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으로 밥 먹고 이 닦기   

2009. 1. 19. 22:43
반응형

몇 개월 동안 집중해서 책을 쓰느라 오른쪽 어깨가 많이 상했다. 팔과 어깨가 만나는 곳이 바늘로 찌르는 듯이 아팠다. 오십견인가? 어깨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한의원에 갔더니 그건 아니고, 어깨결림이라고 한다. 새끼 발가락에 눈을 쏙 빠질듯한 침을 몇 차례 맞고 탕약을 먹으니 굳었던 어깨가 풀리면서 조금 나아지는 중이다.

그런데 왜 하필 오른쪽 팔과 어깨만 아픈 걸까? 이참에 찬찬히 나의 '몸 움직임의 패턴'을 살펴봤다. 하루에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노트북 사용 '실태'를 관찰했다. 키보드를 칠 때 왼손은 거의 고정돼 있는데, 오른손은 매우 분주하다. 마우스 움직이랴, 백스페이스(내가 가장 많이 쓰는 키) 누르랴 정신이 없다. 가방은 왼손으로 드는 것보다 오른손으로 드는 것이 훨씬 편하다. 이빨도 오른손으로, 밥도 오른손으로, 청소기 밀 때도 오른손으로, 샤워할 때 비누칠도 오른손으로... 등등.

이것 참! 하나하나 따져보니 오른손과 오른팔을 너무 혹사시키고 있었다. 오른손과 오른팔을 많이 쓰다보니 등뼈도 오른쪽으로 약간 휜 듯하다. 허리도 오른쪽이 좀 뻐근하고 묵직하다. 40년이나 중노동시켰으니 오른팔과 어깨가 지금껏 버텨준 게 오히려 용하다. 내 몸이 아픈 이유는 오른쪽과 왼쪽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인 건 아닐까?



해서 그동안 편안히 놀았던(?) 왼손에게 몇가지 일을 시켜 봤다. 이빨도 왼손으로, 청소기도 왼손으로, 가방도 일부러 왼손으로만 들어 봤다. 마우스도 왼손으로 움직여본다. 처음이라 굉장히 어색하다. 오른손으로 하면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왼손은 아주 버거워한다. 시간도 배로 들고, 개운하게 일을 마쳤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40년을 게을렀던 왼손인지라 당연한 현상이겠지.

오른손을 대신해 몇 가지 간단한 일을 왼손에게 시켜보니 불편함 가운데서 색다른 깨달음을 얻는다.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 얼마나 조급하게 오른손과 팔을 휘둘렀던가? 왼손을 쓰니 일은 더디지만 마음은 느긋해지고 편안해진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 육신의 절반인 왼쪽에게 그간 너무 무지했구나'  이제 시작이지만, 내 몸의 왼쪽을 알아가는 과정이 생경하면서도 재미난다. 걸음마를 처음 배우는 아이의 느낌이랄까? 마치 미답의 땅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이를 닦을 때나 밥을 먹을 때 오른손잡이라면 왼손으로, 왼손잡이라면 오른손으로 바꿔서 사용해 보라. 한쪽으로 쏠린 삶의 무게중심이 바로잡히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리고 내 몸의 반쪽과 화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다. 명상이 뭐 별건가? 안 쓰던 쪽을 사용하면서 얻는 삶의 더딤 또한 명상이 아닐까?

(* 이 글은 필자가 오른손잡이인 입장에서 쓴 것이니, 왼손잡이 여러분의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