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플래닝에 대한 오해들   

2009. 2. 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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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을 보면 여기저기서 '시나리오 플래닝을 통해 경영의 방향을 수시로 점검하겠다' 라든지, '시나리오 경영으로 위기를 타개하자'라는 글을 종종 접한다. 시나리오 플래닝을 전문으로 하는 나로서는 그와 같은 기사가 무척 반가울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이제 예측 관행을 버리고 드디어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구나'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 회사들이 과연 어떻게 시나리오 플래닝으로 전략을 수립했는지 알아보려고 지인들에게 연락을 취해보면, 하나같이 이런 대답이 들려온다. '금시초문인데' 라든가, '그냥 선언적인 이야기일 뿐이야'고 말이다. CEO 혼자만의 아이디어이거나, 조직에 위기감을 불어 넣으려고 시나리오라는 단어가 주는 묵직함을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소리도 들린다. 애석한 일이다.

그 중 더욱 애석한 대답은 시나리오 플래닝을 긴축경영과 동의어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시나리오에 따라 전략을 별도로 마련하여 대응하는 게 시나리오 플래닝의 본래 의미다. 헌데, 비용을 감축하고 인력을 줄이며 계획했던 투자안을 일단 보류부터 하고 난 다음에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자는 뜻으로 시나리오 플래닝이나 시나리오 경영을 언급한다.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기보다 그저 찬바람을 피하려고 몸을 움추리는 것과 마찬가지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컨틴전시 플래닝을 시나리오 플래닝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컨틴전시 플래닝은 매우 중대하고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논하는 과정이다. 반면에 시나리오 플래닝은 불확실성이 큰 환경변수들이 미래에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를 '그리는' 과정이다. 모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기법이라서 언뜻 보면 비슷한 듯 하지만, 사고의 전개가 매우 다르다.

컨틴전시 플래닝은 위급한 상황(이를 와일드 카드라고 한다)이 발생하고 난 후의 처리/대처방안에 무게중심을 두는 과정인데 반해, 시나리오 플래닝은 현재에서 미래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펼쳐질 여러가지 상황(이를 시나리오라고 한다)을 그려보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예컨데,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면 어떻게 후속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논하는 과정이 컨틴전시 플래닝이다. 시나리오 플래닝 관점에서는 공장의 화재도 불확실성을 내포한 하나의 변수로 간주될 뿐이다.

삼성전자가 3개월 혹은 6개월 단위로 경영전략을 수정하는 '시나리오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기사가 종종 나오지만, 이 또한 시나리오 플래닝이나 시나리오 경영과는 무관하다. 그런 것은 그냥 '단기 롤링 플랜'이라고 이름 지어도 된다. 거창하게 시나리오 플래닝이란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5년 정도의 장기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조직의 중대한 의사결정을 다른다. 짧게 잡아도 2~3년 후의 미래를 상정한다. 3~6개월의 단기적인 이슈는 시나리오 플래닝 관점에서는 매순간 변하는 주가 그래프에 불과하다.

그처럼 단기적인 이슈에 매몰되면 미국식 성과주의의 폐해인 단기적 마인드의 경영 관행이 해소되지 못하고 고질병으로 고착됨을 주의해야 한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발을 휘젓다가 불똥이 초가 삼간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위기가 곧 기회'라고 말하는데, 문장 속에 숨은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남들이 허겁지겁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려고 할 때, 차분하게 미래를 생각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사람에게만 위기는 기회가 된다. 단기적인 위험을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정리해 보자.

시나리오 플래닝 ≠ 긴축경영
시나리오 플래닝 ≠ 컨틴전시 플래닝
시나리오 플래닝 ≠ 단기 롤링 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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