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극복을 위한 시나리오 플래닝 운영법   

2008. 10. 1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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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시나리오를 어떻게 수립하고 시나리오에 따라 전략을 수립하는 방법론을 중심으로 알아보았다. 절차 자체는 까다로울 것이 없으나, 단계 단계별로 합의하고 의사결정해야 하는 과정은 꽤나 힘겹고 어떨 때에는 매우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시나리오 하나를 수립하는 데에도 몇 개월을 넘어 몇 년이 소모되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결국 유야무야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완벽한 시나리오를 모두 수립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 법이다. 그러므로 시나리오플래닝 과정의 속도와 효과를 높일 필요가 있는데, 이번 회에는 조직 내에서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를 도입, 운영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방법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시나리오플래닝 중요성 인식시키기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를 조직 내에 도입하기로 결정했다면, 모든 구성원들에게 시나리오플래닝의 중요성과 효과를 인식시키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조직 전체가 시나리오플래닝에 관해 일관된 하나의 시각을 공유할 수 있으며 그들로부터 여러 가지 협조를 얻기가 쉬워 진다.

필자가 보기에, 시나리오플래닝을 전략기획부서와 같은 자칭 ‘Brain’에 해당하는 조직 구성원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 스스로 무엇인가 대단한 일을 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자기네들끼리 시나리오를 도출해 수립한 전략은 시각 자체가 편협할뿐더러 결국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지난 회까지 설명한 시나리오플래닝 방법론 절차를 자세히 살펴보면, 프로세스의 성공 포인트 중 하나는 될 수 있는 한 다양한 시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참여에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알 수 있을 것이다. 시나리오 팀은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하더라도, 조직 내 모든 구성원들이 시나리오플래닝의 의미와 효과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외부의 시나리오플래닝 전문가에게 의뢰해 시나리오플래닝의 여러 가지 사례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교육 세션을 가능한 한 자주 개최하도록 하라. 그리고, 향후에 발생하게 될 위험요소가 무엇인지를 있는 그대로 알려줌으로써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켜라. 전체적으로 환경의 변화 동향에 대해 위기의식을 가지고 바라보고 공통적인 인식을 형성해야 시나리오플래닝을 시작할 수 있다.

시나리오 팀원 구성하기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의 두번째 단계는 바로 시나리오팀의 일원을 뽑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어느 프로젝트나 마찬가지지만, 적절하게 팀원을 구성했느냐의 여부가 시나리오플래닝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 중에서도 프로젝트를 이끄는 프로젝트 매니저(PM)의 역할은 누구보다고 중요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누가 PM이 되어야 하는가? 아마 여러분은 시나리오플래닝의 과정이 일종의 전략 수립과정의 수단이므로, 조직 내에서 전략 수립에 책임이 있는 부서의 장이 PM을 맡아야 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젝트를 이끌 PM은 오히려 전략기획부서 이외의 부서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략기획부서는 전통적으로 행해 왔던 전략 수립의 과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시나리오플래닝 방법론에 대해 이해가 빠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맹점은 바로 시나리오플래닝을 이해하는 데 그치고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SWOT 분석으로 요약되는 전통적인 전략수립 프로세스는 과거와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개념 자체가 정적인 분석 프로세스를 따르고 있다. 반면 시나리오플래닝의 시점은 미래에 맞춰져 있으며 사고 프로세스가 동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나리오플래닝을 시도하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사고가 필요하며 그 과정은 이전 방법보다 고된 정신적 노동을 요구한다.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는 일보다는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전략기획부서 구성원은 과거로부터 해왔던 전략 수립의 과정에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상대적으로 어렵고 낯선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보다는 예전 방법으로 돌아가거나 예전 방법에 시나리오플래닝의 개념을 약간 보태기만 할 공산이 크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필자도 처음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시나리오플래닝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여 SWOT분석과 같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시나리오를 수립하려는 오류를 범했었다. 요약하면, PM을 뽑을 때부터 선입견을 깨야 한다는 말이다. 부서보다는 사람을 먼저 보란 말이다.

그렇다면 누가 PM이 될 수 있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시나리오플래닝의 의미와 방법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어야 한다. 시나리오플래닝이 전략 수립에 있어 새로운 사고방식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느 한 곳에 편협함 없이 다양한 시각을 격려하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과거와 현재의 좋지 않는 측면보다는 미래의 밝은 측면에 관심을 두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시나리오플래닝을 조직 내에 도입하고자 하면 조직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PM 후보자들을 선정하여 그들 중 누가 적임자인지를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판단해 보라. PM을 선정하는 과정에 어쩌면 1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걸려도 적임자만 선정할 수 있다면 그 시간은 아까운 시간이 아니다. 초기에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팀원은 누가 되어야 하는가? PM을 적임자로 뽑았다면 그에게 팀원 구성의 전권을 일임하라. 어떤 사람들이 시나리오 팀원으로 적절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PM에게 단 한가지의 가이드만 준다면, 될 수 있는 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팀원을 구성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서 단위로 본다면, 소위 M-P-R-S를 골고루 참여시켜라.

즉, 생산(Manufacturing), 기획(Planning), 연구(Research), 지원(Supporting)을 담당하는 부서의 직원들이 고루 시나리오플래닝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라. 개개인의 특성으로 본다면, 논리적이면서 상상력도 풍부한 사람, 문장력이 뛰어난 사람, 흩어져 있는 개별 사안 사이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 정보 수집과 정리를 잘하는 사람 등을 팀원으로 참여시켜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의 성공 포인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란 점을 잊지 말라.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를 한 번 수행하는 데 얼마나 긴 시간이 소요될까? 핵심이슈의 경중에 따라 어떨 때에는 2~3개월, 어떨 때에는 1년이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 기간에 관계없이 따라야 할 프로세스는 동일하다. 이제부터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의 상세 절차를 알아보자.

시나리오 워크숍 준비 단계
실제적으로 시나리오의 도출은 워크숍의 형태로 진행된다. 워크숍을 개최하기 전에 먼저 시나리오팀원을 대상으로 미래에 관한 시각을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아무 생각없이 워크숍에 들어와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멀뚱멀뚱 쳐다만 본다면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럿이 함께 모여 브레인스토밍만 하면 저절로 시나리오가 뚝딱하고 나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브레인스토밍을 하려도 해도 사전에 기본 지식이 없으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나기 어려울뿐더러 의미 없는 시간만 보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시나리오팀원들에게 미래에 대한 시각과 정보를 정리할 수 있도록 하려면 첫째, 트렌드에 관련된 여러 책들을 가능한 한 많이 읽게 해야 한다. 연말이 되면 서점가를 휩쓸 듯 출시되는 각종 예측서를 읽도록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연말에 반짝하고 나오는 그러한 예측서들은 내용이 깊지 않을뿐더러 단기적인 전망에 치우쳐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비교적 검증된 기관에서 나온 예측서를 선정해 주도록 한다.

필자는 예측서보다는 정치, 경제, 사회 등에 관련된 도서를 권장하고 싶다. 몇 권을 추천해 준다면,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문명의 충돌’, ‘총, 균, 쇠’, ‘문명의 붕괴’, ‘세계는 평평하다’, ‘사다리 걷어차기’, ‘미래를 읽는 기술’ 등이다.

또는, 시대의 흐름을 독특한 시각으로 전달하는 잡지를 섭렵케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표 1은 ‘미래의 읽는 기술(The Art of the Long View)’를 쓴 피터 슈워츠가 추천하는 잡지로서, 트렌드를 감지하고 미래를 그려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디스커버(Discover)
이코노미스트(Economist)
와이어드(Wired)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퓨처 서베이(Future Survey)
그란타(Granta)
하퍼스(Harpers)
맨체스터 가디언 위클리(Manchester Guardian Weekly)
몬도 2000 (Mondo 2000)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
옴니 (Omni)
릴리스 2.0 (Release 2.0)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
사이언스 (Science)
테크놀로지 리뷰 (Technology Review)
유튼 리터 (Utne Reader)
워싱턴 스펙테이터 (Washington Spectator)
홀 어스 리뷰 (Whole Earth Review)

책을 읽은 다음에는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각자가 읽은 책의 내용을 발표하고 비판적인 토론을 벌인다. 발표 내용은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하되 조직의 사업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을 중심으로 토론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한다. 토론 중에 의견이 서로 상반돼 갈등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의견 대립은 미래에 관한 다양한 시각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권장되어야 한다. 이때의 이를 중재하는 PM의 역할이 중요하다.

둘째, 미래학 전문가들을 여러 차례 초청하여 강연을 실시하라. 이 방법은 독서 토론보다 손쉽고 효과적인 수단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강연료로 비용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이 방법은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고 책보다는 단시간 내에 미래의 정보를 취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몇몇 전문가들의 미래를 보는 편협한 시각에 의해 잘못된 방향으로 미래의 모습을 그리는 위험 또한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강사를 섭외할 때에도 다양성을 훼손하지 않는지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시나리오 워크숍을 개최하기 전까지 팀원 전원이 미래에 관한 풍부한 정보와 다양한 시야를 확보토록 해야 하므로 그 기간은 짧게 잡아도 1~2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를 도입한다면 이 정도의 사전 준비는 매우 필수적이다. 조급증에 빠져 일단 시작하고 본다는 생각일랑 하지 말라.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야 성공적인 프로세스를 기대할 수 있다.

1차 시나리오 워크숍 실시
시나리오 팀원들이 균일하게 미래의 정보를 익히고 열린 시각을 통해 미래를 바라볼 준비가 됐다면, 1차 시나리오 워크숍을 실시한다. 1차 워크숍에서 지난 회까지 설명했던 시나리오플래닝 방법론에 따라 시나리오를 도출하는 작업을 실시한다.

워크숍에 참여할 시나리오팀원은 보통 15명에서 20명 정도면 적절하다. 토론의 효율성과 효과를 위해서는 전원을 여러 개의 그룹으로 나눠 각 그룹별로 시나리오플래닝 절차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한 그룹당 4명 정도가 적정하다. 4명보다 많아지면 반드시 무임승차자(Free Rider)가 생기기 마련이니 주의해야 한다. 각 그룹이 토론을 통해 시나리오를 도출해 보고, 이를 취합하여 참가자 전원이 토론을 통해 최종적으로 시나리오를 결정한다.

워크숍은 보통 1박 2일 정도 집중적으로 실시하도록 한다. 첫째 날은 시나리오의 방향을 설정하고 의사결정요소를 파악하며 핵심환경요인을 정의하는 작업을 실시한다. 즉, 시나리오플래닝 방법론의 Step 3까지를 완료한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시나리오를 도출하고 시나리오를 쓰는 Step 5까지를 완료한다. Step 5까지 진행하기에는 하루나 이틀의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이상의 시간이 넘어가면 참가자들이 지치기 시작하여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시간이 부족할 경우 일주일 정도를 쉬었다가 다시 1박 2일 일정으로 속개하는 것이 좋겠다. 워크숍 당일에 생각나지 않았거나 다소 완전치 못했던 아이디어가 쉬는 동안 양생(養生)될 시간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나리오 도출 워크숍을 너무 질질 끄지는 말라. 시간을 끈다고 좋은 아이디어가 생겨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1박 2일짜리 워크숍은 최대한 1번으로 끝내되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3번까지만 실시할 것을 권한다.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를 처음으로 도입하는 조직이라면 워크숍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를 잘 몰라서 말 그대로 헤매는 경우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 때는 외부의 전문 퍼실리테이터를 초청하여 워크숍 진행을 의뢰하는 것이 프로세스를 원활히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외부 퍼실리테이터를 활용하려면 워크숍 준비 단계 때부터 동참시키는 것이 좋다. 그래야 회사가 요구하는 시나리오플래닝의 목적, 방향 등을 사전에 인지하여 동일한 인식 배경을 가지고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차 시나리오 워크숍 실시
1차 워크숍이 종료되면 도출된 시나리오들을 전 조직 구성원에게 공유시켜라. 아마 시나리오팀원들은  시나리오 도출 결과가 대단한 비밀이나 된 듯 공개하길 꺼려할지 모른다. 물론 경쟁사에게 알려질 위험은 있다. 그러나 필자는 경쟁사가 알게 되어 발생할 위협의 크기보다는 조직 구성원들이 미래에 대하여 동일한 수준의 정보를 가지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가 더 크다고 본다. 사실 시나리오 자체는 비밀이랄 것이 없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수립한 전략이 바로 비밀인 것이다.

2차 시나리오 워크숍은 바로 시나리오를 통해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과정이다. 즉, 지난 회에 소개했던 시나리오플래닝 방법론의 Step 6를 실시한다. 2차 워크숍의 참가자는 1차 워크숍 참가했던 시나리오 팀원 전원이 그대로 참여하는 것이 좋다. 동일한 인식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배경을 몰라서 발생하는 질문과 오해로 인해 시간이 지연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2차 워크숍도 마찬가지로 1박 2일의 일정으로 실시하되, 시간이 더 필요하면 최대 3번까지만 반복 진행한다.

지금까지 조직 내로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를 도입하는 방법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다음에는 시나리오플래닝 이후에 과연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질지를 주시하여 조기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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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ism 11] Coin   

2008. 10. 1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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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imagism을 썼을때,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어. "당신은 사물의 뒷면만을 보려 해." 나는 그말에 정말 내가 사물의 뒷면, 그러니까 사물의 어두운 면, 음험한 슬픔, 혹은 비정상적인 행태만을 바라보려 하는지, 그런 것에만 생각의 촛점을 맞추는 지를 2분간 생각해 봤지.

그리고 나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앞뒤로 뒤집으면서 골똘히 관찰했어. 왜 하필 동전이냐고 나에게 핀잔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봐, 너는 단순화 혹은 모델링이란 걸 모르는군. 동전 하나에 대해 많은 사유를 해보았던 적이 있었어?" 라고 나는 대답할 태세였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 유정식)

어쨋든 예의 그렇듯이 동전의 앞면은 위인의 얼굴이나 문화재 따위가 양각으로 부조되어 있잖나? 반짝거리는 동전의 반사광을 통해 보이는 위인의 얼굴은 흡사 신생로마를 통치했던 폭군을 연상케할 뿐, 그 어떤 존경심이나 혹은 역사적 감흥 따위는 손톱만큼도 일어나지 않지. 그들을 그저 모델들이야. 동전 앞면을 아무 무늬도 없이 밋밋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 위인의 얼굴을 빌려 그 앞면을 장식한 것뿐이라구.

그런데 왜 하필 위인의 얼굴이어야 하느냐고? 이봐, 그것은 인간들의 이기심을 배제하기 위해 나름대로 고민한 결과였어. 예를 들어, 동전의 앞면 모델로 '흰돌'의 얼굴을 새기기로 화폐국에서 결정을 내렸다면 아마도 99%의 사람들은 머리에 빨간띠를 두르고 그 결정을 철회하라는 집단행동을 연출할 것이 뻔하잖아? 위인이란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케 해주는 아주 편리한 모델이야.

그건 그렇고, 위인들은 후대에 가서 동전의 앞면 모델로 활동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지, 또 알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지네. 이야기가 좀 다른 곳을 흘렀지만, 요컨데, 동전의 앞면은 장식을 위해 마련된 공간일뿐 다른 의미는 없어. 그렇다면, 동전을 180도 회전하여 뒷면을 살펴 보자구.

너도 알겠지만 그곳에는 동전이 나타내는 화폐의 가치가 대개의 경우 아라비아 숫자로 똑똑하게 적혀 있지. 그 동전을 가지고 그만큼의 가치에 해당하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살 수 있다는 이야기야. 참으로 멋진 단순함 아냐? 나는 동전의 뒷면만큼 솔직하게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를 스스로 나타내며 모든 판단을 명료하게 해주는 것에 대해 예를 들어보라고 한다면 꽤나 난처함에 빠지고 말 거 같아.

동전의 뒷면, 그러니까 내가 사물의 뒷면이라는 것을 대유적으로 표현한 동전의 뒷면을 통해, 나는 내가 사물의 뒷면만을 바라보려한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변호하고 싶다구.

어때, 멋진 변호라고 생각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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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는 동물 사체가 썩어 생긴 걸까?   

2008. 10. 1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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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유정식)


과학사를 들여다보면 기존 체계에 도전했다가 곤욕을 치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꽤 찾을 수 있다.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대표적인 예이다. 막강한 교회 권력은 그를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단자로 매도하고 목숨까지 위협했다.

영원히 침묵할 것을 맹세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뻔했다. 교회로 대표되는 시대정신은 갈릴레이가 오랜 기간의 연구 끝에 정립한 이론의 옳고 그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그가 얼마나 이단적인 생각을 품었는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그들에게 갈릴레이는 진리의 안내자가 아니라 그저 불온한 이단자에 불과했다.

이단이냐 아니냐의 여부는 ‘밈(meme)’에 반하느냐 동조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밈은 리처드 도킨스가 주창한 개념으로, 사상, 선전 문구, 옷의 패션, 건축 양식 등 한 사회 내에 문화적으로 동질성을 갖는 요소들을 일컫는다.

도킨스는 밈이 마치 유전자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로 전달되면서 다음 세대로 복제되고 매우 이기적인 특성을 지녔다고 말한다. 성질이 다른 밈을 가진 사람이 고유의 영역을 침범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연대를 강화하여 공격을 가하고 심할 경우 잔인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교회 권력이 갈릴레이에게 가한 위협 역시 이러한 밈의 잔혹한 특성 때문이다.

갈릴레이의 경우처럼 목숨을 위협 받는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밈의 꾐 때문에 과학의 발전이 정체에 빠진 사례는 더 많다. 천문학자인 토미 골드는 석유가 지구의 맨틀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것으로 생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이색적인 주장을 펼쳤다. 오래 전에 살던 동물들이 죽은 뒤 그 위에 긴 시간 동안 퇴적물이 쌓이고 높은 압력과 열을 받아 부패되면서 석유가 만들어졌다는 학설이 밈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이론은 많은 전문가들의 비웃음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04년에 카네기 연구소에서는 맨틀에 존재하는 세 가지 물질을 혼합하고 맨틀의 온도와 압력을 가하는 실험을 통해 석유와 천연가스의 주성분인 메탄이 다량 산출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토미 골드의 이론이 맞을 수도 있음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완벽한 증명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런 사실을 전달받기 불과 3일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석유의 기원에 대한 이론 이외에도 그는 평생 남들의 비웃음을 살 만한 주장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생각은 대개 옳은 것으로 판명됐다. 학계의 밈이 그의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수용하고 검증했더라면 과학의 진화는 속도를 더했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엉뚱한 길에서 헤매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밈의 편협함이 과학의 발전을 종종 저해했듯이 기업의 밈 역시 자신의 발전에 스스로 뒷다리를 걸기도 한다.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문화적 동질성을 구축해가며 고유의 밈을 형성한다.

조직의 밈은 구성원의 연대를 강화하고 목표에 집중케 하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미는 자가 있다면 내부인이건 외부인이건 상관없이 가차 없이 처벌을 가하려는 냉혹하고 불합리한 면도 지녔다. 조직의 발전을 위해 마찰을 각오하면서까지 옳은 주장을 펼치는 것이라 해도 그런 충심은 수용되기는커녕 무시되거나 축출되기 십상이다. 이성적인 수용보다 괘씸함이 앞선다.

그러나 이단을 수용할 때 발전과 도약이 가능함을 수많은 사례가 증명한다. 아인슈타인이 뉴턴의 결정론적 우주관을 뒤엎는 상대성 이론을 정립했듯이 과학의 도약은 대개 이단적 발상을 통해 이루어졌다. 기업도 이와 같다. 조직 혁신의 동력은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충심 어린 이단자들로부터 나옴을 기억해야 한다.

르네상스를 화려하게 꽃피운 이탈리아의 영광이 순식간에 몰락한 결정적 원인은 바로 갈릴레이를 영원히 침묵하게 만든 것이라고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은 간파했다. 변화에 저항하며 달콤하게 속삭이는 자들을 물리치고 이단자의 ‘거친’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충고다. 용기 있는 이단자들을 포용하고 활용하라. 그것이 지속경영을 가능케 하는 경영의 덕이자 지혜임을 명심하자.


(본 칼럼은 광주일보 2008년 10월 10일자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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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광 속의 쇄도   

2008. 10. 1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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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서 저물녁에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을 찍어봤습니다.

포커싱이 어려웠지만, 오랫만에 재미있게 사진찍기를 즐겼습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사진 : 유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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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우면 일 못한다   

2008. 10. 9.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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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모 고객사의 A사업부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건물 로비를 들어서니 웬지 모를 답답함과 음침함이 느껴졌다. 조명은 흐릿했다.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래도 그곳은 로비에서의 실망스러움을 만회해 주겠지, 라는 생각은 여지 없지 빗나갔다. 파티션은 거의 천정에 닿을 정도로 높았고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이 책상 아래와 구석에 널려있었다. 비록 남의 회사였지만, 마치 내 방이 어질러져 있는 것처럼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큰 사무실에 2~3명이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게다가 조명은 왜 그리 어둡고 공기는 쌀쌀한지...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그런 것인지, 원래 조도가 낮은지 알 수 없었지만, 착 가라앉은 기분은 내내 좋지 않았다.

(사진 : 유정식)


그곳에서의 일을 마치고 같은 건물에 있는 B사업부(동일 회사의)의 사무실로 자리을 옮겼다. 그곳도 역시 우울하겠지, 라는 지레 짐작은 틀리고 말았다(내 예측은 항상 틀린다니까...). 그 사무실은 아늑하고 따뜻했다. 조명도 환하고 직원들의 표정도 밝았다. 곳곳에 놓인 화분들이 사무실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한 회사 내에서 이렇게 사무실 분위기(조명, 온도, 공기, 직원 표정 등등)가 다를 수 있다니! 알고 보니 그것은 각 사업부의 성과와 다르지 않았다. A사업부는 안정적인 성과를 달성하느라 현재 악전고투 중이었다. 그럼에도 사정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반면 B사업부는 시장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고 회사 내에서 성과 기여도가 높은 곳이었다.

아하! 사무실 분위기와 성과가 연관이 있구나! A사업부 직원들의 표정이 어두운 게 다 이유가 있구나! 목표 달성에 매일 채근 당하다 보니 사무실 레이아웃, 정리정돈, 장식, 조명 등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게다. 사무실 인테리어를 좀 바꿔 보겠다고 하면, 실적이나 낼 것이지 팔자 좋게 그런 거나 할 생각이냐고 질책 받을까 지레 포기했을 게다.

나는 사무실 환경(조명,인테리어, 표정 등등)가 바로 그 회사의 현재 성과와 미래 성과를 짐작케 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한 사무실 분위기를 환하게 변모시키면 거꾸로 성과를 올릴 수도 있겠구나, 라는 느낌도 들었다.

근무환경, 그 중에 특히 쾌적한 조명과 온도는 생산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때문에 이런 '명제'는 대체적으로 옳다. '사무실 환경이 어떤들 그게 뭐 대수겠어?'라고 지나치기 쉽지만 사무실 환경이 직원들의 세로토닌(호르몬의 일종) 분비를 좌우한다는 것을 알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세로토닌은 생산성에 관련된 호르몬이다. 세로토닌의 수치가 낮으면 불안감이 유발되고 수치가 높으면 행복감이 높아져서 업무 능률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세로토닌의 생성은 2500럭스 이상의 빛에서 왕성해진다. 그러므로 생산성을 높이려면 사무실의 조명을 밝게, 온도를 최적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할 맛이 나야 성과가 난다. 일할 맛이 나려면 일 잘 할 수 있도록 환경을 꾸며 줘야 한다. 가난한 천재들이 골방에서 위대한 작품을 완성하기도 했다고 해서 근무환경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많은 CEO들이 그런 식("돼지우리 같은 곳에서도 아름다운 작품이!")으로 생각한다. 자신들의 직원이 모두 천재가 아닌 걸 알면서도...

천재가 아닌 직원들은 어두우면 일 못한다. 돈 좀 들더라도 사무실 환경을 쾌적하게 바꾸고 유지하라. 장기적으로 보면 돈 남는 장사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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