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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에게서 떠나지 않는 의문 하나가 있습니다. 마음 속에서 자꾸 떠오르는 질문이지만 어떤 답을 내려야 할지 몰라서 미궁에 빠진 듯한 느낌입니다. 두 개의 입장이 서로 등을 돌리고 앉아서 제가 빨리 판단 내려주길 재촉하는 형국이랄까요?
제 안에서 싸우는 의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경영 컨설팅과 진보적 신념이 병존할 수 있을까?
경영 컨설팅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기업이 처한 문제를 진단하여 바람직한 해결방법을 알려주는 자문 서비스입니다. 요즘엔 기업에서 꺼려하는 업무를 대신 수행해 주는 '아웃소시(Outsourcee)'로 그 위상이 낮아진 면이 없지 않지요.
경영 컨설팅의 고객은 누구일까요? 당연히 컨설팅을 의뢰한 기업이라 생각하겠지만, 구체적으로 따져 들어가면 다릅니다. 컨설팅을 발주하고 컨설팅 결과의 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누굴까요? 바로 CEO를 비롯한 경영자들입니다. 좁은 의미의 고객을 '돈 주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경영자들이 바로 '실질적인' 고객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경영 컨설팅 서비스는 경영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근로자나 노조 편에 서서 컨설팅을 수행하는 사례는 지극히 이례적으로 여겨지죠. 혹자는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업의 문제를 잘 해결하려면 어떤 입장에도 치우침 없이 객관적인 관점을 견지해야 옳지 않겠나?"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컨설팅 결과의 수용 여부를 결정하고 그에 따라 Fee를 지불할 권한이 경영자들에게 있으니, 컨설팅 업체는 은연 중(혹은 노골적으로) 경영자 편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노조가 의뢰하거나 요구한 컨설팅 프로젝트일지라도 돈줄을 경영자들이 쥐고 있기 때문에 노조의 입장을 대변하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사회과학엔 문외한이라 진보의 정확한 개념을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저 기업(경영자) 입장보다는 근로자 입장을 대변하고, 승자독식보다는 평등을 강조하며, 성장보다는 분배와 삶의 가치에 초점을 맞추는 가치가 진보라고 어렴풋이 짐작할 뿐입니다.
기업 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신자유주의가 부르짖는 기업 경영의 무한한 자유보다는, 도덕적 해이와 부조리를 제도 차원에서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진보 이념인 듯합니다. (틀리면 지적해 주십시오.)
딱 들어맞지 않지만, 제가 지닌 신념의 스펙트럼은 진보 이념과 대개 일치합니다. '핵발전(원자력 발전)'을 지지한다는 측면에서 '진보주의(이런 말이 있나요?)'와 배치되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합리적 진보주의자라 여깁니다.
여기서 저의 심적 갈등은 오래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경영자의 입장을 대부분 대변해야 하는 컨설턴트 vs. 진보적인 신념을 가진 컨설턴트. 물과 기름이군요. 어렵습니다.
어떤 분들은 '사회적 기업'이나 사회단체들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허나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규모를 갖춘 사회적 기업은 별로 없습니다. 있다해도 아직 영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서 컨설팅까지 의뢰할 단계는 사실 아니죠. 마켓 사이즈가 작아서 컨설팅 업계 입장에서는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결부되면 경영자 입장을 대변하는 컨설팅 시장이 훨씬 매력적입니다.
갈피를 잡기 어렵습니다. 진보적 신념을 택한다면 컨설팅을 떠나든가, 사회적 기업이나 '약자'입장을 대변하는 재야 컨설턴트로 포지셔닝하든가 해야겠지요. 경영자를 대변하는 '실용적인' 컨설턴트로 진로를 굳힌다면 신념의 변절로 인한 뻔뻔함을 각오해야겠지요.
저의 내적 갈등이 앞으로 얼마나 계속될지 모르겠습니다. '비가 오면 짚신 장수가 한숨 쉬고, 날이 좋으면 나막신 장수가 한숨 쉰다'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박쥐'처럼 내내 살지, 아니면 확실하게 입장을 정리하든지 결정을 내릴 시기가 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두고보면 알겠지요. ^_^
( 두고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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