진을 성공 척도라 보지 않는 것이다.
서점에 리더십 관련 도서가 한가득 쌓여 있고, 여러 매체에서 다종다양한 리더십을 강조하며, 어릴 때부터 리더가 지녀야 할 소양을 학습하는 사회에서 왜 요즘 젊은 직원들은 딱히 승진을, 아니 정확히 말하면 리더 수행의 첫걸음이라 할 만한 ‘팀장 보임’을 예전만큼 갈구하고 반기지 않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리더의 역할이 조직의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지 이곳저곳에서 강조하다 보니 그것이 커다란 압박으로 느껴지기 때문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비전 제시, 전략적 문제 해결, 갈등 관리, 성과관리, 정확한 일처리, 의사소통 등 리더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리더가 갖춰야 할 역량 목록을 보면서 나는 “저걸 내가 다 잘해야 한다고? 신이 아니고서야 과연 가능하긴 해?”라는 생각이 솔직히 든다. 그리고 무언가 문제가 발생하면 리더의 역량 수준이 낮기 때문이라고 모든 책임을 리더들에게(특히 중간리더들에게) 돌리는 것도 원인이리라.
팀장의 어깨 위에 올려 놓으려는 책임은 많지, 문제만 생기면 팀장 수준이 낮아서 그렇다고 손가락질하지, 직원들은 자기네끼리 궁시렁거리며 ‘팀장 뒷담화’를 하지, 게다가 팀장이라고 해서 딱히 연봉이 많은 것도 아니지… 이러니 팀장이 됐다가는 호구가 되겠다 싶을 것이다. 팀장이 아직 못된 ‘과년한 팀원’이라 해도 명절날에 보는 친척이 걱정한답시고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 팀장도 안 되고 뭐했어?”라는 소리를 참아낼 수 있다면, 팀원 연봉으로도 충분히 재밌고 여유있게 살 수 있다면 “팀장 안 하고 말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는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조직의 성장과 개인의 성장을 위해 리더십은 무엇보다 필수적인데, 상당수의 직원들이 리더 역할을 거부한다면 어쩌겠는가?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능력 있는 직원’ 그러니까 리더 역할을 잘 수행할 만한 직원일수록 리더 역할을 주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첸 즈앙(Chen Zhang)과 동료들의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 결과를 거꾸로 생각하면 리더 역할을 자청하고 나서는 직원들은 대체적으로 그리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다는 것이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리더의 자리가 별로 능력은 뛰어나지 않으나 ‘정치적 수완’이 좋은 이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클 테니 말이다.
즈앙은 100명 이상의 직장인들을 인터뷰하여 리더 역할을 수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야기를 청취했다. 또한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400명의 MBA 학생들을 대상으로 현장 실험을 진행하여 각자가 리더십에 관련된 리스크를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다른 팀원들이 이번 학기에 수행하는 프로젝트에서 얼마나 리더십을 발휘하는지 등을 조사했다. 그리고 300명 이상의 관리자와 직원들에게 리더가 됐을 때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무엇인지, 동료들의 실제 리더십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물었다.
이런 일련의 조사 끝에 즈앙은 사람들이 리더의 자리를 거부하는 이유가 3가지라는 점을 규명했다. 첫 번째는 ‘대인적(interpersonal) 리스크’로서, 리더가 행하는 조치들이 직원들과의 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팀원일 때는 같이 밥을 먹었는데 팀장 되니까 자기네들끼리 놀려고 한다”는 말은 대인적 리스크를 그만큼 크게 인지한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이미지(image) 리스크’인데, ‘명색이 리더라면 이래야지’하며 사람들이 가진 이미지에 부합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잘 몰라도 겉으로는 모든 것을 아는 척을 해야 직원들이 무시를 못한다”는 말은 이미지 리스크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 번째는 ‘비난 받을(being blamed) 리스크’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무슨 문제만 터지면 팀장에게 책임을 물으니 ‘아무리 리더가 그런 자리라지만 내가 맡을 이유는 없지.’라며 거부하고 싶은 이유를 뜻한다.
즈앙이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이 3가지 리스크를 크게 느낄수록 프로젝트의 리더 역할에 기여하려는 의지가 적었고, 부하직원들로부터 제대로 리더십(비전 제시, 높은 기대수준 설정 등)을 발휘하지 못하는 관리자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동료들로부터도 리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재원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것은 능력이 어느 정도 되는 관리자 혹은 직원이라 해도 리더가 감수할 3가지 리스크를 우려한다면 주변 사람들(동료, 부하직원)로부터 좋은 리더라는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3가지 리스크는 당연한 두려움이고 어찌보면 건전한 걱정이지만, 정도가 심하면 조직에게나 개인에게나 모두 손실로 작용한다. 아무도 리더를 자청하지 않을 것이고, 설령 리더가 됐다 해도 좋은 리더라는 평을 받지 못해서 조직을 올바르게 장악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 3가지 리스크를 어느 정도 완화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리더의 자리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렵고 고된 자리는 아니라고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즈앙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조치가 리스크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직원들을 중요한 미팅과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충분히 의견을 반영하고 직원들이 기여한 바에 대해 공개적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팀에서 갈등이 발생하면 상대방에 대한 공격으로 발전할 때까지 놔두지 말고, 무엇이 서로 맞지 않는지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도록 유도한다. 갈등은 좋은 아이디어를 찾는 과정이라고 인식하게 하라.
리더십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작은 기회들을 부여하라. 잘못 수행했다가는 파급효과가 큰 역할을 부여하면 리더 역할을 거부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안전한 환경에서 ‘리더십 근육’을 키울 수 있는 작은 역할을 맡겨라.
예전에는 한번 팀장이면 계속 팀장인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팀장이 팀원들과 심각한 마찰을 일으키면 다른 팀의 팀장으로 이동시키는 일은 잦았어도 팀장이었다가 팀원으로 ‘강등’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팀장 자리를 보전해주기 위해서 한 팀을 두 개 이상으로 쪼개는 우스운 조치도 벌일 정도였다. 실제로 내가 컨설팅한 모 조직에는 팀에 팀장 혼자 있는 ‘1인팀’이 무척 많았다. 하도 이상해서 물었더니 “어떻게 팀장이었던 사람 보고 팀원으로 내려가라고 합니까?”라는 반문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 또한 옛날 이야기가 됐다. 작년까지만 해도 팀장이었던 이가 금년에 만날 때는 팀원 명함을 별 부끄럼 없이 내밀곤 한다. 부끄럼은커녕 이제 팀장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감정이 표정에서 느껴진다. 강등이 아니라 ‘해방’인 셈일까? 리더의 어깨에 짊어지우는 책임과 의무가 얼마나 컸던지 연봉이 깎였어도 싱글벙글인 얼굴을 보면, 조직의 인력 운용이 그만큼 자유로워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생각과 함께 조금은 짠해지는 마음을 어쩔 수 없다. 모두가 리더가 되겠다고 나서는 조직도 문제지만, 가능하면 리더 역할에 발을 담그지 않으려고 회피하는 조직 역시 건강하지 않은 듯 해서다. 여러분의 조직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