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와 친하십니까?   

2009. 6. 17. 09:52

살면서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합니다. 개인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조직이나 공동체의 문제 등 하루에도 갖가지 문제에 맞닥뜨리며 삽니다. 마치 누군가가 매일 무한대의 크기를 가진 문제은행에서 문제를 한움큼 꺼내 인류를 향해 뿌려대는 것만 같습니다. 그것이 사소하든 심각하든 우리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주어질 겁니다.

문제(problem)라는 단어는 어떤 뜻일까요? 개인마다 차이가 좀 있겠지만 이 단어를 듣는 순간 아마 여러분의 뇌 속에 있는 편도체가 움찔하며 반응할 겁니다. 아몬드만한 크기의 편도체는 불안함과 공포를 인식하여 그에 따른 호르몬을 분비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심장이 강하게 박동하고 소름이 돋고 팔다리가 잔뜩 긴장하는 이유는 편도체의 작용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급하고 위험한 상황이 아닌데도 '그것이 참 문제야'라는 말을 듣는 순간 편도체가 반응을 보입니다. 이유는 문제라는 말이 뇌 속에 강렬하게 심어 놓은 의미 때문입니다. 문제는 현상황에 대한 도전이자 위협이고, 그것을 풀지 못하면 자칫 위험에 빠질 거라는 '의미 발전'의 연쇄반응이 자동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 '문제는 불편하고 나쁜 것이므로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잠정적인 정의를 내립니다.

제가 잘 가는 스타벅스를 그려봤습니다. ^^ 문제에 직면했을 때 찻집에 앉아 차분히 생각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지요.


문제(problem)라는 단어의 어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이런 '정서적인' 정의와는 다른 의미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스어로 문제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어 'problema'는 단순히 '앞에 던져진 것'을 뜻합니다. 주의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음을 나타낼 뿐, 반드시 풀어내야 할 '나쁜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내 앞에 던져진 꾸러미 안에 금덩어리가 들었을지 모르니까요. 

부정적이고 불편한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휴우, 이걸 어떻게 하면 좋아'라며 비관적인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해서 발만 동동 구르면 꾸러미에 감히 접근할 용기가 생기지 않을 뿐더러 계속 지체하다가는 금덩어리가 든 꾸러미를 누군가가 낚아채갈지 모릅니다. 또한 마음이 급해져서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해결책을 실행하다가 낭패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내 앞에 던져진 저 꾸러미 안엔 뭐가 들었을까 궁금증을 가지고 접근할 때 꾸러미를 묶은 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공포와 불안감에 빠지려는 스스로를 다독이고 의식적으로 호기심을 발동해 보면 어떨까요? 이 문제는 왜 내게 던져졌을까, 문제의 내용이 정확히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문제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누그러지고 객관적으로 차분히 문제를 바라보게 됩니다. 문제를 타인의 문제로 인식하는 태도도 도움이 되죠.

'반드시 문제를 멋지게 해결하고 말테야' 라고 의욕을 앞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못 풀어도 좋으니 한번 알아나 볼까?' 라고 가볍게 생각하면 의외로 문제가 쉽게 풀립니다. '문제를 해결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 'solve'는 라틴어인 'solvere'에서 유래했는데, '바로잡다, 없애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풀어 헤치다'라는 뜻입니다. 그저 꾸러미를 열어 뭐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solve입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라는 말은 곧 문제 정의가 문제 해결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 문제에 직면했을 때 불안감으로 인해 해결책을 먼저 쏟아내기보다는, 문제 꾸러미의 내용물이 뭔지 먼저 뜯어보고 살펴봄으로써 '아, 이게 정확한 문제구나'라는 '문제 정의'가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 문제가 뭔지 알지 못하고는 문제를 풀 수 없고, 풀었다 해도 잘못된 해결책이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처한 문제 중에 하나를 생각해 낸 다음 포스트잇에 한 문장으로 써 보십시오. 그것을 모니터 귀퉁이 같이 눈 가는 곳에 붙여 놓아 보세요. 처음엔 볼 때마다 껄끄럽고 짜증나고 불안하지만 좀 지나면 그 문제가 친구처럼 익숙해집니다. 그 순간이 바로 문제를 풀 적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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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Favicon of http://www.heybears.com BlogIcon 엉뚱이 2009.06.17 10:12

    도인이 되어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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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9.06.17 10:41 신고

      도인까지는 아니지만 도인의 마음을 빌릴 필요는 있겠죠. ^^ 감사합니다.

  2. Favicon of http://snowall.tistory.com BlogIcon snowall 2009.06.17 10:34

    "이 문제는 쉽다"라든가, "이 문제는 풀 수 있다"는 것이 힌트인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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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9.06.17 10:41 신고

      좋은 사례 감사합니다. 마틴 가드너 책은 대학 다닐 때 재미있게 읽었죠. ^^ 좋은 책입니다.

  3. Favicon of http://amotid.com BlogIcon AmotiD 2009.06.17 17:19

    문제를 문제 삼는군요.ㅎㅎ
    우리네 삶의 모든 것이 문제로 보일때가 있습니다.
    전요즘 마음을 비우는 작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를 자주 접합니다.
    문제는 내가 무엇인가 원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서 때론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좋은글 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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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9.06.17 17:43 신고

      혹시 주위에 '문제'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분이 있으신지요? ^^
      강박관념과 불안감을 누르고 마음을 비우는 자세가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가져야할 마인드라는 말씀 옳습니다. '언제 이걸 풀어?'라며 낙담하기보다 차근차근 접근하면 문제가 어느 순간 풀리기도 하죠. 문제해결도 '시작이 반이다'란 격언이 적용돼죠. 댓글 감사합니다. ^^

  4. Favicon of http://www.wizmusa.net BlogIcon wizmusa 2009.06.17 21:56

    음... 그림에 관한 지식은 별로 없지만 왠지 고흐 같은 색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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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9.06.17 22:45 신고

      보잘것없는 제 그림에 고흐라는 위대한 화가를 거론해 주시니 뭄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죄송하지만 넌센스인 것 같습니다. ^^. 그저 감사합니다.

  5. 뭇동 2009.06.19 14:17

    Problem과 solve의 뜻, 잘 배웠습니다.
    위 낱말들은 영어이고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옛 그리스 사람의 생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나 해결이란 말은 한자어. 근대에 들어 서구문물을 익히면서 서양어의 번역어로서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면, 한중일 어디서부터 먼저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리스 못지않은 깊은 뿌리가 있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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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9.06.19 17:23 신고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문제의 한자어는 '무언가를 묻는다'라는 뜻이므로 그리스어 어원과 맞닿아있다고 생각되네요. 해결은 '풀고 매듭짓다'이므로 역시 solvere의 뜻과 비슷하구요. ^^ 어원을 알면 우리에게 굳어진 고정관념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