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란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 그 자체를 말한다. 그리고 시나리오플래닝이란 그 여러 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을 골라 그에 따른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회에 이어 이번 회부터는 시나리오를 도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본다.
Future Backward와 Future Forward
시나리오를 도출하는 방법은 그림 2와 같이 크게 시나리오를 도출하는 시간적 방향에 따라 Future Backward 방법과 Future Forward 방식으로 나뉜다. Future Backward방법은 ‘재구성법’ 이라고도 불리는데, 미래의 한 시점에 모종의 사건(이를 Wild Card라고 한다)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상정한 이후에, 그 사건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어떠한 조건이 형성되어야 하는지를 시간을 거슬러 역추적한 결과와 현재의 상황을 서로 비교하여 과연 미래에 그 사건이 일어날 것인지를 판단하는 방법이다.
이해를 위해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향후 3년 후에 A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사건이 발생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폭등 바로 직전에 신도시가 건설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발표 직전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아마도 정부 관리들이 A지역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인다든지, 신도시 타당성 검토를 위한 용역이 발주될지도 모르며, 검은 승용차들이 부동산중개소 앞에 자주 목격되는 등 각종 징후가 포착될 것이다. 이러한 징후를 파악함과 동시에, A지역과 가까운 대도시의 인구 증가 추이가 현재 어떤지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그 대도시의 인구가 과밀화되고 있거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면, 인구분산과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A지역과 같은 주변지역에 신도시를 계획할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Future Backward 방법과는 달리, Future Forward 방법은 현재의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미래의 모습을 찾아 들어가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 방법은 Future Backward 방법보다 상대적으로 쉽지 않다. 왜냐하면 Future Backward 방법은 한가지 미래를 미리 상정해 놓고 그 미래가 과연 발생할지를 시간을 거슬러 올라와 검증만 하면 되는 반면에, Future Forward 방법은 ‘현재’라는 재료만을 가지고 여러 가지 가능성 있고 의미 있는 미래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Future Forward방법이 진정한 시나리오플래닝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다음 회에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9.11 테러와 Future Backward
Future Backward 방법은 경우에 따라 컨틴전시 플래닝(Contingency Planning, 위급한 상황에 사전 대비하고 사후 대응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의 도구로 사용된다. ‘만약 우리 회사 창고에 큰 화재가 발생한다면 그걸 대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만들어 낸 제품이 고객에게 커다란 물적, 정신적 손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하여 사용된다.
톰 행크스 주연의 ‘아폴로 13호’라는 영화는 13이라는 불길한 숫자가 붙은 아폴로13호가 달 착륙도 못하고 기체 고장으로 인해 자칫 우주의 미아가 되어 떠돌 운명에 처했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필자가 영화를 보며 인상적이라고 느낀 것은, 조종사들이 여러 위험상황에 빠졌을 때마다 손에 들고 보던 매뉴얼이었다. 그 매뉴얼에는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위험 시나리오에 따라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 지가 자세히 명기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Future Backward 방법에 의한 컨틴전시 플래닝의 산물이다.
2001년 9월 11일, 민간여객기 2대로 미국의 심장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를 강타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고 전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당장이라도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것 같은 공포분위기가 형성되었고, 달러화 가치와 주가는 곤두박질쳤으며 일시적이었지만 ‘공황’ 상태가 유지되었다. 미국 본토는 공격 받은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며 미국인들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졌기에 충격은 더했다. 그리고 사전에 미처 대응하지 못한 미국 정부와 정보기관에 대한 성토가 줄을 이었다.
9.11 테러는 사실 일찍부터 예견된 사건이었다. 1987년 미래학자 브라이언 젠킨스는 테러리스트들이 미국 본토를 공중자살의 방식으로 공격할 것이라 주장했다. 또한 1994년에는 마빈 세트론이란 학자가 공중자살공격의 최고의 표적은 바로 세계무역센터가 될 것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예언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같은 참상이 발생한 것은 미국 정부가 민첩한 대응을 하지 못한 과실이라 할 것이다.
9/11 테러를 Future Backward방법을 사용하여 시나리오를 세워보도록 하자.(그림 3 참조) 첫 번째로, 미래에 발생할 특이한 사건, 즉 와일드 카드(Wild Card)를 설정해야 한다. 이 때 와일드 카드는 바로 ‘테러리스트들이 미국본토를 공중에서 공격한다’ 가 될 것이다. 그 다음, 와일드 카드를 중심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트리 형식으로 그려내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먼저, 과연 그들은 어떤 도구를 사용하여 공중공격을 감행할 것인가를 예상해야 한다. 전투기로 공격하는 방법과 민간여객기로 공격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만약 전투기로 공격한다면, 공격 이전에 전투기를 구입하거나 탈취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여객기로 공격을 시도한다면, 여객기에 폭탄을 적재하고 가서 투하하거나 표적에 직접 충돌하여 공격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여객기로 공격을 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여객기를 납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과연 납치한 그 여객기를 어떻게 공격목표지점까지 이동시키느냐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행기 조종사를 위협하는 방법과 조종실력을 갖춘 테러리스트가 직접 표적으로 여객기를 몰고 가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자, 여기까지 일단 와일드 카드가 발생되기 위한 사전 조건들을 시간을 거슬러 트리 모양으로 그려냈다면(그림 3), 각 대안들이 얼마나 발생 가능성이 있는지를 데이터를 근거로 따져보아야 한다. 먼저, 전투기로 공격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투기의 매매는 상당히 공개적이고 투명하기 때문이다. 전투기의 탈취도 각종 감시망을 뚫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다. 만약 테러리스트를 어찌어찌 해서 전투기를 확보했다손 치더라도 그 즉시 미국에게 정보가 노출되어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발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기로 공격한다는 대안은 무시하고 여객기로 공격하는 대안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
여객기로 공격을 행하는 대안 중 폭탄을 적재한다는 것 또한 일어날 법하지 않다. 왜냐하면 공항 검색에서 폭탄이 적발되어 테러 시도가 애초부터 무위에 그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러리스트들은 여객기 자체를 표적에 충돌시켜 공격하는 방법이 가장 성공가능성이 높은 대안이라고 판단할 거라 예상할 수 있다. 그들이 9/11 이전에 저지른 각종 테러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사실을 보아도 그럴만한 충분한 개연성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비행기를 세계무역센터에 정확히 충돌시킬 수 있었을까? 조종사를 위협하는 방법이 일견 쉬울 수 있으나 테러의 성공과 효과를 위해서는 테러리스트들이 직접 조종하여 충돌하는 것이 더 확실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조종사가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하기 직전 조종간을 틀어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과 비용이 드는 방법이지만 테러리스트들이 직접 테러의 모든 과정을 완벽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조종실력을 갖추는 것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
9/11이라는 와일드 카드가 과연 발생할 것인가를 지금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선, 테러리스트들이 조종실력을 갖출 것이 거의 확실하므로 현재 민간조종훈련기관에 어떤 사람들이 학생으로 등록되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학생들 중에 아랍계가 많다면 뭔가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출입국관리소에 기록된 입국자들 중에서 특이한 국적과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그리고 요주의 테러리스트 집단들이 다른 나라에서 저지르고 있는 테러공격이 어떠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지도 주시해야 한다. 그들이 자살폭탄테러의 방식을 사용하여 대사관과 같은 미국 관련 시설을 공격한다면 이와 비슷한 패턴으로 여객기를 이용한 공중자살테러의 가능성 또한 높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정황이 Future Backward로 예상한 바대로라면, 언젠가 미국 본토를 공중자살테러로 공격할 것이다라는 시나리오가 성립되는 것이다.
목표수립과 Future Backward
위의 9/11 사례에서 보았듯이 Future Backward방법은 미래의 특정사건이 발생할 것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이를 응용해 개인과 부서, 또는 회사의 목표수립과 목표의 구체화 과정에 활용할 수 있다. 목표를 와일드 카드로 설정한 다음,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무엇을 달성해야 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바로 직전에는 무엇을 성취해야 하는지를 시간을 거슬러 되짚어 옴으로써, 현재 내가, 우리부서가, 우리회사가 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 ‘나는 10년 후에 유명한 영화배우가 될 것이다’ 라는 목표를 세웠다고 가정해 보자.(그림 4) 유명한 영화배우로 인정 받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국내영화제든 해외영화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하는 것이다. 상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두말할 필요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열연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좋은 영화에 출연할 기회를 잡아야 하고 다양한 연기경험을 쌓아야 한다. 연기의 기본기가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것도 안하고 꿈만 꿀 수는 없다. 당장이라도 연기학원에 등록하여 연기의 기초부터 배워나가야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개인의 목표 수립을 통해 회사성과를 제고하려는 노력, 즉 MBO(Management By Objectives) 방식이 기업들에게 일반화되어 있는데, 각 개인들이 이와 같은 Future Backward 방법을 익숙하게 활용할 수 있다면 목표의 타당성과 실현가능성을 사전에 판단하여 목표를 현실로 이뤄낼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찾기가 수월할 것이다. 상식과 논리, 그리고 상상력과 판단력이 뒷받침 해준다면 말이다.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회사 차원으로 Future Backward 방법을 사용해 목표를 수립하고 구체화한다면 그것은 비전 수립, 즉 Visioning의 과정이다. 많은 기업의 비전이 단지 선언적이고 문구와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 이유는 목표에 대한 구체화 과정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재는 현재고 비전은 비전일 뿐 그 중간과정은 텅 빈 채로 남겨두기 때문인데, Future Backward 방법을 사용하여 그 중간과정을 메우고, 비전에 다다르기 위한 중간목표도 설정하여 뜬구름 같게만 느껴지는 비전을 현실성 있는 청사진으로 바꿔 놓아야 한다. 그래야 구성원들의 커미트먼트도 기대할 수가 있다.
지금까지 Future Backward 방법에 의하여 시나리오를 도출하고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과정과 목표수립과 구체화에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다음 회에는 진정한 시나리오플래닝이라고 할 수 있는 Future Forward방법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함께 논의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