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 여학생과 다이어트   

2009. 5. 20.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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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유머로 받아주시기를... 뒷북이어도 양해를... )

대학 졸업한지 꽤 됐지만 두 달에 한번씩 보내 주는 학보(대학신문)을 읽을 때마다 학창시절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오늘은 한쪽 귀퉁이에 나온 '공대적 사고방식'이란 코너의 글이 재미있어서 여기에 올려본다. 아시는 분도 있으리라.

1. 초코 함유량에 대한 증명

초코파이에는 초코가 몇 %나 들었을까? 계산을 해보자. 초코 함유량은 다음과 같이 계산된다.

초코 함유량(%) =  100 * ( 초코 /  초코파이 )

분자와 분모에 '초코'가 공통으로 있으므로, 다음과 같이 약분된다.

초코 함유량 =  100 * ( 1  /  파이 )

파이는 곧 π 이므로,

초코 함유량 = 100 * (1 /  π)  ≒ 32 %

내가 알기로는 32%는커녕 1%도 안 되어 보이던데....(초코파이의 초코렛은 합성 초코렛이라는...)  이 문제는 사실 예상 가능한 해법이므로 재미가 덜하다. 하지만 다음의 문제 해법을 보고 나는 소위 '뿜고' 말았다! (나만 몰랐을지도...  -_-; )


2. 다이어트를 바라보는 공대 여학생의 시선

공대에 다니는 여학생들은 다이어트(diet)를 어떻게 생각할까? 다이어트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느냐에 따라 성패 여부가 결정되므로 시간의 함수이다. 즉 t의 함수이다. 그러므로,

f(t) = diet

다이어트를 진행하는 매순간 극심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함수 안에 숨어 있다. t 에 대해 미분하면, 매순간 느끼는 고통이 어떤 수준인지 알게 된다! 보라! 거의 죽음에 이르는 것과 같다!

f'(t) = die

하지만 이런 극심한 고통을 이겨내고도 살이 다시 찌는 요요 현상이 발생한다. 그 이유는 f'(t)를 적분해 보면(즉 다이어트를 계속 진행하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 f'(t) dt = diet + C

죽음에 이를만큼의 고통을 겪지만 다이어트 후에 다시 C 만큼 더 찐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답고 슬픈 증명인가!

참고로 C가 음수일 경우도 있다고 항변한다면, 그사람은 공대 출신일 확률이 90% 이상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통계가 있다고 한다.


(보너스). 공대 남학생, 이 세마디만 할 줄 알면 된다.

   1) 밥 먹었냐?
   2) 숙제했냐?
   3) 저 여자 예쁘다.

공대생을 폄하하는 여러 가지 말이 있다. 그 중 가장 흔한 말은 '공돌이'... 공부만 할 줄 아는 건조한 청년이란 이미지로 공대생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왜들 그러십니까? 공대생들도 뜨거운 가슴과 펄떡이는 근육을 가졌다구요! 그저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평범한 대학생으로 봐주길 바란다는 글로 신문은 끝맺는다. 나도 십분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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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09. 5. 2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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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벽


그는 갔다 
내 빈 터에 쉬 헤아릴 수 없는 이슬이 쌓이고
늘 기다리는 느티나무엔 마른 울음만 쌓이고
그 사이 별들이 잎처럼 스러졌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의 길은 그와 함께 닫혔고
새벽빛이 까무끄름 눈 뜨듯
나는 다만 새벽을 열었다
차마 기억만은 남지 말기를 바라며
그와 나 사이에 행복한 안녕을 새겼다

씻고 또 씻어도
내겐 새벽냄새가 났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기억이었다
새벽을 사이에 두고
그와 내가 여윈 별자리로 이어져
이슬에 젖은 머리칼 서로 쓸어주며
슬며시 웃을 수 있었다면...

새벽의 강가
순한 바람 한자락에도 물러 앉는 안개 속으로
그가 점되어 사라질 때
새벽의 적요(寂寥)는
잠시 숨을 참았다

나와 그, 잠든 사이로
새벽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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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두뇌 유출, 심각하다   

2009. 5. 1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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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학생의 64%가 고시나 의대 편입을 고민 중이라는 뉴스를 접했다. 안타깝다. 자신의 진로야 개인의 자유지만, 국가 차원에서 보면 어렵게 뽑아서 육성한 미래의 과학도가 유출되는 꼴이니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과학자가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는 정도가 얼마나 될까? 반대로 의사나 판검사가 국가의 부(쉽게 GDP라 하자)를 얼마나 높일 수 있을까? 법조계나 의료계에 있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나는 판검사 혹은 의사의 기여도는 과학자의 그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은 우리가 고도의 문명을 향유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부산물로 지구온난화와 환경 파괴라는 그늘도 함께 가져왔지만, 그런 문제 역시 과학만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한 국가의 성장동력은 과학기술이라는 근력에서 나온다. 의술이나 법 정의는 사회를 안정화하는 도구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의술과 법 정의는 국가 발전의 버팀목이지만 앞서서 선도하는 엔진은 아니라는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KAIST 학생들의 '이탈'은 매우 가슴 아프다.


어느 날인가, 모교의 후배가 상담을 하고 싶다며 나를 만났다. 학부를 졸업하고 의학전문대학원을 가야할지, 아니면 학부 전공을 살려 취업이나 진학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했다.

그에게 과학자나 엔지니어의 길을 포기하지 말라 조언하고 싶었지만, 나는 비겁했다, "좋은 기회가 있다면 의학전문대학원으로 가라"는, 지극히 현실적인(아니 속물적인) 충고를 했다.

나중에 과학의 길을 택한 그가 다시 찾아와서 내게 비난 섞인 푸념을 늘어놓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나 역시 과학의 길을 포기하고 경영학을 택하지 않았던가? 그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해주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과학이 대접 받지 못하고 과학자가 업신 여김을 당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울하지만, 반성하고 빨리 바로잡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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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부진한 프로젝트, 인력 추가하면 더 나빠져   

2009. 5. 19.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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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람이 날 정도로 잘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있는가 하면, 지지부진하고 맥빠지는 프로젝트가 있기 마련이다.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프로젝트가 있는가 하면, 손해나 끼치지 않고 제발 빨리 끝나주기를 바라는 프로젝트가 있기도 하다. 컨설팅 프로젝트이건, SI 프로젝트이건, 마찬가지다.

일정대로 진행되지 않고 지지부진한 프로젝트를 가능한 한 문제 없이 끝내기 위해 프로젝트 매니저는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는데, 가장 많이 '애용'되는 해결책이 인력을 더 투입하는 방법이다.

원칙대로라면, 지지부진함의 원인을 면밀히 따진 후에 꼭 필요한 경우에만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인력의 추가 투입은 고객(클라이언트)으로부터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구나'라는 인정을 쉽게 받는, 소위 'show-off 효과'가 크기 때문에 PM 입장에서 매우 매력적인 방법이다.

'몇 명 더 투입한다고 해서 나쁠 게 있겠어?'라며 인력의 추가 투입이 적어도 현재의 문제를 더 악화시키지는 않으리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해 본 결과, 문제를 해결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는 경우가 잦았다.

업무의 양이 많아서 프로젝트가 느리게 진행된다면야 인력의 추가 투입이 최고의 전략이다. 사실 프로젝트에서 가장 풀기 쉬운 문제는 업무의 양이 많다는 이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유가 더 많은데, 이럴 경우 인력의 추가 투입은 프로젝트의 공전 속도(진행 속도가 아니다)를 더욱 빠르게 할 뿐이다.

유능한 PM이라면 프로젝트가 단순한 업무 수행이 아니라, 매순간 협상과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프로세스로 인식해야 한다. 공전되는 대개의 프로젝트는 의견의 충돌, 약속의 파기, 협상의 결렬 등 협상과 합의 과정의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므로, PM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사항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 멤버 사이의 의견 차이를 좁혀 합의를 이끌어내고 약속이 이행되도록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다.

참여하는 이해관계자의 규모가 2~3명 정도라면 PM의 관리 부하(load)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멤버가 하나씩 늘 때마다 그 load는 빠르게 증가한다. 결코 선형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

프로젝트 이해관계자(클라이언트, 멤버 등)의 규모가 2명이면, 그 사이에 존재하는 '링크'는 1개다. 다시 말해, PM이 협상과 합의를 주재하고 관리해야 할 '관계'가 오직 하나라는 말이다. 3명이 되면 3개의 링크가 형성된다. 4명이면 6개, 5명이면 10개로 늘어난다. 즉 프로젝트에 N명이 관여하면 N(N-1) / 2 개의 링크가 만들어진다. 이를 메칼프의 법칙이라 부른다.

그래프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짙은 파랑색 곡선이 늘어나는 실제 관리 로드(즉 링크의 수)이고, 분홍색 직선은 선형적으로 관리 로드가 늘어나리라고 잘못 기대하는 경우를 나타낸다.


1명의 인력의 추가로 투입되면 PM의 관리 로드(load)는 1단위 만큼 증가하지 않고 급수적으로 증가함을 이 그래프는 보여준다. 고객에게 쉽게 어필되는 인력의 추가 투입 방법이 오히려 프로젝트를 더 망치는 지름길일지도 모름을 깨우치게 한다.

인력이 1명 더 들어오면 그가 프로젝트에 적응하기 위한 기간이 필요하다. 경험적으로 중간에 프로젝트에 들어온 컨설턴트는 지금까지 진행된 프로젝트 일정의 1/3 내지 1/2 정도를 온전히 프로젝트에 적응하는 데 소요한다.

시작된지 3개월된 프로젝트라면 그에게는 1~1.5개월의 시간이 적응에 필요하다는 말이다. 제대로 일할라치면 어느 새 프로젝트 종료일이 다가오고 만다. 인력의 투입이 오히려 '비(非)경제'를 부추긴다.

지지부진한 프로젝트를 개선하려면 인력을 추가로 투입하는 방법보다 합의와 약속 이행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돌멩이를 제거하는 조치가 우선이다. '링크'의 개수를 줄임으로써 꼭 필요한 링크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방해하려는 고의가 있든 없든, 돌멩이가 고객이든 프로젝트 멤버이든 방법을 찾아야 할 의무가 PM에게 있다. 이래저래 PM은 참 중요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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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니오'에서 발견하는 동서양의 차이   

2009. 5. 1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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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랬겠지만, 나도 영어를 처음 배우면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우리 땐 중학교에 가야 비로소 영어를 배웠는데(물론 알파벳 정도는 초등학교 때 다 외우지만), 12년 동안 한글에 익숙한 언어 생활에 길들여져 있던 까닭인지 영어가 어렵기도 하고, 생경한 탓에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I am Tom. I am a boy... 식으로 시작되는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 내용 중에 유독 내가 어려움을 겪었던 표현은 부정의문문이었다. 왜냐하면 부정의문문에 Yes로 대답해야 할지, No로 대답해야 할지 매번 헛갈렸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영어에서 부정의문문으로 물으면 다음과 같이 대답해야 한다. 

Aren't you a boy?
--> (boy가 맞을 때) Yes, I am a boy.
--> (boy가 아닐 때) No, I am not a boy.


영어선생님은 부정의문문에 답할 때는 Yes가 '예'가 아니라 '아니오'이고, 'No'는 '예'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다음과 같이 해석해야 한단다.
 
너 남자 아니니?
--> (남자일 때)          아뇨, 전 남자인데요.
--> (남자가 아닐 때)   예, 전 남자가 아니에요.

난 그 설명에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Yes는 항상 긍정의 뜻인데, 왜 부정의 뜻으로 변하지?' 영어선생님은 영어의 표현과 우리말과 다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Yes와 No의 뜻을 뒤바꿔서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여전히 헛갈려하는 (나를 포함한) 학동들에게 '그냥 그런가부다' 생각하라고까지 하셨다.

(사진출처 : http://imagebingo.naver.com/album/image_view.htm?uid=lunaticjoey&bno=11897&nid=1926 )


이제 영어식 표현이 부정의문문에서 그렇게 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부정의문문에 답을 할 때마다 잠시 머뭇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여전히 불편하다.

물론 내가 영어에 서툰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타인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데에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위의 영어 문장에서 답자(答者)의 문장을 잘 살펴보면 '나'가 중심임이 나타난다. '내가 boy니까' 긍정의 표현인 yes가 무조건 들어와야 한다. 질문자가 긍정의문문으로 물었든, 부정의문문으로 물었든 상관없이 '내가 boy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문제다. 또한 문장 자체가 모순이 없도록 만들려면 'Yes, I am a boy'라고 답해야 한다. 'No, I am a boy'는 논리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반면, 한글 문장은 질문자와 답자 사이의 '관계'와 소통을 더 중시한다. '너 남자 아니니?'라는 질문과 '아뇨, 난 남자에요'라는 답 사이에는 '이중 부정'의 메카니즘이 존재한다. '아니니?'에 대해 '아뇨'이므로 '예'의 뜻이, '아니니?'에 대해 '예'이므로 '아니오'란 뜻이 질문자에게 전달된다.

한글 대화에서는 '아니니?'에 대해 '아뇨'라고 말함으로써 상대방의 오류를 바로잡아주고, '아니니?'에 대해 '예'라고 말함으로써 상대방의 옳음에 맞장구를 쳐준다. '아뇨, 전 남자에요.'란 문장 자체는 영어의 관점으로 보면 논리적으로는 틀린 문장이지만, 질문자를 위해 논리의 오류쯤은 포기하는 배려와 소통의 의지가 느껴진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배우는 일이 어려운 까닭은 바로 이와 같이 언어에 내재된 '컬처코드' 때문은 아닐까? 영어 완전정복을 외치는 수많은 강사들이 '묻지고 따지지도 말고' 습관이 되도록 무조건 외우라고 조언하는데, 그 말이 틀리지 않은 듯하다.

어찌됐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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