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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문제(Problem)의 어원을 다루었습니다. 그리스어로 문제란 '앞에 던져진 무엇'이라는 뜻이므로 그것으로부터 공포나 불안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했었죠. 하지만 그렇다해도 문제가 던져졌을 때 불편한 마음이 솟아오르는 것까지는 억제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마치 '나 좀 풀어봐'라는 듯이 유혹하는 불량배처럼 느껴집니다.
문제해결의 관점으로 문제를 정의 내리면 다음과 같은 식으로 표현됩니다.
문제 = 기대하는 상태 - 현재의 상태
만약 덜컹덜컹 요란한 소리를 내는 오래된 차를 몰고 길을 가는데 빨간 외제 스포츠카가 굉음을 내며 내 앞으로 순식간에 끼어들었다가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고 해보죠. 어떤 기분이 듭니까? 일단 매너 없이 끼어든 그 차의 주인에게 욕을 퍼붓고 싶겠죠. 화가 좀 가라앉으면 그 스포츠카와 초라한 내 차를 비교하게 됩니다. '아, 나도 저런 멋진 차를 타고 다니면 이런 꼴 안 당할 텐데...'라고 한탄합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문제가 튀어 나옵니다. 멋진 스포츠와 낡은 중고차의 차이가 문제를 야기합니다.
학교 다닐 때 치렀던 수많은 시험 문제도 이런 정의와 부합됩니다. '기대하는 상태'란 '그 문제를 맞혀 점수를 얻는 것' 혹은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기대'이고 '현재의 상태'란 '나의 지식과 스킬'이니까요.
문제를 이렇게 정의 내렸다면, '문제를 해결한다'는 말은 문제의 크기를 0으로 만드는 걸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기대하는 상태와 현재의 상태를 동일한 수준으로 맞춘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문제해결의 해법은 다음처럼 3가지로 정리되겠죠.
문제해결법 1) 기대하는 상태를 낮춘다.
문제해결법 2) 현재의 상태를 높인다.
문제해결법 3) 문제를 무시한다.
모든 문제해결법은 이 3가지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빨간 스포츠카를 원하는 마음을 억누르고 '나에겐 저 차는 과분해. 이 차로 난 만족해'라고 스스로를 다독히면서 기대 수준을 낮추면 문제가 0으로 수렴되어 해결됩니다. 반면, '적금을 깨서라도 당장 스포츠카를 사고 말겠어!'라는 결정을 과감하게 행동에 옮기면 역시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 두 개의 문제해결법은 동시에 적용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에 적은 3번째 '문제를 무시한다'도 해결법 중 하나죠. 말하자면, 답안지를 백지로 내고 마음 편히 엎드려 자버리는 대담한 방법입니다. 스포츠카 때문에 갈등하는 자기 자신을 이성의 힘으로 무시해버리면 문제를 사라집니다. 허나 마인드 컨트롤이 능하지 않다면 시시때때로 받는 '뽐뿌질' 때문에 문제는 불사신처럼 살아납니다. 그다지 바람직한 해결법은 아닙니다.
문제해결에는 항상 다음과 같은 제약조건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제약조건 1) 기대하는 상태를 낮출 수 없다.
제약조건 2) 현재의 상태를 높일 수 없다.
스포츠카를 갖고 싶다는 열망(이를 '뽐뿌 받았다'고 속되게 말하죠)이 너무 강해서 낡은 중고차로 만족하기가 매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은행잔고가 깡통소리만 요란하거니와 앞으로 돈 나올 구멍조차 없다면 스포츠카는 언감생심일 겁니다.
이 두 개의 제약조건은 대개의 경우 동시에 나타나서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주범입니다. 따라서 제약조건을 없애거나 약화시키는 방법이 해결책의 단초가 되기도 합니다. 돈이 없어서 스포츠카를 살 수 없다는 제약조건은 은행이나 부모님으로부터 돈을 빌리거나 혹은 훔침(?)으로써 제거할 수 있지요.
문제를 열심히 적어 봅시다!
다 아는 바를 시시콜콜 설명한 느낌이 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문제의 정의를 올바르게 알고 해결법과 제약조건을 먼저 생각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첫째, 이런 과정은 문제에 대한 불편한 감정(공포, 불안, 초조, 짜증 등)을 상당 부분 누그러뜨려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둘째, 나를 둘러싼 문제의 실체를 명확하게 이해하여 해결책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문제가 발생했음을 머리 속으로만 끙끙거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직면한 문제가 무엇이든지 흰 종이를 앞에 놓고 직접 손으로 써 보십시오.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현재의 상태가 어떤지 써보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감정을 상당 부분 잠재웁니다. 그 다음, 문제해결법의 방향(기대수준을 낮출지, 현수준을 높일지)과 제약조건을 찬찬히 궁리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문제의 인식이 문제해결에 가장 중요한 첫단추입니다. 잘못된 문제 인식은 나중에 '어, 이 산이 아닌가벼' 하며 쓸데없이 노력을 낭비하게 만든다는 점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문제는 인식돼야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덧붙임 : 현 시국의 문제를 '기대하는 상태'와 '현재의 상태'로 인식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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