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 쉬블리는 짧은꼬리원숭이의 여러 집단에서 서열이 높은 원숭이들만을 따로 모아 집단을 구성해 인위적으로 서열을 조작한 실험을 수행했다. 의례 원숭이들끼리 치열한 서열 쟁탈전이 벌어졌는데, 예전에 높은 서열을 점하던 원숭이들은 서열 추락의 수모를 당해야 했다. 새로운 권력자가 출현하면서 서열 다툼은 일단락되었는데, 쉬블리가 관찰하고자 한 것은 서열의 재편 과정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원숭이들이 생리적으로 어떻게 변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서열이 낮아진 원숭이들을 검진했는데, 그들에게서 동맥경화증, 복부비만, 고혈압 등의 이상 증세가 퍼져 있음을 발견했다. 실험 조건을 동일하게 유지하려고 모든 원숭이에게 똑같은 먹이를 주었기 때문에 이러한 질병은 사회적 지위의 하락 때문에 발생한 것이 명백했다.
서열이 낮은 원숭이는 서열이 높은 원숭이로부터 언제 공격당할지 불안에 떨기 때문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더 많이 분비한다. 코르티솔은 일시적인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작용을 하나 과다 분비 상태가 장시간 계속되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우울증에 빠지며 질병인자를 활성화시키는 부작용을 발생시킨다. 따라서 서열이 낮아진 원숭이들에게서 질병이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실험이 최고의사결정자로부터 말단 사원에 이르는 위계 체계를 보유한 기업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서열이 낮은 말단 사원일수록 스트레스가 많아서 덜 건강하다는 뜻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기업의 서열 체계는 구성원들의 공식적이거나 암묵적인 합의 하에 형성되고 누구에게나 당연시되므로 말단 사원이라고 해서 특별히 스트레스를 더 받을 일은 아니다. 게다가 자신과 처지가 같은 동기들이 있으니 위안이 된다. 쉽게 말해 ‘그러려니’한다.
이 실험의 핵심 메시지는 원래부터 서열이 낮을 때가 아니라 갑작스럽게 서열이 변동될 때 문제가 야기된다는 사실이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권력을 가진 경영자가 하루아침에 임원을 말단 사원으로 내리고, 대리를 부장으로 올리는 조치를 취하면 아마 서열이 낮아진 원숭이들의 고통을 인간들도 겪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업의 위계 체계가 이처럼 마구 뒤섞이는 일은 없다. 그래서 기업 조직은 원숭이 사회와 다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갑작스레 서열이 뒤바뀌는 현상과 동일한 효과를 발휘하면서 기업 혁신의 도구로 찬양 받는 무언가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성과주의 제도들이다. 성과주의의 핵심논리는 동일한 직급과 연차라 할지라도 역량과 업적에 따라 연봉을 차별적으로 지급해야 성과를 창출하려는 직원들의 동기를 고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 잘하면 그만큼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기회의 평등’ 논리는 기업들로 하여금 성과주의를 무조건 수용하도록 강권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저기서 자주 발견된다. 남들보다 덜 받는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괴롭고, 더 받는 사람은 보상이 보잘것없다며 투덜댄다. 업무를 소홀히 하며 목표 달성에만 매달리고, 협조 요청을 무시하는 이기주의가 만연하는 등의 문제가 성과주의의 효과를 압도해 버린다. 그 이유는 성과주의 제도가 기존 서열 체계를 흔들어대면서 동일 직급에 동일 연차면 동일한 보상을 받았던 평등한 조직을 불평등한 상태로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이치로 가와치는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구성원 간의 신뢰가 미약하며 적대감이 강화된다고 말한다. 소득의 절대적 수준이 아무리 높아도 그 상대적인 차이가 크면 사망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성과를 높이려면 신뢰와 건강이 생명인데, 성과주의가 오히려 그것들을 파괴해 성과를 저하시킬 수도 있으니 아이러니다.
기회의 평등을 외친다고 해서 많이 받는 사람과 덜 받는 사람 사이의 불평등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결과의 평등을 강조하는 것만큼 기회의 평등을 무조건 추구하는 것도 큰 부작용과 해악을 야기한다. 보상의 차등폭 확대를 작금의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도깨비방망이로 여기는 기업을 종종 목격한다. 이럴 때일수록 불평등을 완화하여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위기 탈출의 진정한 해법이다.
(본 칼럼은 광주일보 2008년 12월 5일자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