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나는 이런 책을 읽었다   

2008. 4. 3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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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2008.4)에는 지난 달의 부진을 만회하여 총 9권의 책을 읽었다. 사실 이 중 1권은 읽다가 집어 던졌다. 원문이 어려운 것인지, 번역의 실패인지 도무지 읽히지가 않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3분의 2를 읽었기 때문에 리스트에 포함을 시켰다. 그 책이 과연 어떤 책인지는 아래에 나온다.

벽 한면 전체를 책장으로 짰는데, 이미 적재량을 초과한지 오래라서 책을 이리저리 포개 놓고 있다. 또 다른 벽을 책장으로 짜야하나... 대학 때부터 지금껏 지출한 책값도 따져보니 만만찮다. 그 돈 차곡차곡 모았면 중형차 한 대 쯤은 너끈히 뽑았을 것 같다.

지금까지의 독서 실적

1월 : 10권
2월 : 12권
3월 : 4권
4월 : 9권

(총 : 35권)

 

아름다움의 과학  : 내적 미(美)가 외적 미보다 중요하다는, 오래된 거짓말에 대한 책

 

텔레비전을 버려라 : 텔레비전의 폐해에 대한 책. 원래 TV를 잘 안 보는데, 이 책 때문에 더 안 보고 싶어졌다. TV의 임상적 폐해 부분이 약한데 그게 좀 아쉽다.

창의성의 즐거움 : 창의성은 개인에게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영역-환경-개인의 조화 속에서 피어난다.

허수  : 제곱하면 -1이 되는 수에 관한 책. 수학에 관한 내용은 좋은데, 중간중간마다 들어가 있는 '문학적 상상력'과의 연결이 매우 어색하다. 뜬금 없다. 그 부분을 빼고 허수에 관한 내용을 좀더 깊게 다뤘으면 좋았을 것을...

 

화(anger) : 이 책을 보고 '천천히 오래 씹어 먹는' 다이어트를 하게 됐다. 화를 발산하면 화가 더 생성된다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바이러스 도시 : 제목이 좀 이상하다. 콜레라에 관한 책인데, 콜레라균(비브리오)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박테리아다. 도시 생활의 위험을 고발한 책인지, 도시 생활의 편익을 강조한 책인지 어정쩡하다.

홀로 사는 즐거움 : 법정 스님의 글은 참 맑다. 읽다 보면 마음이 착해진다. 70이 넘으셨다는데, 건강하셨으면 한다.

인간에 대한 오해 : 스티븐 제이 굴드. 나는 만연체 문장이 싫은데 그의 글만은 용서가 된다. 600 페이지가 넘는 책을 단숨에 읽었다. 진화론계의 투사였던 그가 이 세상에 없는 게 안타깝다.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 이 책이 바로 읽다가 집어 던진 책이다. 뭘 말하려는지 도통 모르겠다. 좀 쉽게 써도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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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일파였다?   

2008. 4. 2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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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무심코 올블로그에서 내 이름을 친 다음 검색을 해 보니, 이상한 글들이 목록에 떴다. "어? 이게 뭐지?" 오늘 친일인명사전이 공개됐는데 4776명에 나와 동명이인인 사람이 포함된 모양이었다. 궁금증이 발동하여 4776명의 명단에서 내 이름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아 보기로 했다.

CTRL+F를 쳐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을 테지만, 무수히 많은 이름을 하나씩 보면서 내 이름을 찾아보기로 했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도 친일파, 태극기를 만들었다던 박영효도 친일파였다. 우리의 국가와 국기가 이제 친일파로 공인된 자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니! 참 씁쓸했다. 그렇게 내 이름을 찾다가 보니, 참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친일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됐다.

의원, 관료, 경찰, 군, 사법부, 종교단체, 예술분야, 경제분야, 해외지역 등등 곳곳에서 친일파들이 활개를 치고 다녔다는 걸 한눈에 볼 수 있었다. 4776명의 인물들은 친일 행적이 명확히 파악되는 핵심인물들이 선정된 자들이니, 동족을 억압했던 무명의 친일파들은 아마 그보다 열 배, 스무 배는 더 많았을 것이다. Big Brother의 눈과 귀와 몽둥이가 되어 자신의 이웃을 못살게 굴었을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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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경찰' 그룹에 속해 있었다. 경찰이라면 지근거리에서 동포들에게 폭압을 행사했던 자들 아닌가? 인두로 허벅지를 지지고 채찍질에 물고문에 온갓 못된짓을 제 손으로 저지른 자들. 한자(漢字)까지 동명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어쨋든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친일파 목록에 속해 있는 걸 보고 있으려니 좀 부아가 났다.

또 한편으로는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내가 만약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겪었더라면 나는 명단 속의 '그'처럼 친일을 자행했을까? 아니, 살기 위해서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의 마음으로는 자발적으로 친일을 자처하지 않을 것 같지만, 목에 칼이 들어 온 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물론 친일의 동기가 자발적이었냐 강압에 의한 것이었으냐에 따라 죄질의 경중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4776명의 명단 안에 포함된 '나' 혹은 '그'. 그는 어떤 몹쓸 친일 행적을 보였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배경은 무엇이었는지, 무슨 이유 때문에 친일파에 동참하게 됐는지 알고 싶다.

명단만 우선 공개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차후에 자세한 친일 행적도 함께 열람했으면 한다(자료집이 나왔다는 데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해방된 지 60년이 넘었는데, 이제 와서 친일인명사전에 나온 게 꽤 늦은 감이 있다. 늦은 만큼 속속들이 공개됐으면 한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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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단점을 고치려고 노력하지 마라   

2008. 4. 2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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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의 대부, 피터 드러커는 지난 2005년 11월 11일 96세를 일기로 숨졌다. 죽기 바로 직전(2004년)까지 35번째 저서를 출간할 만큼 왕성한 지적 욕구와 열정을 보여 왔던 그가,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는 경영학의 생불(生佛)로 존재하리라 믿어지던 그가 비로소 우리 곁을 떠났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가 경영학계에 남긴 업적은 실로 위대한 것들이라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주식회사의 개념을 제시하였고, 기업의 도덕성과 인재의 중요함을 역설하였으며, '지식사회', '지식근로자' 등 지식경영의 개념을 주창하는 등 경영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방향과 상(像)을 제시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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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 (사진 출처 : 네이버)


나는 피터 드러커의 저작들을 많이 읽어 보지는 못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경영의 실천'과 '단절의 시대' 정도를 훑어 읽어 본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가 나에게 미친 영향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그의 책, '프로페셔널의 조건'을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발견한 문구는 뭔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던 나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었고 나의 삶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당시 나는 나 자신에게 참 불만이 많았다. 능력도 보잘 것 없거니와, 성격도 성공하기에는 애초에 글러먹은 것이 아닌가, 이럴 바에는 편안한 조직에 몸을 의탁한 채 짭짤한 월급이나 챙기며 살아가는 것이 내 주제에 걸맞는 게 아닌가 자괴했었다.

그런데, '당신의 단점을 고치려고 노력하지 말라. 거기에 쏟을 노력을 당신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에 집중하라'라는 그의 말을, 어쩌면 지극히 평범하게 느껴지는 그의 말을 접했을 때 내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커다란 소리를 들었다.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나의 장점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그것을 더욱 키울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추락했던 자신감을 점차 회복할 수 있었다. '나는 왜 이것 밖에 안될까' 라는 생각은 푸념에 지나지 않는다하더라도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나를 더욱 옥죄이게 만들 뿐이라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가끔 지치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의 문구를 떠올려 보곤 한다. 결국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은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로 그렇게 된다.'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단점을 떠올리며 자신에 대한 질책과 비난을 즐기기만 한다면 단점은 영원히 단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리라.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긍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교훈이리라.

단점보다는 장점에 전력투구하라는 말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기업의 경영활동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쟁사보다 뒤떨어지는 요소를 끌어올려 봤자 경쟁사하고 별 차이가 없는 '그렇고 그런' 제품과 서비스에 불과할 것이다. 경쟁사를 확실히 제압하려면 자사의 경쟁우위 요소를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수준으로 극대화해야 한다. 이것은 경영의 제1법칙이다.

세스 고딘의 저서 '보랏빛 소가 온다'에서 '잘할 수 있는 것 한 두개를 가지고 가장자리까지 가라'는 주장과, '블루오션 전략'에서 말하는 가치혁신의 ERRC(Eliminate-Reduce-Raise-Create) 방법론 등도 따지고 보면 피터 드러커의 철학과 연결되어 있다. 머리를 감싸 쥐며 고민한 끝에 '다 잘해야 한다'는 전략적 초점이 불분명한 경영계획을 오늘도 만들어 내고 있는 기획부서가 있다면, 피터 드러커의 이 말을 곰곰히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단점을 고칠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을 장점을 더 키우기 위한 시간으로 활용하라. 골고루 잘 하는 사람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이다. 한쪽에 경도되지 않고 여러 분야를 두루두루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한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뒤에 해도 늦지 않다. 그리고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다른 분야를 쳐다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한 우물을 파고 나서 시원하게 물을 들이켜야 다른 세계도 보이는 법이다.

남들이 자신에게 '너는 이것이 단점이야'라는 말을 듣게 되면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가볍게 흘려라. 그가 아무리 선의로 한 말일지라도 '너는 이것이 단점이야'라는 말이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옭아매는 동아줄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사람을 물리적으로 괴롭히는 단점이라면 고쳐야 마땅하다. 그러나 살아가는 방식이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단점이라고 지적 받는 것까지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단점을 고치려고 노력하지 마라. 장점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게 이 시절을 보다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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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나는 하루종일 바닷가에서   

2008. 4. 27.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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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으로 가족여행을 다녀 왔다. 서울에는 비가 많이 왔다는데, 양양에는 다행히 조금 후둑거리다가 말았다. 바닷가라 바람이 세서 좀 추웠지만, 가슴이 시원해서 참을만 했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봄 바다모래밭에서 아이는 친구들 줄 거라며 조개껍데기를 줍고, 아빠는 바다를 향해 연신 막샷을 날렸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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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CEO   

2008. 4. 2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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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CEO는 요즘 슬프다. 수년 전 회사를 설립해 각고의 노력으로 중견규모의 기업으로 키워 낸 그가 요즘 심한 우울증에 빠져 버렸다. 회사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직원들의 눈빛은 자신을 질시하는 느낌이 역력하다. 출장이다, 미팅이다 해서 웬만하면 사무실에 나가지 않을 핑계거리만 생각난다. 일부러 직원들이 거의 퇴근한 저녁 무렵에 회사로 나가 씁쓸한 표정으로 텅 빈 사무실을 둘러보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됐을까, 하며 한숨을 내 쉴 뿐이다.

무엇이 그의 고민일까? 그 회사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 아니 근속월수는 고작 7개월에 불과하다. 그 회사가 영위하는 사업 자체가 인력의 회전이 매우 빠른 특성이 있지만 가히 업계 최고수준의 이직률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근속월수는 점점 짧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 회사를 가보고 처음 든 느낌은 직원들의 얼굴빛이 왠지 모르게 어둡다는 것이었다. “정말 이 회사가 싫습니다. 마지못해 다니는 것이지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 떠날 겁니다.”라고 말하는 표정이 누가 봐도 뚜렷했다. 왜 직원들이 회사를 싫어할까? 그 CEO는 몇 날 며칠의 고민 끝에 바로 자기 자신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사실에 도달하고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먼저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과거 개인기업 수준에서 사람들을 관리하던 구태를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회사가 중견규모로 성장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른바 ‘구멍가게’ 시절의 행태가 아직까지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말이었다. 모든 의사결정 권한이 CEO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큰 문제로 지적했는데, 중간관리자들은 CEO의 지시만 그대로 반복하여 부하직원에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에 불과한 실정이며 직원들은 앵무새 같은 관리자들을 신뢰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업무에 관해 협의할 것이 생기거나 어떤 문제가 발생되면 조직관리체계를 무시하고 CEO가 직접 해당 실무자를 불러 업무를 지시하거나 호통치는 식으로 운영되다 보니 중간관리자들은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업무가 진행되어 나중에야 뒤통수 맞듯 알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와 CEO에 무슨 충성심을 가질 수가 있냐며 업계 최고의 이직률은 오히려 당연한 현상이 아니겠냐는 노골적인 불만을 쏟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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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CEO의 생각은 이랬다. 직원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 그의 불만의 요지였다. “무엇 하나 일을 시키면 가지고 오는 보고서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그렇게 생각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일일이 수정해 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다” 라는 말을 고통스럽게 내뱉었다. 그렇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권한을 주고 임무를 맡기기가 겁이 난다는 말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 당해 망하기 십상인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권한을 내려 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개인기업에서 중견규모로 키워가는 CEO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고민이며 어쩌면 반드시 견뎌내야 할 ‘성장통’ 이기도 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 CEO의 고민도 덜어주고 직원들의 불만을 줄여 서로 화합하는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이쯤 해서 CEO는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직원들이 알아서 잘 해줘야 한다는 기대감은 일단 버리는 것이 좋다. 피하지 말고 직원들과 당당히 만나라. 부모와 자식간의 반목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부모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서야 하듯이 기업에서도 CEO가 먼저 손을 내밀고 진정으로 이해를 구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모든 직원을 차례로 만나라.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직원들과 대화하라. 이 때 주의해야 할 것은 CEO 자신은 말을 아껴야 한다는 점인데 말이 많으면 분위기는 상명하달식으로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먼저 직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그런 다음에 무엇이 고민이고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를 솔직하게 표현하여 직원들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순서다.

이러한 만남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양자간에 복잡한 심리적 계산이 깔려 있을 때가 그러하다. 직원의 날카로운 말 한마디 한마디를 CEO 자신에 대한 공개된 공격으로 인식하거나 갑자기 CEO의 변한 모습에 놀란 직원들이 혹여 발생할 수도 있을 불이익에 몸을 사릴 경우에 예전보다 오히려 반목의 골이 더욱 깊어질 수도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믿을 만한 사람을 중요한 위치에 하나씩 배치하여야 한다. 즉, CEO 자신에게 집중된 권한을 부분적으로 나누어 이양하더라도 무리 없이 일을 끌고 나갈 수 있는 인재를 발굴해야 한다. 조직 내에서 찾기 어렵다면 외부에서 공인 받고 있는 사람을 찾아라. 그리고 충분한 권한을 부여하여 전담케 하라. 여기서 CEO가 인내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데, 초기에 발생할 수 있는 ‘매끄럽지 못함’을 CEO가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참아내야 한다. 조급함을 버리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

CEO 자신의 강점이 ‘사업’에 있지 않고 ‘기술’이나 ‘재무’ 등에 있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경영 자체를 전문인에게 이관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위에서 예를 든 CEO는 남들보다 뛰어난 기술을 스스로 개발하고 개선하여 그것을 기반으로 지금까지 힘을 들여 회사를 키워 온 사람이다.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의 벤처기업 창업자들이 기술에 대해서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을지는 몰라도 경영능력은 따라가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CEO는 스스로를 최고기술책임자(CTO) 혹은 R&D 책임자로 포지션을 전환하여 ‘기술’ 측면에 집중하고 경영시스템 안정화와 사업전략을 담당할 전문경영인을 외부에서 긴급 수혈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자는 말이다. 쉽지는 않은 결정이겠지만 장기적인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CEO 자신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라도 결단을 내려봄 직한 일이다.

CEO는 외로운 자리다. 회사가 잘 나갈 때나 어려움에 처할 때나 항상 그렇다. 외로움을 느끼면 자연스레 오해와 의심이 싹트기 마련이다. “내 생각은 이러한데 왜 너는 이해를 못하냐” 며 한탄하며 다그치지 말라.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인정’이 아닌 ‘시스템’으로 꾸려가야 한다. 앞서의 CEO처럼 ‘인정’에 기반하여 직원들을 다루던 예전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면 성장은 거기서 멈추고 직원들은 하나 둘 등을 돌릴 것이다. 익숙하지 않겠지만 공식화된 시스템을 갖추려고 노력하라. 처음엔 지지부진하고 삐걱대겠지만 시간을 충분히 투자하라. 급하더라도 이때는 돌아가는 것이 빠르고 안전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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