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기업을 꿈꾸는 분들께   

2008. 7. 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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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기업으로 자신의 경력을 바꾸려고 할 때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신이 과연 영업을 할 만한 능력이 있는지, 실패해도 이겨낼 수 있는 배짱과 용기가 있는지가 심각한 문제로 와 닿을 것이다.

성격이 본래 활달하고 주변사람들과 관계를 자연스럽게 형성할 줄 아는 관계지향적인 사람조차 1인기업으로서의 새출발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회사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의 자기표현과, 아무런 보호막 없이 야전에서 홀로 뛰면서 만들어 가는 관계형성은 차원이 매우 다르고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격이 내성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고민은 더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안온한 울타리를 뚫고 나와 1인기업으로 세상의 풍파를 홀로 견뎌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내성적인 사람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크다. 그것이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없이 받아들여야 할 상황에 따른 것이라면 스트레스는 상상하기 어렵다.

게다가 특질상, 외향적인 자보다 분석을 잘 하는 내성적인 사람들은 1인기업의 장점보다는 영업의 지난(至難)함과 경제적인 부담감 등 1인기업의 단점을 더 크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선뜻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열 가지 장점이 있어도 한 가지 단점이 해결되지 않으면 의사결정을 포기하거나 보류하곤 한다.

우리는 보통 사업하는 사람의 조건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일단 외향적이면서 언변에 능해야 하며 주변사람들을 압도할 만한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는 식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자수성가하여 성공한 사람들의 많은 수가 어떤 유형이든 나름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로버트 볼튼과 도로시 볼튼은 그들의 저서 ‘회사 속 사람의 법칙’에서 외향적인 성격이 사업가의 필수조건은 아니라고 말한다. 연구 결과,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회에서 사업가로 성공했다고 인정하는 자 중 꽤 많은 사람들이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한다.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전 사장, 다음(Daum)의 이재웅 사장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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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사업가, 즉 1인기업의 조건은 아니라는 말이다. 마티 올슨 래니는 ‘내성적인 사람이 성공한다’라는 책에서 내성적인 성격을 외향적인 방향으로 고쳐야 한다며 스스로에게 강요하지 말고, 그 성격을 효과적인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이 성공의 포인트라고 주장한다.

내성적이지만 1인기업으로 성공할 충분한 자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는 이유는 본인의 내성적인 성격을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장애’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자기비하에 가까운 이러한 인식은 스스로 팔다리를 잘라 행동반경을 억압하는 자해행위와 다를 바 없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장애를 극복하려면 내성적인 성격의 단점을 고치려고 하기 보다 본인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내 경험상,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 중에는 말만 앞서는 자들이 많다. 한번 휙 보기만 하면 모든 걸 꿰뚫어 볼 수 있는 직관이 있다는 듯이, 말로는 청산유수처럼 현재의 문제점과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떠들어 놓고는, 정작 그들이 만들어낸 보고서에는 말로 할 때는 ‘기똥찼던’ 아이디어들은 사라지고 엉성한 논리의 썰렁한 내용물로 채워져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결국 말만 앞서는 사람은 필요 없다. 그런 사람은 본인의 능력을 살려 차라리 전문강사로 뛰는 게 낫다.

그래서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 1인기업으로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내성적인 사람에게는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건과 사물과의 관계를 깊이 분석할 줄 아는 장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다. 고객에게 올바른 분석과 철두철미한 논리를 근간으로 상세한 결과물을 내놓는 능력이 외향적인 자보다 뛰어나다.

그러나 분석에 지나치게 집중하여 시간을 질질 끈다든지, 여러 가지 결과 중 하나를 선택하는 데 있어 주저하거나 요리조리 피할 구멍을 만드는 데만 집착한다든지, 내성적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단점도 분명 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한편으론…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 합니다” 처럼 말하는 참모들에게 진절머리를 느꼈다고 한다.

즉 우유부단함이 문제인데, 1인기업을 소망하는 사람은 거의 모든 걸 혼자 결정 내리고 곧바로 실행에 옮겨야 하므로, 지나친 심사숙고는 금물이다. 모든 사안을 돌다리 두드리듯 점검하다 보면 큰 회사(Big Firm)이나 다른 1인기업에게 뒤지지 마련이다. 철저한 분석능력과 함께 단호하고 명쾌한 결단력이 요구된다 하겠다.

고객에게 ‘여기가 가려울 수도 있고 저기가 가려울 수도 있다” 라고 물에 물 탄 듯 말하지 말고, “여기가 가려울 테니 이렇게 긁어라” 고 명쾌하게 말해야 한다. 고객은 그런 1인기업을 원하고 신뢰하니까 말이다. 중요한 것은 성격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열정과 끈기’에 있다. 거기에다 철저한 분석과 치밀한 논리로 무장한 단호함이 곁들여 질 때, 1인기업으로서 성공을 보장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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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단편   

2008. 7. 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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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겐 진정한 친구가 있습니까?   

2008. 7. 1.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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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았던 난제 중의 난제였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350년만에 증명해 낸 영국의 수학자 앤드루 와일즈(Andrew Wiles)는 만일 친구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류의 수렁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17세기 때 법학자이자 아마츄어 수학자인 피에르 페르마(Pierrede Fermat)가 자신이 읽던 책의 여백에다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겼다.

"3 이상의 자연수 n 에 대해서  an + bn = cn 을 만족하는 0 이 아닌 정수 a,b,c 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 명제에 대해 경이적인 증거를 발견했는데, 불행히도 이 책 여백은 그것을 다 적기에 너무 좁다"

아마 그는 그 메모가 350년간 많은 수학자들을 고민에 빠뜨릴 줄 몰랐을 것이다. 한평생 이 문제에 골몰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으며 너무 고민한 나머지 자살을 하는 수학자도 여럿 있었다.  엔드루 와일즈가 그 무모한 레이스에 동참하기로 한 것은 10살 때 도서관에서 '마지막 문제'라는 책에서 페르마의 메모를 보게 되면서였다.

그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그는 1986년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했다. 그는 논문 발표도 소홀히 하고 학회나 심포지엄에 나가지 않으면서 오로지 이 정리를 증명하는 데에 모든 시간을 집중하는 바람에 수학자이길 포기했다는 악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수차례 좌절의 순간을 맞기도 했지만, 7년째에 접어들면서 연구에 많은 진전이 있었고 특히 동료 교수인 닉 카츠(Nick Katz)의 도움을 받아 증명에 완벽을 기할 수 있었다. 그는 1993년 6월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뉴턴연구소에서 열린 강연을 통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드디어 증명해냈다고 선언했다. 언론들은 앞다투어 20세기 최대의 수학적 사건과 새로운 천재의 등장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증명에 조그만 오류가 발견되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를 칭송하던 언론은 맹렬하게 비난을 퍼부었다. 와일즈는 과거에 수많은 도전자들이 그랬듯이 하루 아침에 세계적인 천재에서 수학 사기꾼으로 추락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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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루 와일즈


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지금껏 혼자 진행해 왔던 연구 방식을 버리고 제자이자 동료 교수인 리처드 테일러와 공동작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여가 지나고 연구를 시작한지 8년 만인 1994년 9월 19일 월요일 아침, 마침내 그는 증명을 완료한다. 그는 1908년에 볼프 스켈이라는 사업가가 2007년 9월 13일을 기한으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자에게 수여하기로 약속한 10만 마르크(약 20억원)의 상금을 받게 됐다.

엔드루 와일즈의 업적은 분명 놀랍고 위대한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동료의 도움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가 6년째 되던 해까지 미궁에 빠져 있다가 증명의 실마리를 풀 수 있었던 계기는 카츠 교수의 도움으로 '수론기하학'을 증명에 활용하면서부터다.

또한 증명에 오류가 발견되어 위기에 빠졌을 때 테일러 교수와의 공동작업이 큰 힘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와일즈는 테일러로부터 격려와 충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 받으면서 언론와 주변 사람들의 비판을 견딜 수 있었고 혼자만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가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때 테일러가 틀을 깨주지 않았다면, 증명의 오류는 풀리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와일즈의 이야기를 보면서 친구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친구란 내가 가진 생각의 틀을 깸으로써 나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존재이고, 또 그래야만 진정한 친구다.

친구 = 나의 틀을 깨는 사람


역사적으로 유명한 과학자와 발명가들 대부분은 외로운 천재가 아니었다. 심리학자 키스 사이먼턴(Keith Simonton)이 2,026명의 과학자와 발명가들의 경력을 조사해 보니, 그들에게는 사심 없는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고 때로는 문제를 제기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만일 그들에게 친구라는 '틀 파괴자'와 '증폭제'가 없었다면 창조적인 발상과 노력이 현실화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시면서 유쾌한 농담을 주고 받는다. 그러면서 삶의 고독과 고단함을 친구들로부터 위안 받는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친구들 앞에서는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다. 인생살이에 윤활유가 되는 친구들과의 사교가 필요하긴 하지만,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왠지 모를 허전함이 드는 이유는 뭘까?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술친구들과의 행동과 대화는 판에 박혀 있고 너무 뻔하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단체로 모여 텔레비전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그런 식의 사교는 진정한 친구 관계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거의 제공하지 못한다. 좋은 친구 관계란, 공동으로 추구할 수 있는 도전적인 목표를 함께 갖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만일 오로지 술친구에 둘러싸여 있다면, 그들은 내 자신의 꿈과 열정에는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즐기고 위안 받고 싶을 뿐이다. 진정한 친구는 껍질 속에서 안전하게 머물러는 우리 자신의 프레임을 깨뜨려 주는 친구다. 모험과 발견을 함께 하면서 협소한 생활의 범주를 함께 넓혀갈 동반자가 진정한 친구다.

항상 우울하고 슬픔에 빠진 친구,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아서 만나기만 하면 그런 이야기를 쏟아내는 친구는 피해야 한다. 그는 나의 틀을 깨뜨리기는커녕 단단하게 조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에게 동조하다 보면 자신의 에너지만 소진될 뿐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세네카는 "항상 모든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고 한탄하는 사람은 마음의 적"이라고 말했다. 부정적인 에너지는 서로를 망친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받아야 진정한 우정이다.

친구가 많다고 좋아할 일도, 친구가 적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다. 나의 틀을 깨주는 친구 한 사람이면 족하다. 그와 함께 함으로써 나의 세계를 넓힐 수 있고 내가 성장할 수 있다면 단 한 사람의 친구라도 소중하다. 당신에게는 그런 친구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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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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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의 스위치를 발견하라   

2008. 6. 30.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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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웨이스(Jay Weiss)라는 생물학자는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눈 후에 바닥에 깔린 전선을 통해 전기 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했다. A그룹의 쥐들이 들어 있는 우리에는 전기 충격을 차단할 수 있는 스위치가 달려 있었으나, B그룹의 우리에는 스위치가 없어서 전기 충격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여러 차례 전기 충격을 가한 결과, A그룹의 쥐들은 전기 충격을 여러 차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건강 상태가 양호했다. 반면 B그룹의 쥐들은 위궤양에 많이 걸렸다. 두 그룹 모두 일정한 시간에 똑같은 양의 전기 충격을 받았음에도 건강 상태의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 A그룹의 쥐들은 전기 충격을 차단할 수 있는 스위치, 즉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제력을 가지고 있으면 더 많은 항체를 생산할 수 있어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통제력을 잃어버리면 건강이 상할 뿐 아니라, 지적 능력도 '흐리멍텅'해진다. 이번엔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봤다. 소음이 매우 심한 상황에서 피실험자들에게 어려운 문제(수학 문제 같은)를 풀게 했는데, A그룹이 앉은 테이블 위에는 소리를 끌 수 있는 스위치가 달려 있었고, B그룹에게는 그런 스위치가 없었다.

짐작했겠지만, 스위치를 가진 A그룹의 사람들이 문제를 훨씬 많이 풀었고 또 틀린 갯수도 얼마 안 됐다. 반면 B그룹의 사람들이 푼 문제 갯수는 A그룹의 1/5에 불과했고, 풀었다 해도 틀린 경우가 많았다. A그룹의 사람들이 소음이 들릴 때마다 스위치를 껐기 때문에 성적이 좋을 수밖에 없었을까? 아니다. 실제로 실험에서 A그룹의 사람들은 스위치를 한 번 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스위치를 사용하는 빈도보다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지적 능력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정신적인 건강이든, 육체적인 건강이든, 통제력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건강 = 통제력을 유지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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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스트레스는 일이 너무 많거나 난해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만, 일의 양이나 경중 때문이 아니라 그 일의 '질' 때문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스스로 계획해서 소신껏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 위에서 마구 쏟아지는 지시를 소화하느라 허덕일 때처럼 일의 '질'이 급격하게 저하되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통제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또한 일이 없어서 '놀거나' 목표를 망각해서 시간을 어영부영 보냈다고 생각되면 자괴감과 후회에 빠진다. 일이 많을 때보다 스트레스가 오히려 쌓인다. 왜냐하면 그 시간 동안 삶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일이 크건 작건 항상 목표의식을 가지고 생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일이 정말 어렵고 많아서 허덕이는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또 외부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자신이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것이 자신의 건강과 지적 능력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길이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통제력을 갖춘다는 것은 쉽지 않다. 문제는 마음가짐이다.  일의 '종'이 아니라 일의 '주인'이라는 다짐 하나만으로도 통제력은 유지된다. 어깨를 짓누르는 일의 무게에 눌리더라도, 그 속에서 자신의 '스위치'를 발견하라. 적어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하나 쯤은 있을 것이다. 무력해질 때마다 그 스위치를 작동시킴으로써 통제력을 유지하라.

그리고 어떤 분야든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그 일이 내가 소망하던 꿈과 정반대의 것이라면, 그러나 거기서 탈피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면, 적어도 그 일을 함으로써 '돈'을 벎으로써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한다는 의미라도 있는 게 아닌가?  도스토예프스키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아무런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삶의 모든 순간에는 의미가 있음을 명심하자.

빅터 프랑클은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 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건강하게 살려면, 통제력을 유지해야 하고, 통제력을 유지하려면 당신만의 스위치(목표와 의미)를 발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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