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희망하면 문제가 해결되나요?   

2024. 5. 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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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긍정적 사고방식은 말 그대로 '긍정적인 것'이라고 여깁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긍정의 마인드를 가지면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면 그 어떤 어려움도 '능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죠. 그도 그럴것이, 수많은 연구들이 긍정적 사고방식의 효과를 증명했습니다. 창의력을 3배 증진시키고 피로감을 덜 느끼게 하며 결과적으로 생산성을 13%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니까요.

또한 긍정적 사고방식을 탑재한 사람일수록 리더십 스킬이 남들보다 우수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 역시 더 낫다는 이야기도 상식처럼 돌아다니죠.

하지만 긍정적 마인드가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경계해야 합니다. 문제가 벌어졌다면 그 문제를 즉각 해결해야 하는 게 당연한데도 웃으면서 "괜찮을 거야. 큰 문제가 아닐 거야. 언젠가 나아지겠지"라고 스스로에게 혹은 동료들에게 말하는 사람이 여러분 주변에 하나쯤 있을 겁니다(만약에 없다면, 여러분 본인일지도). 그가 여러분에게 강조하는 긍정주의는 약이라기보다 독이 아니던가요?

약이 아니라 독인 이유는 희망을 갖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할 수 있다'란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얼굴 붉히고 서로 논쟁하며 괴로운 표정으로 해결책을 궁리하고 시행착오로 좌절을 거듭한다 해도 해결책이 나올까 말까인데, 그냥 웃으라니요!

 


만약 여러분 주위에 이렇게 독이 되는 긍정주의를 강조하거나 설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멀리하는 게 여러분 정신건강에 좋을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아보냐고요?

<Reimagine Inclusion>이란 책의 저자인 미타 말리크(Mita Mallick)는 다음의 3가지 중 하나 이상에 해당되는지 판단해 보라고 권합니다.

1. 그 사람 주위에는 '예스맨'들만 있다
긍정적 사고를 강요하는 그에게 누가 'No'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뭐가 됐든 'Yes' 혹은 'OK', '당신 말이 맞습니다'라고 대답하겠죠. 의심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을 겁니다.

2. 칭찬이 과하다
별것 아닌데도 과도할 정도로 칭찬하는 것도 독이 되는 긍정주의의 모습입니다. 물론 칭찬은 '일반적으로는' 좋은 것이지만, 상대방을 '조종(manipulate)'할 목적으로 하는 칭찬에는 조심을 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이 일을 할 사람은 너밖에 없어. 난 너를 믿어!"

이 말은 동기를 불어넣으려는 말이긴 하지만,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이런 말을 습관적으로 던진다는 것은 상대를 옳아매려는 의도일지 모릅니다.

3. 어떤 상황에도 웃으라고 말한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문제가 터져서 힘든데 "얼굴 찡그리지 마라. 좀 웃어라. 그렇게 신경 곤두세운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잘 될 거야"라며 전혀 도움 안 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의 긍정주의는 약이 아니라 독입니다. 앞뒤 안 가리고 상대방의 감정을 통제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죠.

긍정주의는 밝게 웃으며 희망을 가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저절로 잘 되리라 기대하는 것도 아니죠. 올바른 긍정주의는 '끊임없는 행동과 대처가 언젠가는 미래를 유리한 방향으로 돌려놓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행동이 전제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긍정주의죠. 그렇기에 긍정주의의 반대말은 부정주의가 아니라 '행동 없는 긍정주의'입니다.

행동 없는 긍정주의를 시전하는 사람이 여러분 주변에 있다고요? 오히려 그를 깔끔하게 손절하는 것이 여러분의 긍정적 삶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여러분이 비로소 '행동에 몰두'할 수 있을 테니까요.


*참고기사
https://hbr.org/2024/05/does-your-boss-practice-toxic-positi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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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많은 연봉을 받는 방법   

2024. 5. 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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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협상을 벌일 때 어떤 사람은 '대략 어느 수준의 연봉을 받고 싶다'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타사 동일직무의 연봉을 언급하면서 정확한 숫자로 희망연봉을 제시합니다. 아마 후자보다 전자의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은데요, 대부분 조직에서는 ‘희망연봉을 말해보라’는 말을 듣고도 자신감 없이 뭉뚱그려 대답하곤 합니다. 

여러분의 모습이 바로 이렇다면 앞으로 연봉 협상에 임할 때는 가능한 한 ‘끝자리’까지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점을 기억해 두면 좋겠네요. 이는 실험으로 증명된 것이니 믿어도 됩니다.

연구자는 280명의 참가자들에게 보석가게 주인과 보석값을 놓고 흥정하는 가상 상황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가게 주인이 보석 값으로 20달러, 19달러, 21달러를 각각 제시할 경우, 참가자들이 얼마의 금액을 역제안할지 보고자 했죠. 

 



그랬더니, 19달러나 21달러를 제시했을 때보다 끝자리가 0으로 끝나는 ‘20달러’를 제안 받았을 때 참가자들은 깎아 달라고 더 많이 역제안을 했습니다. 뒤이어 실시된 실험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커피 자판기 가격으로 9, 10, 11달러를 제시했더니 참가자들은 9달러나 11달러일 때보다 10달러를 제안 받았을 때 더 깎아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 실험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정확한 숫자’가 뭉뚱그린 숫자에 비해 강력한 심리적 ‘닻’을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닻 효과(Anchor Effect)’란 처음 제시된 수치에서 사람들의 사고가 멀리 달아나지 못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인데요, 끝자리까지 자세한 숫자(가능하면 소수점 아래자리도 명시된 숫자)의 닻 효과가 훨씬 크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뭉뚱그린 숫자가 상대적으로 가격 조정을 크게 받을까요? 추측하건대 숫자가 구체적이지 않으면(예를 들어 3,000만원), 금액을 제안 받은 사람은 제안자가 원래의 값(이를테면 2,786만원)을 그저 끌어 올렸거나 정보를 숨긴다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희망연봉을 제시할 경우에는 4,500만원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4,450만원이라고 말해야 좋을 겁니다. 밑져야 본전이니 뭉뚱그린 숫자보다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하기 바랍니다. 이 글을 읽고 높은 연봉으로 계약을 하게 됐다면, 저에게 커피 한 잔 사시고요.


*참고논문
Mason, M. F., Lee, A. J., Wiley, E. A., & Ames, D. R. (2013). Precise offers are potent anchors: Conciliatory counteroffers and attributions of knowledge in negotiations.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9(4), 759-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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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를 과감히 포기해야 할 때는 언제일까요?   

2024. 5.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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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적인 목표를 달성하려고 열정을 다하는 것은 자신의 경력을 발전시키는 데 아주 필수적인 요소죠. 인내하고 끈기를 유지하는 것은 목표 달성의 원동력입니다. 하지만 목표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한다면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목표 달성 자체보다는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얻는 성취감과 효능감이 더 중요한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을 탓하게 되고 좌절감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설정한 목표를 '이제는 포기해야겠다'라고 느낀다면 다음의 5가지 기준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하는지 잘 살펴보세요. 

 

 


1. 본인이 설정한 목표가 아닐 때
목표가 '나의 것'이 아니라는 신호는 목표를 말할 때마다 '해야 한다.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문구를 읊는 것입니다. 의무감 때문에 목표를 세웠다면 한발짝 물러나서 그 계기와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세요. 타인들을 기쁘게 하려고 혹은 그들로부터 버림받지 않으려고 목표를 설정했다면 과감히 제로 베이스에서 그 목표를 뜯어보세요.

2. 목표로 인해 자주 고통 받을 때
목표 달성 과정에서 긴장감과 두려움이란 감정은 당연히 정상적인 것이지만, 적당한 수준 이상으로 스트레스 받고 좌절감을 느낀다면 목표를 재고해야 합니다.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잠을 이루기 어렵다면 즉각 그 목표를 폐기해야 해요.

3. 결과에 집착할 때
원하는 연봉 수준에 도달하거나 높은 직책을 얻는 것에 관심을 많이 둔다면 그 과정에서 얻는 스킬과 역량은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오류에 빠지고 말아요. 어떻게 달성하는가보다 무엇이 되는 것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목표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라는 뜻입니다.

4. 소중한 사람들을 무시할 때
가족, 연인, 친구 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아까운가요? 그들을 외롭게 만들고 있나요? 그럴 정도로 목표가 중요한가요?

5. 스스로를 합리화할 때
이미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여했기에 포기할 수 없다고 목표를 합리화한다면, 그 목표의 가치는 이미 사라졌을지 모릅니다. 그 목표를 계속 붙잡고 있으면 더 많은 시간, 돈, 에너지를 잃을 수 있죠. 

그만둔다고 해서 실패가 아닙니다. 잘못된 목표를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 용감한 일이고 장기적으로 가치있는 행동입니다. 여러분의 목표는 '건강'한가요?

* 이 글은 아래의 아티클 내용을 제 시각으로 변용한 것입니다.
https://www.fastcompany.com/90612207/5-times-when-you-should-give-up-on-your-lofty-go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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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딸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가던 엄마는 착륙할 시간이 되자 딸의 옆자리, 그러니까 창가에 앉아 있던 어느 남자에게 이런 부탁을 합니다.

"저희 딸과 자리를 바꿔 주실 수 있나요?"

남자가 고개를 자기쪽으로 돌리자 엄마는 말을 잇습니다.

"딸이 비행기가 착륙할 때 창밖을 내다보는 걸 좋아해서요. 그게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된다네요."

그러자 과자를 먹고 있던 남자는 이렇게 대꾸합니다.

"제가 자리를 바꿔 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살다보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따님이 이번 기회에 배우는 게 좋지 않을까요?"

엄마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남자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계속 과자를 씹어댔습니다. 자리를 바꿔 줄 의향이 전혀 없다는 듯이. 그리고 자신도 육지를 내려다 보는 지금 이 순간을 정말 좋아한다는 듯이.

 

해당 인스타그램 쇼츠에서 캡처



인스타그램의 쇼츠로 나온 짧은 에피소드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엄마의 입장이라면 남자의 대꾸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여러분이 남자의 입장에 서 있다면 순순히 여자아이와 자리를 바꿔 줄 용의가 있나요? 

질문을 이렇게 바꿀 수도 있겠네요. 자리를 바꿔달라는 엄마의 요구는 '충분히 그럴 만' 한가요? 반대로, 자리 바꿈을 거절하면서 남자가 말한 이유는 '충분히 납득할 만' 한가요?

남자의 아량이 부족하다, 쫌생이 같다, 자리 바꾸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하지 왜 이상한 이유를 갖다 붙이는가 등의 반응을 보이는 분도 있을 테죠. 반대로, 아이가 원한다고 해서 그걸 무조건 들어주는 게 맞냐, 창가에 앉는 걸 남자도 좋아할 수 있음을 왜 고려하지 않냐, 남자가 돈을 치르고 창가 자리를 구매했으니 자리바꿈을 거절한 것은 정당하다 등의 의견을 말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누가 옳을까요? 아니, 무엇이 옳을까요? 언뜻 쉬워 보이지만 꽤 어려운 질문입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엄마의 입장일 때와 남자의 입장일 때의 의견이 완전히 반대일 수 있으니까요.

어느 휴일날, 북한산 바로 아래에 새로 생긴 까페에 아침 일찍 간 적이 있습니다.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한 대형 프랜차이즈 까페라서 그런지 그 시간에도 손님들로 북적였죠.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우리 앞 테이블에 어느 4인 가족이 앉아 있더군요. 부모는 40대 중반 정도로, 그들의 아들과 딸은 중고등학생쯤으로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그들 중 아빠가 보이는 행동이 흥미로워서 곁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이 음료를 먹다가 조금 흘렸는지 휴지를 가지러 자리에서 일어서자 아빠는 손바닥을 아래로 향해 빠르게 흔들더니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앉아 있어. 아빠가 갖다 줄게."

한두 번이면 '그럴 수 있겠지' 싶었지만, 우리가 그곳에 있는 동안 이 말을 적어도 스무 번 이상은 들었던 것 같습니다. 더 좋은 자리가 생겼는지 음료를 들고 이동하는 장면에서 아빠는 "그냥 가서 앉아. 이건 아빠가 주스 들고 갈게."라고 말했고, 아들이 그 말을 듣고 의자에 걸어뒀던 자기 점퍼를 집어 들려는 시늉을 할 때도 아빠는 "아빠가 갖고 갈게. 먼저 가."라고 말했습니다.

아빠는 아이들의 모든 것을 '대신 해주느라' 자리에 느긋하게 앉아 차를 즐길 시간이 없어 보였습니다. 아니, 아이들이 해야 하는 것이나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이 자기 의무 내지는 자녀 사랑이라고 여기는 듯 보였습니다. 한시도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꼴'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뭐든 대신 해주는 아빠가 있어서인지 아이들은 휴대폰에 코를 박고 게임에 열중하더군요.

여러분이 저처럼 그 아빠의 언행을 관찰자의 시각으로 바라봤다면 '원하는 것' 혹은 '원하지 않더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을 대신해주는 아빠의 사랑에 감복할 것 같습니까? 아니면, 아이들의 자립심을 키워주기는커녕 잘라내 버리는 일종의 '억압'이라고 느낄까요?

저는 그 아빠를 보면서 비행기 창가에 앉은 남자에게 자리를 바꿔달라고 말한 엄마를 연상했습니다. 까페에서 만난 가족들이 비행기를 탄 상황이라면, 그 아빠는 "우리 아이들이 창가에 앉고 싶어하는데 자리를 바꿔주시겠습니까?"라고 그 남자에게 요구했을까요? 그리고 그 아빠는 남자의 거절 이유를 듣고 속으로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오늘은 질문이 많군요. 각자의 입장이 있고 케이스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으며 각자의 육아 철학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범용적' 혹은 '모범적' 답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안물안궁'이겠으나 그런 질문만 골라서 던진 저는 이 두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누구의 입장에 공감할까요? 끝까지 질문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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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의자를 독차지했던 그들을 떠올리며   

2024. 5.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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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연희동에 새로 생긴 베이커리 카페에 간 적이 있습니다. 매장에 들어서니 손님 4명만이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죠. 분명 4명인데 그 테이블 주위엔 여섯 개의 의자가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4개의 의자에는 한 사람씩 앉았고 나머지 2개의 의자엔 사람이 아니라 가방이 대신 ‘앉아’ 있었죠.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테이블이 세 개뿐이고 테이블당 2개씩 의자가 배치된 곳인데, 그 손님들은 옆 테이블에 있는 의자 4개를 모두 독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2개의 테이블은 의자를 ‘빼앗긴 채’ 비어진 상태였고요.

당황스러웠습니다. 우리 일행은 그녀들이 앉은 테이블(의자 6개를 모두 독차지한)을 바라보며 눈짓으로 ‘의자를 좀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분명 그들 중 하나가 우리의 메시지를 수신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외면하면서 자기네들끼리의 대화에 몰두하는 척했습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그녀의 팔뚝에서 자신의 ‘귀한’ 가방이 놓여져 있는 의자를 줄 생각이 없다는 강한 의지가 읽혔습니다. ‘말을 해야 의자를 내 주실 모양이로군.’ 다행히 제가 말을 꺼내려 할 때 다행히 점원이 다가와 대신 의자를 양보 받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옆 테이블에 앉아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그녀들의 테이블에 내내 눈총을 쐈습니다. 자신들 때문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서성이는 다른 손님들이 과연 눈에 보이지 않은 걸까요? 얼마나 귀한 가방인지 모르겠지만 왜 타인의 곤란함을 보고도 외면하는 걸까요? 왜 자신이 남들(다른 손님들과 까페 주인)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걸까요? 자신들이 먼저 왔으니 그럴 만한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걸까요?

 

 


그녀들이 나의 곤란함을 보고도 모른 척 했던 건 아닐지 모릅니다. 대화에 몰입한 나머지 점원이 와서 언질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애초에 자기네들이 매장의 모든 의자를 끌고 와 사용하면 그 테이블에 누군가가 앉지 못하겠다는 생각은 왜 진작에 하지 못했던 걸까요? 사람이 앉을 것도 아니고 그저 가방을 올려두기 위해서? 처음부터 의자를 모두 끌고 온 것과, 우리를 보고도 모른 척 했던 것이 모두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 행동이라고 해서 그냥 넘어갈 일은 절대 아닙니다.

무의식적인 행동은 평소 그 사람의 태도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 거울을 들여다 보면 그 사람이 조직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 타인과 어떻게 상호작용할지, 어떤 갈등을 보일지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죠. 자신의 독차지로 인해 누군가가 곤경에 처할지 모른다는 점을 미리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 타인이 자신 때문에 곤란을 겪어도 ‘그건 네가 늦게 온 탓이야. 좀 일찍 와서 자리를 잡지 그랬어?’라는 식으로 자신이 독차지한 것을 내어줄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 누군가의 언질로 그때서야 짜증스런 표정을 지으며 미안하단 소리 한 마디 없이 내어놓는 사람. 

여러분이라면 이런 무의식적 행동을 보이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습니까? 저라면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할 겁니다.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라고.

태도가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태도는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래 게으른 사람은 여전히 게으릅니다. 본디 여러 개의 떡을 쥐고도 남의 떡을 기웃거리는 사람은 언제나 이기적입니다. 타인의 배려에 감사할 줄 모르고 당연시하는 사람은 주변사람들에게 늘 그런 대접 받기를 당연시합니다. 편법과 임기응변에 기대는 사람은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속빈 강정 같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합니다.

오래 전에 컨설턴트가 되고 싶다며 저를 찾아온 30대 초반의 남자가 있었다. 면접 중에는 그를 뽑아야겠다는 생각이 90% 이상이었지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저는 생각을 고쳐 먹었습니다. 일어나는 충격 때문에 바퀴 달린 의자가 뒤로 밀렸는데, 벽에 부딪힐 정도로 밀린 의자를 보고도 그는 의자를 제자리로 돌려두지 않고 사무실을 나갔습니다. 

거듭 강조하건대, 태도가 전부입니다. 그리고 태도는 무방비 상태에서 무의식의 그림자에서 의식의 거울로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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