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이 오면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나 모르는 사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람과
깨어났다 잠드는 사랑과
살아났다 깃드는 길고 긴 고요는...
다시 시작하고 싶어
그냥, 뭐든지...
갈잎 떨어진 자리에 찬 비가 듣고
비가 언 자리로 눈이 쌓인다
어둔 하늘을 어둔 눈으로 바라보며
마른 눈발을 마른 입으로 먹어보며
헐거워진 보도를 헐거워진 다리로 밟아본다
눈 위로 한 겹 어둠이 쌓인다
어둠 위로 겨울이 쌓인다
너는 나의 깊은 곳을 아파할 때
나는 너의 먼 곳을 돌아와 여기 숨었다
너는 석양을 향해 말 못할 아픔 삼킬 때
나는 속 아픈 하루하루의 겨울을 산다
너와 나는 어쩔 수 없이 이어진 채로 흔들거린다
너와 나 사이에 놓인 겨울이 흔들거린다
집으로 가며 너를 생각한다
너를 생각하며 봄을 기다린다
눈 녹은 자리에 햇빛이 내리고
햇빛 먹은 푸른 싹이 돋아나
투명한 한 자락 바람이 너와 나를 스칠 때
어디 가서 무얼 했으며
무슨 생각을 하곤 했는지 묻지 않으며
나를 맞는 네 손의 따뜻함을 기다린다
나를 안는 네 가슴의 깊은 울림을 기다린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다시 시작이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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